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만질 수 없는 엄마에게 쓰는 편지




엄마. 우리 개 마루 녀석은 참 웃겨요. 녀석이 나이를 먹더니 아무래도 철학을 하는가 봐요. 철학도 아주 지독한 자기중심주의 계통의 그런 것을 하나 봐요. 이 세상에 내가 제일이다, 나 외에 다른 것들은 내가 필요로 할 때만 있고 필요로 하지 않을 때는 모두 죽어야 한다, 하는 뭐 그런 끔찍한 철학 말이에요.

허헛, 참 내, 생각하니 새삼스레 기가 막히네. 글쎄 말이에요, 엄마. 마루 요 녀석이 어느 아침에 오리를 죄다 물어 죽였지 뭐예요. 수컷 하나 암컷 둘, 그렇게 세 마리가 사이도 좋게 꽥꽥거리며 날마다 한 개 혹은 두 개씩 알을 낳아주었던 오리를 세상에나, 마루 요 녀석이 죄다 물어 죽여 버렸지 뭐예요.

그 왜 엄마도 그랬잖아. 삶은 오리 알이 삶은 계란보다 맛나다고, 맛만 좋은 게 아니라 약도 된다고, 보약이라고, 그러면서 정말로 세상에 하나뿐인 보약이라도 먹는 듯이 소중하게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먹어주었잖아. 어쩌다가 실수로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아주 작은 부스러기까지도 주워 먹곤 했잖아.


# 철망을 뚫은 내 솜씨  어떠냐고요~

아 참, 그때가 좋았는데, 정말이지 그때가 좋았어. 날마다 오리 알을 삶아서 찬물에 식혔다가 주먹으로 칵 때려서 껍질을 깔 때의 그 손맛이란 정말이지 죽여주는 무엇이었다고. 물론 잘못 삶아졌을 때는 죽어라고 안 까지고 살점만 툭툭 뜯어내져서 그렇게도 안타깝고 짜증스러울 수 없기도 하지만, 제대로 삶아져서 제대로 식혀졌을 때는 한꺼번에 싸악, 마치 장갑이나 양말을 벗기듯이 단번에 벗겨지는데 그 순간의 그 기분이 말이에요.

엄마도 알아요? 그 순간의 기분이 어떻게 오묘하고 어떻게 가슴 떨리는지 아냐고요. 쳇, 알 리가 없지 뭐. 새끼들한테 까서 먹여주기만 했지 자기 엄마를 위해서 오리 알을 삶아본 적은 없잖아. 맞지? 하긴 그러고 보니 나는 또 새끼들한테 오리 알을 삶아서 까줘 본 적은 없네. 그러면 쌤쌤인가?

아무튼 말이에요. 엄마 살아계실 때 이 년 가까이나 열심히 알을 낳아준 그 고마운 오리들이 말이에요. 엄마가 돌아가신 뒤에도 변함없이 열심히 알을 낳고 있었어요. 이게 또 괜히 얄밉더라고요. 귀찮기도 하더라고요. 너희는 대체 뭣 땜에 아직도 계속 알을 처낳고 있냐?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기를 얼마나 했는지 몰라요. 먹어줄 사람도 없는데, 그것을 삶는 순간의 즐거움도 이젠 바닥이 나 버렸는데, 그런데 너희는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냐고 이 망할 녀석들아, 어쩌고 그렇게 투덜대며 울타리를 발로 툭툭 걷어차기를 얼마나 했는지 몰라요.


# 이런  철망을 개가 뚫었다


# 오리알

그랬으니 낳아놓은 알인들 온전히 꺼내기나 했겠어요. 열흘에나 한번, 혹은 보름에나 한번, 마지못해 한다는 식으로 울타리 안으로 기어들어가서 알을 꺼내오는데 그때마다 그렇게도 심난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때마다 마루 녀석이 꼬리를 흔들어대며 혀를 날름거리는 거예요. 나도 오리 알 먹을 줄 안다, 나도 한번 줘봐라 하는 듯이 말이에요.

