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만질 수 없는 엄마에게 쓰는 편지



# 저 꼭대기가 직원숙소다

엄마, 호텔 이야기를 두세 번 더 할게요. 내가 그 호텔에서 배운 것이 너무 많거든요. 그 어떤 책에서도, 그 어떤 경험자에게서도 듣지 못한,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가 무궁무진해요. 그래서 언제인가는 이걸로 소설을 하나 써야겠다, 이런 생각도 하고는 있지만 그건 훗날의 꿈일 뿐이고요. 아무튼 지금은 그래요. 엄마의 아들이, 이제는 만져볼 수도 없고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는 엄마에게 뭔가를, 그러니까 어린 시절 밖에서 놀다가 돌아와서 아버지도 모르게 엄마에게만 소곤소곤 뭔가를 일러바쳤던 그때처럼 말이에요.

하, 여기까지 쓰고 나니 불현듯 한숨이 나오고 눈물도 나려고 하는데 쩝, 어쨌든  말이에요. 엄마가 내 앞에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의 차이라고나 할까, 아무런 대답도 없는, 아무런 말 한마디 들을 수 없는, 들려주지 않는 엄마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게 이게 솔직히 편하게 널널한 마음일 수는 없잖아요.

아무튼 말이에요 엄마, 아무튼 그랬어요. 취직을 시켜준다는 선배의 손에 이끌려 관광호텔에 들어갔던 첫날 말이에요. 관광호텔이라는 데를 태어나서 처음 들어가본 입장이라서인지 마구 주눅이 들더라고요. 누가 나한테 무슨 험한 소리를 한 것도 아닌데 괜히 삐죽거리고, 엉거주춤하고, 이것저것 살피고, 옆에 사람 눈치를 보고, 불청객처럼 그렇게 어리버리하게 되더라고요.

하긴 이유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에요. 앞으로 내가 잠자고 양치질도 하고 등등 그런 개인생활을 하게 될 숙소를 안내한다고 지배인이 나를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탔거든요. 단 둘이 있게 된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민망해서 내가 뭐라고 한 마디 물었거든요. 그런데 그때 지배인의 답변이 뭐였느냐 하면, 해보면 알겠지, 이런 거였어요. 아주 무뚝뚝하게, 그 한 마디만 달랑 내놓고 입을 꾹 다물어 버리더라고요. 그러니 내가 이게 뭐랄까, 야 너 답변이 왜 그따위야?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일단은 나도 모르게 그냥 기가 꺾이는 거잖아요.


# 직원숙소로 통하는 비상구


나중에야 지배인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지요. 그 이유란 게 뭐냐 하면, 음, 한 마디로 말해서 재미가 없었던 거예요. 살아가는 재미가 너무 없어서, 그래서 매사에 시큰둥해 있었던 거예요. 왜냐하면 그는 광주에 처자식이 있었거든요. 고창에서 광주까지는 출퇴근 시간만 아니라면 한 시간 남짓밖에 안 걸리거든요. 그런데도 그는 열흘이 넘도록 집에도 못 가고 동굴 같은 직원숙소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캑캑거리다가 감기까지 독하게 들어있었던 거예요.

그래요. 그곳은 사실로 동굴 같은 곳이었어요. 직원숙소가 말이에요. 정말이지 살다 살다 그런 곳은 처음이었지요. 호텔 건물의 맨 꼭대기, 그러니까 옥탑이라고 해야 옳을 만한 곳인데도 그렇더라고요. 복도를 중심으로 양쪽에 십 여 개의 방이 늘어서 있을 뿐 창문이 하나도 없어요. 대낮에도 전등을 켜지 않으면 아무것도 볼 수가 없어요. 세상에, 사람 사는 세상에 그런 곳도 있더라고요. 건물에서 가장 훤한 곳으로 누구나 알고 있는 옥탑방이 가장 어두운 동굴 같다니 이게 무슨 마술인지 요술인지 당최 알 수가 없더라고요.

“아니 어떤 느자구없는 인간이 집구석 설계를 이렇게 했을까?”

