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만질 수 없는 엄마에게 쓰는 편지-세번째


# 이때가 겨우 2년전인데


엄마.
올해 겨울은 별나게도 춥네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있으면 덜 추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작년에는 엄마가 옆에서 날 지켜봐준 덕분에 덜 추웠다는  느낌이었달까. 두터운 외투를 걸친 방안에서도 컴퓨터 키보드를 치려면 손가락 끝이 깨지는 것 같아서 호호 불어야만 하니 아 겨울은 겨울이로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역시 겨울은 추워야 해, 하는 그런 제법 기특한 깨달음의 시간도 있는데 아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암튼 그리 나쁘지는 않아요.

그런데 엄마, 내가 텔레비전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가끔 켤 때가 있거든. 뉴스를 보고 싶다던가, 문화적인 어떤 대형 기획프로그램이 방영된다든가 할 때면 손이 저절로 그쪽으로 가곤 해요. 그런데 그럴 때마다 화가 벌컥 나면서 도로 꺼버릴 때가 많으니 이걸 어째야 하나. 엄마도 아마 기억할 거예요. 해마다 그런 일은 있었으니까.

엄마의 기억이 비교적 온전하던 때, 그러니까 중증치매 진단을 받은 첫 해 겨울에 가끔 텔레비전을 보면서 엄마가 그랬었잖아. “어매 저 사람들은 춥지도 않은가 보네” 하셨던 그 말씀, 놀랍고 어이없다는 표정,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라요.

그런데 올해는 그때보다도 훨씬 추운데, 그런데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하나도 추워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워 보여요. 특히 여자 출연자들은 서로 사전에 무슨 약속이라도 한 듯이, 아니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방송 출연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무슨 협박이라도 받았는지, 열이면 일고여덟이 반팔 차림이고 어떤 경우는 가슴골이며 등허리 같은 데가 훤히 드러나는 드레스 같은 것을 입었다기보다는 살짝 걸친 모습으로 나오곤 해요.



# 호박을 먹을 일도 없어졌다


이게 뭘까요. 텔레비전 방송국만 여름인 것일까요. 설마 그렇지는 않을 텐데, 그런데 어째서 저렇게 여자들을 벗겨야만 하는지, 혹은 벗어야만 하는지, 볼 때마다 속이 상하고 화도 나고 짜증이 나서 못 살겠어요. 정부 당국자들은 전력 수요가 갈수록 많아져서 정전사태가 일어난다고, 그래서 공공기관의 전력소비 절감을 목소리 높여 외치는 것 같더만 방송국은 왜 그러는지, 방송국 자기들이 정부의 그런 정책을 설명도 하고 선전도 하고, 그러면서도 행동은 왜 받쳐주지를 못하는 것인지, 말과 행동이 완전 따로인 그런 사람들이 공공재산을 관리하는 이런 세상을 사람으로 산다는 게 말이에요. ‘겁나게도’ 우울해요.

게다가 자막은 왜 또 그리도 착실하게 내보내는 것인지요. ‘이 프로그램은 시청자의 소중한 시청료로 제작되었습니다’, 하는 이것 말이에요. 이놈의 자막을 보고 있노라면 내 귓속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요. ‘당신이 추위로 벌벌 떨면서 내주신 소중한 시청료가 우리를 이렇게 가슴골 드러낸 반팔 차림으로 놀게 해주셨습니다’, 하는 뭐 그런 비아냥 내지는 조롱으로 들려서 그만 이놈의 나라를 떠나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팍팍 드는 거예요.

그렇지만 뭐, 우울하다고 해서, 화난다고 해서 그냥 주저앉아 있으면 정말로 우울증에라도 걸려서 살아가기가 어렵겠지요. 그래서 이것저것 춥지 않고 외롭지 않고 짜증도 나지 않는 삶의 방식을 개발해보는 거예요. 그중에서도 으뜸은 역시 군고구마라고 해야 할 텐데, 엄마, 기억나요?

아아 참, 그곳에서도 이곳에서의 일을 기억할 수 있을까?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말로, 못난 아들이 구워주는 고구마를, 따끈따끈해서 김이 절로 피어오르는 군고구마의 추억을 엄마가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으면 참 좋겠다. 왜냐하면 명색이 아들인 내가 엄마에게 해드린 것 중에 최고로 자랑스러운 게 그것이니까.



# 연통을 타고 고구마 익는 냄새가 마당으로 가득~


그런데 말이에요, 엄마. 연탄을 들이던 날 아줌마가 묻더라고요. 보일러가 아니고 난로를 피네요? 그래서 내가 답했지요. 군고구마 해 먹으려고요. 그랬더니 아줌마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내 얼굴을 쳐다보는 거예요. 부러움과, 어쩌면 존경스러움인지도 모르는 그 눈빛이 나는 너무도 사랑스러웠어요.

