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한창세의 고대와 현대의 만남 ‘멕시코’ (3)

 ‘멕시코’ 하면 먼저 선인장이 떠오른다. 멕시코는 여러 면에서 일찍부터 나에게 운명적으로 다가왔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체육선생이 전교생에게 포크 댄스(Folk Dance)를 가르친다고 점심시간 전, 운동장에 집결시켜 멕시코 전통음악인 ‘베사메무쵸(besame mucho)’ 음악에 맞춰 남녀 쌍쌍이 춤을 췄던 기억이 난다. 이 음악은 ‘레이 카닙싱어즈(ray caniff singers)’가 편곡했는데 당시 세계적으로 대히트한 경음악이다. 어린나이에 들었지만 학교에서 매일 듣다보니 멕시코 특유의 애잔하면서도 멋진 멜로디가 와 닿았다. 중학교 때는 그림에 관심이 많아 당시 서양화가인 미술 선생님과 친하게 지냈는데, 그분이 갑자기 멕시코로 이민을 가버려 무척 아쉬웠다. 크면 멕시코로 찾아가서 미술선생님을 만나겠다고 결심했을 정도였다. 이렇듯 어린 시절부터 ‘멕시코’는 알게 모르게 직간접으로 내 곁에 늘 있어 왔다. 그리고 멕시코는 결혼이라는 결코 간단하지 않은 인연으로 내게 다가왔다. 결혼과 함께 멕시코로 건너가 생활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펼쳐본다.[편집자 주]



# 수천년 동안 이어져 온 멕시코의 음식문화는 매우 다양하고 고대 마야시대부터 내려온 음식도 많다.

3000달러에 산 5년 영주권 ‘FM-2’  

멕시코에 입국한지 1년 정도가 흘렀다. 나는 나염사업을 하기 위해 정식으로 미국을 거쳐 관광비자로 입국을 했지만, 비자기한인 15일이 지나기 전 멕시코 영주권인 ‘FM-2’로 바꿔 5년간 거주할 수 있도록 공무원에게 일명 ‘급행료’를 주고 영주권을 얻어냈다.

여기서는 모든 한국인이 이런 방식으로 살아간다. 다시 5년이 지나면 ‘FM-1’이라는 영주권으로 바뀌며 5년이 더 연장된다. 이렇게 10년이 지나면 정식 이민자 신청자격이 주어지는데 시험을 통과하면 정식 멕시코 시민권이 주어진다. 영주권 문제는 처남이 나서서 모든 작업을 처리해주었다.

세계 어느 나라나 뇌물을 싫어하는 공무원은 없는 것 같다. 처남이 잘 아는 이민국 공무원을 불러내 점심시간 전에 카페에서 나와 같이 만나서 영주권 문제를 논의하면서 당시 3000 달러를 건네주었다. 그런 다음 사진관에 가서 얼굴사진을 찍고 입국한 경로 등을 영주권에 기록을 하고 멕시코 정부의 국장 철인이 찍힌 FM-2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 멕시코시티 독립의 천사 탑이 현대식 빌딩과 함께 보인다.


# 멕시코국기와 수호천사인 산 앙헬 탑

  
‘국경 남쪽’ 불법외국인의 천국

이제부터 5년은 걱정 없이 살 수 있다. 단, FM-2 영주권은 5년 안에 다른 나라에 한번 나갔다가 다시 입국을 해야 한다. 미국에 들렀다가 오던 한국에 갔다 오던 반드시 외국에 나갔다 재입국을 해야 효력이 유지된다. 멕시코는 외국인에게 그다지 까다로운 나라는 아니지만, 최근 이민법이 강화됐다고 한다. 

과거 멕시코는 외국 범죄자들의 ‘도피 천국’으로 알려졌는데 멕시코 정부가 알면서도 묵인하는 건 이들이 거액의 달러를 가지고 오기 때문이었다, 영화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빠삐용’에 나온 스티브 맥퀸과 ‘러브스토리’의 알리 맥그로우가 출연한 ‘겟어웨이(Get Away)’도 미국에서 쫓기자 멕시코로 밀입국하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일단 멕시코 땅으로 들어서기만 하면 모든 게 끝이 난다. 

팝송 팬이라면 ‘국경의 남쪽(South Of The Border)’이란 노래를 알 것이다. 이 노래는 바로 멕시코를 그리는 팝 음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이 3000km가 넘기 때문에 밀입국문제로 양국의 국경지대는 언제나 군대처럼 경비가 삼엄하다. 멕시코의 하층민들은 야간에 철조망과 담벼락을 넘어 미국으로 밀입국하려 하고, 미국인 범죄자는 물론 고급 공무원 연금퇴직자들도 따뜻한 멕시코에 살고 싶어 한다.  



# 선인장이 많은 멕시코에는 사람키보다 더 큰 선인장들이 즐비하다.


# 멕시코시티의 중심부이며 대통령궁이 있는 소칼로(zocalo) 광장에는 대형국기가 연중 게양된다.

자동차 바퀴 교체해준 젊은이 지금도 ‘감동’
  
어찌 보면 나도 편법으로 눌러 사는 경우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에 나오는 그런 범죄자는 아니었다. 사실 어떤 나라던 돈이면 이민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1992년 당시 멕시코는 우리나라로 치면 1970년 후반에서 1980년대 초쯤의 개도국 수준으로 보였다.

