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가장 에로틱한 삶의 현장 갯벌에서 <열일곱번째>



# 아침 해는 왜 저리 노을처럼 붉게 떠오르나

갯가에서 오래 살아오신 할머니 한 분이 말씀하셨다. 바다는 여자라고, 바다는 여자라서 하루에 두 번 목욕을 한다고. 목욕을 하는데 남들이 볼 수 있는 데서 하지 않고 멀리로, 아주 멀리로 나가서 한다고, 갯가에서 오래 살아오신 할머니 한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고는 눈을 새초롬하게 떠 보이셨다.

바다가 목욕을 하러 멀리 떠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바빠진다. 물때가 되었다고, 물이 빠진다고, 썰물 시간이라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호미를 챙기고 바구니를 챙긴다. 발에는 장화를 신고 손에는 고무장갑을 끼고, 몸에는 비옷을 입고 머리에는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그렇게 눈과 코와 입만 내놓는 방식의 중무장을 하고 씩씩하게 줄줄이 바다가 목욕을 하러 떠난 뒤의 갯벌로 들어선다.

여자인 바다는 결국 엄마이기도 하다. 엄마인 바다가 잠시 외출을 하면 온갖 녀석들이 개구쟁이 아이처럼 뛰쳐나온다. 구르듯이 빠르게 뽈뽈 기어 다니는 농게며 칠게 같은 것들은 말썽꾸러기 사내아이를 닮았다. 갯벌 위에 얼굴을 살짝 내놓고 입을 삐죽거리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우렁쉥이나 바지락 같은 녀석들은 낯가림이 심한 여자아이를 닮았다. 갯벌 위를 날아다니며 갯지렁이가 어디 숨어있나 열심히 탐색을 하는 갈매기는 문자 그대로의 사냥꾼이다.

갈매기는 갯지렁이만 먹고 사는 동물이 아니다. 갈매기는 살아있는 조개를 그 두툼한 부리로 톡톡 쪼아서 먹어치우기도 한다. 아주 과감한 갈매기는 때로 커다란 꽃게를 상대로 전쟁을 치르기도 한다. 갈매기가 많이 몰려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 또한 많이 있기 마련이다.


# 그 많던트렉터는 다 어디로 가고

바다가 사람들을 위해 그 많은 생명을 키워내는 것인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사람들은 오랜 세월을 그렇게 살아 왔다. 할머니의 할머니의 또 그 할머니의 할머니 때부터 그렇게 살아 왔다고, 갯가에서 오래 살아오신 할머니는 말씀하시며 눈을 새초롬하게 떠 보이셨다. 그리고 다시 말씀하셨다. 이제 그런 세상은 다 지나버렸다고.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먹고살 양식을 구하기 위해 바다가 잠시 자리를 비운 뒤의 갯벌을 드나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지금의 사람들은 먹고살 양식을 구할 목적으로 갯벌을 찾기도 하지만 보다 큰 목적은 따로 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갯벌에서 돈을 만들어낸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갯벌은 이제 돈과 직결되는 사업장이 되었다. 사람들이 돈을 목적으로 갯벌을 드나들기 시작하면서부터 망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먹고살아갈 양식만 있으면 됐던 시절의 사람들은 갯벌에서 망하는 법이 없었다. 바다가 언제 목욕을 하러 떠나는지, 그리고 언제 돌아오는지, 그 시간만 제대로 알고 있으면 다른 걱정할 일은 거의 없었다. 양식이 아니라 돈을 목적으로 갯벌을 활용, 혹은 이용하기 시작한 이후 사람들은 걱정할 일이 많아졌다. 밤에 잠도 못 자고 아침이면 눈이 벌겋게 충혈 된 채 한숨을 내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바다에 돈을 뿌렸다. 돈으로 종패를 사다가 뿌렸으니 돈을 뿌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돈을 벌기 위해 돈을 뿌린 것이니 증권투자나 매한가지 성격의 것이었다. 금년에는 잘 될까? 잘 돼야 할 텐데. 사람들은 노심초사한다. 그리고 잠깐씩 지난날들을 되돌아본다. 갯벌을 드나들며 돈을 벌고, 또 벌고, 또 벌었지만 그 돈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그 많은 돈은 다 어디로 갔는가?

