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류승연의 ‘아주머니’ 3화(아직은 주인공이 아니지만 머지않아 니가 세상의 주인공이 될 얘기)



아…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금단의 열매를 먹은 이브처럼 다시는 천국으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내 세계는 한층 더 복잡해졌고 나의 고뇌는 무수히 배가되었다. 외면했어야 했다. 눈과 귀를 막았어야 했다. 알려하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난 저질러버렸고 이제 돌이킬 수는 없다. 나의 평화는 끝났다.

무슨 거창한 말이 나오려고 이렇게 폼을 잡았느냐 할지도 모르겠다. ‘남편 몰래 도박에 빠지기라도 한 걸까?’라고 생각하셨던 분들에겐 미안하지만, 지금부터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길냥이(길고양이)에 관해서다. 흔히 도둑고양이라 불리기도 하는 작은 악마들. 그 악마들에게 영혼을 뺏겨버린 나의 이야기다.

5살 남매 쌍둥이가 있는 우리 가족은 매일 밤 산책을 한다. 발달장애인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기도 하고, 뽀로로 삼매경에 빠진 아이들이 텔레비전 앞을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동네 한 바퀴를 돈 다음 집 앞 골목에서 20~30분간 놀다 들어가는 게 매일의 일과. 지난 9일도 그랬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 동네순방을 마친 아이들은 집 앞 가로등 밑에서 그림자놀이에 한창이었다. 

그 때 우리 집 맞은편 빌라 주차장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애가 나타났다. 주차장 옆의 화단 주위를 어슬렁거리더니 어느 순간 팔에 고양이 한 마리를 안고 있었다.

동물을 좋아하는 우리 딸. 순간 극성엄마로 변신한 나는 “여기 애기들한테 고양이 좀 보여주면 안돼?”라며 남학생을 불러 세웠다. 약간의 주저도 없이 “안돼요”라고 거절한 그는 “길고양이라 사람들을 싫어해요. 저만 좋아해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동물에 별 관심이 없는 나지만 고양이의 행동이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몸부림치며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쓰더니 나와서는 그 남학생을 향해 꼬리를 있는 대로 치켜세웠다. 그리고 우리가 있는 주차장으로 날다시피 도망오더니 차 밑으로 쏙 들어가 “야옹~ 야옹~”하며 울기 시작했다.



1분, 2분, 5분…. 시간이 흘러도 그치지 않는 고양이의 울음. 남학생은 차 주위를 어슬렁어슬렁. 보다 못한 내가 “학생이 돌봐주는 고양이면 먹을 것 좀 주지 그래. 울음을 안 그치는 게 배고파서 그런 것 같은데”라고 쏘아붙이자 그는 “먹을 게 집에 있어서 데려가서 먹이고 다시 데려다주려 하는데 안 나와요”라고 말했다.

고양이 잡으려고 어슬렁거릴 시간에 열 번은 집에 가서 먹을 것을 가져왔겠다. 남편과 내가 싸늘한 시선을 보내자 그는 곧 자리를 떴다.

그러자 차 밑에서 나와 우리를 쳐다보며 야옹거리는 고양이. 완전 꼬물거리는 새끼는 아니지만 청소년쯤 되어 보이는 어린 고양이었다. 사람을 피하지도 않고 오히려 가까이 다가와 울어대는 걸 보니 사람 손에 크다가 버려져 후천적으로 길고양이가 된 경우 같았다.

평소 내가 길고양이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 아무 생각 없음. 길가의 전봇대같이 그냥 하나의 풍경일 뿐. 동물, 생명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음. 오히려 혐오의 존재. 밤중에 들리는 애기 울음소리는 끔찍할 정도.

그런데 이 고양이는 달랐다. ‘응애응애’하며 우는 게 아니라 ‘야옹야옹’. 그것도 측은지심이 밀려올 정도로 작고 애처롭게 끊임없이.

한참동안 그 울음소리를 무시하다가 한계가 왔다. 가여워서 도저히 못 참겠다. 얼른 집으로 뛰어올라가 고양이가 먹을 만한 것, 멸치를 몇 마리 꺼내들고 왔다. “야옹아~ 츳츳츳츳~”하며 멸치를 주니 허겁지겁 잘도 받아먹는다.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올라와 창밖을 내려다보니 고양이가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먹이를 구걸하고 있었다. 야옹야옹~. 사람들이 한 번씩은 멈춰 서서 쳐다보고 일부는 가까이 다가가 쓰다듬었다. 사람 손길이 닿자 발라당 누워 애교를 떤다.

그래도 멸치 한 번 준 사이라고 자꾸만 신경 쓰이는 마음. 저렇게 사람 무서운 줄 모르다 나쁜 사람들에게 무슨 일 당하면 어쩌려고. 자기 전에 멸치 몇 마리를 더 가져다줬다.

이제는 산책 나갈 때마다 들려오는 야옹이 소리. 아예 차 밑을 자기 영역으로 삼고 사람들에게 먹이를, 사랑을 구걸하고 있었다.

사람이 자꾸 먹이를 주면 오히려 고양이에게 안 좋다는 남편. 괜한 부부싸움 하기 싫어 알겠다고 대답한 뒤 남편이 잠든 한밤중에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다. 남편 몰래 사두었던 고양이 캔 사료를 손에 들고.



여전히 울고 있던 고양이는 내가 나오는 게 보이자 벌떡 일어나 몇 걸음 걸어 나왔다. 모두가 잠든 고요한 밤 골목. 나와 고양이만이 서로를 마주했다. 참치와 닭가슴살이 혼합된 캔 사료. 뚜껑을 열고 내려놓자 정적이 깔린 골목 안에 생전 처음 듣는 소리가 진동했다. “옹아옹아옹아옹아~”. 유리그릇 위에 구슬이 또르르르 굴러가는 듯한 소리. 맛있는 것을 먹고 기분이 좋아진 고양이가 내는 ‘골골송’이었다.

