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마술처럼, 그녀가 내게로 왔다(6)



# 앞을 보니 그림자가 제법이어서 한컷~

그녀의 내부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다. 그 뭔가가 무엇인지 나는 모르지만, 생명을 펄펄 끓어 넘치게 하는 가마솥 같은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있다. 끓어 넘치는 생명이라니 이게 무슨 형용모순인가 싶기는 하지만 어쩔 것인가. 그런 어떤 과학의 문법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한 개도 아니고 최소한 다서 여섯 개는 그녀의 내부에 있어서 잠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교대로 작동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최근에 알았다. 내가 잘났거나 영민해서 그것을 스스로 터득한 것은 아니다. 나를 보는 사람들의 눈길과, 그들이 가끔 한마디씩 던지는 말을 통해서, 그 말이 쌓이는 과정을 통해서 그냥 저절로 알아졌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아따 좋아 보이네, 잉?”
“아니 형님, 난 또 누구신가 했소 야? 몰라보겠네 참말로.”

그녀가 내 옆에 있을 때 사람들은 나를 본다. 아니다. 내가 그녀의 옆에 있을 때 사람들이 나를 본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렇다. 그녀가 내 곁으로 온 이후 나는 어느새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내가 혼자서 거리를 어슬렁거릴 때는 아무도 나를 쳐다봐주지 않았다. 혼자서 시장을 본다던가, 혼자서 거리를 걷고 있을 때, 그럴 때 사람들은 가까이서 나를 보고서도 얼른 외면하고 샛길로 빠져나가 버리곤 했었다. 그랬던 사람들이 지금은 멀리서도 나를 본다. 볼 뿐만 아니라 실실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주기까지 한다. 그 웃는 얼굴이, 흔들어주는 손짓이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것 같다.

“네가 외로울 때는 보는 내가 참 많이도 괴로웠거든. 그래서 너를 보면서도 볼 수가 없었던 거야. 이제 알겠지?”

아, 그런 것이 있었구나. 그런 심각한 연민의 정서가 내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던 거야. 그렇게 해서 나는 깨달았다. 외롭다는 것은 외로운 당사자 본인의 고통이 아니라 옆에서 보는 사람들을 괴롭게 한다는 사실을 문득, 벼락처럼 깨닫게 되었다. 말이야 바로 말해서 외로움 때문에 내 자신이 무슨 고통을 겪은 적은 없었다. 눈물을 흘려본 경험은 있었다. 이를테면 김장철에, 독거노인들에게 김장김치 한 상자씩을 선물로 디밀어주는 부녀봉사회에서 김장김치 한 상자를 가져왔을 때, 그 김치를 방안에 들여놓고 앉아서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기를 얼마나 했었는지, 눈앞이 침침해진다 싶더니만 불현듯 눈물 두 줄기가 주룩 흘러내리던 거였다.


# 하늘에는 어인 하트가 그려져 있고...


# 고추전에 막걸리를 공짜로

그 눈물의 정체를 굳이 분석해볼 필요를 그때는 못 느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아하 내가 지금 불우한 이웃인 상태에 와있는 것이로구나’ 하는 뭐 그런 심사가 불러낸 눈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불쌍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들 사이로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그런 무슨 철학 같은 것이 부지불식간에 만들어져 있었던 것인가 보다.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나는 가능한 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는 피해 다녔었다. 특히 지역 단위의 축제현장에는 거의 가본 적이 없었다.

지역 단위의 축제라는 것은 대체로 가족이나 연인들이 와서 즐기는 소풍의 성격이 짙었다. ‘홀로아리랑’ 같은 콧노래나 열심히 흥얼거려야 할 나 같은 사람이 끼어들 자리는 이미 없었다라고, 이렇게 단정해서 말하는 것은 이웃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지만 어쨌든 나로서는 그랬다. 그런 축제 현장에는 내가 얼굴을 디밀어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심지어는 바로 집 앞에서 벌어지는 고추축제마저도 귀를 막고 눈도 감아 버렸다. 옆집 할머니가 함께 가자고 해도 완강히 거절을 했고, 마을 이장님이 음식이랑 술이랑 다 준비됐으니 몸만 나오라 할 때는 대답만 열심히 예, 예, 하고 말았고, 축제 당일에는 아예 아침 일찍 집을 나가버리는 방식으로 나 스스로를 소외시켜 왔다.

그랬던 내가 금년에는 자발적으로 축제현장을 어슬렁거리게 되었다. 물론 그녀가 옆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느 하루 문득, 느닷없이 변해 있는 날씨의 영향도 없지 않았다. 우리는 사실 금년부터 선선한 가을이 없어지는 줄 알았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진땀이 삐질삐질 흘러내리는 여름만 계속되다가 어느 하루 벼락처럼 서리가 내리고, 얼음이 얼고, 함박눈이 펄펄 날리는 겨울이 반년쯤 이어지다가 다시 찜통 같은 여름이 반년쯤 계속되는, 그런 식으로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기후가 대폭 변해 버리는 줄 알고 은근히 겁도 났었다. 

