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류승연의 ‘아주머니’ 6화(아직은 주인공이 아니지만 머지않아 니가 세상의 주인공이 될 얘기)



지난 1주일은 동네 아줌마들 간의 네트워크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한 한주였다. 혼자서 고고한 척 콧대 높여봐야 아쉬운 건 본인 뿐. 낮은 자세로 먼저 인사도 해가며 아줌마 무리에 합류를 해야 비로써 귀중한 정보를 얻는다.

그 정보는 지역사회에서 아이를 키우는데 매우 유용한 것들로, 모르는 이는 뒤처지고 손해 볼 수밖에 없다. 정치권과 금융권에만 치열한 정보 전쟁이 있는 게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아줌마 사회에도 치열한 정보 전쟁이 존재한다. 그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시끌시끌 소란스러운 아줌마 네트워크에 가담해 함께 수다를 떠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줌마들이 한낮에 무리를 이뤄 커피숍에서 수다 떠는 모습을 보면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초등학교에 보내고 나면 삼삼오오 모여 밥을 먹으러 가거나 차를 마시러 가는 아줌마들. 가서 하는 일이라고는 남편 흉보기, 시댁 흉보기, 다른 학부형 흉보기가 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더해봤자 드라마 얘기나 연예인 얘기겠지.

아이가 내 손을 떠나있는 금쪽같은 자유 시간을 왜 그렇게 허비하는 걸까? 그 시간에 문화센터에 가서 무엇이든 배우든가, 운동을 하든가, 만화책이라도 좋으니 책을 읽든가, 아니면 영화를 보거나 음악이라도 듣던가.
그래서 나는 고고함을 택했다. 3년 전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이사를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신축빌라를 분양받아 이사 온 사람들. 평수가 작다보니 다들 어린 아이를 키우는 30~40대 젊은 아줌마들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이사를 온 터라 처음 한 달 간은 친목모임이 자주 이뤄졌다. 오늘은 누구네 집에서, 내일은 누구네 집에서. 그러다보니 매우 귀찮은 일이 발생했다. 아줌마들이 시도 때도 없이 연락을 해오고, 낮에도 한 집에 모여 치킨에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떨곤 했다.



나는 그런 그들이 싫었다. 왜 아이를 키우는 애 엄마가 한낮에 맥주를 마시지? 해야 할 집안일도 산더미고, 아이들이 낮잠 잘 동안만이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데 왜 여기에 모여 시시껄렁한 얘기나 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거리를 뒀다. 모임 초대를 거절하기 시작했고 오가다 만나도 얘기가 길어지지 않게 단답형으로 말을 끝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나는 혼자가 됐고 그 생활이 편하고 좋았다. 

그러다 지난주 일이 터졌다. 혼자만의 고고한 생활 패턴은 정보의 부재를 불러왔고, 정보의 부재로 내 아이의 진로가 오리무중에 빠져버렸다.
발달장애인 아들은 내년이면 여섯 살이 된다. 네 살 때는 일반 어린이집 오전반에 다녔는데 다섯 살이 되면서 퇴소를 권유받았다. 선생 한명이 18명의 아이를 보게 되면서 우리 아들이 방치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올 한해 우리 아들은 하루 종일 엄마 곁에 붙어 열심히 발달치료만 받으러 다녔다. 그러나 아이에게 사회성을 길러주기 위해선 어린이집이든 유치원이든 다녀야하는 상황. 그래서 내년에는 아이를 적합한 유치원에 보내기위해 내 나름대로 정보를 모았다.

초등학교 교사인 친정엄마의 말이 결정적이었다. 엄마 반에도 발달장애인 아이가 있는데 다섯 살까지 말을 못하다가 여섯 살에 특수학교에 딸린 유치원에 입학하면서 말문이 트였다고 했다. 그래, 이거다. 8월이 되자 집에서 가까운 특수학교를 찾아 입학문의를 했다. 몇몇 서류와 장애진단서가 필요했다. 장애진단서는 병원에서 발급받는다. 아들이 언어와 감각통합,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병원에 장애진단을 요청했다.
그런데 장애진단이라는 게 금방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8월에 예약하고 9월에 평가를 받았는데 결과는 10월에 나왔다. 이것마저도 확정이 아니었다. 병원에서는 평가한 내용을 ‘진단’할 뿐이고, 진단서를 가지고 동사무소에 제출을 하면 다시 국민연금공단에서 검토해 최종 확정을 내리기까지 한 달 정도가 소요된다 했다.