나도 모르게 한 소리가 나왔지요. 살짝 주눅이 든 와중에도 그런 소리가 나오는 걸 보니 나는 역시 나더라고요. 나, 뭐 다른 게 있나요. 마음에 안 들면 안 든다고 무식하게 그냥 말해버리는 것 말이에요. 지배인이 그 소리를 듣고는 킥킥거리더군요. 그 엄격한 외모의 사내가 그렇게 웃을 줄도 알더라고요. 아무도 모르게 웃는다는 식의 그런 웃음을 보니까 나도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웃었지요. 그러자 지배인이 느닷없이 담배를 꺼내서 권하더군요.

백화점에 창문을 두지 않는 이유가 고도의 상술이라 알려져 있고, 그래서 그것을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는 있지만, 호텔 종사원들의 숙소에 창문을 두지 않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지, 생각을 하고 또 해봐도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지배인은 그러더군요. 자기도 모른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그래서 내가 그랬지요.


# 창문은커녕 환기구 하나없는 직원 숙소


“아니 이렇게 중대한 문제를 왜 생각도 안 해보셨을까요?”

지배인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소리를 내고 말더군요. 그리고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또 담배를 꺼내들고, 담배를 손에 든 채 한참을 천장이나 보고 있더니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내가 말이에요. 마누라 뇌수술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삼 년 동안 돈을 모았어요. 이제 곧 수술을 하러 서울로 가야하는데 자리를 비울 수가 없어요. 내가 만일 자리를 비운다면 사장님은 다른 지배인을 구하지 않겠어요?”

아하, 그런 애로사항이 있었구나. 그래서 숙소에 창문이 없는 이유 따위를 생각해볼 틈이 없었던 것이로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말문이 턱 막히더군요. 말문만 아니라 가슴에서도 뭔가가 턱 막히더군요.

“그렇다 해도, 아니 그러니까 더더욱 그런 문제를 생각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 너무 무거운 것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한다는 차원에서 말입니다.”

나의 그 말에 지배인은 마치 무슨 괴물이라도 보듯이 나를 뚫어져라 응시하더군요. 그리고 잠시 뒤에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지요. 그렇게 해서 지배인과 나는 틈만 나면 마주앉아서 그 연구를 하게 되었지요. 호텔 종사원들의 숙소에는 왜 창문을 두지 않는가 하는 그 빌어먹을 과제에 관한 연구를 말이에요.


# 기계실 이 소음이 직원 숙소를 통과한다.


방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아니 가만히가 아니라 요란하게 있어도, 끊임없이 들리는 소리가 있단 말이거든요. 저 아래 지하 3층 기계실에서 올라오는 소리예요. 거대한 보일러가 돌아가는 소리, 파이프를 타고 이 방 저 방 객실에 뜨거운 물을 공급하는 모터 소리, 보일러실 내부의 열기를 밖으로 방출하는 거대한 환풍기 소리, 객실마다 설치된 작은 환풍기와 변기와 세면대에서 나오는 각종 소리들이, 옥탑방 옆의 거대한 구멍을 통해 외부로 방출되는 그런 소리들이 직원 숙소에서는 듣고 싶지 않아도 마구 들리는 거예요.

호텔 객실에서는 전혀 들리지 않는 소리가, 옥탑방에서는 완전 무방비로 들리는 거예요. 신기하죠? 객실에 든 사람들은 손님이니까 아무 잡소리도 들리지 않게 장치를 했지만, 옥탑방에서 피곤한 육신을 잠시라도 쉬고자 하는 사람들은 손님이 아니고 그저 일꾼들일 뿐이니까, 그래서 오만 잡소리에 고스란히 노출되어도 괜찮다는, 호텔을 설계한 설계사와 건축주가 그런 논리를 신앙처럼 갖고 있었는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 이것 참 신기한 일이란 말이거든요.

굳이 거대한 두께의 자본론을 읽지 않아도, 자본이란 무엇인지, 그 속성은 또 무엇인지, 등등 그런 모든 골치 아픈 이론들이 호텔처럼 외양이 화려하고 크기도 거대한 건물을 유지 관리하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면 그대로 몸에 와 닿더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뭐냐 하면, 호텔은 건물 자체가 한 마리의 거대한 동물 같다는 거예요. 거대한 동물의 목구멍을 중심으로 우리들, 그러니까 호텔 종사원들의 숙소가 있는 거예요.

