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한창세의 고대와 현대의 만남 ‘멕시코’ (2) ‘007’작전 같았던 입국과정

  ‘멕시코’ 하면 먼저 선인장이 떠오른다. 멕시코는 여러 면에서 일찍부터 나에게 운명적으로 다가왔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체육선생이 전교생에게 포크 댄스(Folk Dance)를 가르친다고 점심시간 전, 운동장에 집결시켜 멕시코 전통음악인 ‘베사메무쵸(besame mucho)’ 음악에 맞춰 남녀 쌍쌍이 춤을 췄던 기억이 난다. 이 음악은 ‘레이 카닙싱어즈(ray caniff singers)’가 편곡했는데 당시 세계적으로 대히트한 경음악이다. 어린나이에 들었지만 학교에서 매일 듣다보니 멕시코 특유의 애잔하면서도 멋진 멜로디가 와 닿았다. 중학교 때는 그림에 관심이 많아 당시 서양화가인 미술 선생님과 친하게 지냈는데, 그분이 갑자기 멕시코로 이민을 가버려 무척 아쉬웠다. 크면 멕시코로 찾아가서 미술선생님을 만나겠다고 결심했을 정도였다. 이렇듯 어린 시절부터 ‘멕시코’는 알게 모르게 직간접으로 내 곁에 늘 있어 왔다. 그리고 멕시코는 결혼이라는 결코 간단하지 않은 인연으로 내게 다가왔다. 결혼과 함께 멕시코로 건너가 생활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펼쳐보려 한다.[편집자 주]



# 시내 중심부에 있는 개혁의 거리라는 뜻의 레포르마 거리

영화 속 국경도시 같은 삼엄한 ‘티후아나’

LA에서 처남과 하루를 묵은 다음날 콜택시를 불렀다. 잠시 후에 택시가 왔는데 그는 왼쪽 손이 없어 의수를 한 중년의 한국인 남자였다. 좀 불안했다. 고속도로로 장장 3시간을 달려야하는데…. 반면에 미국에서는 의수여도 운전이 가능하면 허가해줄 만큼 장애인을 배려하는 사회라는 느낌이 들었다.

갈 길이 먼만큼 운전자와 가격흥정을 해야 했다. LA~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멕시코 서부 국경도시인 티후아나(Tijuana)까지 50달러에 가기로 한 후 바로 출발했다. 티후아나는 멕시코로 가는 서부지역 최대 국경도시다. 미국과 멕시코는 동서로 길게 국경이 맞닿아 있는데 그 길이만 무려 3,200km에 달한다. 동서로 길다보니 주요 국경지대가 네 곳이 있다.


# 시티내 인수르헨테 거리에 있는 천사탑인 앙헬탑 전경


서쪽으로는 내가 넘어갈 티후아나 시가 있고, 동쪽으로 마타모로스(Matamoros), 가운데에 엘파소(El Paso)와 누에보 라레도(Nuevo Larado) 시가 있다. 특히 멕시코와 미국은 마약밀수입과 불법이민자 문제로 국경 경계가 매우 삼엄하다. 샌디에이고에서 한 시간 정도 가면 멕시코 티후아나(Tijuana) 시가 나오는데 마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국경의 모습 그대로다.

경비원들은 군인 같은 모습에 라이플 장총을 손에 들고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삼엄한 눈초리로 수많은 차량검색과 신분증 조사로 분주했다. 이제 남은 건 멕시코 국경에서 입국비자를 어떻게 받아 내느냐하는 것이다.


# 3천년 역사의 멕시코인의 주식인 타코를 먹는 모습

3일 거리 멕시코시티 단 세시간만에 입국

오후 2시경 처남과 LA를 출발해 서부 태평양을 끼고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해안고속도로를 타고  푸른 태평양 바다를 바라보며 달렸다. 넓고 탁 트인 바다와 자연경관이 잠시나마 마음을 가라앉혀 주었다. 처남은 이미 남미생활을 15년 가까이 했기 때문에 문화와 언어소통 문제는 없다. 중남미 국가들은 대부분 스페인어를 쓴다. 국경에서 육로비자만 받아내면 모든 여정은 끝난다.

우리는 국경에서 입국비자 신청시 비행기를 타고 입국할 예정이다. 만일 고속버스로 간다면 멕시코시티까지 2~3일을 가야하는 먼 거리다. 티후아나 공항에서 멕시코시티까지는 항공편으로 3시간 걸린다. 긴박한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여기서 멕시코입국 비자가 거부되면 한국으로 다시 되돌아가야만 한다. 운명의 시간이 점점 다가왔다.

드디어 티후아나에 도착했다. 한국인 운전자는 돌아갔다. 처남과 나는 수백미터 떨어진 멕시코 국경초소로 걸어갔다.  진한 곤색 제복을 입은 멕시코인 경비원 한명이 초소 밖에 나와 있었다. 처남이 경비원에게 다가가서 나를 대신해 입국비자 신청을 했다. 그러면서 경비원에게 우리는 동창 친구인데 ‘친구(Amigo)’가 미국 여행을 왔다가 멕시코에 사는 친구를 보기위해 미국에서 만나 함께 입국하러 왔다고 말했다.



