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봅시다>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

“87년 이후 2007년까지의 언론투쟁사가 현 정권 4년 안에 다 들어가 있다. 모든 투쟁의 종류와 형태가 4년 동안 다 나왔다. 그리고 모든 투쟁에서 다 졌다. 그래도 2007년까지 20년간은 희생당하면서도 절반은 건졌는데, 현 정권 들어선 4년 내내 지기만 했다. 이젠 물러설 수 없다.”
MBC 노조의 총파업이 장기화 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총파업 돌입 직후 일부 프로그램은 중단됐고, ‘뉴스데스크’는 20분에도 못미치는 보도가 나가는 등 파행이 이어지고 있다. <위클리서울> 취재진과 만난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은 “MBC 구성원들이 공영방송 위기를 자초한 김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총파업, 이른바 ‘끝장 투쟁’에 돌입했다. 이미 예상됐던 일이고 터질 게 터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정 위원장은 “MBC는 지난 4년 크고 작은 선거를 통해 불공정보도를 일삼아 왔다. 만약 4월 총선 시기에도 김 사장 체제 하에서 선거보도가 이어진다면, 그것은 보도가 아닌 그야말로 불공정 선거에 MBC가 참여한 꼴이 된다”며 “4월 총선 이전까지 ‘사장 퇴진’을 현실화 시키겠다는 목표로 전 구성원들이 투쟁에 적극 임하고 있고 참여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자 이름 석자 부끄러워”

MBC 총파업 이후 노조는 김재철 사장 퇴진안을 두고 사측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노조는 지난해 김 사장 재신임 때도 “공영방송의 위기를 초래해온 기존의 경영노선을 유지한다면 전면전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사장 퇴진’ 투쟁을 벌인 바 있지만 실패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이후 논란이 거듭되면서 MBC 구성원들은 지난달 31일 ‘사장 퇴진, 끝장 투쟁’을 선언한 뒤 총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정영하 위원장은 “언론사로 보면 전대미문의 일이다. 똑같은 사장을 두고 2번 퇴진투쟁에 나섰다”며 “‘사장 퇴진’ 투쟁은 공정보도에 대한 MBC 구성원들의 위기감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정 위원장은 “뉴스 보도는 다 망가졌다. 굳이 방송계 경험 20~30년 정도 된 이들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눈치 챌 수 있다”며 “경영진이 철면피가 아니라면 무엇이 망가졌느냐고 되물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 사장은 그간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라는 MBC 뉴스 본연의 기능을 해치는데 앞장서왔다”며 “김 사장이 청와대와의 인연을 통해 전격 중용된 이후 MBC 장악의 선봉으로 나서고 있음은 이미 만천하가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비판했다.



정 위원장은 “지금까지 전문가들로부터 불공정 보도와 관련 28번의 지적을 받아왔다. 그 지적 속에는 100여개의 아이템도 들어가 있다”며 “이 정도면 ‘적당히 해먹은’ 정도도 아니다. 우리로서는 김 사장을 ‘상습범’으로 간주, 마땅히 퇴출시켜야할 사람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불공정보도는 언론학자들도 다 인정했다. 이런 평가는 언론사로는 가장 치명적”이라며 “오죽하면 오너가 운영하는 SBS 보도를 두고 가장 공정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SBS에도 못미치면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뉴스데스크’는 현재 20분 분량으로 방송되고 있다. 뉴스가 줄어든 것과 관련 정 위원장은 “그동안 MBC가 편파방송을 했기 때문에 차라리 줄어드는 게 낫다. 기자들은 더 이상 부역질 못하겠다고 한다. ‘편파방송 놀이’ 하는 데 기자 이름 석자 못 내겠다는 것”이라며 “여느 파업 같으면 50분 분량 정도는 만들 수 있지만 현재 기자들이 강하게 연대하고 결기해 채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상식적으로 볼 때, 뉴스 보도가 이렇게 줄면 사측에선 아파해야 한다. 안달복달해야한다”며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뉴스 따위는 안 해도 된다는 식으로 공정방송과 관련 없는 전문직 기자들을 뽑겠다고 광고를 냈다. 이게 저 사람들의 철학을 보여준다. 시청자들은 안중에 없다”고 비판했다. 

