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는 해, 지는 해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당선인 사이에 4대강 사업을 비롯한 주요 현안과 관련,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감사원으로부터 ‘총체적 부실’이라고 지적된 4대강 사업에 대해 박 당선인 측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주목되는 가운데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지명 그리고 설 특별사면까지 이어지면서 좋았던 관계가 불편해지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두 사람은 같은 당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여러차례 평행선 관계를 이어오곤 했다. 정권 교체기 이후 어떤 모습을 보일지 관심이 모아진다.





박 당선인은 아직까지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일단 취임식 전날까지는 임기 중에 있는 이 대통령을 배려하겠다는 것이 큰 이유다.

박 당선인은 지난 11일 부처 업무보고에 앞서 김용준 인수위원장에게 ‘이명박 정부 때리기를 자제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질 정도로 ‘`갈등 없는 인수인계를 바라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최근 들어 여권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주변에서는 MB정부의 사업 때문에 ‘박근혜 정부’가 부담을 져서는 안 된다는 기류가 감지된다. 때문에 새 정부가 관련 위원회를 구성해 4대강 사업에 대한 재점검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감사원이 최근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설계부터 관리까지 곳곳에서 부실이 있었다는 점을 확인하자 새누리당에서 같은 날 곧바로 대변인 명의의 논평이 나온 것이 이런 관측에 힘을 싣는다.

‘낙하산 인사’ 신경전

이상일 대변인은 논평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한 객관적 평가 작업에 착수해 보다 현실성 있는 보완대책을 국회 차원에서 논의해 나가야 한다”며 “일괄적 준설로 인해 유지보수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될 수 있다고 하니 새 정부에도 큰 부담”이라고  이례적으로 우려를 표했다.

일각에선 박 당선인이 이 문제에 대해 직접 입을 열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박 당선인은 지난해 대선 TV토론에서 “4대강 사업은 현 정부의 최대 핵심사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 그에 대해 하지 마라, 이렇게 할 범위는 넘어섰다”면서도 “앞으로 홍수도 지나보고 결과를 보고 거기에 따라 보완할 점이나 잘못된 점이 있다면 위원회를 구성해서라도 잘 검토해서 바로잡으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해서도 박 당선인 측에서는 대외적으로 “이 대통령이 한 인사이니 인사청문회를 지켜보자”는 입장이지만 내부적으론 비판적 시각이 갈수록 확산되는 기류다.

박 당선인 측 인사들 사이에서는 “이 후보자가 만약 낙마하면 우리가 새 정부에서 더 좋은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현 정부와 선을 긋겠다는 분위기가 읽힌다.

현 정부가 신중하게 검토 중인 설 특별사면에 대해서도 꺼림칙해 하는 분위기다. 박 당선인이 대선 때 내놓은 특별 사면권 제한 공약에 배치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하는 ‘택시법’은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사안이다. 비판 여론을 등에 업은 청와대와 정부는 ‘국가대계’임을 강조하며 거부권 행사 방침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거부권이 행사돼도 국회에서 재의해 통과시킬 것이라는 메시지를 청와대에 전달한 상태다.

‘친인척 비리’ 등 검풍 예고

결국 박 당선인은 현안들이 사회적 논란으로 표면화될수록 입장표명을 요구하는 여론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대선 기간과 취임 후는 ‘책임’ 면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정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박 당선인의 생각은 이 대통령과 다른 점이 많다”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MB 정부와 차별화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임기 말 ‘낙하산 인사’도 결국엔 ‘지뢰밭’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를 비롯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건설근로자공제회,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의 감사 자리에 청와대 비서관 출신들이 줄줄이 선임된 것은 향후 문제의 소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친박 그룹 일각에서 ‘논공행상’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BBK 사건, 노무현 대통령 자살사건, 친인척 비리사건, 4대강 비리혐의 등등과 관련해 국회 청문회에 불려오거나 검찰의 고강도 수사가 있을 것이란 얘기도 없지 않다.

박 당선인은 “내가 당선되는 것도 ‘정권교체’”라고 선거 운동 기간 강조해 왔다. 잔뜩 움추린 친이계 그룹에서 여전히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는 것도 박 당선인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전언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퇴임 후 모두 불행한 길을 걸었다. 일인자들의 최측근들은 하나같이 법정에 서거나 중형을 피하지 못했다. 정권 교체기에서 두 사람이 어떤 관계를 만들어나갈지 관심이 모아진다.


오진석 기자 ojs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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