# 멕시코의 기마경찰대의 순찰하는 장면

처남과 이틀 만에 성사시킨 비자작전

경비원이 미국비자를 보여 달라고 해서 새로 받은 5년짜리 미국비자 여권을 건네주었다. 그가 꼼꼼히 비자를 훑어보는데 이상은 없다는 표정이었다. 중남미 국경에서는 미국비자의 위력이 크다. 왜냐면 미국비자는 일단 경제적 여건과 신분상의 문제가 일단 검증된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통과만 되면, 멕시코 입국비자를 받는데도 훨씬 도움이 된다.

잠시 무거운 긴장감이 흘렀다. 경비원은 아무런 말도 없었고 무엇보다 미국비자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면서 비자신청서를 가져오더니 볼펜으로 서류에 인쇄된 작은 비행기 그림에 갈매기 표시를 하면서 여행 가능일을 ‘낀세 디아스(Quience dias)’, 즉 15일 주는 것 아닌가! 하루라도 되는데 무려 보름을 주었으니, 운이 좋았다. 여행자에게 국경을 넘는 일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비자를 받아냈다. 그때 시간이 오후 6시 10분전이었다. 알아보니 티후아나 공항에서 멕시코시티로 가는 마지막 비행기가 6시였다. 공항까지 숨 가쁘게 뛰어가 항공티켓 두 장을 사서 간발의 차이로 탑승을 할 수 있었다. 자리에 앉자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앞으로 3시간을 더 가면 고대하던 멕시코시티다. 밤 10시쯤이면 아내를 만날 수 있다. 6개월을 떨어져 있었기에 설레는 마음도 컸다. 드디어 비행기가 이륙을 하고 멕시코시티로 향했다. 처남과 만나 이틀 만에 멕시코 입국 작전을 성사시킨 것이다.    



# 멕시코시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40층규모의 라틴타워

2천만 명이 사는 해발 2,200m의 고원도시

밤 9시경 멕시코시티 상공에 다다랐다. 엄청난 크기의 대도시 불빛 야경과 길게 이어진 도로망, 끝없이 이어진 가로등이 인상적이다. 마치 넓은 곳에 깨알 같은 보석을 뿌려 놓은 것처럼 드넓었다. 수도인 멕시코시티는 해발 2,200m 고원에 있으며 멕시코 전체 1억 인구 중 2000만 명이 사는 메가급 기획도시다.

비행기는 ‘베니토 후아레스’ 공항에 착륙했다. 수속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넘었다. 2층으로 된 집에 방이 4개, 거실이 넓은 전형적인 멕시코식 가옥이었다. 이곳에는 장인, 장모와 아내가 같이 살고 있었고 처남과 올케, 두 딸은 다른 집에 따로 살고 있었다. 거실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밤 12시가 되었다. 긴 여로에 지친 피곤한 몸이라 일단 잠을 청했다. 2층에 마련된 방, 멕시코에서 잠을 잔다는 게 왠지 낯설게 느껴지는 그런 밤이었다. 아침이 되자 밝고 깨끗한 그러면서도 온화한 햇빛이 커튼사이를 뚫고 들어와 눈을 뜨게 했다. 새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천국에 온 느낌이었다.

기후 탓인지 멕시코는 따뜻했다. 연중 늦가을 같은 날씨가 이어지는 이곳에도 사계절이 있지만,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따사로운 햇빛, 새소리, 안온함과 함께 멕시코에서의 삶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됐다.



# 멕시코시티 거리의 신문 가판대

피부색 제각각인 혼혈국가, 정열의 살사로 승화

하루하루 모든 것이 새롭고 호기심이 일었다. 먼저 멕시코의 역사와 언어를 알아야 했다. 스페인어 사전과 어학 책을 샀다. 기초 서반아어 알파벳 발음과 문법을 공부하며 언어는 현지인과 천천히 대화하며 익혀 나갔다. 서반아어를 전혀 모르는 나로서는 1년 정도는 언어를 공부하고, 익히고 체득하는 시간이었다. 1년 정도 지나니 어느 정도 말문이 열리면서 기본적인 일상생활을 하는데 지장이 없게 됐다.  

문화가 한국과 완연히 달랐고, 사람들의 생활방식도 달랐다. 기후 탓인지 국민성은 온화하고 낭만적인 요소도 있는데다 사람들의 표정은 늘 웃는 모습이다. 애국심도 강한 민족인데다 다양한 민족의 피가 섞인 혼혈국가이기도 하다. 원주민과 흑인사이에 태어난 사람을 ‘메스티조(Mestizo)’라 부른다. 형제마다 피부와 눈, 머리색이 다르다. 단일민족이라는 한국에 비하면 충격적이다.


# 세계에서 가장 큰 바실리카 대성당의 모습


400년간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멕시코는 언어와 문화, 관습, 종교가 스페인의 문화와 거의 흡사하다. 이 나라에서는 15세가 되면 성인으로 인정하는데, 주말이면 성인식 파티가 매주 펼쳐진다. 금요일 저녁 무렵이면 동네 큰 골목길을 아예 막아놓고 밤새도록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 축하해주며 살사 댄스와 음식, 술을 마시며 축하파티를 벌인다. 마치 디스코데크를 방불케 하는 분위기는 흥겨운 살사 음악에 스텝을 맞추며 토요일 새벽까지 이어진다.   


<한창세 님은 언론인입니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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