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김병일 씨 이야기



# 비닐하우스 안의 대추토마토

사람 사는 세상에서 잘사는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설령 내가 잘살지 못해서 약간은 주눅이 들기도 하고, 질투심 같은 것이 꿈틀거린다 하더라도, 잘사는 사람은 그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향기가 느껴지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잘사는 사람은 세상의 감춰진 무엇인가를 이미 알아버린 것 같기도 하고, 아직 열심히 찾고 있는 것 같기도 해서 그 존재 자체가 하나의 희망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가진 것이 많은 부자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재산을 많이 갖고 있다 해서 잘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 떠도는 소문만 놓고 보자면 부자 치고 잘사는 사람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이름난 부자들 가운데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하지 않은 경우를 찾기란 매우 어렵다.

부자 아닌 사람이 볼 때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로 자살을 한다던가, 식구들 간에 소송전을 벌인다던가, 가진 돈에 비하면 얼마 되지도 않는 세금 좀 안 내려고 온갖 잔머리를 굴린다든가, 등등 그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드는 느낌이란 참 씁쓸하기 짝이 없다. 세상을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살까, 재미있게 사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거늘 어찌 그런 ‘자잘한 고민’으로 인생을 낭비할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게 현실이고 보면, 돈이 잘삶의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 비닐하우스 점검중인 김병일씨

게다가 부자들은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을 사람으로 못 보는 경향마저 있다. 수억 원 대의 외제차를 몰고 가던 중에 국산 소형차가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고 폭력을 행사한 재벌가 자제의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다. 야구방망이로 사람을 두들겨 패고 대당 얼마씩이라고 외치며 수표를 내던졌다는 재벌회장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그들은 그런 행위를 통해서 그들 나름의 어떤 행복을 느끼겠지만, 그 행복은 이미 보편적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나 먼 그들만의 특수한 가학적 쾌감일 뿐이고 보면, 부자들의 그것은 행복이라기보다 외로워서 미치겠다는 반어적 표현으로 보는 게 옳다.

특수하다는 것은 사실 외로운 것이다. 자기 자신을 특수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외로움에 치를 떨 각오를 해야 한다. 모든 부자들이 그렇지는 않다 해도,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부자들이 자신을 특수한 계급으로 상정해놓고 다른 사람 보기를 돌이나 똥 같이 하며 외로움에 치를 떠는 이 엄청난 모순의 기원을 찾다 보면 정경유착을 만나게 된다. 정권 차원에서 재벌을 보호 육성하고, 재벌은 정권이 독재를 할 수 있도록 기꺼이 자금창구 역할을 해온, 저 오래된 관행 말이다.
어쨌든 재벌이나 독재자는 오늘 말하고자 하는 잘삶의 모델이 아니다. 모델이 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사람이 잘산다는 건 뭘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병중에 가장 큰 병은 외로움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을 바꿔 말하면 외로움에 치를 떨지 않는 것, 심심해서 어쩔 줄 몰라 하지 않고 자기 일에 열성을 다하는 사람이 곧 잘사는 사람이라고 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 비닐하우스 안의 대추토마토

그런 사람을 찾아갔다. 자기 일에 열성을 다하다 못해 몸과 마음을 모조리 바쳐버린 사람, 그러면서도 찾아온 사람에게 김치 없으면 좀 가져가라고 하는 사람, 김병일 씨. 55년생. 전북 고창읍 죽림리에 주소를 두고 있고, 부인과 딸들 그리고 손자들과 어울려 적막했던 시골 동네를 활기차게 만들어놓은 사람, 그 사람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찾아갔다.

첫 번째 찾아갔을 때 그는 너무도 바빠서 말 한 마디 붙여볼 수가 없었다. 석류나무를 심었던 밭의 석류나무를 죄다 뽑아내고 고추모종을 하는데 그야말로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다른 일이 예정되어 있었다고, 그런데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고추모종으로 작업을 변경해놓고 보니 하루해가 너무 짧다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말 한 마디 나누기는커녕 눈 한 번 제대로 마주쳐보지도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미친 사람이기도 하다. 일에 미친 사람이다. 누가 찾아와도 일손을 멈추는 법이 없다. 일은 손이 하고 말은 입이 한다는 투다. 입으로 말을 하면서도 발은 가야 할 곳을 가고, 손은 여전히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하긴 시골 일이라는 게 그렇다. 그날 그 시간에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그날 해야 할  일을 놓치면 일 년 농사 전체를 망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게 아니라 농사를 생업으로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안다. 알지만 실천은 어렵다.


