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를 막론하고, 너무 정치적인 사람은 진실성이 없어”
“좌우를 막론하고, 너무 정치적인 사람은 진실성이 없어”
  • 승인 2012.05.18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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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진단 연속인터뷰> 신경림 시인-1

‘농무’, ‘목계장터’ 등 농촌 정서 담아온 대표적 서정시인  
좋은 시의 기준? 많이 읽히는 게 아니라 깊이 읽히는 것
시, 외면 받지 않기 위해선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 줘야 
‘목계’는 순화의 고장이기도, 버리고 싶은 기억이기도






한국 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다. 국가보안법 사범 증가, 노동 탄압, 생태환경 파괴 등의 문제가 확산되면서 사회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신공안정국’에서 파생된 숱한 문제들이 여전히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위클리서울>은 2007년부터 국가보안법, 남북관계, 노동 인권, 생태 환경, 교육 등의 문제와 관련 각계 인사들과 연속 인터뷰를 진행해왔다. 그동안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 ‘야생초 편지’의 황대권 씨, 재야인사 김낙중 선생,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김상봉 전남대 교수,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송환’의 김동원 감독, 김세균 서울대 교수, 강기갑 민노당 대표, 노회찬 심상정 진보신당 대표, 정세현 이종석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김우종 덕성여대 명예교수, 홍윤기 동국대 교수,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의 동생 조용준 선생, 박원순 변호사, 장석춘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정지영 감독, 이상돈 중앙대 교수, 손호철 서강대 교수, 이해영 한신대 교수,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이성백 서울시립대 교수, 고은 시인, 이한열 열사 모친 배은심 여사, 박창근 관동대 교수, 배우 최종원 문성근 권해효 씨, 김용택 시인, 지율스님, 박인배 한국민족극운동협회 이사장, 강정구 동국대 교수, 우석훈 성공회대 교수, 박재동 화백, 문정인 연세대 교수, 이장희 한국외대 교수, 손혁재 한국NGO학회 회장,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박경석 장애인철폐연대 대표, 가수 안치환 씨, 김두관 경남도지사, 안종주 박사, 김정헌 공주대 명예교수, 이근행 전 MBC노조 위원장,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이강택 언론노조 위원장,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문재인 변호사, 서정민 한국외대 교수, 김태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 이진석 서울의대 교수,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이호철 작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유홍준 명지대 교수, 강남훈 교수노조 위원장,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 정연주 전 KBS 사장,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장석웅 전교조 위원장, 윤기돈 녹색연합 사무처장, 박순성 동국대 교수, ‘하얀 정글’의 송윤희 감독, 신율 명지대 교수, 강병화 고려대 교수, 정혜신 정신과전문의, 이은봉 한국작가회의 사무처장, 김명곤 전 문광부 장관,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 조헌정 향린교회 목사, 이시영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방송인 김미화 씨, 조화순 목사, 정동익 사월혁명회 의장, 안도현 시인 등 230여 명의 사회 각계 인사들과 인터뷰를 진행해왔다. 이번호에는 우리문단의 거두 신경림 시인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신경림(77) 시인은 1955∼56년 ‘문학예술’에 이한직 시인의 추천을 받아 시 ‘낮달’, ‘갈대’, ‘석상’ 등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건강이 나빠 고향으로 내려가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 현대문학사, 희문출판사, 동화출판사 등에서 편집 일을 했다. 한때 절필하기도 했으나 1965년부터 다시 시를 썼다. 그때부터 초기 시에서 두드러진 관념적인 세계를 벗어나 막연하고 정체된 농촌이 아니라 핍박받는 농민들의 애환을 노래했다.

그의 작품세계는 주로 농촌 현실을 바탕으로 농민의 한과 울분을 노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1973년 발표한 신경림 시인의 시집 ‘농무’의 발문에서 “민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받아 마땅한 문학이라는 점에서 이 시집의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후 그는 우리 민족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는 농촌 현실을 바탕으로 민중들과 공감대를 이루려는 시도를 꾸준히 하고 있다.

사회운동가로서의 평가에 대해 시인은 스스로 자격미달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시인은 “솔직히 말하면 저는 시가 올바른 소리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 중 하나”라며 “객관적이고 진보적이라는 지식인은 사회정의를 우선해야 할 것이라는 데에 이의를 제기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좌우를 막론하고 너무 정치적인 사람은 진실성이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예술·문화의 영역에서 진보?보수의 나눔은 무의미하다고도 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진보냐 보수냐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기를 강요하고 있다고 본다. 그런 것을 피해가면 욕도 먹게 된다”며 “그러나 소아병적인 진보주의도, 그러한 보수주의도 문제다. 그들은 남을 전혀 이해할 줄 모른다”고 꼬집었다. 다음은 신경림 시인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 요즘 어떻게 지내나.
▲ 정릉동에 오래 살았다. 30년 동안 살았다. 동국대 석좌교수로 지내고 있다. 가끔 초청강의 다니는 것 외엔 크게 하는 일이 없다. 

