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벌, 벌, 벌과의 한철: 열다섯 번째




여기가 어디인가. 아득하다. 막막하다. 갑자기 호송차에 실려 낯선 곳에 내려진 기분이다. 그저 대부도라는 것만 알 뿐, 아무런 상식도 지식도 우리에게는 없다. 하늘을 보니 그믐달이 샐쭉하게 걸려 있다. 앞에서는 개구리들이 씩씩한 소리를 낸다. 옆에서는 멀리 어딘가에서 개 한 마리가 간단없이 짖어댄다. 개구리가 우는 쪽은 아마도 개울이거나 논이거나 어쨌든 물이 있는 곳일 게다. 개소리가 들리는 쪽은 인가가 있을 게고.

안 오는 잠을 억지로 청하다가 포기하고 라디오를 켰다. 이십대 시절에 즐겨 들었던 ‘밤을 잊은 그대에게’ 같은 프로그램이 잡힌다. 그것을 듣다가 먼동이 터오를 즈음쯤 어떻게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깜빡 든 잠 치고는 꽤나 오래도 자버렸다. 하긴 ‘겁나게’ 피곤하기도 했을 것이다. 눈을 뜨니 햇살이 반짝이 종이처럼 차창에 가득 차 있다.

배가 고프다. 그러나 밥을 해 먹기는 싫다. 배는 고파도 해먹기는 싫은 이 귀차니즘은 뭐냐. 어디 가서 사 먹자, 하고 둘이서 식당을 찾아 가려고 하는데 어마, 이것은 또 뭐냐. 우리가 봉장을 차린 곳에서 백여 미터 거리도 안 되는 숲속에 식당이 있다. 밤새 들리던 개 소리의 진원지가 밝혀진 셈이다. 이건 횡재다. 세수할 물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이웃사촌이 됐는데 그 정도 편의쯤 안 봐주겠나, 하는 생각으로 쑥 들어갔다.


# 개발의 이름으로

꿈이었다. 꿈도 참 야무진 꿈이었다. 그런 쪽으로는 말 한 마디 붙여볼 수 없었다. 식당은 오리 전문점인데 좀 묘했다. 도로변에서는 식당이 있는 줄도 모르게 숲으로 가려져 있는데 간판은 쓰러진 채 방치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영업을 안 하는 것도 아니다.

주인아줌마의 태도는 더욱 묘했다. 마치 무슨 고문이라도 당했던 사람처럼, 우리가 마치 자신을 협박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겁을 잔뜩 먹은 표정으로 자꾸 눈치를 살핀다. 반찬 그릇을 가져와서 식탁을 차리는 손은 아예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냐. 왜 이러는 것이냐? 우리는 서로의 눈치를 보며 고개나 절레절레 흔들어댈 뿐 말 한 마디 붙여볼 수 없었다.

그렇게 뭐에 잔뜩 홀린 기분으로 허둥지둥 밥을 먹고 쫓기듯 식당을 나오고 말았다. 그리고 그날 오후 한 남자의 방문을 받았다. 그는 오리 전문 식당의 주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아, 그렇다면 겁을 잔뜩 먹은 그 아줌마의 남편이구나, 그렇다면 이 남자가 자기 아내를 두들겨 팼었는가?


# 관광지는 역쉬


# 제비콩 꽃


아닌 게 아니라 전과가 제법 있어 보였다. 얼굴이며 다른 부위는 별달리 고생하며 살아온 것 같지가 않은데 손가락 마디가 굵었다. 한 눈에 척 봐도 주먹질 꽤나 해본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그 주먹으로 마누라를 두들겨 패냐. 시시한 주먹이구나. 속으로 그런 생각이나 뒤적거리며 남자의 방문 용건이 무엇인지 은근 긴장한 채로 기다렸다. 그런데 그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술 좋아하십니까? 갑시다. 우리 집으로, 한잔 하면서 얘기 좀 합시다.”

“아 저, 우리는 지금 술 마실 때가 아닙니다마는.”

“술 마실 시간이 따로 있습니까? 그렇다면 지금이 그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뭘 그러십니까. 아니면 지금을 그 시간으로 만들면 되는 거고, 안 그래요? 세상을 내게 맞게 만들어야지, 나를 세상에 맞춘다면 그거 무슨 맛으로 살겠는가 이겁니다, 제 말씀은. 아 물론 그렇다고 강요는 안 합니다. 어쩌시겠습니까. 저를 따라서 저희 집으로 가시겠습니까?”



