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봅시다> ‘강의 박탈’ 1인 시위 200일 앞둔 성균관대 류승완 박사

“삼성이 학교에 들어오고 나서 학풍이 완전히 바뀌었다. 지난 10년간 학교에 대자보 하나 못 붙였다. 이게 대학인가. ‘김일성대학’과 뭐가 다른가.”

류승완(44. 철학박사) 씨는 거침없었다. ‘강의 박탈’에 맞서 190일 넘게 성균관대 본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해왔다. 지난해 2학기부터 ‘동양사상입문’ 강의를 맡을 예정이었지만 강의는 돌연 취소됐다. ‘강의 박탈’ 이유에 대해 학교 측이 묵묵부답인 가운데 류 씨는 “현실과 무관한 사회주의 이론을 연구하는 것은 용납이 되는데, 현재 기득권자를 건드리는 내용을 하면 문제시 된다”고 꼬집었다.

지난달 24일 학위수여식이 열린 성균관대 명륜관 앞에서의 1인 시위도중 교직원들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파문이 일기도 했다. ‘폭행 논란’에 대해선 “일련의 투쟁 과정 중 하나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며 “‘강의 박탈’은 교원지위가 없는 시간강사의 현실 그리고 보수 일변화․기업화 된 성균관대 학풍에서 비롯된 코미디”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박사논문도 우여곡절 끝에…

학부부터 박사까지 24년 동안 이 대학에 몸담아 온 류 씨는 2010년 1학기에 전공과목인 ‘중국철학사상사’를 강의했고, 1년간 베이징에서 ‘연수 유학’를 마친 뒤인 지난해 2학기부터 ‘동양사상입문’ 강의를 맡을 예정이었다. 그는 지난해 1월 2학기 강의계획서를 학내 학사과정 사이트에 입력하라는 학과 사무실의 통보와, 강의배정 안내 메일을 통해 강의가 확정된 것으로 판단하고 준비를 해왔다. 하지만 이틀 뒤 강의가 돌연 취소됐다는 소식을 조교로부터 전해 들어야 했다. 그는 자신의 지도교수에게 강의배정 취소 이유를 물었지만 돌아온 답변은 “대학본부에서 뺏다”는 내용뿐이었다. 학교의 이 같은 조치에 유 씨는 “현실과 무관한 사회주의 이론을 연구하는 것은 용납이 되는데, 그 이론에 현재 기득권자들을 건드리는 내용까지 포함돼 문제시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류 씨는 한국의 사회주의자들을 연구해왔다. 그리고 류 씨의 칼끝은 친일파, 기득권, 학문 기득권자들(해방 이후의 한국 유학자들)의 턱 밑을 겨누고 있었다. 학위 받을 당시에도 고통을 받았다는 그는 박사논문을 42세가 되어서야 통과시킬 수 있었다.

“심사위원들이 심사장에서 욕설도 하고, 심사하러 와서 서명을 거부해 정적수를 못채워 논문이 수 년간 통과되지 못했다. 사회주의 자체를 연구하는 게 아니었는데, 사회주의는 철학이 아니라며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소리를 질러댔다.”

류 씨에 따르면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삼성이 성대를 인수하면서 시작되었다. 지난 10년간 진보적인 학자들은 거의 다 도태시켰다는 지적이다. 2000년대엔 교수들을 수시로 감시하던 사실이 폭로가 됐음에도 삼성의 힘에 의해 은폐되기 일쑤였다는 게 류 씨의 주장이다.

“제가 연구하는 분야가 한국사상가들이었다. 정치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박헌영, 신남철, 박치우, 김태준 같은 분들을 연구했다. 그 사람들이 생각했던 사회철학, 정치철학이 무엇인지 연구했다. 물론 남로당과 관련된 연구가 주를 이뤘다. 이런 사람들 사상을 끄집어내니까 기존의 학계에서 기득권 누리던 친일파, 그 2세대들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박사논문을 통과한 직후인 2010년 봄 첫 강의부터 삐걱거렸다. 누군가가 지도 교수 도장을 위조해 류 씨를 강의명단에서 제외시키려다 들통 난 것이다. 학과 내에서 벌어진 사태다. 그것이 들통 나 어쩔 수 없이 류 씨를 강의자 명단에 올렸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불안한 첫 강의는 결국 마지막 강의가 되었다.

“강의하면 자동으로 녹음이 돼 학교 측에서 강의내용을 다 듣는다. 2010년 1학기 첫 강의부터 자연스레 대학의 현실을 비판하게 됐다. 성균관대 호암관이 원래 심산관이었다. 학교가 삼성 식, 뉴라이트 식대로 바뀌면서 호암관으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대학의 재건이념을 한국사회가 언젠가 재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해서 심산관으로 다시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이게 유교로 치면 남의 사당에다 문패를 바꾼 것이다. 그럼에도 유학과 교수들이 전부 다 침묵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학교와 삼성 입장에선 심산이라는 것을 기억에서 지우고 싶을 것이다. 학풍이 반대로 가는 것이라고 얘기한 것은 삼성에 대한, 호암에 대한 비판이니까 가장 큰 불경죄다. 삼성의 산업재해 논하는 것이랑은 비교도 안 되는 비판이었던 것이다.”



“북한도 싫어하는 연구”

“해방정국에 있어 한국사상사의 공백에 대해 늘 궁금하게 생각해왔다. 그러면서 유학이 친일을 장려한 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문제시 했다. 우리나라 대다수 종교에서는 친일청산 노력이 있었는데 유학은 아니었다. 유교를 통해 일본천황제를 찬양했다. 곡학아세다. 아니 유림들이 어떻게 창씨개명을 장려하고 가미카제에 나가라고 독려할 수 있나.”

