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 기획 : ‘귀농 열풍’ 그 현장을 찾아서-17> 충남 홍성 강경안 씨




귀농바람이 한창이다. 귀농 붐은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비롯됐다. 1970~1980년대 산업화의 역군으로 ‘차출’돼 탈농을 이끌었던 이들 세대 중 많은 사람들이 농촌으로 회귀해 ‘인생 2모작’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도시생활에 회의를 느낀 30~40대까지 귀농에 가세, 농촌에서 제 2의 인생을 꿈꾸는 귀농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귀농인들은 주로 소일거리를 통한 활력 회복, 전원생활에 따른 신체적·정신적 건강 추구 등을 이유로 농촌행을 결심하고 있다. 물론 생계수단으로 귀농을 택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성공하는 건 아니다. <위클리서울>은 도시에 살다 농촌으로 들어간 이들이 귀농을 결심하게 된 계기, 이후의 생활 등을 들어봄으로써 귀농과 귀촌의 현실을 짚어보고 있다. 이번호에는 7년 전 귀농한 충남 홍성 강경안 씨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본다.





맞춤형 ‘꾸러미’로 활력

강경안 씨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2006년 홍성으로 향했다. 그전에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교육을 받기도 했다. 서울에 있을 때 각종 단체와 학원 등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강 씨는 문득 도시에서의 삶 자체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도시의 삶은 소비적인데다 생존경쟁 역시 치열하잖아요. 거대한 자본의 논리로 돌아가는 거죠. 그런 구조 속 일종의 부속품에 불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제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과연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기에 이르렀죠. 결국 도시가 아닌 농촌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때마침 전국귀농운동본부라는 단체에서 귀농교육을 받게 되었죠.”

강 씨는 서울태생으로 농사는 생면부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농사꾼 소릴 들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그는 직접 가꾼 농작물을 ‘꾸러미’라는 형식으로 판매한다.

“소량 다품종이라고 할 수 있죠. 홍성에도 귀농인들이 많아요. 그러니 도움 받을 수 있는 길이 있었죠. 첫해부터 농사가 잘 된 건 아니지만, 여러 선배 귀농인들의 도움으로 정착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우리가 재배해서 먹고 남는 농산물을 종류별로 정리해서 상품을 만들어요. 하지만 도시에서의 4분의 1 수입도 안돼요. 큰 벌이는 아니지만 농촌에서는 먹고 사는 데는 지장 없어요.”

게다가 일정한 패턴으로 수익을 낼 수 있어 일하는 맛도 난다.

“일반 농업과 다르게 매달 수익이 들어와요. 입소문 타고 연락해오는 사람들도 늘고 있죠. 하나하나 일일이 신경 써서 포장을 하고 배달을 해주니까 선순환이 가능한 겁니다.”





꾸러미 사업은 기의 유통구조와는 다른 농민들의 철학이 들어가 있는 사업이라고도 불린다. 밭에 거름을 어떻게 줄 것인지, 씨앗은 하이브리드 종자를 쓸 건지 토종을 쓸 건지, 이런 여러 고민들을 통해 꾸러미 하나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소비자들과 네트워크로 연대해서 사업을 진행해요. 사업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죠. 그래서 상품에 대한 불만은 거의 없어요.”

전국적으로 보면 충남 홍성은 귀농을 선호하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그만큼 선배 귀농인들이 많고 다른 지역보다 정착하기가 수월하다.

“이곳은 정착하기가 편한 편입니다. 하지만 텃세가 많은 곳도 있지요. 정서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입니다. 도시에서의 삶, 대인관계를 농촌에서도 똑같이 적용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도시 삶으로는 실패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어요. 집이 서로 100미터 떨어졌는데도 바로 옆집 사는 거처럼 여겨집니다. 그런 부분에 잘 적응 못하고 이기적으로 생활하면 적응하기 힘들죠. 게다가 텃세는 어떡하려고요. 홍성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좀 편한데, 주변에 귀농인이 없는 곳은 어느 정도 텃세는 각오해야 할 겁니다. 실은 텃세라는 말 자체부터 잘못된 거죠. 내려오는 사람들이 마음을 비우고 맞춰야 하는 게 현실인데….”