뭐랄까. 그 눈빛이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이런 남자랑 한 번 살아 봤으면 원도 한도 없겠다, 하는, 세상에, 왜 그런 이상한 생각이 들었는가는 지금도 알 수 없지만, 하여튼 그런 착각이 드는 순간 그녀의 남편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까지 들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며칠 뒤에 그녀가 남편을 버리고 가방 하나 옆구리에 낀 채 내 방문을 두드릴 수도 있다는 예감이랄까 어떤 확신 같은, 그런 어떤 어이없는 느낌이 내 가슴을 마구 흔들어대고 있었으니까요.

허헛 참,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런 어이없는 착각이 사실은 아주 엉뚱한 것은 아니었고요. 뭐라고나 할까. 연탄 천 장을 트럭에서 창고까지 들이는 데 약 오십 분 정도 걸렸거든요. 그 중에 백 장 정도는 내가 옮긴 것이고요. 연탄차가 마당에 들어오기 전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거든요. 연탄은 비를 맞으면 엉망이 돼 버리잖아요. 그래서 나도 고무장갑을 끼고 일손을 보태기로 했던 거예요. 그런데 서둘다 보니 그렇게 힘이 들 수가 없더라고요.



# 익기 전의 고구마


팔이 빠지는 것 같고, 입안이 바싹바싹 타는 것 같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집안으로 들어왔겠지요. 냉장고에 뭐 마실 것이 좀 있나 해서 문을 열었는데 뭐가 있어야지요. 엄마 그렇게 느닷없이 가셔버린 뒤로는 뭘 준비해놓을 필요가 있어야지. 암튼 요구르트만 달랑 두 개 있는데 그것 참, 어쩔 수 없이 나는 맹물 한 대접을 마시고 요구르트 두 개를 들고 다시 마당으로 나갔지요.

아저씨 한 개, 아줌마 한 개, 그렇게 계산하고 나갔는데 아저씨는 마침 전화를 받고 있더라고요. 아줌마는 그 전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아이고 내가 못 살아, 못 살아-아”, 그렇게 정말로 못 살겠다는 듯 힘이 쏙 빠진 소리를 내고 있는 거예요. 그토록 다정하게 마치 비둘기부부처럼 뭐라고뭐라고 계속 떠들어대며 일을 하던 부부가 왜 갑자기 저렇게 사이가 틀어졌나 해서 눈치를 살폈더니 그게 또 그렇더라고요.

연탄배달 일이 끝나면 남편이 노상 술집으로 가는 모양이었어요. 그날도 술친구로부터 전화가 와서 얼른 오라 채근하고 있었고, 아저씨는 이제 이십 분만 있으면 끝난다면서 껄껄거리는데 아주머니는 남편의 그런 꼴이 ‘얼척없고’, 가당찮고, 한심하고 속상해서 입술이 절로 삐죽거려지고 있었던 것이에요.

그리고 잠시 뒤에 내 얘기를 들었던 거예요. 겨울이면 고구마를 구워먹는다는, 군고구마를 만들기 위해 연탄보일러가 아닌 연탄난로를 굳이 설치한다는 내 얘기에 눈이 똥그랗게 커지면서 “어매, 시상에나, 참말로요-잉?”하시는데 그것 참, 아줌마의 그런 표정을 보고 있자니 문득 거짓말을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아니 거짓말이 하고 싶어졌다기보다는 뭐랄까, 그래요. 반드시 거짓말을 해야만 될 것 같은 상황이었어요.



# 이 안에서  고구마가 익고 있어요


사실은 엄마도 알다시피 내가 뭐 군고구마 하나 때문에 연탄보일러가 아닌 연탄난로를 고수하는 건 아니란 말이거든. 실내에 난로를 피워놓으면 첫째 외풍을 막을 수 있고, 둘째, 굳이 가스를 사용할 필요가 없이 그 위에서 부침개도 부쳐 먹고 찌개도 끓일 수 있고, 무엇보다 목욕물을 데울 수 있고 등등 그런 굉장한 잇점이 있어서란 말이거든. 그런데 아줌마가 군고구마 소리에 눈을 반짝 크게 뜨니까, 그것을 본 내 입에서 그만 “정말이에요, 한겨울에 군고구마를 꺼내 들고 호호 불 때의 그 맛, 그 향기, 아,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하는 뭐 그런 말이 술술 잘도 나와버리는 거지 뭐겠어.

아이고 참, 그런데 이게 뭔지 모르겠네. 그때가 벌써 한 달도 훨씬 전의 일이건만, 지금도 그날 그 아줌마와의 짧은 대화를 생각하면 얼굴이 후끈하게 달아오르면서 웃음이 자꾸 나와요. 헤실헤실 그렇게 마치 머리에 꽃이라도 꽂은 여자처럼 웃고 있노라면 굳이 거울을 안 봐도 내 얼굴이, 그 표정이 상상되면서 나도 몰래 한 마디가 나오는데 어떤 날은 “너 미쳤냐”이기도 하고, 다른 날에는 “네놈이 기어이 미치고 말았구나”이기도 하고 뭐 그때그때 다르단 말이거든. 하여튼 그러면서도 계속 웃음이 나오니 이게 뭐야.