아이의 입학전형은 10월에 있는데 장애진단 확정은 11월에 받는다니…. 마음이 조급했지만 다행히 입학에 필요한 서류는 병원의 진단서로도 대체가 가능했다.
필요한 서류도 다 넣고 마음 편히 지내고 있던 찰나 교육청 산하의 발달지원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입학서류는 갖춰졌지만 우리 아들이 특수교육 대상자로 선정이 안 돼 있어서 입학을 할 수 없다고 했다.
특수교육 대상자? 그건 또 뭔가? 물어보니 유치원부터는 교육부가 관리하는 의무교육의 영역이라 특수교육을 필요로 하는 애들은 특수교육 대상자 선정을 위한 별도의 평가를 받아야 한단다.
이미 2년 전 보건복지부에서 발달장애 아이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도와주는 바우처 카드를 발급받아 사용하고 있는데 그걸로 특수교육 대상자라는 게 증명된 것이 아닌가? 반문하니 그건 복지부 영역이고 교육부는 따로 받아야 한단다.

복잡하기도 하다. 그래서 지난주 부랴부랴 아이를 들쳐 업고 센터에 도착, 평가를 받고 상담을 하는데 담당교사가 하는 얘기들이 전부 처음 듣는 말들이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 앞으로도 교육부에서 장애카드를 따로 발급받아야 하고, 뭐는 어떻게 해야 하고 등등.
나름대로 아이에게 필요한 정보는 놓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허탈해 하는 내 모습을 보던 교사가 한마디 한다. 사설 언어치료실에 다니는 아이들은 비교적 상태가 좋은 아이들이 오기 때문에 엄마들이 잘 모른다며, 비교적 중증인 아이들이 다니는 재활병원의 학부모들과 친해져야만 정보를 많이 얻는다고.

아하~그거였구나. 우리 아들은 사설치료실과 재활병원을 병행하고 있는데 그동안 나는 사설치료실 엄마들과는 안면을 트고 지내도 재활병원 엄마들과는 거리를 뒀다.
병원의 엄마들은 대다수가 아이를 입원시켜서 온종일 치료를 받게 하는지라 이미 강한 유대로 묶여 있었다. 아이를 치료실에 넣어놓고 기다리는 동안 병원의 엄마들은 끼리끼리 모여 수다 삼매경. 가끔 무리 간 다툼이 나는 일까지도 있었다.
그런 모습이 보기 안 좋았던 나. 그동안 몇몇 아줌마가 우리 아들은 어떤 상태냐며 말을 걸어왔지만 단답형으로 대답하며 고고하게 혼자서 독서를 했다. 그러나 아줌마들의 네트워크를 무시하고 혼자서 고고한 척 콧대 높인 결과는 참담했다.
알고 보니 모방행동을 시작한 우리 아들에게 필요한 건 특수학교에 소속돼있는 특수유치원이 아니라 일반 아이들과 발달장애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는 통합유치원이나 통합어린이집이었다.

이제 와서 부랴부랴 특수학교 신청 철회서를 쓰고, 다시 통합유치원 입학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 구내에 있는 통합유치원은 3군데 뿐. 대기자는 수 십여 명인데…. 뽑힐 수 있으려나? 큰일 났다.
두 번째 대안인 통합어린이집 상황은 더 안 좋았다. 유치원은 입학정원이 적어 거의 모든 발달장애아 학부형들이 통합어린이집 대기를 걸어놓은 상황. 1~2년씩 기다려야 순서가 돌아온다고 하는데 나는 이제야 시작이다. 만약 2년 뒤에 순서가 오면 그땐 초등학교를 가야 한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와버렸을까? 원인은 하나다. 아줌마 네트워크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나도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다. 그동안 구청, 동사무소, 병원, 사설치료실 등에 이런저런 것들을 문의하고 정보를 모으고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각 기관에서의 정보는 매우 한정적이었고, 전혀 유기적이지 않았다. 내 아이에게 필요한 통합적 정보는 앞서 내 아이와 같은 길을 걸어간 다른 아줌마들의 손에 있었다.

아줌마들의 네트워크를 평가절하하고 그녀들의 수다를 비웃은 죄로 내 아들의 미래가 달라져버린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고고한 혼자만의 학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아한 척하며 꺼내 읽던 책은 집에 놔두고 대신 가방에는 귤을 넣어가지고 갈 것이다. 그래서 아이가 치료받는 동안 기다리는 아줌마들에게 귤을 나눠주며 슬그머니 대화를 시도할 것이다.
처음에는 아줌마들의 텃세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 따위는 전혀 무섭지 않다. 내 아이를 위한 일이니까. 그래서 그녀들과 친해지고 그 속에 동화되고 나면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남편도 욕하고, 시댁도 욕하고, 드라마와 연예인 얘기도 해야지. 그리고 그녀들이 몸소 체험한 뒤 전해줄 귀중한 정보들을 토대로 최대한 시행착오를 줄이며 아이를 키워가야지. 

<류승연 님은 정치부 기자 출신입니다. 현재는 두 아이를 키우며 전업주부로 살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