도시로 갔다. 보다 정밀하게 말하자면 학교로 갔다. 갯가의 사람들이 갯벌을 사업장으로 활용해서 번 돈의 태반이 도시의 학교로 들어갔다. 갯마을 자체 내에는 학생이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갯마을 사람들에게 아들딸이며 손자 손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모두 도시에 있고, 도시에서 학교를 다닌다. 내 자식이, 내 후손이 갯일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갯가의 사람들에게 있었다.


# 사람이 없으니 그림자와 대화를 할까

재금이 엄마는 아들이 세계적인 운동선수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 믿음을 갖고 싶어서 가진 게 아니었다. 아들이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해주셨기 때문에 그런 믿음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아들은 운동선수로서의 자질을 아주 뛰어나게 타고난 것이 아니었다. 따로 과외선생을 붙이고, 특별한 교육을 받는다 해도 세계적인 선수로 우뚝 설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하지만 거기까지는 미처 알 수 없었던 재금이 엄마는 아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만을 믿었다. 말하자면 아들을 유일한 정보창구로 해서 아들에게 필요하다 싶은 모든 것을 해주었다. 남편을 교통사고로 먼저 보내버린 뒤의 외로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그녀를 역설적으로 과감하게 만들어주었다고나 할까. 그녀는 남편이 남겨놓은 바지락 농장에 종패를 뿌리고, 또 뿌리면서도 모자란 돈은 빚을 내고, 또 내서 아들을 세계적인 운동선수로 만드는 일에 투자했다.

그 아들의 나이가 훌쩍 서른을 넘어 버렸다. 서른이 훌쩍 넘었는데도 아들은 세계적인 운동선수 반열에는 들지 못하고, 국내에서도 대표선수 한 번 지낸 것을 끝으로 술독에 빠지고 말았다. 재금이 엄마는 이제 실의에 빠진 아들의 술값을 갚느라고 정신이 없다. 게다가 그동안 아들의 뒤를 봐주느라 진 빚의 무게가 또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녀의 나이 금년으로 쉰 넷, 그녀는 사실 쉰 나이를 넘어서부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진 빚을 만약에 다 갚지 못하고 어미가 죽는다면, 아들은 그 많은 빚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면 눈앞이 너무나 아찔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크게 한 번 튀겨보기로 결심을 굳히기에 이르렀다. 가령 바지락 종패 삼억 원어치를 바다에 뿌려서 크게 흥하면 십 억원 정도 거두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이십 억원을 바란다 해도 터무니없는 욕심이라고 비난할 사람은 갯마을에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또 한 차례의 큰 빚을 내서 바다에 돈을 뿌렸다.


# 그래도 간식은 먹어야지

그것이 하필 작년 겨울의 일이었다. 작년에 뿌린 바지락 종패는 거의가 폐사했다. 예년처럼 누구는 망하고 누구는 흥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바지락 농사로 망한 사람은 망하고 흥한 사람은 흥했지만, 금년의 바지락 농사는 거의 모두가 고르게 다 같이 망했다. 완전 망하지 않고 그나마 본전이라도 뽑을 정도인 사람은 열 손가락을 채우기 어렵고, 망한 사람은 삼백 손가락을 채우고도 남을 정도였다.

재금이 엄마와 비슷한 연배의 유선동씨는 막내딸이 미술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았다. 그리고 미술공부에는 돈이 많이 든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열심히 돈을 모은다고 모았지만, 실제로 모아진 것은 거의 없었다. 망하고 흥하고, 또 망하고 흥하고를 되풀이하는  게 바지락 농사이다 보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은 망할 수 없는, 망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왜냐하면 막내딸이 드디어 미술대학에 입학을 했으니까.

작년 가을 막내딸의 미술대학 합격 통지를 받던 날 유선동씨는 최종 결정을 내렸다. 그동안 모아놓은 돈에 더해서 빚까지 끌어들여 종패를 뿌렸다. 그리고 매일 한 차례씩 갯벌로 들어가서 종패의 성장과정을 지켜보았다. 갯바람에 손가락이 꽁꽁 얼어붙는 혹한에도 그는 트렉터를 몰고 갯벌로 들어갔다. 그렇게 그는 그 장면을 보았다. 종패가 죽어가는 장면을. 그랬다. 그는 갯벌에 뿌려놓은 종패가 죽어가는 장면을 지켜본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종패를 뿌렸다 해서 날마다 찾아가는 사람은 없으니까. 날마다는커녕 열흘에 한 번 찾아가는 사람도 거의 없으니까.

