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생생 역사 현장 탐방 15 - 서울 국립현충원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 인용하며 유명해진 문구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도 문화유적의 참맛을 느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방화로 소실된 국보 1호 남대문의 부재는 두고두고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이에 <위클리서울>은 서울 인근의 유적지를 직접 찾아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선 호국 영령들이 잠들고 있는 서울 국립현충원을 찾아봤습니다. 이 땅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의 안식처는 얼마 전 시민들에게 전격 개방되면서 사색의 휴식처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정문을 들어서기 전부터 옷깃이 여며지는 곳, 바로 현충원이다.

한눈으로 봐도 수백 개에 이르는 작은 묘비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지금 내가 딛고 있는 이 땅이 그냥 이뤄진 게 아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국전쟁을 비롯 나라를 지키다 순국한 분들의 이름과 계급이 적힌 작은 비석들을 지나다보면 얼마 되지 않은 이 땅의 아픔이 새록새록 전해진다. 얼마나 더 소중한 피를 흘려야만 하는 걸까.

정문 뒤 충혼탑이 전쟁의 흔적이 여전히 짙게 남아있는 현실을 그래도 보여주는 듯 하다.


#호국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서울 국립 현충원’. 2006년 전면 개방되면서 서울 시민의 휴식처로 각광받고 있다.



현대사의 아픔

서울 국립현충원의 시작은 장충단 공원 인근에 있던 서울 장충사였다.

장충단 공원은 고종이 을미사변 때 순직한 궁내부 대신 이경직과 연대장 홍계훈 등 호위 장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단과 부속 건물 2채를 지으며 시작했다. ‘장충단’이란 이름도 충성을 장려한다는 의미였다.

이후론 다른 사건들로 순국한 사람들의 위패도 함께 봉안됐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장충단 공원 안엔 전몰장병의 위패를 봉안하는 장충사도 생겼다. 그러다 북한과의 충돌로 전사자의 수가 증가하면서 육군에서 묘지 설치 문제가 논의돼 1949년말 묘지 후보지를 물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까마귀 한 마리가 한 묘비 위에서 넋을 달래듯 구슬프게 울고 있다.


그러던 중 일어난 한국전쟁으로 논의는 중단됐고 각 전선에서 전사한 전몰장병들은 부산 금정사와 범사사에 안치소를 마련했다. 이후 대구와 경주 등이 묘지 후보지로 거론됐지만 지역적으로 치우친 점을 감안해 1952년 동작동 현 위치를 후보지로 선정했고 이듬해 이승만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확정됐다.

이후 국군묘지, 국립묘지 시대를 거쳐 현재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처음엔 군인 위주로 안장이 이뤄졌지만 뒤이어 경찰관과 향토예비군, 소방공무원도 포함됐다. 임시정부 요인들과 전직 대통령들도 이 곳에 묻혀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가 가장 높은 곳에 있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승만 전 대통령의 묘소가 그 밑으로 있다.

이 전 대통령은 1965년 서거 뒤 이 곳에 묻혔고 1992년 영부인 프랜체스카 여사가 서거 뒤 합장됐다. 1979년 서거한 박 전 대통령은 1974년 광복절 문세광의 총탄에 세상을 떠난 육영수 여사와 함께 나란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2009년 향년 85세로 서거한 뒤 이 곳으로 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 묘소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



#이승만 전 대통령 내외 묘소 (합장)



임시정부 요인으론 ‘한국통사’로 민족혼을 일깨웠고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지낸 박은식, 외무총장을 역임한 신규식, 의정원 의원 및 서로군 정서 참모장을 지낸 김동삼 등이 이 곳에 묻혀있다.

도도히 흐르는 ‘한강’

현충원의 지세는 오래전부터 ‘명당’으로 지목받아왔다.

한강과 과천 사이 넓은 벌판에 우뚝 솟은 관악산 공작봉 기슭에 있는 현충원은 공작이 아름다운 날개를 쫙 펴고 있는 모습이다. 좌청룡의 웅장한 형세는 한강을 감싸 호위하는 형세이고 우백호의 형세는 힘이 센 호랑이가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는 듯하다고 한다. 현충원 앞으론 한강물이 한폭의 비단처럼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들어간다. 때문에 공작봉을 목마른 코끼리가 물을 마시는 듯 한 형상이라며 명당 중의 명당으로 꼽는 사람도 있다.


#안빈창씨 묘역.


이 곳에 묻힌 이승만 전 대통령의 경우 살아있을 당시 자신이 묻힐 곳을 미리 정했다는 일화도 전해 내려온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의 사후를 놓고 볼 때 ‘명당 중의 명당’이냐는 논란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이 전 대통령 묘소 앞에 세워진 ‘헌시비’엔 이렇게 적혀 있다.

‘금수강산 흘러오는 한강의 물결/ 남산을 바라보는 동작의 터에 일월성신과 함께 이 나라 지키소서’.



#한 겨울 눈이 내린 현충원 정문



“‘죽음’을 성찰할 수 있는 곳”

현충원의 역사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대목은 ‘창빈안씨’ 묘역의 존재다. 조선 11대 왕 중종의 후궁인 창빈안씨는 선조의 할머니였다. 원래는 1550년 경기도 양주에 묘소를 만들었는데 자리가 좋지 않다고 해 이 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후궁이지만 신도비와 문인석까지 있는 것은 그의 자손이 왕위를 계승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현충원은 2006년 시민들에게 전면 개방되면서 그 동안 갖고 있던 ‘금단의 구역’이라는 이미지를 완전히 떨쳐냈다. 봄에는 꽃구경으로, 여름엔 시원한 나무 그늘을 찾아 발걸음이 대폭 늘어났다. 가을 단풍과 겨울 설경도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장군 묘역 입구


현충원을 둘러싸고 있는 서달산은 동작동과 상도동, 흑석동을 잇는데 평지가 많고 걷기가 좋아 주민들의 좋은 산책로로 활용되고 있다.

심리학을 전공한다는 30대 중반의 조 모씨는 “이 곳에 오면 우리 현대사의 아픔과 함께 죽음에 대해 깊이 성찰할 수 있어 자주 찾게 된다”고 말했다.


#대한독립군 무명용사 위령탑

한편으론 여전히 깊은 지역감정과 정치색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 3월 중순, 이 곳을 찾은 영남 지역의 한 관광버스 풍경. 박 전 대통령 묘소 앞에선 경건하게 참배하면서도 김 전 대통령 묘소는 보는 듯 마는 듯 그냥 지나쳤다.





#현충원의 겨울과 봄


#서달산 정상, 최근 세워진 ‘동작대’

이를 보고 있던 호남 출신 60대 노인은 혀를 차며 “내 고향 사람들도 마찬가지여. 도대체 언제쯤에야 화해가 가능할지. 민족이 갈라져 그렇게 많은 피를 봤으면서도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싸우는 것 보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겨”라고 한숨을 쉬었다.


#‘동작대’에서 바라본 한강



현충원 내엔 전직 대통령 묘소 외에도 박 전 대통령을 옮겼던 영구차와 장군묘역, 호국 영령의 넑을 달래는 지장사 등 둘러볼 곳이 많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상도동 후문 쪽에 있는 ‘동작대’에 올라가 63빌딩과 다리가 조화를 이루는 한강의 풍경을 즐기는 것도 좋다.

현충사에서 내려오는 길. 한 묘비 앞에서 까마귀 한 마리가 구슬픈 목소리로 운다. 더 이상 이 땅에 아픈 비가 흐르질 않기를 기원해 본다.

김승현 기자 okkdo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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