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류승연의 ‘아주머니’ 13화(아,직은 주,인공이 아니지만 머,지않아 니,가 세상의 주인공이 될 얘기)



결론부터 말하면, 지적장애인은 성직자가 될 수 없다. 신의 일꾼으로 이 한 몸 바치고자 해도 ‘장애’가 있어서 안 된다. 가장 불쌍하고 가장 약한 자들을 보살피는 게 종교의 할 일 같지만 막상 장애인을 자신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면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이래선 종교적 신념 없이 이익으로만 움직이는 일반 기업과 다를 바 없다. 씁쓸한 일이다.
나는 평소에도 지적 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의 장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딸의 미래는 딸의 몫이지만, 아들의 미래는 내 몫이다.

정부에서의 지원? 기대하지도 않는다. 우리나라 정부가 언제부터 장애인 복지에 신경을 썼단 말인가? 기존에 있는 복지 지원금이나 줄이지 않으면 다행이지.
실제로도 정부의 장애인 지원 현황은 형편없었다. 아들이 처음으로 장애인 진단 확정을 받자 심사 기관인 국민연금에서 가정방문을 해 향후 복지에 관한 설명을 해주었다.

가스비와 전기세가 약간씩 할인되고, 핸드폰 사용 요금이 할인됐다. 지하철 무료 탑승 및 차 살 때 세금 면제. 피부로 느끼는 실질적인 지원은 이 정도였다. 차상위계층에 포함되지 않아 그나마도 쌀값 수준으로 나오는 장애인 지원금을 받을 수도 없었고, 1급이 아니라서 장애인 주차 구역에 주차할 수도 없었다.





한 마디로 부모가 살아있는 동안은 상관없지만, 부모 죽고 난 뒤 홀로 남은 지적장애인은  살아갈 방법이 없었다. 정신연령 평균 4세, 정말 잘 커야 10세인 아이들이 어떻게 세상을 홀로 살아나간단 말인가. 시설에 감금돼 구타와 학대를 당하며 목숨만 이어간다면 모를까.

한숨이 나왔다. 나 죽고 나서도 아들이 자기 수명 온전히 채우며 한평생 잘 살다 올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마쳐놓은 뒤 눈을 감아야 했다.    

아들의 장래를 생각할 때 처음 떠올랐던 건 ‘빵 굽는 아이’였다. 지적 장애아들이 모여 빵을 굽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를 뒤져 해당 내용을 찾아 시청했다. 

단체에 속해 있는 장애우들이 빵을 굽고 있었다. 하지만 일반인처럼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양한 종류의 빵을 만드는 건 아니고 개개인별로 맡은 임무가 하나씩 있어 그것을 반복하면 되는 시스템으로 움직였다. 누구는 계란을 깨고, 누구는 반죽을 하고, 누구는 오븐에 빵을 넣었다.

“그래. 이런 아이들은 이런 아이들 나름의 인생이 있구나~” 하며 안심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걱정이 됐다. 단순작업으로 몇 가지 종류의 빵만 구워내는 일은 월급이라고 받는 액수가 너무 적을 것 같았다. 안 봐도 비디오였다.

아이가 먹고 살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생각했다. 두 번째로 든 생각은 “커피전문점을 차려주자”였다. 꾸준히 반복학습을 시키면 바리스타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에 여러 종류의 커피 타는 법을 배우는 게 힘들지, 한 번 익히고 나면 그 때부턴 무한반복이니 괜찮을 것 같았다.

계획도 세웠다. 우선 남편은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51세까진 무조건 직장인으로 남아 있으라 했다. 액수가 얼마든 고정적인 수입이 있다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니까. 모자란 돈은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벌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커피 전문점을 차리기로 했다. 남편과 나와 아들이 함께 할 커피전문점. 아들은 중학생 때부터 6년 간 바리스타 수업을 시키기로 했다. 나와 남편이 함께 하면서 아들에게 미리 길을 열어주고, 모든 일이 손에 익게끔 훈련을 시켜주는 게 중요할 것 같았다.





아들이 25세 정도가 되면 장가도 보내야지 생각했다. 중매를 통해 비슷한 처지에 있는, 몸은 건강하지만 정신연령은 어린 처녀를 소개받아 결혼시킬 것이다. 그래서 일단 아이부터 낳게 하고, 아이를 낳으면 내가 키워야지 생각했다. 아들의 장애가 유전 때문이 아니기에 그런 부모 밑에서라도 아이들은 정상아가 태어날 것이다. 그 아이들이 20세가 돼서 자기 부모를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사는 게 내 인생의 목표가 됐다.

이대로만 실현되면 행복한 결말이다. 더 바랄 것이 없는. 난 이러한 인생그래프를 몇 번이고 되새겼다.
그러다 얼마 전 “우리 아들이 성직자가 될 운명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불현듯 하게 됐다. 텔레비전에서 교황의 모습을 보다가 들게 된 생각인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결혼하고 2~3년 간 임신이 안 됐다. 마음이 조급해진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는데 김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셨다며 유리관 속에 누워 계신 모습이 보였다. 초등학교 때 교회 몇 번 가본 게 유일한 종교 활동이었던 우리 부부는 김 추기경에게 기도를 하기로 했다.