그래서 한번은 오리 알을 그냥 홱 던져봤단 말이거든요. 아무생각 없이, 마치 돌멩이라도 던지듯이 그냥 홱 오리 알을 마루 녀석이 있는 곳으로 던졌단 말이에요. 아 그런데 마루 녀석이 팍, 소리와 함께 땅으로 떨어지자마자 박살이 난 오리 알을 그렇게도 맛나게 먹어치우는 거지 뭐겠어요. 마치 깨진 오리 알이 공기 중에 노출되면 큰일이라도 난다는 듯이, 당장에 금방 먹어치우지 않으면 누가 빼앗기라도 한다는 듯이 아주 게걸스럽게, 순식간에 다 먹어치우고는 더 없느냐는 투로 혀를 날름거리며, 꼬리를 흔들어대며 칭얼거리는 소리를 내는데 그것 참,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더라고요.

야 이거 봐라? 너 이게 그렇게도 맛있냐? 내 입에서 아마 그런 말이 나왔을 거예요. 그러자 마루 녀석 하는 꼴 좀 보라지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대다가는 앞발을 높이 쳐들고 컹컹, 소리를 내며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듯 몸을 비틀어대더니 그대로 납작 엎드리는 자세를 취하는 거예요. 죽겠다는 듯이 말이에요. 오리 알이 너무 맛있어서, 이렇게 맛있는 오리 알을 먹었으니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는 듯이 납작 엎드려서는 칭얼거리는 소리를 내는 거예요. 아아, 그것은 하나의 발견이었어요. 굉장히 즐거운 발견이었지요.


# 나들이하는 강쥐

그리하여 나는 그날부터 그 즐거운 놀이 속으로 빠져 들어갔어요. 자, 보세요. 엄마, 내가 말이에요. 울타리 안에 들어가서 꺼내온 오리 알을 개한테 홱 던져주는 거예요. 개는 앞발을 번쩍 들고 입을 쩍 벌리며 껑충 뛰어올라보지만 날아오는 오리 알을 받지는 못해요. 오리 알은 매번 땅에 떨어져서 박살이 나요. 그러면 개는 고맙다고, 반갑다고 꼬리를 사정없이 흔들어대며 땅에 흩어진 오리 알을 ‘허천나게’ 먹어 치우는 거예요. 다 먹고는 또 없느냐고 나를 보며 칭얼거리는 소리를 내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오리 알은 이제 온전히 마루 녀석 차지가 된 거예요.

엄마는 아마 그러실 거예요. 오매, 먼 짓이다냐, 미쳤네.

사실을 말하자면 그래요. 나는 어쩌면 누군가로부터 그런 소리를 듣고 싶었던 것인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누구 나 좀 말려주세요, 하는 그런 심사였던 것인지도 모른다고요. 그런데 정말로 그런 사람이 나타났지 뭐예요. 우리 앞집 옆집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가 말이에요. 그 왜 걸을 때면 이마가 금방 땅에 닿을 듯이 허리가 굽었으면서도 해마다 고추농사를 짓는 할머니 말이에요. 농사철이 아니어도 하루에 한 번씩은 고추밭의 안녕을 살피고 다니는 그 할머니가 어느 하루 마침내 오리 알을 개한테 던져주고 있는 나를 발견하신 거예요.


# 생후 하루 지난 강쥐들


# 눈 뜨기 전의 새끼들

“오매 멋 짓이다여, 믓헌다요?”

처음 한 마디는 그런 정도였지요. 그 다음 한 마디는 천하에 몹쓸 망나니를 붙잡아놓고 사람 좀 만들어보자고 좋은 말로 곱게 타이르는 투의 말씀이었고요.

“못 쓰요 잉? 사람 먹는 것으로 그러믄 못 쓰는 것이라우.”