# 대부도 영흥간 다리


그야말로 완전 막가파식이었다. 우리의 생각 따위는 들어볼 필요도 없다는, 당신들은 아마 생각 같은 것이 아예 없을 테니 내 말만 듣고 따라 오라는 식의 뭐랄까, 무례라고 하기에는 제법 친절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그리 크게 불쾌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썩 그리 즐겁지도 않은 초대인 셈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그를 따라서 갔다. 그리고 그의 엄청난 다변에 놀라 자빠지고 말았다. 사람이, 그것도 멀쩡한 정신의 남자가, 그렇게까지 정신없이 일방적으로 한 시간도 넘게 혼자서만 쉴 새 없이 지껄일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그날 처음 알았다. 어쨌든 그가 말했다.

“우리 마누라가 요새 말입니다. 나만 집에 없으면 아주 그냥 사형집행 직전의 죄수가 되어서 축 늘어져 버립니다. 사시나무 떨듯 한다는 말 있잖습니까. 완전히 그렇게 돼버려요. 손님이 와도 손님으로 보지를 못하고 자객으로 보는 겁니다. 언제 어떤 무기로 어디를 가격당할 지 몰라서 벌벌 떠는 피해망상증이라고나 할까, 뭐 그렇습니다.”



# 밤에만 노래하는 산개구리


# 파리채에 맞아 떨어지는 말벌


아하, 사내가 쩨쩨하게 마누라를 두들겨 팬 게 아니라 그런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인가? 그렇다면 어떤 사연이?