동물의 목구멍이란 게 이게 그렇잖아요. 외부의 산소를 빨아들이는가 하면 내부의 가스를 트림이나 재채기 따위의 형식으로 뿜어내는 그야말로 ‘목’이란 말이거든요. 그 중요한 목에 우리들이, 호텔 종사원들이 각자 하나씩 방을 배정받아 있는 거예요. 그런데 조건이 있는 거예요. ‘내’가 지금 이곳에 사람으로 있지만 없는 것처럼 있어야 한다는 조건 말이에요.

그래요. 있지만 없는 것처럼 있어야 한다,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닌 것처럼 있어야 한다는 이 조건은 사실 호텔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의 건축철학이기도 하겠지요. 외부인은 절대로 알아볼 수 없는 방, 그래서 창문이 하나도 없는, 엘리베이터도 아래층에서 끝나고, 비상계단으로만 이어져 있는 방, 화장실도 없어서 용변을 봐야 할 일이 생기면 옷을 찾아 입고 어둠 속을 나와서 아래층으로 내려가야 하는 방, 그런 이상한 마술 같은 방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기관지염이나 만성감기에 시달리고 있었지요. 왜냐하면 공기순환이 안 되다보니 자기가 방출한 가스에 자기가 중독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니까요.

그런 방에서 하룻밤을 새고 났을 때는 당장에 그런 생각도 들더군요. 그 어떤 멍청한 건축사가 이런 건물을 설계했는지, 참말로 눈앞에 있으면 한 대 쥐어박고 싶다는 생각 말이에요. 건물을 뽀대나게 짓고 싶었다면 옥상 부분을 그냥 묻어버릴 것이지, 뭔 지랄한다고 거기에 사람이, 그러니까 호텔 종사원들이 거주하는 공간을 마련했느냐 이런 생각이 들면서 화가 막 나더라고요. 아, 자본의 폭력이라는 것이 다른 게 아니로구나 싶기도 하더라고요. 벌건 대낮에도 불을 켜지 않으면 오른손이 왼손조차 알아볼 수 없는 그런 캄캄한 공간이 다른 데도 아니고 옥상에 있다는 것, 그럴 수도 있다는 것, 이게 자본의 폭력이 아니고 뭐겠냐고요.


# 들어서기 전 홀로 노래를 부르는 지배인


만에 하나, 아니 십만에 하나, 아니 아니 백만분의 일 확률로라도 화제 같은 것이 발생했을 때, 환기구 하나 없는 이 완전 동굴형 방구석에 처박혀 잠을 자고 있던 호텔 종사원들은 불이 코앞에 바짝 덤벼들었을 때에야 어매 불났네, 하겠지요. 그리고 그 순간 바로 불길에 휩싸이겠지요. 이런 구조의 집을 설계한 건축가의 철학은 대체 무엇일까, 그런 등등의 이야기를 지배인과 나는 틈만 나면 주고받고 했던 거예요. 그런 과정에서 지배인의 내력도 알게 됐던 것이고요.

지배인은 자기도 한때 자본가였다고, 그런 말을 하더군요. 그래서 자본가의 심리를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나요. 그러면서 피식피식, 시니컬하게 웃더군요. 웃다가는 문득 눈물을 글썽이더군요.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자라고 광주에서만 살았다더군요. 아버지가 경찰관이었고, 변변한 재산도 없이 돌아가셨는데 십수 년이 흐른 어느 날 홀연 몰랐던 재산이 발견되었다는군요. 광주가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전후좌우 사방으로 팽창되기 시작할 무렵, 그 시기의 어느 날 시청에서 통지가 왔다는 거예요.