그런데 이게 뭐냐. 어느 하루 하늘이 훌쩍 높아졌는가 싶더니 가을을 알리는 팡파르가 울려 퍼졌다. 하늘에는 거대한 풍선 애드벌룬이 떴고, 거리에는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마구 걸렸다. 바다에 인접한 고장 우리고장 해리면 최대의 축제 ‘해풍고추축제’, 바닷바람에 고추를 말리면 뭐가 어떻게 좋은지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다 해도, 소금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인간에게 바닷바람은 어쩐지 뭔가 매우 상서롭다는 느낌이 있는 것이어서, 우리 고장의 ‘해풍고추축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외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걸로 알려져 있었다.


# 해풍고추 직거래장터


# 귀농인들도 부스 한 자리를 열었다.

“우리도 한 번 가볼까?”
“어디?”
“저기, 고추축제, 난 아직 한 번도 안 가봤지만, 올해는 가보고 싶어지는 걸?”
“응, 그래요, 좋아요, 좋아, 모자도 쓰고 가야겠지?”

밀짚모자처럼 생겼지만 밀짚모자는 아닌, 화학섬유가 아니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 그 소재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모자 두 개가 있었다. 두 달 전 그녀가 서울에 갔을 때 인사동 거리를 친구들과 어슬렁거리다가 얻어온 것이었다. 자기들끼리 멋대로 삼총사니 뭐니 하고 이름까지 붙여놓고 있는, 삼십대 후반의 노처녀라고 하면 욕을 바가지로 먹을 것 같아서 언어순화를 조금 하자면 비혼녀, 싱글녀, 자유인 등등 어떤 이름을 붙인다 해도 쓸쓸한 방랑자 혹은 개척자의 이미지 하나만은 불변인 여자 셋이서 그동안 서울 거리를 마음껏 잘도 활보하고 다녔더란다.

세 사람 모두 이십대의 선택을 철회하거나 혹은 후회하며 삼십대 나이에 새롭게 수능을 보고 면접까지 치러서 입학을 한, 이런저런 온갖 잡일을 해가며 문예창작과를 다닌 말하자면 ‘고생스런 늙은 학생’들이었으니 아무래도 그 결속력이나 동지애가 탄탄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명이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늙은 사내꼭지를 좇아 촌구석으로 내려가 버렸다. 이게 뭐냐. 사내인 내가 그녀들의 마음을 올곧이 헤아릴 수는 없다 해도, 분명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축하의 의미는 아닐 테고, 어쨌든 기념할 일인 것만은 분명해서 기념으로 각자 하나씩의 모자를 사서 배신자(?)의 품에 안겨주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모자 두 개를 들고 내려온 그녀, 모자 둘 중에 하나를 내 머리에 댈룽 얹어놓고는 “아유 좋네, 괜찮네, 딱이네” 어쩌고 손뼉까지 쳐가며 좋아하는 것이어서, 그날 이후 모자 둘 중에 하나는 내 것인 줄 알고 아무 때나 쓰게 되었다. 이것저것 디테일하게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자 둘이 다 여성용이라서 남자가 쓰면 웃긴다는 등 팔푼이 같다는 등, 어쩌고저쩌고 시비를 걸기도 하지만, 그녀를 만난 즉시 팔푼이가 되기로 작심까지 해버린 나로서야 뭐 그들의 그런 시비가 그저 못난 시기심으로만 들릴 뿐이어서, 너도 한 번 써 보렴, 하는 소리나 입안에서 만들어질 뿐 그것이 여성용이라서 안 써야겠다는 쪽으로는 도무지 생각이 닿지를 않는걸 뭐 어쩔 것인가 말이다.

“아따야 참말로, 뭐여, 모자도 항꼬 쓰고 잉?”

나란히 걷고 있는 우리를 본 엄지식당 주인아줌마께서 한 말씀 하시는데 그 표정이 꼭 ‘살다살다 별 꼴을 다 본다’는 것 같기도 하고, ‘재미있어 죽겠다’는 것 같기도 해서 헷갈리기는 하지만 어쨌든 꼴보기 싫다, 당장 걷어치워라, 하는 뭐 그런 뜻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하긴 이 양반은 언제나 그렇다. 내장탕을 아주 맛깔스럽게 끓여내기로 유명한 이 양반은 우리만 보면 실실 웃다가 한 말씀 꺼내놓곤 하신다. 며칠 전 내장탕에 소주 한잔 하러 갔을 때는 “아이그 여자가 너무 손해여, 손해랑게” 해서 내가 그만 양심의 가책에 주눅까지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한순간뿐이었다. 나는 어느새 킬킬 웃어대고 있었고, 나의 그녀는 웃는 내가 좋다고 저도 웃어대고 있었고, 엄지식당 주인아줌마는 둘이 함께 웃는 우리의 모습이 좋다고 당신도 역시 킬킬 웃어대던 것이었다.