그런 말씀을 하시는데 말문이 딱 막히데요. 얼굴도 화끈거리고, 시선도 어디로 둬야 할지 모르겠고, 하여튼 순식간에 굉장한 범죄자가, 파렴치범이 되어버린 기분이었어요. 방바닥에 떨어진 밥알 한 개도 어지간하면 주워 먹어야 한다고 하신 외할머니가 순간적으로 생각나기도 하고, 민망해서 못 살겠더라고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멀쩡한 오리 알을 개한테 던져주고 있는 나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오꿈하게 뜨고 쳐다보시는 할머니를 어떻게든 이해시켜 드려야지 어쩌겠어요.


# 일제히 달라붙어 젖을 빠는 새끼들

엄마를 팔았지요. 엄마가 안 계시니까, 둘이 살던 집에 혼자만 있게 되니까, 그래서 밥맛도 없고, 밥도 해먹기 싫고, 오리 알은 보기도 싫고, 보기 싫다고 그냥 두면 썩어서 결국은 버려야 해서, 그래서 개라도 먹이자 하는 생각으로 개한테 던져주는 것이라고, 그렇게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나도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났더니 할머니가 그러시더라고요.
“그럼 오리 알을 나한테 파시오.”

어헛 참, 할머니가 그러시는 거예요. 당신도 오리 알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그러니까 날마다 당신한테 오리 알을 팔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참, 그럴 수는 없는 거잖아요. 하루에 한 개나 두 개씩밖에 안 되는 오리 알을 어떻게 돈 받고 팔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그냥 드린다고 했더니 할머니가 다시 그러시더라고요. 나중에 고춧가루를 주마고, 참깨도 주마고, 그래서 그러기로 했단 말이거든요. 나중에 고춧가루 얼마와 참깨 얼마를 받기로 하고 며칠인가, 아마 일주일 정도 오리 알을 날마다 할머니께 드렸을 거예요.

그런데 말이에요. 어느 하루아침에 밖으로 나왔는데 오리 소리가 안 나는 거예요. 오리 녀석들은 아침 일찍부터 밥 달라고 꽥꽥꽥 요란 방정을 떠는데 그날은 아무 소리도 안 나는 거예요.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오리집 울타리 앞으로 가봤겠지요? 그런데 이게 뭡니까. 세상에, 우리 개 마루 녀석이 오리집 울타리 안에 들어가 있는 거지 뭐겠어요.


# 이제 막 눈을 뜬 새끼들

처음에는 녀석이 오리들을 죄다 물어 죽였다는 것도 몰랐어요. 다만 개가 오리집에 있으니까 이게 뭔가, 어안이 벙벙해서 너 뭐냐, 응? 그런 소리나 중얼거리면서 울타리 앞으로 바싹 다가섰던 건데 말이에요. 세상에나, 녀석이 철망을 뚫고 들어가서 오리 세 마리를 모두 죽여 놓고 있는 거지 뭐겠어요.

도대체 어떻게 했는지 피 한 방울 땅에 흘려 있지도 않았어요. 단번에 급소를 물어서 죽여 버린 것 같았어요. 여기에 한 마리, 저기에 한 마리, 또 저기에 한 마리 하는 식으로 오리는 자빠져서 이미 굳어 버렸고, 그런데 마루 녀석은 나를 향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대면서 느긋하게 왔다 갔다 하고 있는 거예요. 보세요, 저 잘했지요? 하는 듯이, 사냥개가 사냥터에서 잡은 것을 물어다가 주인 앞에 내려놓고 꼬리를 흔들어대듯이 그렇게 자기가 오리를 죽였으니 칭찬해 달라는 투의 정겨운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는 거예요.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불꽃이 확 붙는데 말이에요. 거두절미하고 몽둥이부터 찾아 나섰어요. “저눔의 개새끼 때려죽여 불란다” 하는 뭐 그런 심사였겠지요. 만약에 정말로 몽둥이가 그때 바로 내 손에 들어왔더라면 나는 아마 정말로 마루 녀석을 두들겨 팼을 거예요. 그런데 다행히도 몽둥이는 한참 뒤에나 내 손에 들어왔지요. 몽둥이를 찾아다니는 동안 내 머릿속의 불꽃은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었고요. 그렇게 화가 어느 정도 누그러진 시선으로 보니까 마루 녀석이 이상한 거예요.