“우리 아버지도 그걸 재산이라고는 생각을 안 하셨던 거야. 농사도 못 짓고, 그렇다고 나무를 심을 수도 없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돌산이었으니까. 돌산, 알죠? 근데 시청의 입장에서는 그게 아주 유용한 물건이었던 거지. 돌은 돌대로 발파해서 조경용으로 쓰고, 돌을 다 쓴 뒤에는 그 자리에 아파트건 공장이건 하여튼 직할시 수준에 맞는 건물을 지으면 되는 거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쓸모없다고 버린 돌이 황금으로 변했던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지배인은 사십대 초반 젊은 나이에 갑자기 떼부자가 되었다는군요. 그 돈으로 시내에 중형급 호텔을 매입해서 호텔 영업을 시작했다는 거예요.

“마누라는 그 돈으로 농장을 하자고 했어요. 그때 내가 그랬지요. 정신나간 소리 말라고.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고. 그랬는데 그 기회라는 것이, 오늘날에 와서 보자면 오갈 데 없어서 산골짜기 관광호텔 지배인이나 하는 뭐, 허헛. 이렇게 되고 말았으니 결국 마누라가 옳았던 거지. 정신은 내가 나갔던 것이고.”



# 조팝꽃


사업은 실패했고, 광주에서는 창피해서 어디 취직도 못하겠고, 그래서 얼굴 아는 사람이 없는 고창 산골짜기까지 들어왔다, 지배인의 내력인즉 그런 것이었지요. 그러면 왜 호텔사업이 망했는가. 지배인의 말로는 망할 이유가 거의 없었는데 망했다고 하더군요. 이게 아주 중요해요. 망할 이유가 없는데 망했다는 거.

광주에서 나고 자라고 결혼해서까지 계속 살고 있으니 뭐랄까, 아는 사람이 엄청 많다는 거예요. 그 많은 사람 가운데 그럭저럭 먹고살기 불편함 없는 사람도 제법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는 거예요. 대놓고 무슨 봉사를 한다거나 기부를 한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벌이는 손을 외면한 적이 없다는 거예요. 꿔달라면 꿔주고, 보증을 서 달라면 보증을 서 주고, 어음 할인을 해달라면 그것도 해주고, 그런 것밖에 아무 한 일이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자신의 사업이 망했더라는 거예요.

허헛 참 내. 아무튼 지배인의 호텔 사업은 그렇게 해서 완전히 망하고, 망하는 정도에서 멈추지 않고 빚까지 짊어졌고, 그 충격으로 아내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고, 그래도 어쨌든 살아보자 하는 생각으로 고창 산골짜기 호텔까지 왔다는 거예요. 그러니 호텔 종업원들의 복지문제라든가 이런 게 눈에 띌 리도 사실은 뭐, 없었겠지요.

아무튼 말이에요, 엄마. 지배인의 그런저런 내력을 듣고 있다 보니 눈앞에서 오락가락하는 얼굴이 있더라고요. 엄마는 벌써 눈치챘겠지요? 그래요.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 아버지였어요. 아버지가 그러셨지요. 귀가 얇아서 누가 무엇을 함께 하자 하면 “응 그러세”하고 따라가서 함께 망하고, 누가 돈을 빌려달라면 “응 그러세”하고 빌려주고, 당신의 주머니에 돈이 없을 때는 아예 다른 사람에게 빌려다가 빌려주는, 그렇지 않으면 해야 할 일을 못한 것 같아서 며칠씩이나 고민을 하고, 나중에는 끝내, 보증을 서 달라는 사람마다 보증을 서주고 땅뙈기 몇 마지 있던 것마저 죄다 빼앗겨 버렸던 아버지, 돌아가신 지도 벌써 한참인 아버지의 얼굴을 지배인에게서 보고 있었던 거예요.

아아, 그래요. 사람이 말이에요. 자본주의 사회를 산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 같아요. 어렵다는 것은 뭐랄까, 사람에게 맞지 않다는 얘기가 되는 거 아닐까요? 그래요. 자본주의라는 것은, 사람에게 맞지 않는 틀이에요. 다른 사람이 내미는 손을 내가 잡아주면 그것이 곧 나의 몰락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는 게 자본주의의 핵심인데 그것이 어찌 사람에게 맞을 수 있겠냐고요.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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