바지락 농사가 망했다는 사실을 최종적으로 확인한 봄부터 여름까지, 갯가의 사람들은 침묵했다. 작년만 해도 하루에 이백 대 이상의 트렉터가 몰려들어 장관을 연출하곤 했던 광장은 쓸쓸하게 비워진 채로 봄, 여름, 가을을 보내고 코앞에 닥친 겨울을 맞이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가을이 깊어지기 시작하면서야 사람들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으니까. 빚 아니라 별 것을 내서라도 종패를 뿌려야 하니까. 그것이 아니면 할 것이 없으니까.


# 올해는 너무 쓸쓸해

바지락이 폐사했다지만 아주 모조리 가버린 것은 아니었다. 백 마리를 뿌린 곳에 한두 마리 정도, 잘하면 서너 마리 정도 남아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를테면 종패 백 톤을 뿌린 바지락 농장에서 일 톤 정도는 건져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일 톤을 건져내기 위해서는 땅을 모조리 뒤져야 한다. 바지락은 그물로 잡아내는 물고기가 아닌 까닭에 트렉터를 비롯한 이런저런 장비도 갖춰야 한다.

재금이 엄마는 트렉터가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트렉터를 빌려야 한다. 트렉터를 빌리면 트렉터 운전기사의 인건비에 플러스 유류대금을 지급해야 하고, 거기에 더해서 트렉터의 감가상각비를 곱으로 계산해야 한다. 왜냐하면 트렉터는 철로 만들어졌고 철은 염분이 많은 바닷물에 약하니까. 요컨대 바지락 몇 자루 잡아서는 재금이 엄마 자신의 인건비는 고사하고 빌린 트렉터 비용도 충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농장은 손도 못 대고 다른 이의 농장 작업을 나간다. 작업을 끝내고 돌아오면 선운사 인근의 식당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다. 그런데 식당 아르바이트마저도 더 이상은 못할 지경에 처하고 말았다. 갯벌에 머무는 시간이 너무 많은 까닭에 허둥지둥 돌아와서 식당을 나가면 항상 한두 시간씩이 늦었다. 그래서 식당 주인이 그녀에게 경고를 했지만, 그녀가 처한 상황은 식당 주인의 경고마저도 무시를 해야 할 판이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재금이 엄마는 이제 양자택일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사전에 양자택일은 없었다. 갯벌을 그만두고 식당을 나간다는 것은 상상도 해볼 수 없는 일이었다. 갯벌은 그녀의 모든 것이었다. 그녀를 고용한 농장 주인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녀는 농장 주인의 마음을 알았다. 그래서 작업 시간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길어져도 그녀는 묵묵히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인다.


# 잡은 것은 없어도 청소는 깨끗이


# 금년에는 갈매기도 드문드문 한 마리씩만

그랬다. 갯벌에서의 작업 시간이 예년 대비 적어도 한 시간씩이 늘어났다. 작년만 해도 주문량이 엄청나게 많으면이나 모를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밀물이 시작되기도 전에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곤 했다. 가끔은 그물을 쳐서 잡힌 숭어회를 안주로 복분자주를 마시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었다. 하지만 금년에는 그런 여유가 전혀 없었다. 모두가 말 한 마디 없이 묵묵히, 그저 묵묵히 바지락을 찾는 일에만 몰두했다.

마음이 바빴다. 밀물이 몰려와서 정강이까지 차오르더라도, 위험을 무릅쓰고 한 시간을 더 작업하면 바지락이 최소한 두 자루는 더 잡힐 것이다. 아니 한 시간이 과하다면 삼십 분이라도, 아니 아니 십 분만 더 작업한다면 아, 십 킬로그램은 더 잡을 수 있을 텐데, 아 저런, 저런 물이 벌써 여기까지 들어와 버렸네.

어느새 밀물이 장화 신은 발등을 채우기 시작하면, 일당을 약속받고 나온 사람들은 슬슬 두려워지기 시작하지만, 가난한 농장주는 두려움이 아니라 마음이 더욱 바빠져서 이리 뛰고 저리 뛴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인 것을. 그렇게 주섬주섬 장비를 챙기고 돌아오는 트렉터 안에서 비로소 몇 마디 대화가 이루어진다.

“큰일이여, 바다가 오염이 됐어도 크게 됐나벼.”
“이제라도 쓰레기를 안 버려야 할 텐디 말이여.”
“아 우리가 안 버린다고 쓰레기가 없간디. 낚시꾼들이 버리는 것만도 하루에 트럭으로 수십 대는 될 것인디 뭘.”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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