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폭구민’‘보국안민’ 펄럭이는 깃발
‘제폭구민’‘보국안민’ 펄럭이는 깃발
  • 승인 2012.02.1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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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조광환 선생님의 동학농민혁명 이야기




1차 갑오농민전쟁의 첫 출발점인 백산봉기

드디어 갑오년 3월, 약속의 땅인 동진강가에 있는 백산 기슭에는 고창, 부안, 금구, 태인, 무장, 정읍, 김제, 영광, 함평, 무안, 흥덕, 장성 등 각지에서 농민군이 몰려들었고 그 숫자는 대략 4000명에 가까웠습니다. 주요 인물로는 전봉준, 손화중을 비롯하여 태인의 김개남, 최경선, 정읍의 손여옥, 차치구, 고부의 정익서, 김도삼 등이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에 솟아있는 야산인 백산의 봉우리에는 제폭구민, 보국안민이라는 깃발이 펄럭이게 되고 흰옷을 입은 농민군이 대오를 짜 진지를 구축했습니다. 죽창을 단단히 쥔 농민군의 함성은 밤낮 없이 지축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흰옷 입은 농민들이 서 있으면 온 산이 하얗게 보이고, 앉아 있으면 그들이 들고 있던 대나무 창이 온 산을 이룬다하여 “서면 백산(白山)이요, 앉으면 죽산(竹山)”이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본격적인 1차 갑오농민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백산에 모인 농민들은 전봉준을 총대장으로 손화중과 김개남을 총관령으로 추대하였으며 김덕명, 오시영이 총참모가 되고 최경선이 영솔장이 되고 송희옥, 정백현이 비서가 되는 등 농민군 지휘부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그 대의를 밝히는 격문을 사방에 날리는 동시에 농민군 규율인 4대 행동강령을 마련하여 명실공히 군대의 대오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농민군은 머리에 띠를 두르고 베옷을 입었으며, 무기로 화승총이나 죽창을 들고 붉은 바탕에 ‘보국안민’이라고 쓴 큰 깃발을 앞세웠습니다. ‘보국안민’은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안정시킨다는 뜻으로, 농민들이 어떤 생각에서 갑오농민전쟁에 참여했는지 짐작하게 해주는 구호이지요.

격문

우리가 의(義)를 들어 이에 이른 것은 그 본 뜻이 다른 데 있지 아니하고 창생을 도탄 가운데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의 위에다 두고자 함이라. 안으로는 탐관오리의 머리를 베고 밖으로는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내쫓고자 함이라.
양반과 부호에게 고통을 받는 민중들과 방백과 수령의 밑에 굴욕을 받는 소리들은 우리와 같이 원한이 깊을 것이나, 조금도 주저치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만일 기회를 잃으면 후회하여도 미치지 못하리라.

농민군 4대 행동강령

① 사람을 죽이지 말고 재물을 손상시키지 말 것
② 충효를 다하여 제세안민(濟世安民)할 것
③ 왜적을 몰아내고 성도(聖道)를 밝힐 것
④ 병(兵)을 몰아 서울에 들어가 권귀(權貴)를 진멸(盡滅)시킬 것

이것으로 농민군은 부패한 봉건정부를 향해 갑오농민전쟁의 엄숙한 선전포고를 한 셈이었습니다. 농민군은 사랑하는 부모님과 처자식을 뒤로하고 바야흐로 한치의 앞도 알 수 없는 백척간두의 싸움을 시작한 것입니다. 

황토현의 어제와 오늘 
 
당시 전라감사였던 김문현은 1878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습니다. 1884년 안악군수(安岳郡守)로 있을 때 농민봉기가 발생하자, 황해감사 윤우선(尹宇善)으로부터 문책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갑신정변 후 신내각에서는 병조참의를 지냈고, 1885년부터 1891년까지 한성부좌윤·이조참의·공조참판·대사성·형조참판·대사헌·형조판서·예조판서 등 요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그 후 1893년 동학교도의 보은집회(報恩集會)가 있자 광주부유수(廣州府留守)에서 전라도관찰사로 임명되었습니다. 1894년 2월 고부농민봉기가 일어나자 군수 조병갑(趙秉甲)을 체포하는 한편, 고부에 수하들을 보내 사건의 주동자인 전봉준(全琫準)을 회유 내지 붙잡도록 하였으나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뒤 백산봉기 이후 황토현전투(黃土峴戰鬪)에서 패퇴함으로써 문책, 파면되고 거제도에 유배되었습니다.

당시 전라감사 김문현은 농민군이 백산에 진을 치고 있기에 이의 토벌을 위해 각 군아의 군졸들을 모으는 한편 보부상들에게 인력을 차출하여 전라감영군과 보부상으로 구성된 2300여 명의 연합부대를 백산으로 출동시킵니다. 당시 보부상은 전국 조직망을 가진 상인들의 집단조직을 이루고 있었으며, 정부로부터 상권을 보호받는 대신 언제든지 정부의 요청이 있으면 인력을 제공하는 공생관계였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편집자] 이 글은 갑오농민혁명계승사업회 이사장이신 조광환 선생님(전북 학산여중)이 들려주는 청소년을 위한 동학혁명이야기입니다.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우리의 역사를 다시금 되새기고 그 의미를 상기시킬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리란 생각에서 연재합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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