단기적으론 총선 안에 ‘사장 퇴진’을 현실화 할 계획이라는 정 위원장은 “4년 동안 선거 시기 불공정 보도건이 3번 확인됐다. 벌써 김 사장은 삼진아웃 당했어야 했다”며 “이 상태에서 국회의원을 뽑는 과정에서 보도를 한다면 이건 불공정 보도가 아니라, 언론이 불공정 선거에 참여하는 꼴”이라고 우려했다.  현 이사회 구성과 관련 정 위원장은 “9명의 이사중 6명은 ‘청와대 사람들’”이라며 “그러니 이사회에서 표결하면 항상 6대 3 구도다. 이사회는 형식적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내년 정년’ 선배들까지 동참

MBC 파업이 4주째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간부들도 성명서를 내며 동참했다. 지난 21일 MBC 입사 20년차 이상의 간부급 사원 135명(보직자 제외)은 ‘김재철 사장은 현 사태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번 성명에는 국장 직급 9명, 부국장 직급 30명, 부장 직급 47명, 부장 대우 직급 38명이 참여했다. 이들 중 63%는 조합가입 대상이 아니거나 조합에 참여하지 않았던 비조합원이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20년 이상 MBC에 몸 담아 온 우리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며 “MBC가 공영방송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언론으로서의 MBC의 추락, 내부 민주주의의 극단적 위축이 있었다”며 “이루 열거하기 힘든 공정성 침해논란이 있었고, 그 결과 MBC의 신뢰도는 현저히 저하됐다”고 지적했다.



또 “저항하는 구성원들을 징계와 인사발령으로 억압하고, 동조하는 일부 구성원들에게는 납득하기 힘든 정도의 즉흥적 시혜를 남발하는 비민주적인 사내 통치가 이뤄졌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제 김재철 사장이 해야 할 마지막 일은 모든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라며 퇴진을 권고했다.

정 위원장은 “김재철 사장한테 줄 선 보직들 말고는 다 돌아섰다. 선배들이 노조에 가입하고 파업 대열에 합류한 것”이라며 “성명에 동참한 이들 중에는 35년차 기자들도 있고 내년에 정년이 선배들도 있다. 노조가 파업을 하면 웬만해선 입장을 안 밝히는 ‘짠밥’ 들인데 지금은 부끄럽다며 파업을 지지하고 있다. 그야말로 초유의 사태”라고 밝혔다.

이처럼 MBC 사태가 파행을 거듭하는 가운데, 향후 노사 간 갈등이 어떤 양상으로 치달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 위원장은 “지난해와 달리 노조 집행부는 김재철 사장을 반대하는 취지에서 더욱 강경하다”며 “우리가 부여받은 것은 지난해 투쟁보다 더욱 강력한 투쟁을 전개해 나가는 것이며 ‘끝장 투쟁’으로 이끌어 나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 위원장은 “많은 사람들이 이번 파업 역시 대충 끝나지 않겠느냐고 비꼬기도 했는데, 이번 파업은 무조건 계속 간다. 모두 오래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김재철 사장 한 명 나간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그에 버금가는 사장이 오면 이 상태로 계속 투쟁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따라서 이건 ‘종결 투쟁’이다. MBC 이사회에서 안 받아들이면 당연히 총선까지 가고, 총선 이후에도 안 받아들이면 대선까지도 간다”며 “그러니 최소 2달이 넘는 동안 MBC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을 수도 있다. 총파업 시작당시 참여한 구성원이 570여명인데, 지금은 선배들까지 가세해 100명이 늘어났다. 이 상황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라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과거 촛불집회는 쇠고기 문제 하나로 일어난 게 아니다. 4대강, 비정규직노동자 문제 등 여러 현안들이 광장으로 동시에 뿜어져 나왔다”며 “MBC 구성원들 역시 여러 가지 불만을 안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선 총선까지 ‘사장 퇴진’에 초점을 두고 이후 여러 가지 길을 모색할 것”이라며 “최종 목표는 당연히 현 정부로부터 자유로운 사장이 취임하도록 견인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KBS?YTN과의 연대도 주목받고 있다. 정 위원장은 “3월초에 KBS?YTN도 총파업에 들어갈 예정”이라며 “아마 3월 첫 주가 되면 방송 3사가 연대 총파업으로 한 대 뭉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3개 방송사 입장은 모두 같다. 지난 4년 동안 파업의 시차만 있을 뿐이지, 목소리는 똑같다”며 “다 함께 향후 총선, 대선까지 불공정보도와 관련한 한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KBS 새 노조가 구 노조보다 세가 약하다는 평가에 대해 정 위원장은 “새 노조가 구 노조와 연대를 모색하고 있고,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면서도 “구 노조가 따라오든 안 따라오든 새 노조는 무조건 파업에 돌입한다. 새 노조 입장에선 인원이 부족해 MBC처럼 보도 파행을 유도할 수 없을지라도, 팟캐스트를 세울 계획이다. 포지티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MBC노조 총파업이 향후 언론 투쟁과 4월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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