# 추억의 용마름 엮기 시범에 나선 할아버지


# 축제의 백미는 역시 노래자랑

축제마당에서는 노래자랑이 한창이었다. 아주 작은 청소기부터 거대한 냉장고에 이르기까지 상품도 푸짐하게 쌓여 있었다. 각종 단체와 개인이 참여하는 직거래 장터가 열려 있었지만 거래 장면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여기저기 외지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고추 쇼핑 관광을 오기도 했지만 금년에는 사정이 달라졌단다. 왜? 작년의 높은 고추가격을 염두에 둔 수입상들이 중국산 고추를 대량으로 수입해버린 데다가 전국적으로 고르게 풍년이 들어버린 탓이란다. 어쨌든 가격을 물어보았다. 중품도 아니고, 하품도 아닌 최상급 고추 한 근 그러니까 육백 그램에 육천이란다.

“육천원? 아니 왜 이렇게 싸요?”
“아따 집이는 어디 무슨 사우디서 왔는갑소 야?”

그렇게 힐난하는 투로 답하는 주인의 입에서 쓸쓸한 웃음이 터진다. 그것 참, 작년에는 팔천 원으로 시작해서 일만 오천 원까지 뛰었다는 것을 내가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육천 원이라면, 반값도 아니고 거의 반에 반값이라는 얘기 아닌가. 아이고 갈팡질팡 도무지 그 미래를 알 수 없는 이놈의 농사, 소리가 절로 나올 만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웃어야 한다. 한숨이나 쉬어서는 아무 이익도 없고 오직 손해만 있을 뿐이라는 것을 농민들은 이미 알고 있다. 게다가 오늘은 축제일이다. 돈이 나를 살아주는 것이 아니고, 나 또한 돈을 위해서 살아있는 게 아니고 보면, 얼마든지 웃을 수 있는 입으로 한숨이나 쉬고 있을 필요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고추가, 야아 그것 참. 이놈의 농사라는 것이….”

농촌의 실상을 한눈에 봐버린 기분이었다고나 하면 말이 좀 되는지 모르겠다. 내 입에서 자꾸 그런 혼잣말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나란히 걷고 있던 그녀가 자신의 팔을 내 팔 사이로 끼어서는 뿌듯하게 끌어당긴다. 슬퍼하지 말고 우울해 하지도 말자고, 오늘 하루만이라도, 아니 잠시만이라도 슬픔과 우울을 털어버리고 그냥 웃자고 하는 것 같다. 그래, 그래야겠지. 선운산의 명물 거북바위가 내려다보고 있고, 높아진 하늘에서 구름은 또 뜬금없는 하트까지 만들어주고 있는 오늘 같은 날 어쩔 것이냐, 웃어야지, 응? 웃어야지 어쩔 것이냔 말이다.


# 축제현장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거북바위

우리는 그렇게, 떨어지면 큰일이라는 듯이 팔짱을 끼고, 주위 사방을 둘러보면 팔짱을 낀 남녀는 하나도 없건만 뻔뻔스럽게도 팔짱을 마치 태어나면서부터 그렇게 생겼던 것처럼 끼었다기보다는 아예 붙여놓은 듯이, 아니 어쩌면 쾅쾅 못질이라도 해놓은 듯이 떨어질 줄을 모르고 나란히 천천히 걷다가 멈췄다가, 이것도 들여다보고 저것도 기웃해보고, 그러다가 고추전에 막걸리를 공짜로 먹을 수 있게 해놓은 부스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알싸하게 매콤한 청양고추를 세로로 길게 썰어서 전을 붙였는데 그 맛이 아 참, 죽여준다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막걸리는 또 어떤가. 생전 처음 보는 남자가 막걸리 병을 들고 그녀에게도 한 잔, 내게도 한 잔, 마구 따라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 사람이 축제를 주관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우리와 똑같이 그저 구경을 나온 사람이었다. 어쩔 것인가. 이쯤 되면 이웃사촌이 아닌가 말이다. 요컨대 “제 잔도 한 잔 받으시지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되어 있는 상황인 것이었다.

막걸리에 고추전을 먹는 시간 동안 풀어져 있었던 우리의 팔짱은 그 자리를 물러남과 동시에 도로 끼어져 있었다. 마치 우리도 모르는 누군가 우리의 팔과 팔을 그렇게 묶어놓은 것 같았다. 땅에 그려져 있는 그녀와 나의 그림자를 보니 그렇게도 오묘할 수가 없다. 그렇게도 그녀의 팔짱은 귀신같은 재빠름으로 구성돼 있는 것이어서, 나는 그것을 느낀다는 의식조차도 없이 그녀의 팔을 통해서 전해지는 그녀의 펄펄 뛰는 생명을 느끼며 그것을 에너지로 발걸음이 씩씩해지는 것인가? 아마도 그렇게 봐야 할 것이었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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