# 엄마를 찾는 새끼들

코가 찢어져서 피가 흐르다가 굳어 있었고요. 눈가도 찢어져서 피가 맺혀 있고요. 심지어는 앞다리 발가락도 두 개나 깊은 상처를 입었는데 한 개는 아예 잘려서 금방 떨어져 나갈 것 같은데 말이에요. 그런 꼴을 보고서야 알았어요. 오리 울타리의 철망이 말이에요. 철사가 비록 가늘기는 해도 촘촘하게 엮어져서 그냥은 도무지 찢을 수가 없는 물건이란 말이거든요. 사람의 손으로도 절단기가 아니면 뚫거나 찢고 들어갈 수가 없게 되어 있단 말이거든요. 그런데 마루 녀석은 손도 없으면서, 절단기도 없으면서 그 견고하고 촘촘한 철망을 뚫고 들어간 거예요.

이게 대체 뭐냐? 그제야 깜짝 놀랐다는 마음으로 철망을 살펴보지 않았겠어요? 살펴본 다음에는 어안이 벙벙해서 한참을 멍해져 버렸고요. 도대체 얼마나 집요하게 간절한 마음으로 박치기를 해대었던 것인지 철망의 철사 하나하나가 엿가락처럼 늘어지다가 끊어져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마루 녀석은 밤새도록 온 몸으로 철망을 들이받고 있었던 거예요. 온 몸의 힘을 다해 들이받다 보니 개줄도 끊어지고, 철망도 늘어지다가 끊어지고, 그래서 마침내는 오리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서 오리를 죄다 물어죽일 수 있게 되었던 거예요.

그러면 도대체 왜 갑자기 그런 짓을 해야만 했는가? 여태까지는 그런대로 이웃간으로 잘 지내온 오리가 왜 그렇게도 온 몸을 던져서 죽여야만 할 정도로 미워진 것인가? 등등 이런 의문이 안 들 수가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또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서 이런저런 추리를 해보았지요. 그러다가 그것을 발견한 거예요. 마루 녀석의 몸이 전체적으로 엄청 커져 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 다정하게 노는 강쥐들

그랬던 거예요. 마루 녀석은 어느새 임신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임신도 초기나 중기가 아니라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던 거예요. 배가 엄청 늘어져 있고, 이삼일 새에 금방 새끼를 낳을 것 같아져 있더라고요. 그런데도 나는 녀석의 임신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던 거예요. 날마다 몇 번씩 녀석과 눈을 마주치면서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거예요. 아아, 사람이 이게 참 그렇더라고요. 정신이 딴 데 있으면 보면서도 못 보는 모양이더라고요.

마루 녀석은 나의 그런 무관심이 야속했던 것일까요? 그래서 날마다 꽥꽥꽥 시끄럽게 해대는 오리들이 짜증스러웠던 것일까요? 아니면 맛있는 오리 알을 더 이상 못 먹게 되니까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던 오리들의 꽥꽥 소리가 못 견디게 싫어졌던 것일까요? 아무튼 마루 녀석은 그 뒤로 며칠이던가, 하여튼 일주일이 채 안 돼서 새끼를 낳았어요. 여섯 마리나. 암컷이 다섯에 수컷은 달랑 한 마리. 그렇게 새끼를 낳았는데 말이에요. 새끼를 보는 즐거움이야 당연하지만, 그런데 이 즐거움도 예전 같지가 않아요. 예전에는 그냥 순수하게 즐겁기만 했지만, 지금의 새끼를 보는 즐거움 속에는 의문부호가 수천, 수만 개나 끼여 있어서 말이에요. 그래서 무겁고, 살짝 어둡기도 한 그런 즐거움이 되고 말았어요.

그래요, 나는 여전히 궁금해요. 궁금해서 못 살겠어요. 도대체 마루는 왜 그 견고한 철망을 굳이 뚫고 들어가서 오리를 죄다 물어 죽여야만 했을까. 응? 엄마도 모를까? 알거든 꿈에라도 나한테 좀 알려줘요, 엄마, 응?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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