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에 가면 한양이 보인다”
“낙산에 가면 한양이 보인다”
  • 승인 2011.10.28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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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 역사 현장 탐방 5 - 서울 성곽편 2 동대문∼동소문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게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 인용하며 유명해진 문구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도 문화유적의 참맛을 느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방화로 소실된 국보 1호 남대문의 부재는 두고두고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이에 <위클리서울>은 서울 인근의 유적지를 직접 찾아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서울성곽을 차례로 둘러보게 됩니다. 그 첫 코스는 동대문부터 동소문(혜화문)까지로 낙산성곽이 중심입니다.
 







# 언덕에 가까운 낙산 성곽 코스는 40분 정도면 모두 돌아볼 수 있다.


`동동 동대문을 열어라∼ 남남 남대문을 열어라∼`.

누구나 어렸을 적 한번쯤은 불러봤음직한 노래다. 그만큼 4대문과 서울 성곽은 알게 모르게 우리 삶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서울성곽 순례의 첫 코스를 동대문에서 시작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다. 동대문은 남대문과 함께 가장 교통이 편한 곳에 있다. 북대문은 북악산 중심부에 있고 서대문은 그 터만 남아서 상대적으로 가치가 떨어진다. 그나마 국보 1호인 남대문은 2008년 초 화재로 현재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이다.




# 보물 1호 동대문

"동쪽을 일으킨다"

동대문부터 동소문까지 가기 위해선 낙산을 넘어가야 한다. 낙타산으로도 불리는 낙산은 내사산(內四山-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 중 가장 낮은 125m의 산이어서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다. 게다가 낙산 성곽은 상대적으로 복원이 잘 된 곳 중 하나여서 서울성곽을 처음 접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주위에 먹거리 장소도 많다. 수많은 사람이 오고가는 동대문 주위는 음식점들로 가득하고 인접한 대학로도 여기에 뒤지지 않는다. 과거 낙산하면 떠올렸던 `낙산냉면`과 `깃대봉냉면` 집은 동묘역 인근으로 내려왔는데 점심 시간 냉면을 먹기 위해 줄 서 있는 모습은 여전하다. 추억을 다시 맛보고 싶다면 동대문역에서 10분 정도 발품만 팔면 된다.















# 동대문의 다양한 모습들. 4대문 중 유일하게 옹성을 갖췄다.



보물 1호인 동대문의 또 다른 이름은 `흥인지문(興仁之門)`이다. 여기서 상식 한 가지. 보통  방위를 말할 때 `동서남북`이라고 표현하고 `남북동서`와 같은 말은 사용하지 않는다. 4대문의 이름엔 이 순서대로 조선시대에 중시했던 `인의예지`가 차례로 들어가 있다. 동대문은 `흥인지문`이고 서대문의 또 다른 이름은 돈의문(敦義門)이다. 남대문은 숭례문(嵩禮門), 북대문은 숙정문 혹은 소지문(昭智門)으로 불린다.

유독 흥인지문에만 `지(之)`가 첨가된 것은 예부터 동쪽이 낮아 왜구의 침입을 많이 받으므로 동쪽의 기운을 높이는 뜻에서 산맥을 뜻하는 `지`자를 붙였기 때문이다. 또 `인(仁)`은 오행 가운데 나무(木)에 해당하고 이는 동쪽에 해당한다. 따라서 `흥인(興仁)`은 동쪽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그만큼 우리 조상들은 4대문의 호칭을 정하는 것에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













# 낙산 성곽은 비교적 복원이 잘 된 곳 중 하나다. 맨 아래는 암문 사진.

3가지 `축조 방식`

한양의 동쪽 정문인 동대문은 4대문 중 유일하게 반달 모양의 옹성을 갖췄다. 지대가 낮고 습기가 많아 이를 방지하려는 목적과 적을 공격하기에 유리하기 때문에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는 왜적이 가장 먼저 입성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1396년(태조 5)에 건립되고 1453년(단종 1)에 중수됐으며, 1869년(고종 6)에 이를 전적으로 개축해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화강암으로 홍예문을 만든 뒤 그 위에 문루를 세웠다.

문루는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모양을 한 우진각 지붕(용마루에서 지붕면이 사방으로 다 비탈져 있는 양식)이다. 처마 끝은 여러 개의 나무로 짜 맞춘 다포 양식인데 세밀한 부분의 기법이 약하고 장식 위주로 돼 있어 조선 후기의 양식을 잘 보여준다.

동대문을 둘러봤으면 지하도를 통해 이대부속병원 앞쪽으로 건너간다. 골목길 앞엔 `낙산공원`이라는 안내판이 걸려 있고 `도보관광코스 만남의 장소`라는 표지판도 세워져 있어 찾기는 어렵지 않다.

왼쪽으로 도로에 끊겼던 서울성곽이 시작되는데 나무가 우거져 더운 날에도 쉽게 오를 수 있다. 낙산성곽 코스는 시대에 따른 성곽 축조 방법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울성곽은 각각 태조와 세종, 숙종 때로 축조 시기를 나누는데 태조땐 비교적 잔 석재로 쌓았다. 세종 시기엔 대형 석재를 다듬지 않고 사용해 하부를 쌓았으며 상부는 태조 때 사용된 잔 석재를 썼다. 숙종 때엔 2자 크기의 돌을 정방형으로 다듬어 벽돌 쌓듯이 견고하게 올렸는데 빈틈은 없지만 다소 경직된 분위기다.




