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사람들을 찾아서> 노원구 상계중앙시장



노원구 중심가에 자리해 유동인구가 많은 상계중앙시장도 연이은 혹한의 날씨에 움츠러들었다. 영하 7도에다 찬바람까지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 10도 이하로 느껴질 만큼 추운 탓에 시장 상인들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손님들을 기다렸다. 그러나 좀처럼 손님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다. 뻥튀기로 쌀강정을 만드는 한 상인은 손님이 절반으로 줄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때쯤이면 강정을 만들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데 이렇게 한가해요. 요 몇 년 계속 이어져온 일이긴 하지만, 한파에 불황까지 겹쳐 으슬으슬합니다. 곧 명절인데, 예년에 비하면 절반도 찾지 않고 있어요.”

연초나 명절이 연매출의 중추 역할을 해오던 시절도 지났다.

“엄청난 타격을 받고 있죠. 재래시장에서는 대목이 1년 매출의 50~60%를 차지할 만큼 중요한 시기잖아요. 먹을거리 소비가 줄면서 손님들 발길도 자연히 줄고 있어요. 원래 설에는 떡국을 많이 먹어 소고기를 비롯 사골도 같이 많이 팔리는데 이쪽 소비가 전반적으로 줄었습니다. 지난해 이맘때에 비해 전체 가게들의 매출이 30~40%는 줄었을 겁니다.




한 생선가게 주인은 굴비가 팔리지 않자 국거리용으로라도 싼값에 손님들에게 팔려는 듯 지느러미를 잘라내고 있다. 다른 점포도 사정은 마찬가지. 사람들로 한창 붐벼야 할 명절 전이지만 과일과 쌀, 곡물 가게 등에는 물건이 팔리지 않아 상품이 그대로 진열돼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에 밀려 시장을 찾는 손님이 줄어들었다는 게 상인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상인들은 물가가 오르면서 재래시장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마저 끊겨 매출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곡물 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연신 한숨만 내쉬었다.

“연말이나 연초, 명절 등이 겹치는 시기인데도 대목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재래시장이 어려워요. 이제 재래시장에서 대목 분위기를 느끼기는 힘들죠. 요즘 사람들은 마트에서 물건을 구입하거나 산지에서 직접 구입해 버리잖아요. 오늘 하루 종일 고추 한 근도 팔지 못했어요.”

수산물 가게도 마찬가지다.

“가격이 비싸지면서 사람들이 안 사가요. 무서워서 물건을 못 갖다 놓습니다. IMF때보다 장사가 더 안 돼 굶어 죽을 지경입니다.”




건어물 가게 주인은 어두운 표정으로 가게 문을 일찍 닫고 퇴근한다고 했다.

“대목은 무슨, 대목 잊은 지 오래 됐어요. 장사가 너무 안 돼 작년 이맘 때 오후 9시까지 열던 걸 요즘엔 오후 7시면 가게 문 닫고 들어가요. 대형마트에 치어, 한파에 치어 재래시장은 정말 죽을 판입니다.”

한 정육점에선 붉은 불빛만 희미하게 새어나오고 있다.

“팔린 것도 없고, 냉장고에 넣을 물건도 없네요. 장사가 안 돼 물량은 3분의 1로 줄었는데 소와 돼지가격은 껑충 뛰면서 매출이 반 토막 났어요. 가격 피해자는 사실 소비자들이 아니에요. 우리 같은 중소 소?돼지고기 판매업자죠. 요즘은 은행 빚내서 삽니다.”

가공식품 도,소매납품가게를 운영하는 주인은 “물가 잡는다더니 안 오른 게 없다”며 강하게 정부의 물가정책을 비판했다.





“도매상에서 납품받는 2만원짜리 부탄가스(27개 1박스)는 2만3000원으로 뛰었고 설탕, 된장, 고추장 등도 20% 가까이 올랐어요. 오른 게 많고 오름폭도 크다보니 예전엔 거래처끼리 가격 올리기 전에 유예기간을 줬었는데 이젠 턱도 없어요. 바로 올려 버립니다.”

