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마술처럼, 그녀가 내 곁으로 왔다<13>


# 어느 하루 구시포 앞 돌섬에서의 그녀


누군가는 말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이라야 인생을 진지하게 얘기할 수 있다고, 그 말에 빚을 진 마음으로 나는 이제 이런 말을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눈물에 젖은 사과를 먹어본 사람이라야 사랑을 보다 미세한 각도에서 조명할 수 있다고. 물론 이것은 순전히 내 개인적인 감정이기는 하다.

발신지가 경상북도로 되어 있는 사과 상자가 배달되었다. 눈물의 정서가 아니고는 바라보기 어려운, 김수복씨댁 oo희 앞으로 배달된, 거대한 상자에 가득 들어 있는 사과를 앞에 놓고 나는 잠시 멍해져서 천장을 보고, 남몰래 한숨을 깊이 내쉬고, 그리고 십여 분 정도 마당을 정신없이 서성거렸다. 이것은 내가 사과를 먹기 위해 치러야 할 어떤 과정, 하나의 의식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경상도산 사과를 먹기 시작했다. 아침 식전에도 사과를 먹고, 낮에도 사과를 먹고, 밤에 자다가도 일어나서 사과를 먹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후 요즘처럼 사과를 많이 먹어본 적이 있었던가? 없었다. 단연코 없었다. 내 고향 전라북도 고창에는 사과 농장이 거의 없는 까닭이기도 하지만, 사과 농장이 주변에 많이 있었다 해도 가난을 직업처럼 살아오신 우리 부모님은 아마 사과를 거들떠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쨌든 요즘의 나는 날마다 사과를 먹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과를 먹는다. 사과 한 상자를 다 먹어간다 싶을 즈음 또 한 상자가 배달되었고, 그것이 아직 절반도 넘게 남았는데 또 한 상자가 배달되었다. 마술이라도 부리듯이 어느 날 홀연 내 옆으로 와 있는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운동 겸 소일거리 겸해서 사과 농장의 사과 따기 일을 돕고 그 녹으로 받아오셨다고 하는, 당신들 딸내미 먹으라고 보내주신 그 알뜰한 과일 중에 절반 이상이 내 입으로 들어간다.

사과는 대부분 나뭇가지에 긁히거나 멍이 들거나 새가 쪼아댄 자국이 있는 것들이다. 당연한 일이다. 사과 농장에서 상품으로 출하하기 어렵거나 헐값에 넘겨야 할 사과를 받는 조건으로 그 추운 날씨에 사과 따는 일을 거들고 받아오신 것이니 상처가 많은 사과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맛이 어쩌면 그렇게도 눈물 나게 감격스러운가. 맛이 좋다기보다는 그저 감격스러운 것, 그런 보물 같은 사과를 먹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음이 무겁고 또 무거워서 손가락이 절로 꼼지락거려지곤 한다.

단물을 입 안 가득 채우면서 아삭아삭 씹혀지는 사과의 식감이 나는 짐짓 놀랍다는 듯이, 황홀하다는 듯이 매번 “아 맛나네, 정말 맛나네!” 어쩌고 그렇게 감탄사를 토해내고, 그러면 내 옆의 그녀가 마치 추임새라도 넣듯이 “정말요? 정말로 그렇게 맛있어요?” 어쩌고 그렇게 질문 같지 않은 질문을 하면서 눈을 반짝이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들 마음의 저 아래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문장은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 상처가 많아서 가장 맛있는 사과


너는 누구냐?

사과를 먹을 때면 그런 질문이 내 귓속을 왱왱거린다. 내가 듣고 있는, 들어야만 하는 그 엄중한 소리를 내 옆의 그녀도 듣고 있는지 여부는 내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사과를 먹고 있을 때의 내 기분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 정도는 그녀도 안다. 알기 때문에 그렇게 “맛있어요? 정말로?”하고 쓸데없는 질문을 자꾸 해보는 방식의 애교를 떨어대고 있다는 것을 내가 모른다면 누가 알까.