# 이 곳에서 낙산 성곽이 시작된다.


"5대 명승지 중 하나"

낙산성곽을 따라 정상인 낙산공원에 이르기까진 20분 안팎이면 충분하다. 전체적으로 관리가 잘 돼 있는 곳이지만 초입은 `쓰레기 무단투기 금지`와 `주차금지`를 알리는 안내판이 붙어 있을 만큼 다소 산만하다. 기자가 찾았을 때도 한쪽 모퉁이엔 경고문을 무시하듯 쓰레기가 버젓이 버려져 있었다.




# 경고 문구를 무시하기라도 하는 듯 쓰레기 더미가 잔뜩 버려져 있다.


이 곳에선 카메라를 들고 성곽길과 인근 창신동 골목길을 누비는 젊은이들과 정자에 모여 담소를 나누는 주민들의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아예 성곽 그늘에서 돗자리를 펴고 한낮의 여유를 즐기는 가족도 있었다.

낙산 정상엔 낙산 공원이 깔끔하게 조성돼 있다. 야경으로 유명한 이 곳은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인기가 높다.
낙산은 산 모양이 낙타의 등을 닮았다고 해 낙타산(타락산)이라고도 불린다. 서울 도성의 동쪽산으로 풍수지리상 동쪽 좌청룡에 해당한다. 산 전체가 화강암 암반으로 돼 있으며 과거엔 암석이 기이하고 수림이 울창해 도성안 5대 명승지로 꼽혔다.




# 일가족이 성곽 그늘 밑에서 휴식을 즐기고 있다.


조선시대 인평대군이 지냈던 석양루를 비롯 정자가 많아 왕족과 문인들이 자주 찾던 곳이었다. 낙산 일대는 과거 배추밭이 많았던 곳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근대화 과정에서 무분별한 도시 계획으로 방치돼 오다 지난 2002년 공원이 조성되면서 비로소 역사성이 회복됐다.

낙산 공원에서 그냥 하산하기 아쉽다면 낙산 인근의 유적지를 돌아보는 것도 좋다. 청백리 류관과 지봉유설의 저자 이수광이 살았던 `비우당`이 10분 거리다. `비우당` 바로 뒤에선 단종비 송씨가 비단을 빨았다는 `자주동샘`을 만날 수 있다.


송씨가 살았다는 `청룡사`와 `정업원구기 비각`, 매일 올라 영월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동망봉`도 멀지 않아 넉넉잡아 한시간이면 모두 돌아볼 수 있다.














# 위로부터 비우당, 자주동샘, 정업원 구기 비각, 동망봉


"혜화문엔 봉황이"

다시 낙산 공원으로 돌아와 혜화문으로 가는 코스는 두 가지다. 성벽 안쪽길을 따라 대학로로 내려간 뒤 돈암동 방면으로 가는 길이 첫 번째다. 성벽 바깥쪽으로 삼선동을 지나 한성대역 5번 출구로 나와도 혜화문을 만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20분이면 도착 가능하다. 현재 성벽 바깥쪽 길은 복원 공사로 출입을 막고 있지만 들어가도 특별한 제지는 없었다.




# 성벽 안쪽으로 걸으면 이쁜 나무 계단을 통해 대학로로 내려가게 된다.





# 성벽 바깥쪽은 복원 작업이 한창이다.


낙산 성곽은 가톨릭대학교 뒷산으로 이어져 혜화문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학교 차원에서 출입이 금지돼 있어 아쉬움이 크다. 언젠가는 시민들에게 개방될 날을 기대해 본다.

혜화문은 1396년(태조 5)년 지어졌는데 원래 이름은 `홍화문`이었다가 1511년(중종 6년) 지금 이름으로 바꿨다. 그 후 건립 당시의 문루가 없어져 1744년(영조 20) 다시 지었다. 북대문인 숙정문이 항상 닫혀 있어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고 하는데 특히 여진의 사신은 반드시 혜화문을 거쳐야만 서울에 들어올 수 있었다.

혜화문엔 봉황이 그려져 있는데 성문 밖 돈암동 일대에 새가 많아 그 피해를 막기 위해 조류의 왕격인 봉황을 그려놓았다고 한다.









# 혜화문은 1992년부터 3년에 걸쳐 복원됐다.


혜화문은 일제 강점기에 문루와 석문이 모두 헐리는 수모를 당했다가 1992년부터 3년에 걸쳐 복원됐다. 현재 있는 위치는 원래 자리에서 서북쪽으로 30m 정도 옮긴 것이다.

혜화문을 돌아본 뒤 시간이 남으면 인근의 창경궁과 창덕궁, 종묘를 돌아보는 것도 좋다. 





# 녹색연합이 제작한 <서울성곽 순례길> 중 해당 약도



- 다음호에선 동소문부터 북대문을 거쳐 북소문에 이르는 북악산 코스를 다룹니다. 군사 지역이라 신분증을 필히 지참해야 합니다. 오후 3시가 넘어선 입장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 조절도 필요합니다. 낙산 코스가 산책이라면 북악산과 인왕산 코스는 등산에 가까워서 등산화나 운동화가 꼭 필요한 곳입니다. -



김승현 기자<okkdo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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