# 석류나무 뽑아내고 고추모종 중인 김병일씨가족

두 번째 찾아갔을 때 그는 비닐하우스를 점검하고 있었다. 봄이 봄 같지 않은, 도무지 5월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햇살은 따갑고 습도는 높은 날이었다. 온 몸이 땀에 푹 젖어서는 그냥 정신이 하나도 없는 표정으로 손발을 바쁘게 움직이는 그의 몸은 작아도 그림자는 길었다.

토마토하우스 안에서는 대추토마토가 익어가고 있었다. 포도하우스에서는 머루포도가 이제 한참 새순을 뻗어내며 꽃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고, 수박하우스 안에서는 수박이 둥글게 커서 익어가는 것과 이제 막 열매를 맺는 것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거기에 또 하나 새로 심은 복분자 묘목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기도 했다. 이 많은 종류의 작물을 혼자서 어떻게 관리하는 것인지,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정신 사납다고 고개를 흔들기도 하겠지만, 농촌의 실정을 아는 사람은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어있다.

고육지책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경험에서 나온 일종의 탈출구? 속담에는 우물을 파도 하나만 파라고 했지만, 농촌의 현실에서는 한 가지 작물에 ‘올인’ 하는 건 위험하다. 흥하면 크게 흥하고 망하면 아주 망하는, 투기 성향이 농후한 방식의 농사로는 가족의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아이 참 이거, 내가 전화기를 어따 뒀는지 모르겠네.”


# 잠깐 집에 들른 사이에도 주문전화는 쇄도하고...

그야말로 정신없이 돌다가 잠시 자리에 앉은 김병일 씨의 입에서 혼잣말이 흘렀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급해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전화기가 그제야 문득, 갑자기 생각난 것이었다. 토마토하우스 안에서 한참 익어가는 대추토마토는 대부분 소비자와 직거래 방식으로 처분되고 있었다. 따라서 전화기는 필수의 차원을 넘어 생명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툭하면 전화기를 잃어버린다. 일에 몰두하고 있노라면 왼손과 오른손의 위치마저 헷갈릴 때가 있는 게 현실이고 보면 전화기 정도 잃어버리는 건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아이고 어찌까, 전화기가 꺼져 있다고 하네?”
남편의 잃어버린 전화기를 찾기 위해 전화를 걸었던 아내의 입에서 혀 차는 소리가 나온다. 설마 전화기를 꺼두었던 건 아닐 테고, 아마도 배터리 충전 시간조차 놓치고 있었던 것일 터이었다.
“아까 밥 먹고 그냥 나온 것일까?”

눈을 잇달아 깜빡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김병일 씨의 얼굴에 피로가 가득하다. 낮잠이라도 한숨 자두면 몸이 좋다고 하겠지만, 낮잠이 사치로 인식된 지도 벌써 오래다. 낮잠을 자면 그만큼 소득이 줄어든다는 계산 때문이 아니다. 그런 계산과는 차원이 다른, 내 손으로 관리하는 농작물을 가능한 한 완벽하게 길러내고 싶은 일종의 책임감 내지 의무감 때문이라고 보는 게 옳다. 그러다 보니 눈만 뜨면 해야 할 일이 생각나고, 해가 지면 오늘 손을 본 작물이 내일 어떻게 변해 있을까 하는 설렘으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런 생활이 벌써 이십여 년이었다.


# 개구쟁이 손자들과의 한때

농사꾼의 후손으로 태어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사를 피해 도시로 떠났듯이, 김병일 씨도 한때는 서울특별 시민이었던 적이 있었다. 특별한 도시 서울시민 중에 한 사람이었던 그가 다시 고향으로 내려온 까닭은 서울 생활이 팍팍해서도 아니고 답답해서도 아니었다. 먹고살기 힘들어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디, 어머니가 혼자서 농사를 짓게 되니 이게 참….”