“내가 그냥 저놈의 여편네만 보면 속에서 피가 끓어올라 못 살겠어요. 그래서 오늘도 한심한 공무원 녀석들하고 장장 세 시간을 삿대질만 하다가 돌아왔습니다. 이게 말이에요. 얘기가 참 구절양장입니다. 우리 마누라가 예전에는 개그우먼 소리를 들을 정도로 농담도 잘 하고 싹싹하고 애교도 제법 있었단 말이거든요. 그랬던 마누라가 작년부터 완전히 파김치가 돼 버렸습니다. 왜냐. 여기서 이십 분만 달리면 인천이란 말입니다. 인천이 항구도시라 조폭이 몇 개 있는데 말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우리를 표적으로 삼았어요. 적을 때는 두세 놈, 많을 때는 십여 명씩 몰려와서 이 땅이 곧 자기들 땅이 될 테니 준비하라는 둥의 헛소리를 아주 천연덕스럽게 해대는 겁니다. 저도 사실은 한때 주먹을 쓰고 살았습니다. 그때 맺은 원한관계가 아마 한둘이 아니었겠지요. 저는 뭐 거의 기억을 못하지만 말입니다. 원래 그런 게 그렇잖습니까. 때린 놈은 기억 못해요. 당한 놈이 기억하고 있다가 나중에 복수하러 나서는 거지. 제가 말입니다. 마누라를 알고부터 주먹 쓰는 일이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애 낳고 조용히 착하게 살고 싶다고 보스한테 애원을 했어요. 그때 우리 보스가 나한테 뭘 해주었는지 아십니까. 새끼발가락 두 개를 잘라 갔어요. 그리고 지금의 이 땅을 사준 겁니다. 그때는 이곳이 그냥 황무지였지요.
황무지에 집을 짓고 오리농장을 만든 겁니다. 처음에는 인천의 오리 전문 식당에 납품을 했지요. 그러던 중에 마누라가 우리도 오리 전문 요리집 하자, 해서 식당을 꾸민 겁니다. 대부도가 유원지로 알려져 있고, 그래서 사람이 제법 들어오기는 하지만 이곳은 아시다시피 외떨어진 곳 아닙니까. 많은 손님을 바랄 수 없는 곳이에요. 실제로도 많은 손님을 바라지도 않았고요. 부끄러운 얘기지만 장사보다도 우리는 사랑할 시간이 더 소중했단 말이거든요. 하여튼 뭐 그랬는데, 지방정부에서 이곳을 무슨 수목원 부지로 지정을 해버린 겁니다. 그때부터 조폭들이 침을 흘리기 시작했지요. 벌써 일 년도 넘었어요. 일 년도 넘게 일주일이 멀다하고 쫓아와서 협박을 해대니까 이게 사람이 온전할 수가 없는 거지요. 게다가 작년 가을 조류독감이 설치기 시작한 이후로 그나마 있던 손님조차 발길이 거의 뚝 끊기고 말았습니다. 한 달에 오리 다섯 마리 처분하기도 어려운 지경이 돼 버렸어요. 그런데다 엎친데 덮친다더니 어느 하루 간판을 치우라는 공문이 날아 왔습니다. 대통령이 어디를 가는데 요 앞 도로를 지나가게 된다는 겁니다. 대통령이 뭡니까, 대통령이, 예? 그 사람이 지나간다고 간판을 철거하라니, 이런 넋빠진 공무원들이 대한민국에 있더란 말입니다. 저기 밖에 도로변에 자빠져 있는 저 간판이 말이에요. 세우느라 백이십 만원 들었습니다. 우리 가게가 새소리 재잘거리고 해서 그림은 좋지만 숲속이란 말입니다. 도로변에 간판이라도 없으면 어떤 사람이 이 숲에 오리전문점 있다는 걸 알고 찾아오겠습니까. 그래서 간판 세웠어요. 간판이 많지도 않고 달랑 하나인데, 달랑 하나에 백이십 만원 들어갔어요. 왜 그렇게 많이 들었는가. 저게 보기에는 간단한 것 같지만 간단하지가 않아요. 사람의 손으로는 세울 수가 없어요. 그래서 중장비가 동원됐는데, 이 중장비가 멀리 인천에서 와요. 그러면 중장비가 제 발로 오느냐. 아니죠. 트레일러에 싣고 와야 해요. 왜냐. 중장비가 제 발로 여기까지 오려면 하루가 꼬박 걸려요. 그래서 다른 차에 싣고 온다고요. 그래서 경비가 그렇게 많이 든 거예요. 하여튼 그랬는데, 그런데 대통령이 한 번 지나간다고, 그것도 무슨 걸어서 가는 것도 아니고 차타고 홱 지나갈 텐데, 응? 그런데 간판이 미관상 안 좋다나 뭐라나, 이런 빌어먹을, 안 좋기는 뭐가 안 좋다는 건지 그런 설명도 없어요. 그냥 뽑으라 이거에요. 일단 뽑았다가 대통령 지나가고 나면 다시 세우든 말든 알아서 하라 이거에요. 그렇다고 내가 안 뽑으면 어떻게 되느냐, 지들이 와서 뽑겠지요? 행정대집행이라나 뭐라나 뭐 그런 게 있단 말이거든. 그래서 그렇게 돼 버렸어요. 내가 안 뽑고 버티니까 지들이 와서 저렇게 넘어뜨려 놨어요. 내가 말입니다. 이래봬도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민주국가에요. 내가 한문은 잘 모르지만 민주라는 뜻은 압니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죽을 때까지 주인인 내가 임기 5년밖에 안 되는 대통령 한 번 지나간다고 재산상의 손해를 봐야 합니까? 아 물론 설마 대통령이 직접 그런 지시를 하지는 않았겠지요. 대통령은커녕 청와대 차원에서도 전혀 모르는 일이겠지. 그렇다고 내가 당해야만 합니까?
저게 말이죠. 오리 뒤쪽으로 닭장에 닭 보이죠? 오리만으로는 먹고살기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닭백숙 메뉴를 추가하면서 닭을 기르기 시작했어요. 저게 형씨들 눈에는 그냥 닭으로 보이겠지만 내 눈에는 고기로 보이거든요. 사실 그렇잖아요? 미래의 고기니까 현재도 고기란 말이에요. 고기인데, 고기가 지금은 살이 다 빠져버렸어요. 뼈와 털만 남았어요.