모르겠어요. 어쩌면 일 년 뒤에도 이 지경에 빠져 있을지. 그래도 뭐, 어쩔 수 없지 뭐. 좋은 걸, 좋아서 그렇게 되는 걸 어떡하겠어. 옛날 하고도 옛날 그 언제던가  엄마가 그랬잖아. 집안 어른들 모두가 공무원 하라 하고 나는 하기 싫다 하고, 그렇게 밀고 당기는 신경전이 한창일 때 엄마가 “너 좋은 것 해야지” 그랬었잖어.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엄마가 나를 이렇게 살짝 미친놈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해도 뭐 틀린 말은 아닌 거지 뭐. 안 그려?

암튼 나는 지금의 이 상태가 좋아요. 크게 뭐 원하는 것도 없고, 불만도 없고, 속상해 할 것도 없는, 살짝 미친 것도 같고 미쳐가는 것도 같은 이 상태가 얼마나 좋은지 몰라. 난로 속에 고구마를 넣어놓고 밖에 나가서 머리에 꽃이라도 꽂은 기분으로 아무렇게나 왔다갔다 하는 일 없이 그렇게 마치 누구 기다리는 사람이라도 있는 것처럼 서성거리고 있노라면 연통을 타고 연기가 나오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 다 익었다


그러면 연기만 나오느냐. 아니란 말이거든. 내가 난로에 고구마를 넣어두었다는 것조차 잊은 채로 왔다갔다 그렇게 정신나간 사람처럼 서성거리고 있을 때 그 연통을 타고 소식이 와요. 고구마가 익었다고, 다 익어간다고, 다 익은 고구마가 시커멓게 타버릴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맛난 냄새를 솔솔 풍겨서 그렇게 내 콧속으로 넣어주는 거예요. 연통을 타고 나오는 연기를 따라서 고구마 익는 냄새가 그렇게 솔솔 공기 속으로 퍼지면서 내 코를 찾아오는 거예요.

세상에, 이게 뭐예요. 이게 뭐겠어요. 나는 지금 엄마도 없이 혼자 외롭게 있는 것 같지만, 외로운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위로, 위안, 아니 다독이는 손길이 아니고 뭐겠어요. 암튼 나는 소식을 듣고 안으로 들어가서 잘 익은 군고구마를 꺼내놓고 껍질을 벗기는 거예요. 김이 모락모락 나오는, 잘 익은 군고구마 껍질을 벗겨서 한 입 베어 먹노라면 엄마가 생각나면서 살짝 눈물도 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뭐 지금의 이 상태가 나는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엄마, 이번 겨울에는 내가 참 많이 게을러졌어요. 아니다 참, 지난 가을이라고 해야겠네. 고구마를 캐야 할 계절인데도 캐지를 않고, 캘 생각을 못하고 그냥 나뒀지 뭐야. 무서리가 내리고, 된서리가 내렸는데도 고구마 캘 생각을 못하고 있다가 한참만에 캤는데 글쎄 절반도 넘게 얼어버렸지 뭐야.

지지난 가을에는 엄마가 내 곁을 지켜봐준 덕분이었을까. 때를 놓치지 않고 고구마를 캐고 생강도 캐고 해서 일찍 갈무리를 했더랬는데 이번에는 글쎄, 아무것도 하기가 싫더라고요. 눈으로 보면서도 못 본 척하기 일쑤고, 마지못해 하면서도 귀찮다는 느낌까지 들고 그렇더라고요. 심지어는 연탄도 그랬어요. 예년에는 10월 전에 연탄을 들였지만 이번에는 12월이 다 되어서야, 그러니까 너무 추워서 더 이상은 못 견디겠다 싶은 즈음에야 겨우 연탄가게에 전화를 했던 거예요. 엄마가 내 곁을 지키고 있었어도 그랬을까? 당연히 아니었겠지.



# 강아지도 고구마 익는 냄새를 안다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많이 난다는 말이 그렇게도 실감나게 와 닿을 수가 없어요.

사람이 사람과 헤어진다는 거, 다음에 만날 약속도 없이, 미래에 관한 아무런 그림도 없이 헤어진다는 게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뭐 그런 깨달음을 얻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까? 아무래도 그래야겠지요? 더불어 한 가지 맹세를 해도 괜찮다면 이런 건 어떨까. 헤어진 뒤에 후회할 일 만들지 말고 지금 옆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자.

그런데 지금 내 옆에 누가 있지? 아이고, 그러고 보니 이게 또 아무도 없네. 어떻게 하지? 이렇게 되면 나는 또 어쩔 수 없이 엄마에게 손을 내밀어야만 하는데 엄마가 귀찮다 할까? 아니지? 안 귀찮은 거지? 그러면 말해줘요. 꿈길을 달려와서 내 귀에 대고 아무도 듣지 못하게 살짝, 내가 해야 할 일을 좀 가르쳐줘요, 응?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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