생전 처음 들어본 신비한 소리에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순간이었나 보다. 고양이에게 영혼을 빼앗긴 게. 고양이는 야옹거리거나 응애응애 우는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놀랍고 신비로운 소리를 내는 존재였다니. 나지막하게 울리는 골골송은 그로부터 한동안 계속되었다.

내 걱정은 그 때부터 시작됐다. 날이 저물기 시작하면 틈날 때마다 거실 창문에 매달려 고양이를 지켜봤다. 볼 때마다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 저러다 큰일이라도 날까 전전긍긍했다.

더 심각한 문제도 발생했다. 맞은편 빌라 거주자들이 고양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자기네 주차장에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앉아 새벽까지 울어대는데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 둘 던져준 음식물(고구마, 족발, 소세지, 빵 등)들로 자리가 지저분해지고 있었다.

급기야 몇몇 사람이 나와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고 고함을 치며 차 밑에 피신한 고양이를 내쫓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얼마 후에 돌아와선 또 다시 야옹야옹.

보다 못한 나는 유기동물 인터넷 카페 등에 고양이의 사연을 올리고 키워줄 사람을 찾았다.

한 여성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자신도 현재 20마리의 길고양이를 데려다 키우기 때문에 더 데려갈 수는 없지만 포획해서 중성화수술을 시킨 후 다시 방사해 주겠다고 했다.

중성화수술을 해야 개체수가 늘지 않고, 고양이가 걸릴 수 있는 몇몇 큰 질병으로부터 안전해질 수 있다고 했다. 또 수술 후에는 귀커팅을 해서 표식을 남기는데 그러면 강제 포획당해 시보호소로 넘어간 뒤 안락사 당할 위험이 없어진다고 했다.

수술을 위해 자리를 비웠던 고양이는 며칠 후 다시 컴백홈. 고양이를 수술시켜준 여성은 나에게 ‘캣맘’이 되어 달라 했다. 특별히 할 일은 없었다. 그저 사료를 사서 매일 화단 구석에 놓아달라고 했다. 

‘캣맘’이 돌봐주는 고양이는 일단 굶어죽지 않아 안심인데다 음식물쓰레기 봉투를 뒤지지 않아 일대가 깨끗해진다고 했다. 중성화수술을 해서 발정이 안 오고, 발정이 안 오니 애기 울음소리도 안내고, 개체수가 늘지도 않으니 1석 3조라고 했다. 그렇게 그 고양이만의 특별한 ‘캣맘’으로 며칠을 보내고 추석.

친정에서 3일간 머물고 집에 돌아온 날. 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들려야 할 고양이의 야옹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밤새 지켜봤지만 역시나. 고양이가 사라진 것이다. 남편도 모른다고 했다.



마음씨 좋은 누군가가 데려갔으면 다행이지만 불행하게도 그 고양이는 우중충한 색깔의 못난이였다. 집에 들여놓을 생각을 할 사람이 있을 리 없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세 가지. 사람을 쫓아서 골목 중앙에까지 나왔다가 로드킬 당했거나, 나쁜 사람에게 나쁜 목적으로 잡혀갔거나, 맞은편 빌라의 누군가가 쥐약이라도 놓았거나. 어느 쪽이든 가슴 아픈 일이다.

그 때부터 나는 매일 밤 남편이 잠들고 난 새벽이면 집밖으로 나갔다. 고양이 먹이를 들고. “야옹아~” 부르며 그 고양이를 찾다가 대답이 없으면 눈에 띄는 다른 고양이에게 먹이를 줬다. 대한민국 골목은 길고양이 천지. 어디를 가나 길고양이는 존재했다.

나는 사람들이 길고양이에게 조금만 더 관대해지기를 바란다. 아니, 관대할 것까지도 없다. 돌봐주지 않으려면 예전의 나처럼 차라리 무시를 했으면 좋겠다. 골목 안의 풍경처럼.

그리고 고양이 밥 주는 ‘캣맘’을 비난하고 욕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들은 당신 집 근처의 고양이 개체수가 늘지 않게 잡아다 중성화수술을 시키고, 당신이 내다버린 음식물 쓰레기봉투가 터지지 않게 고양이 배를 불린다. 본인 사비를 들여서.

나를 ‘길냥이의 세계’로 이끈 고양이는 이제 다시 볼 수 없다. 하지만 그 날 밤, 정적이 흐르는 골목에서 순간적으로 들려온 옥구슬 소리는 나를 고양이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만들었다. 이제는 길에서 지나다니는 모든 고양이가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그러면서 나의 고민도 커졌다. 발달장애 아들과 말괄량이 딸을 혼자서 키우는 것도 잘 해내지 못하고 있는데 길고양이한테까지 신경을 쓰다니….

어차피 처음 밥 챙겨주던 고양이가 사라졌으니 이대로 마음을 접자고 다짐을 한다. 내 새끼 먼저 키워놓고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그 때 가서 길고양이든 유기묘든 돌봐주자고.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인터넷에 올라오는 길고양이 학대 및 살해의 사진과 동영상들. 모른 척하자니 마음이 답답하고 적극적으로 길냥이들의 엄마가 되어주자니 내 가족에게 죄책감이 든다. 이제 어쩌지? 그 때 그 밤에 그 소리를 듣는 게 아니었는데…. 안 그래도 복잡한 인생. 고민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류승연 님은 정치부 기자 출신입니다. 현재는 두 아이를 키우며 전업주부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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