이런 일은 처음이에요. 왜냐구요? 아 팔아야 하는데 팔 시기를 놓쳐 버린 거죠. 닭은 병아리부터 일 년 미만까지 한참 크다가 일 년 지나면 더 이상 안 커요. 그때부터는 살이 붙는 게 아니라 빠지는 거예요. 한 마디로 말해서 식당 하는 사람에게는 최악의 상황이 되는 거죠. 안 줘도 괜찮을 사료를 줘야 하니 손해지, 닭고기로 팔아서 투자금을 회수하고 재투자를 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니 또 손해지. 돌아버릴 지경이라니까.
이게 다 조류독감 때문인데, 음식물 쓰레기로 사료를 만들어서 일 톤에 십여 만원씩 공급해주던 그것마저 중단돼 버렸으니 이게 말이죠. 하아 나 참, 죽으나 사나 고급 사료를 줘야 하는데, 하루라도 먹이를 안 주면 닭들이 어떻게 되는 줄 알아요? 죄다 뛰쳐나와서 식당으로 기어 들어온다니까, 음식 냄새가 나니까, 그쪽으로 꾸역꾸역 밀려들어오는 거예요.
내가 아는 놈 하나는 말이에요. 작년 겨울에 기러기 이천 마리 살처분했는데 마리당 사만원씩 팔천만원을 그냥 벌었어요. 그걸 보면서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다니까. 내년에는 나도 기러기를 한 만여 수 가져와서 기르다가 어디서 조류독감이 돈다는 얘기만 나오면 그것 몇 마리 가져다가 집어넣고 우리 기러기 조류독감이다, 이렇게 신고하고 그냥 보상금이나 타먹을까, 이런 더러운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너무 더러운 짓 같아서 생각만 하다가 말았거든요.
어쨌든 이젠 다 포기했습니다, 예, 포기했어요. 수목원인지 지랄인지 그거나 빨리 시행했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발표만 해놓고 후속조치가 없으니까 이거 조폭들이나 침을 흘리며 덤비고, 대통령이 지나간다고 간판이나 철거하라고 난리고, 환장하겠다는 거죠. 어려워요, 살기, 참 어려워요.
내가 주먹을 쓸 때는 힘 하나도 안 들이고 잘만 살았거든. 마누라한테 꽂혀서 애 낳고 깨끗하게 좀 살자, 했는데, 했는데 말이에요. 그게 이렇게도 어려울 줄 그때는 뭐 꿈에서나 생각을 했겠습니까. 처음에 내가 여기 와서 말이에요. 소쩍새라나 뭐라나 그놈의 새 소리 때문에 무서워서 잠을 못 잤어요.
야아 그 소리 참 되게 무섭대. 밤만 되면 여기서 소쩍, 저기서 소쩍, 마치 무슨 포위망이 좁혀오는 신호처럼 들리는데 말이에요. 그래서 집안에 전등이란 전등은 모조리 켜놓고 오디오를 빵빵 소리 나게 틀어놓고 잠을 청하곤 했단 말이거든요. 그러던 내가 요즘은 그 소리가 안 들리면 허전해서 잠을 못 자요. 허참 나, 이게 결국 정들었다는 증거란 말이거든요.
정이나마나 어떤 이유로든 이제 떠나야만 하게 되고 말았는데 말이에요. 그런데 이게 억울해서 말입니다. 도저히 그냥은 못 떠나겠어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형씨들을 좀 뵙자고 한 것입니다. 용건은 뭐냐. 정중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탁 까놓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벌통 하나에 얼마씩 쳐주면 나한테 넘길 수 있습니까? 난 이제부터 정부를 상대로 사업을 좀 해보려고 합니다.
저도 나름 알아봤어요. 꿀이 시작되는 봄에는 벌 한 통에 이십 만원이 넘는다 합디다. 꿀이 끝난 가을에는 십만원 이하로 떨어지고. 맞죠? 내가 벌통 하나로 공무원들을 어떻게 요리해서 몇십을 받을지, 아니면 몇백을 받아낼지, 것도 아니면 한푼도 못 받고 망해버릴지, 아 그것은 나도 모릅니다. 하여튼 앉아서 당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뭐든 해보려는 거예요. 아시겠습니까? 동의해주시겠습니까?”



# 봉장


전직 조폭 남자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났다. 우리는 그의 생각에 동의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동참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고자 벌을 선택한 것인지 누구든 타인의 삶에 보탬이 되고자 유목을 나선 것이 아니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남자는 뜻밖에도 엉뚱하게 술 생각이 나면 언제라도 오시라는 말로 자신의 제안을 깔끔하게 정리해 버렸다.

그 뒤로 우리는 대부도를 떠나기까지 십여 일 동안 서너 차례 정도 술자리를 같이 했지만, 그러나 노는 물이 워낙 다른 까닭에 깊은 정을 맺지는 못한 채 헤어지고 말았다. 돌이켜보니 새삼 궁금하다. 그들 부부에게 닥친 그 뒤의 상황이.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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