- 좋은 시의 조건이 뭐라고 생각하나.
▲ 좋은 시란 독자와 의사소통이 돼야 한다. 또 1회성보다는 오래가야 한다. 제가 읽어본 경험에 따르면 어떤 시든 그 시를 읽자마자 머릿속에 그림이 박혀 퇴색하지 않는다. 또한 많이 읽힌다는 것이 좋은 시의 기준은 아니다. 대중가요의 가사는 널리 읽히는 것이 목적이겠지만, 시는 깊이 읽히는 것이라고 본다.

- 소통이란 무엇인가.
▲ 감동을 주는 것이다. 시는 뜻으로만 읽는 게 아니고, 느낌으로도 읽는 것이다. 느낌으로도 훌륭하게 소통된다. 이것은 쉬운 시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난해시도 상징시도 마찬가지다.

- 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선 어떤 작업이 필요한가.
▲ 시를 잘 이해하려면 그 시인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어떤 조건 아래서 살았으며, 그 시를 쓸 당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가를 알아야 한다. 시인의 의도하는 바를 안다는 것과 독자가 자기 나름대로 아무렇게나 해석한다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자기 취향대로 읽어내기 위해서라도 시인의 환경을 아는 것은 도움이 될 것이다. 가령 김종삼의 ‘묵화’라는 시가 있는데, 그가 무슨 얘기를 하려 했는가를 알고, 그가 살아온 환경을 아는 것은 시 이해에 결국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독자가 자기 나름의 상상력을 보태서 읽는 것이고, 행간을 읽는 것이기도 하다.

- 우리 삶에 있어 시는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나.
▲ 한 두 마디로 말하긴 어렵다. 당장 떠오르는 건… 사람 사는 데 꿈같은 게 돼야 하지 않겠는가. 시가 그런 게 전혀 안되니까 외면당한다. 외면 받지 않기 위해선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줘야하지 않겠는가.

- 시인을 비롯 대다수 문인들의 생활은 궁핍하다.
▲ 예나 지금이나 시만 써서 먹고 살려는 생각은 말아야 한다. 일이라는 게 대가를 받는 것인데, 시가 그런 대가를 지불해주는 게 아니다. 시인들이 아무것도 안 하고 시만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시라는 게 골방에 앉아 하루 종일 매달린다고 해서 잘 써지는 것도 아니다.

- 등단 직후 10년 동안 시 작업을 중단했다. 농사, 공사판, 광산일, 장돌뱅이 등등으로 전전했는데.
▲ 먹고 살기 위한 방편이었다. 한 7~8년 정도 그랬다. 문학을 공부하는 과정으로 일부러 그랬던 것이 아니고, 살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었다. 일부러는 할 수 없는 경험을 제대로 경험한 것은 그때였다. 제가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지게만 지면 할아버지가 펄펄 뛰고, 나무도 못하게 하고, 논에도 못 들어가게 했다.

- 문단의 원로다. 수많은 시를 써왔는데, 스스로를 어떤 시인이라고 생각하나. 실험적인 시도를 해볼 생각은 없는지.
▲ 서정 시인이라고 불리는 게 맞을 성싶다. 실험적인 시도는 할 이유가 없고, 저는 그런 시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젊은 사람들이 얼마든지 하는데 노인네까지 끼어들어 실험할 이유가 있겠는가(웃음).

- 대표작 ‘목계장터’는 지명수배를 당하다가 쓰게 됐다는데.
▲ 고향을 벗어나 큰 마을을 본 것이 ‘목계’가 처음이었다. 강변에 장이 열리는 곳이었다. 줄다리기로도 유명했던 곳이다. 시골에서 안 살고 그런데서 살아야겠다고 결심을 했을 정도다. 그러면서도 한때 지명수배를 당했던 때가 있었는데 도망 다니다가 어리버리 잡히고 만 곳도 목계장터다. 그러나 ‘목계장터’라는 시 역시 리얼하게 표현한 게 아니고, 상징적으로 내용을 많이 감춘 시다. 목계는 제게 그리움의 대상이다. 순화의 고장이기도 하고, 또 버리고 싶은 기억이기도 하다.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할 수 있다. 목계는 잊어버리고 싶은데 가끔 꿈에 나타난다. 벗어나고 싶은데 한 발자국도 못 벗어나는 곳이다. 그 정서도 추상적이고 상징적이다.

- 고은 시인은 어느 강의에서 요즘 젊은 시인들은 술을 안 마신다고 성토한 적이 있다. 술을 마셔야된다는 얘기가 아니고, 그만큼 젊은 시인들이 과거에 비해 움츠러들었다는 지적인데. 
▲ 요즘 시인들이 너무 생활인 같아서 재미없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지면 세상이 달라지고 시인도 달라지고 시도 달라지는 것이다. 제 개인적으로도 변하긴 마찬가지다. 예전에 비해 예민했던 부분들이 둔화된다. 반면 세상을 폭 넓게 보는 것도 생긴다. 고집이나 치기만만함은 다소 줄어든다. 장단점이 있다.
<기사 이어집니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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