손해가 커도 곧 다가올 명절 때문에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매출 떨어지고 이탈하는 거래처 때문에 손해가 크지만 명절 거래처 선물은 돌려야 해요. 올해는 예년의 4~5만원짜리 4단 사과선물세트 대신 1~2만원대 생활용품 선물세트로 인사치레만 할 생각입니다.”

그나마 점포가 있는 상인은 낫다. 노점 상인들은 더욱 힘들어보였다. 노상에서 야채를 파는  한 상인은 하루 5만원 벌기도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오늘 3만원도 채 못 팔았어요. 곧 설인데 손자들 세뱃돈도 못줄 판입니다. 날도 춥네요. 몇 겹을 껴입어도 너무 추워 팔다리가 쑤셔요. 장사도 안 되는데 날씨까지 추워 파는 것보다 얼어서 버리는 야채가 더 많죠.”





대목 분위기가 느껴질만한 과일가게도 썰렁하기 그지 없었다. 시장 중심부에서 과일장사를 하는 상인은 한 쪽에 쌓여 있는 사과, 배 선물세트 등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추워서 다 인근 대형마트로 갔는지 아직 선물세트 찾는 손님이 많지 않아요. 인근에 백화점, 대형마트 등이 들어온 뒤로 교통체증이 심해져 시장 오는 사람은 더 줄었죠. 말 그대로 재래시장은 ‘죽어라 죽어라’ 하는 상황입니다.”

좀 더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사려고 시장을 찾은 손님들도 물건 값이 예전보다 오른 탓에 쉽게 지갑을 열지 못했다. 손님 신모 씨는 “추워도 싸게 살 수 있을 거란생각에 왔는데 너무 비싸 아직 산 게 없다”며 빈 장바구니를 보여줬다. 그는 “안 오른 게 없는 것 같다”며 “배추도 한포기에 5000원이 넘고 팥, 녹두 등도 2~3배 이상 올랐다”며 “설 때 제사는 어떻게 지내나…”고 한숨을 내쉬었다.




박모 씨는 “작년에 비해 과일 값이 크게 올라 구입할 때 고민을 많이 했다”며 “어르신들(시부모)이 과일을 좋아해서 안 살수도 없으니 예년에 산 것보다 양을 줄여서 살 것”이라고 털어놨다.

갈치 두 마리를 두고 흥정을 하던 김모 씨는 “재래시장이 다른 데 비해 싸다고는 하지만 구입할 때 여전히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라며 “그렇다고 안 먹고 살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김 씨는 대형 마트나 백화점보다 물건의 질이 더 좋고 정이 많다는 이유로 시장을 찾게 된다고 했다. 그는 “사실 재래시장을 살리려는 마음으로 왔다”며 “주변에 마트나 백화점도 많다. 마트보다 불편하지만 그에 비해 질이 좋아 자주 찾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생선가게 상인은 김 씨와 같은 단골 때문에 장사를 그나마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조기 10마리에 5000원입니다. 고등어는 한 마리에 무조건 1000원이고요. 게다가 마트보다 품질이 좋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재래시장을 찾아와요. 질도 좋고 가격도 싼 만큼 재래시장을 많이 이용해주세요.”




상인은 마트와 마찬가지로 상품권, 쿠폰 도입 등이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재래시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장사가 잘 되는 시장도 있다고 들었어요. 상품권 가치가 올라간 케이스겠죠. 다른 곳처럼 재래시장 상품권은 상인들에게도 홍보부족 등으로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거든요. 상품권, 나아가 쿠폰을 발매해야 대형마트에 가던 손님들 발길을 시장 쪽으로 돌릴 수 있습니다. 날씨가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대형마트나 백화점을 찾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죠.”

몇몇 상인들은 대목을 앞두고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나름의 홍보와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 연이은 한파로 시장을 찾는 발길은 줄어들고 있는 상황. 상인들의 시름은 깊어져만 가고 있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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