오래된 도시건물과 우리보다 앞선 계획도시를 100년 전에 바둑판식으로 설계한 멕시코시티는 2000만명이 사는 거대한 도시다. 통신이나 전자, 자동차, 석유화학 분야에서 우리보다 후진국이지만, 한국의 70~80년대처럼 인심도 좋았고 사람들의 친절함에 점차 정이 들었다. 

이 나라는 수돗물에 석회분이 많이 섞여 있어 먹지 못한다. 생수를 사서 마신다. 생수장사가 2∼3일 간격으로 아침마다 동네를 돌며 “아구아(Agua)!”하며 외쳐댄다. ‘아구아‘는 서반어로 ’물‘이라는 뜻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물이 떨어졌는데 그날따라 물장사도 안오고 해서 물을 파는 상점으로 차를 끌고 나갔다.

한통에 5000뻬소(우리돈 약 1250원) 하는 생수 두통을 트렁크에 싣고 지븡로 돌아가는 도중 좌측 뒷바퀴가 펑크가 났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바퀴를 교체할 장비도 없는데 이른 아침 어디서 바퀴를 교체하나 싶었다. 그런데 그때, 저쪽 골목에서 차를 수리하던 한 젊은이가 내 상황을 읽었는지 다가오더니 바퀴를 교체해주겠다는 것 아닌가!

그러더니 장비를 가져와서는 바퀴를 뺀 후, 트렁크에 있던 예비타이어를 꺼내 완벽하게 교체를 해주었다. 얼마나 고맙던지. 그런 다음 가져온 장비를 챙기더니 그냥 가려는 게 아닌가. 수고했다며 약간의 돈을 주려하자 “노! 돈을 받으려고 한 게 아니다, 괜찮다!”며 그냥 사라져버렸다.    


# 멕시코시티 남쪽에 있는 운하인 소치밀코는 연인과 가족들로 붑빈다.


# 멕시코 택시의 90%는 폭스바겐 딱정벌레 모양의 공냉식 택시가 대부분이다

할리우드가 비하한 멕시칸들의 ’인심과 친절’
 
또 한 번은 길가에 노상주차를 하려고 후진 중이었다. 멕시코는 어디든지 도로가 넓어 노상주차가 가능하고 단속도 하지 않는다. 당시 운전이 미숙했던 내가 버벅대자 지나가던 중년 남자가 이를 보더니 차에서 내려 보라고 했다. 자기가 직접 주차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지나가던 다른 사람을 부르더니 차량 뒤를 봐달라는 부탁까지 했다.

그렇게 주차를 하더니 웃으며 “잘가라”는 말만하고 가던 길을 가는 것이었다. “허…참! 세상에, 고맙네. 한국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얍삽한 한국인보다 멕시칸이 더 정감이 가는 순간이었다. 이들의 국민성이 친절하고 매우 개방적임을 느낄 수 있는 사건들이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던 잔인한 멕시코인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할리우드 영화사들이 자꾸 비하를 해서 그렸기 때문에 멕시칸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인들은 교통문화에서 나아진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자기보다 차를 앞질러 가면 욕을 해대고, 끼어들기라도 할라치면 경적을 울려대기 일쑤다.

멕시코의 경우 도심지 안에서 절대로 경적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곳에 사는 몇년간 경적소리를 들어 본적이 없다. 이들은 손을 창밖으로 내밀기만 하면 언제든 양보한다. 교통문화나 운전매너가 우리보다 훨씬 선진화되어 있다. 땅이 넓어 자동차가 필수이다 보니 어려서부터 차량문화에 익숙한 것도 한 몫을 하는 듯하다. 중학생도 운전면허를 딸 수 있는 나라다.  

# 인구 2천만명이 사는 거대한 기획도시인 멕시코시티는 자동차가 넘쳐난다.

멕시코는 자동차보험체계가 잘 되어 있다. 만일 도로에서 차량사고가 나서 양쪽 차가 파손됐다면, 즉시 보험회사 직원이 출동해 견적을 내는데 몇년도식 범퍼가격이 얼마이며, 몇년도식 엔진가격 등 목록들이 전체적으로 모두 기록돼있어서 현장에서 간단하게 보험처리가 이뤄진다.

참, 합리적으로 보인다. 운전하다 보면 사고가 날 수 있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의식도 그렇지만, 사고 냈다고 우리처럼 보험료 할증이 되는 것도 없다. 현장중심의 합리적인 보험정책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멕시코는 자동차 보험료도 1년에 딱 한번 나온다. 약 10만원 정도다. 분기별로 쪼개 보험료만 뜯어가는 우리나라와는 딴판이다.

자동차정비업도 잘 발달되어 있어서 차를 타고 들어가며 차량의 상태를 말하면 정비공들이 즉시 달려와 점검과 수리를 하는데 차에 앉은 채로 곧바로 정비 받을 수 있는 곳도 있다. 요즘으로 치면 차안에 앉아 밖에서 상영되는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석유와 천연가스가 생산되는 멕시코는 가솔린 값이 싸다. 당시 한번 주유하는데 약 5만 뻬소(1만2500원)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창세 님은 언론인입니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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