이제 막 천국에 가신 ‘신입생’이니 당분간은 하나님과 예수님 바로 옆에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였다. 바로 옆에 계시면 하나님에게 말 좀 전해달라고. 우리 부부 아이 생기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어느 날 남편이 꿈을 꿨다. 꿈에 김 추기경이 나와서 본인이 입고 있던 추기경 복을 벗어서 남편에게 입혀주셨다. 그리고 임신. 우리는 김 추기경의 축복을 받은 아이가 잉태됐다며 기뻐했다. 태명도 ‘수환’이로 지었다. 남편 성이 김씨였기에 김수환이 됐다.

임신여부를 알게 된 지 한 달이 지나 병원에 가니 쌍둥이라고 했다. 태명을 고민하다 “수야~” “환이야~” 라고 이름을 나눠 불렀다. 그리고 아이들의 이름도 딸은 수인, 아들은 동환이로 지어 이름 속에 ‘김수환’이 모두 들어가게 했다.
생후 2년 정도가 되어갈 무렵, 아들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단순히 늦은 아이가 아니라 정신지체일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 발도 이상했다. 양 발이 바깥쪽으로 뒤틀려서 교정기를 찼다. 걱정하고, 기도하고의 반복.

그러던 어느 날 친정에 가 있을 때였다. 나는 침대에서 자고 아이들은 바닥에서 자고 있는데 방문을 열고 김 추기경이 들어오셨다. 김 추기경은 살금살금 걸어와 자고 있는 아들의 머리와 발을 한 번씩 어루만지더니 다시 조용히 뒤돌아 나가셨다.  

마지막으로 나와 눈이 마주친 김 추기경은 손가락을 들어 “쉿!” 이라고 한 뒤 문을 닫았다. 어둠 속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오셨구나” 한 뒤 다시 눈을 감았다.
지금도 모르겠다. 그 때 그 일이 꿈이었는지, 환상이었는지, 아니면 진짜였는지….
바쁘게 살다 보니 한동안 잊고 있던 기억이었는데 교황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그 생각이 났다. 신은 아니지만, 대 성인 중 한 분인 김 추기경의 축복을 받은 아이. 우리 아들이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혹시 이 아이가 성직자의 길을 걸어야 할 운명이라면 그대로 해줘야 한다고. 교회는 어렸을 때 가 본 게 전부고, 카톨릭에 대해선 아예 몰랐다. 인터넷에 검색을 하니 일단 신학과에 들어가는 게 우선일 것 같았다.
정보를 모아야 했다. 서울대교구라는 곳에 전화를 했다. 뭐하는 곳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나라 카톨릭의 큰 모임 같은 곳일 거라고 추측했다.

사정을 말하고 문의를 했다. 지적 장애아도 신부님이 될 수 있느냐고. 여태까지 그런 경우를 보진 못했지만, 카톨릭계에서 지적 장애아 신부를 받아들일 의지가 있느냐고. 그렇다는 답변이 오면 오랜 시간을 들여 준비에 착수할 생각이었다. 담당자는 당황했다. 신부님 및 수녀님들과 상의를 하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연락이 왔다. 아이가 어려서 말할 수 없으니 나중에 크면 다시 연락을 하라고 했다. 나는 아이가 이미 다 자란 다음에는 늦는다고 했다. 보통의 아이들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수능을 쳐서 카톨릭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할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카톨릭계에서 받아들일 의지만 있다면 나는 나대로 장애아의 신학과 입학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움직여야 했다. 장애아 특별전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여론을 모으고 입법화를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했다. 지금부터 내가 먼저 성경을 읽고, 라틴어를 공부해 아이를 교육시키기 위한 준비도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답변은 도돌이표. “아이가 어리니 나중에 연락하세요”. 사실상의 거절이었다.

그럴만했다. 신부님(사제)이 되기 위한 방법을 찾아보니 신학과에 들어가려면 각 교구별로 있는 예비신학생모임에 최소한 1년은 다녀야 했다. 서울대교구장 추천서와 본당 신부님 추천서도 필요했다. 게다가 이 외에도 줄줄이 있는 자격조건 중에 ‘건강상태(정신적, 육체적)에 결함이 없는 사람’이 포함됐다. 지능적 결함이 있는 지적 장애인은 처음부터 제외 대상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 문항을 읽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 정부도, 종교도 기대할 수 없는 대한민국 만세다! 니들끼리 다 해 먹어라!
나는 돈을 많이 벌기로 결심했다. 국가도 종교도 기대할 수 없으니 부모가 돈을 많이 벌어 유산을 충분히 물려주는 게 장애아인 내 아이가 이 땅에서 제대로 살아갈 유일한 방법이니까. 악착같이 돈을 모아야겠다. 그래서 나라에도 종교에도 봉사하지 않고, 내 아들 하나만 잘 먹고 잘 살게 할 테다. 흥이다. 흥!

<류승연 님은 정치부 기자 출신입니다. 현재는 두 아이를 키우며 전업주부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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