<연속기획-1> ‘독서의 계절’ 가을, 헌책방들 사정은?

흔히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현상유지도 헌책방, 영세 출판사 등도 이 기회에 고수익을 낼 수 있으리란 추측도 해본다. 하지만 3자의 판단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 1인당 평균 독서량이 OECD 국가중 최하위인 가운데 이들 업계에게 ‘독서의 계절’은 무의미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위클리서울>은 도심 곳곳 헌책방들의 사정을 들어봤다. 


추억의 단골 사라지는 추세
  
성북구 헌책방을 꽤 오랜 기간 꾸려온 김모 씨는 최근 책방 이사를 했다. 30여 년간 성북구에서만 5번째 이사다. 최근 10년 동안 점포세가 싼 곳으로 세 번을 옮겨 다녔다. 세월이 가면서 헌책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든 탓이다.
“십 수년 전부터 세가 기울었어요.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죠. 장사는 안 되고, 부동산은 계속 오르니, 당할 수가 없어요. 그래도 한 때 책장사 한다 그러면, 적잖게 번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이젠 고물상과 진배 없어요.”
격세지감. 김 씨는 이젠 책을 찾는 사람들이 없다고 했다.
“과거엔 헌책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인근에 대학들도 많으니 사회과학 사적을 찾으러 다니는 학생들도 많았죠. 이젠 그런 낭만은 찾을 수 없어요. 책 읽은 학생들이 없다는 얘기죠. 굳이 읽어서 써먹을 곳이 없다고 판단한 거죠.”    
한때는 오래전 단골이었던 학생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찾아오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잦은 이사로 추억의 단골들도 사라지는 추세. 때론 우연찮게 찾아드는 단골도 있다.
“성신여대 앞에서 꽤 오랜 기간 장사를 했어요. 당시 단골이 많았죠. 고려대, 한성대, 성신여대 등에서 책을 사러 많이 왔었죠. 지금 책방은 성신여대와 1km 정도 떨어져 있지만 우연찮게 지나치다 책방에 들어오는 옛 단골들이 있어요. 그때 그 사람들이 지금은 부쩍 성장해 사회생활을 하고 있을 터인데, 추억의 장소마냥 발걸음을 멈춥니다.”
하지만 이같은 단골이 ‘돈’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추억’에 지나지 않는다. 때론 책의 값어치를 따지는 손님이 등장하기도 한다. “10만원 줄테니 구해달라”고 하는 손님에게 김 씨는 “우리 가게에선 그런 것들 취급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책은 책일 뿐, 책마다 가치의 차이를 두고 싶진 않아요. 전 장사꾼이지 감정사가 아닙니다. 만약 세상에 한권밖에 남지 않은 윤동주의 시집이 제 가게에 있다고 해도, 얇은 종이책에 불과해요. 전 책에 대한 환상을 배제합니다. 몇 천원짜리 시집에 불과하는 얘기죠. 물론… 정말 윤동주 유일한 시집이 우리 가게에 있다면 박물관에 비싸게 팔아야겠죠(웃음).”
매장이 좁아 책들이 별로 없어 그나마 찾아오는 손님들 중 상당수가 원하는 책을 찾지 못해 그냥 되돌아간다는 김 씨. 베스트셀러 등을 주로 찾는 20~30대 손님들은 대부분 시내의 대형 서점을 찾고 있어 매출은 계속 가파른 내리막을 걷고 있다는 것이 김 씨의 하소연이다.



“저야 뭐 자식들도 다 커서 시집, 장가보냈으니 돈 들어갈 데도 별로 없어 그럭저럭 유지해왔지만 이젠 정말 못 버틸 것 같아요. 책 읽는 문화도 사라져 가는데 반대로 시내의 큰 서점들은 늘어나고…. 돈이 돈을 낳는 시대에 이런 작은 서점들이 뭐 어쩔 수 있겠나요. 요즘에는 동네 할인마트 안에도 100~200평되는 큼지막한 서점들이 들어서잖아요.”
동묘에서 10평 정도 되는 크기의 헌책방. 책을 고르는 손님은 많았지만 주인 오모 씨는 혼자 돋보기안경을 쓴 채 책을 읽고 있었다. 10년 동안 이곳에서 서점을 해왔다는 오 씨는 오랫동안 지속되는 불황과 고민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지만 “이렇게 얘기해봤자 나아지겠느냐”며 허탈한 표정만 지었다. 이곳은 중고생들 참고서 때문에 어렵게나마 버티고 있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우리 서점 인근에 학원들이 있어 좀 괜찮았는데 요즘엔 아닙니다. 서점이 너무 작다보니 학생들이 여기엔 와봤자 책이 없겠거니 생각하고 그냥 대형서점으로 가죠. 서점을 늘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그게 어디 하고 싶다고 되나. 지금 같아서는 늘리기는커녕 문 안 닫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죠.”
일부 학생들의 경우 문제집 한 권을 산 다음에 복사나 제본을 해서 여러 명이 보기까지 하니 마지막 보루였던 참고서 매출도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어려운 상황에서 나름대로 자구책을 찾다가 학생들이 보던 참고서들을 저렴한 가격에 사들여 다시 되파는 헌책방 영업도 함께 하고 있다.
“참고서 특성상 일반 책들과 달라서 올해 나온 책들은 내년에 또 못 팔아요. 올해 못 팔면 다 반품해야 되는데 참고서들은 일반 책들과 달라 반품도 잘 안 받아주려하고. 여러 가지로 힘들죠.”