그래, 그것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머니 혼자서 힘든 농사를 지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그것이 안타까워서, 눈 뜨고 볼 수가 없어서 일 년만, 아니 잠깐만, 하는 생각으로 내려와서 어머니와 함께 농사를 지었다. 농사철이 끝나면 다시 올라간다는 생각이었지만, 한철이 끝나고 나니 다음 농사철이 다가오고 있었다. 잠깐만, 아니 일 년만, 했던 기한은 일 년을 넘어 이 년이 되고, 삼 년이 되고 사 년이 되었다. 그 사이에 어머니는 병약해지시고, 농사는 이제 오롯이 김병일 씨의 몫이 되어갔다. 그렇게 그는 전업 농사꾼이 되어갔다.

전업 농사꾼이 되면서 김병일 씨의 생각은 깊어져 갔다. 겨울이면 농번기라고 해서 빈둥빈둥 놀기나 하는 재래식 농법으로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가 없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사람답게 살고자 한 것이 아니었는가? 문제의식을 갖고 찾다 보면 길은 보이기 마련이었다. 때마침 현대식 비닐하우스 농법을 정부에서 권장하고 있었다. 그는 재래식 농법을 그만두고 비닐하우스 농사에 뛰어들었다.


# 비닐하우스 안의 수박

겨울에도 기름을 때서 딸기나 오이, 토마토 같은 것을 생산해내는 이 농법은 그야말로 쉴 틈 없이 바쁜 농사였지만, 노력에 비해 성과는 보잘 것이 없었다. 기름값이 폭등하면서 자기 자신의 인건비조차 건지기 어려웠고, 빚더미에 올라앉은 채로 농사를 포기하는 사람이 주변에 속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할 수가 없었다.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고, 넘어지면 또 다시 일어나는, 일어나야만 하는 불굴의 정신을 필요로 하는 직업을 들자면 아마도 농사를 첫손에 꼽아야 할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정책담당자들은 농사짓는 사람을 가리켜 천하의 큰 기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둥 뭔가 대단히 크게 추앙하는 포즈를 취해 오기도 했지만, 포즈는 언제나 포즈로 끝났을 뿐 내실이 있어본 적은 거의 없었다. 

농사에 비결 같은 것은 없다. 그나마 비결이 있다면 오직 하나, 절망하지 않는 것이다. 실패하면 또 하고, 넘어지면 한숨 돌린 뒤에 얼른 일어나고, 가격이 폭락해서 망했다 싶으면 달력을 쳐다본다. 세월은 다른 어느 누구의 편도 아니고 내 편이라는 믿음, 그리하여 달력을 넘기고, 또 넘기고, 서너 번 그렇게 달력을 넘기다 보면 내일은 어느새 오늘이 되어 있다.
내일은 기다리는 날이다. 오늘은 사는 날이다. 산다는 것은 움직이는 것이고, 움직인다는 것은 산다는 것이다. 이 단순하면서도 오묘한 진리의 한복판에 농사꾼은 존재한다. 농사라는 게 그렇다. 절망할 시간이 없다. 절망은 사치라서가 아니라, 못하거나 안 하는 게 아니라, 도대체 그런 말이 왜 필요한지 아는 사람도 별로 없거니와 안다 해도 ‘그 무슨 넋빠진 소리냐’는 식으로 그냥 흘려버린다는 거다.


# 줄기를 뻗어가는 비닐하우스 안의 머루포도

아주 작은 성공 몇 개와, 그보다 훨씬 많은 실패로 이루어진 게 인생이라고 말한  스테판 에셀의 통찰을 농사꾼에 적용해보면 그렇게도 딱 맞아떨어질 수가 없다. 성공보다 실패가 훨씬 많은 인생이지만, 실패 때문에 좌절하거나 절망한다면 그는 아직 인생을 모르거나 내일이 없는 ‘진짜 바보’다. 왜냐하면 실패란 어떤 경우라도 그 자체로써 완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일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있어 실패는 좋은 친구거나 스승이지 주저앉음의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한 마디로 말해서 경험이 곧 기술이요 삶의 에너지가 된다는 것이다.

김병일 씨가 전업 농사꾼으로 살아온 지난 이십여 년을 훑어보고 있노라면 절로 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 잘산다. 잘 살아왔다. 앞으로도 잘살겠다. 그렇다면 잘산다는 건 대체 무엇일까. 남의 것 욕심내지 않고, 몸뚱이 하나 편하자고 잔머리 굴리지 않는, 소득이 있으면 당연히 세금을 내고,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이웃과 나눠먹으며 함께 웃는 것, 그런 것이 아닐까.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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