이와 동시에 류 씨는 유학자들 중에서 유학 본연의 전통을 고수하며 친일에 반대해온 이들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비주류 유학자들로 분리되는 이들에 대해서다. 이른바 영남학파(퇴계학파)의 의병활동이 그것이다.

“박정희처럼 만주군이 되는 것보다는 항쟁하는 게 유교의 사상에 맡는 것 아닌가. 그래서 그 분들에 대한 평가를 하려고 했다. 좌익이라는 이유로 한국독립운동사와 사상사에서 배제된 이들을 연구하게 된다. 이는 학계 주류인 황도유학파들을 부정하는 것이어서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이것은 동시에 북한의 주체사상과도 양립할 수 없다. 북한사회를 본질적으로 비판하게 된다. 김일성 혼자 무장투쟁한 것이라는 주장을 터무니없는 것이라 무시해버리니 말이다. 특히 제가 연구모델로 삼고 있는 인물 중 하나인 신남철 선생은 김일성종합대 철학과 초대 학과장이었는데 김일성의 논리에 반기를 들다 숙청당한다. 그러고 보니 남과 북 모두에게 버림받은 과거 사상가들의 사정이 지금 저에게도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류 씨는 보수 세력들이 북한 비판을 두려워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남한사회 보수 세력은 북한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이들이 북한을 정말 비판해서 학문적으로 해체해버리면 이들이 존재할 타당성이 사라지게 된다. 학술적으로 그들이 두려워하는 건 북한을 비판하는 제대로 된 논문을 쓰는 것이다. 그러니 여러모로 방해하는 것이다. 저는 그런 식으로 본다.”

성균관대의 학풍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유교 자본주의’라는 주제의 강의가 개설되면서 강의실에서는 “유교와 자본주의는 짝패”라는 주장이 펼쳐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교와 자본주의가 잘 맞는다고 한다. 노사분규 일으키지 말고 잘 지내라, 는 식으로 가르친다. 사장은 아버지와 같으니 잘 지내라는 식이다. 이건 일제 때 황도유학파들의 논리와 유사하다. 박사 논문 쓰기 전에 제가 이 부분을 비판하는 논문을 충남대에 실었다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류 씨는 이 때문에 인문사회대 학부생이 대학원에 진학하는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대학원 동양철학과 학생의 경우도 현재 100명 가까이 되는데 본교 출신은 2명이다. 나머지는 타 학교에서 온다. 본교 출신들은 이제 성균관대에서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공부를 하고 싶으면 다른 학교 대학원을 간다. 지금 성균관대에서 진보적인 학자들은 자연도태 되었다. 지난 10년간 강사단계부터 잘려나갔다.”



“학교측 강의 통제 인정”

류 씨가 그간 자신의 연구과제를 정리한 책 ‘이념형 사회주의’는 지난해 문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됐다. 아이러니하게도 학내 유학자들은 그의 업적을 무시하는 실정이고, 국정원에서는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사안으로 몰아가고 있다.

“국정원의 의도대로 위반 사항이 있으면 1인 시위도 못하게 된다. 교원자격 자체가 박탈되기 때문이다. 국정원과 학교 사이에 무슨 얘기가 오가는지는 모르겠으나, 국보법은 아닌 것 같더라. 그런데 저들은 어떻게든 제가 엮이길 바라는 것 같다. 그래야 피곤한 일이 안 생길 테니….”

그나마 고무적인 것은 학교가 류 씨의 ‘강의 박탈’을 스스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폭력사태가 불거진 이후 항의방문을 갔더니, 6개월 만에 인정하더라. 자기들이 강의 뺐었다고 하더라. 공식적으로 인정 한 것은 아니다. 2011년 8월 11일 1인 시위를 시작한 이후 비공적이지만 처음으로 인정했다. 자기들이 강의를 마음대로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드러낸 것이다.”

현재 주변의 도움으로 버티고 있다는 류 씨는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일부 대학에서 강의 제의가 들어왔지만 모두 마다했다.

“이 싸움을 끝내지 않고 다른 강의를 한다는 것은 넌센스다. 이런 현장 투쟁이 학생들에게도 오히려 공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음성적으로 도와준 학생들에게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누구누구가 도왔다고 공개되면 학교에서도 바로 불이익 주는데도 꾸준히 돕고 있다. 그 도움 없이 제가 혼자서 어떻게 버티겠는가. 그래서 학생들은 이 싸움에서 가급적이면 노출 안 시키려 한다.”

정치권에 대해선 회의적이었지만 학내 풍토가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 감지되면서 일말의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기대할만한 사람들이 없다. 노무현, 김대중 정부도 사립학교법을 하나도 개정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는 오히려 사학이 등록금으로 주식투자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 이건 위법이었다. 이후 성대나 고려대나 주식투자했다가 깡통 차지 않았나. 이게 다 민주정부라고 했던 이들이 자행한 불법 안이었다. 희망적인 건 학생들이 스스로 깨닫고 등록금을 요구하고, 시간강사 문제에 대해 함께 싸워준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엔 대자보가 붙어 있기도 했다. 물론 당국에 의해 금방 내려졌지만 말이다. 삼성이 성균관대에 들어오고 10년 동안 꿈도 못 꿨던 일인데, 그런 움직임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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