최근 언론에 자주 나오는 귀농인들의 성공담에 대해선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언론에서 다소 과장해서 환상을 심어주는 게 있어요. 왜곡된 정보가 많아요. 억대 농부들을 자꾸 내세워 누구는 뭘 해서 몇 억을 벌었다고 떠들어대죠. 그건 자본의 논리로만 귀농에 접근하는 겁니다. 엄밀히 말하면 귀농해서 농사지으면서 산다는 건 도시자본주의 사회에서 많은 걸 포기하고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실제 생활은 어렵죠.”

물론 그중에는 돈을 목적으로 귀농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은 결국 결국 실패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순하게 돈만 목적으로 귀농하면 실패하게 마련입니다. 도시에서 적응을 못해 시골 가서 농사짓는다? 생각 자체를 완전히 바꿔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선 힘들어요.”


벌기보다 쓰는 것 아껴야

귀농을 결심한 이후 아내와 아이들은 군말 없이 강 씨를 따랐다. 게다가 아내는 강 씨가 귀농 결심을 하기 이전부터 시골에서 사는 꿈을 꾸고 있었다.

“대부분 남자들은 하고 싶어 하고, 여자들은 아무래도 농촌이 도시보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귀농을 꺼려하잖아요. 그런데 우리 부부는 생각이 일치했어요.”

특히 어린 자녀들이 농촌에서 마음껏 뛰놀며 무럭무럭 커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뿌듯한 기분이다.

“큰 애가 6살, 작은애가 2살 때 귀농했어요.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던 상황이어서 군말이 없었어요. 적응도 빨랐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죠 저는 도시의 경쟁교육, 줄 세우기 교육이 싫었어요. 시골에서 인성을 키워주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으면 해요. 요즘은 전부 다 대학가기 위한 암기위주 교육을 하고 있잖아요. 개별성, 적극성 등을 생각하지 않는 일률적인 시스템에서 벗어나고 싶었죠.”

때론 서울에 있는 친구들이 보고 싶기도 하다. 자주는 아니지만 모임이나 행사는 꼭 챙기는 편이다.

“서울에선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궁금증이 들기도 하죠. 그렇다보니 가끔 친구들 만나는 것도 즐거운 일입니다. 친구들은 농촌에 있는 저를 참 부러워합니다. 귀농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죠. 그래서 저는 정 하고 싶으면 욕심 갖지 말고 편한 마음으로 귀농하라고 해요.”

농촌에서도 농사만 지으란 법은 없다. 자신의 본업이나 특기, 특성을 살려 생활할 수도 있다는 강 씨의 얘기다.





“물론 업종마다 다르죠. 예를 들어 학원 강사의 경우 농촌에서도 할 수 있겠죠. 꼭 농사만 지으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본인 의지만 있으면 농촌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있어요. 실제 약간의 농사를 지으면서 자기 직업을 가지고 도시에서와 똑같이 생활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대개 귀농이라기보다 귀촌인 경우죠.”

최근엔 지자체마다 귀농을 장려하는 지원프로그램이 활성화돼있다. 진정성만 있다면 누구나 귀농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정착돼 있다는 얘기다.

“지원프로그램이 있어서 정말 귀농하고 싶은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 힘들더라도 그런 프로그램을 활용하면서 살아갈 수 있어요. 농사를 짓고 싶다면 처음엔 수입이 없지만, 프로그램을 통해 감을 잡을 수 있죠. 차차 배워가면서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다만 마음을 비우고 와야죠. 처음부터 도시에서의 수입에만 비교한다면 많이 힘들어요. 일단 소비를 최대한 줄여야죠.” 

강 씨는 예비 귀농인들에게 거듭 당부했다. 돈을 목표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귀농한 이후 돈을 목표로 삼으면 힘들어져요. 돈 벌수 있다는 생각가지고 농촌에서 어떻게 살겠어요. 그저 자기 스스로 좀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하라는 겁니다. 농사 지어 먹고 살려면 그야말로 도시수입의 4분의 1, 5분의 1을 각오해야 합니다. 도시는 소비중심이지만, 다행히 시골은 자급자족이 가능해요. 그러니 돈 욕심은 버리세요.”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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