“매출 50% 참고서에 의존”

“가을 같은 소리… 한달에 책 몇 권이나 읽어요? 요즘 사람들 책 거의 안 읽어요. 언론에선 예전보다 독서량이 늘어났다고는 하는데 그거야 일부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얘기고 전체적인 독서 인구는 전혀 늘어나고 있지 않죠. 어떻게 우리 같은 동네 서점들이 많아지겠어요. 다 사라지지.”
90년대 중반부터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는 우모 씨는 지난 1997년 IMF가 터진 이후로 매출이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IMF가 터진 이후 매출이 30~40% 정도 떨어졌어요. 그 후 엎친데 덮친 격으로 대형서점과 책대여점에다 책을 싸게 파는 인터넷 서점까지 생겨났잖아요. 우리 같은 동네 서점들이 버틸 수 없는 것이죠.”
365일 쉬는 날 없이 아침 10시부터 밤 11시까지 하루 13시간 동안 서점을 지킨다는 우 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동네 어귀에 일반 서점, 만화책방 등이 있었는데 지금은 우리 가게만 남았다”고 했다.
“그나마 우리 서점은 지금 이렇게 살아남았지만 장사가 잘 돼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닙니다. 이곳에서 20년 가까이 한 덕분에 비교적 단골손님이 많고 아내가 따로 직장을 다니니깐 살아남았죠. 만약 그렇지 않고 부부가 같이 서점만 운영했더라면 임대료 내기도 빠듯했을 겁니다.”
대형 서점이나 인터넷 서점 때문에 일반 소설이나 수필, 잡지 등은 거의 팔리지 않는다. 예전만 하더라도 학생들 참고서, 잡지, 일반 책들의 판매 비율이 거의 비슷했는데 지금은 매출의 50% 이상을 참고서에 의존하고 있다.
“그나마 비교적 대형 서점 이용이 적은 30~40대 부모들이 자녀들을 위해 찾는 동화책이나 근처에 있는 중고등학교에서 학년별로 정한 권장도서가 어느 정도 도움이 돼요. 효자노릇을 할 것이라 생각한 EBS 문제집들은 결과적으로 다른 참고서들의 판매 하락을 주도했어요. EBS 문제집은 불티나게 팔렸지만 그로 인해 학생들이 다른 참고서를 사지 않기 때문에 전체적인 참고서 판매는 오히려 줄어든 게죠.”
우 씨는 이 같은 동네 서점이 살아남으려면 지금보다 매장이 더 커야 하고 보유 도서도 더 많아야 한다고 했다. 꾸준히 규모를 늘려 대형 서점들처럼 손님들이 더 편하고 여유 있게 책을 살펴볼 수 있도록 공간도 마련하고 책 이외에도 책과 비교적 궁합이 잘 맞는 문구 판매를 겸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얘기다.



우 씨는 또 소규모 서점들 간 네트워크를 구축해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고도 했다.
“상대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책이 적은 소규모 서점들끼리 네트워크를 구축해 서로 책 보유상황을 공유한다면 손님들이 찾는 책이 없을 때 좀더 효율적으로 책을 찾아 제공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소규모 서점들이 규모 확장과 시설 개선 등을 할 때 저금리로 대출을 해주는 등의 배려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요즘 이 바닥에도 거대 자본들이 많이 들어와서 서점들이 더욱 대형화, 첨단화 되고 있는 추세지. 어떤 사람들은 경제 원리를 말하지만 책이란 게 꼭 경제 원리로만 다룰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렇게 되면 우리 같은 서민들은 어떻게 먹고 살라는 건지….”
우 씨는 예전부터 서점을 그만두고 업종을 바꾸고 싶은 생각을 몇 번이고 했지만 현재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그나마 교육상 도움이 되는 것 같아서 계속 서점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록 서점을 꾸려가기는 힘들지만 아이들이 책과 가까이 지내며 원하는 책을 마음껏 볼 수 있어 그런지 다른 아이들보다 독서량이 많고 학교성적도 상위권이라고 한다.
“평소보다 매출이 절반이상 뚝 떨어지는 비성수기(봄, 가을)에는 가게 임대료 내기도 힘들지만 그나마 우리 애들이 책을 좋아해서 계속하고 있어요. 애들이 대학생이 돼서도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그때는 정말로 업종 변경을 해야죠.” 이주리 기자 juyu22@naver.com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