우리는, 그녀와 나는 지금 그렇게 깊은 늪 속에 잠겨 있다. 아니 어쩌면 구름을 타고 있다고 말해야 옳은지도 모르겠다. 늪이든 구름이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만은 자명하다. 늪에서 나오면 무엇이 있을까. 구름에서 내려오면 또 무엇이 있을까. 단단한 땅이 우리를 맞이해 줄까? 우리는 아직 이 문제의 답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그토록 맛있는 사과의 맛을 온전하게 즐기지를 못하고 마른 한숨을 남몰래 삼켜야만 한다.

일반상식을 벗어난 삶의 방식은 이렇게도 다른 차원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어렵다는 것, 힘들다는 것, 마음 안에 작은 감옥을 만들어놓고 스스로를 가둬야 한다는 것. 죄일까? 죄를 지은 자가 받아야 할 벌일까? 아니다. 그렇게는 말하지 말자. 사랑이라고, 사랑의 형식은 인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감히 차마 그렇게는 말하기 어렵다 해도, 그렇다고 우리의 선택을 죄라고도 말하지는 말자. 그렇다면 뭐라고 하지? 무슨 말로 해명을 해야 우리들 자신도 편하고 주위 사람들도 편하고 모두가 편한 마음일 수 있지?

정답을 얻으려면 문제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우리들 자신의 문제를 몰라서 답을 못 내는 것도 아니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만나서 같은 방을 쓰고 있는데 남자의 나이가 여자에 비해 스무 개나 많다는 것. 나이가 많으면 돈도 많아야 할 텐데 그렇지도 않다는 것. 돈이 없다면 명예라도 있어야 할 텐데 그것도 없다는 것. 명예가 없다면 하다못해 군의회 의원 정도는 “야 너 이리와 봐”, 할 정도의 권력이라도 있어야 할 텐도 그런 것조차도 없다는 것.

그 문제를 처음 인식했을 때 나는 아주 간단하게 생각했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우리의 속담이 그냥 있는 게 아니다. 까짓 뭐 어떠랴. 무조건 찾아가서 넙죽 엎드려 큰절을 올리고, 그리고 아버님 어머님의 사위가 지금 이렇게 인사를 드리는 것이라고, 그 한 마디만 자신만만하게 큰 소리로 하고 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안 된다 하더라도 뺨이나 한 두어 대 얻어맞고, 멱살이나 한두 번 잡히고, 뻔뻔하다는 등의 욕설이나 몇 번 듣고 나면 그녀와 나는 마침내 아이를 낳아서 키울 수도 있는, 하늘 아래 도무지 부끄러울 것이 없는 부부가 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 어느 하루 담쟁이넝쿨 흉내를 내는 그녀

그래서 적절한 시기도 잡고, 계획도 제법 디테일하게 세워두었더랬다. 그때만 해도 나는 아무 무서울 것이 없었다. 필요하다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올 것 같은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가 그녀의 집에서는 보물이라는 것. 특히 아버지가 그녀를 아예 보물이라고 부른다는 것. 보물이라고 부를 뿐만 아니라 그녀의 예술대학 재학 시절의 단체복을 입고 다니며 친구들에게 자랑을 엄청나게 하셨다는 것.

듣고 보니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그러실 만도 해 보였다. 막내딸인 데다가 학교도 여자로서는 드물게 공대를 다녔지, 다시 또 예술대 시험을 봐서 박수갈채 속에 졸업을 했지, 언제나 생기발랄한 목소리와 걸음걸이로 보는 사람을 흥겹게 해줄 뿐만 아니라 애교조차도 많은 그런 딸내미를 아버지가 어찌 보물로 여기지 않을 수 있었으랴.

그런데 그런 보물을 듣도 보도 못한, 나이도 스무 개나 많이 처먹은 늙은 녀석이 채간다? 이 대목에서 내 가슴이 그만 철렁 내려앉고 말았다. 그녀는 별 생각 없이 그런 얘기를 내게 했겠지만, 내놓고 자랑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이 나이만 많이 ‘처먹은’ 나는 별 생각이 없을 수가 없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식의 고전적인 도덕 감정의 포로가 돼버린 셈이었다.

내가 보기에도 그녀는 귀엽고 당당하고 깜찍하고 예쁘고 등등 오만 가지 수식어를 갖다 붙인다 해도 모자랄 지경의 그런 보물 같은 사람이었다. 내가 가령 그런 딸내미를 두고 있다면, 그래서 나이가 스무 개나 많은 녀석과 짝이 되려 한다면 나는 아마 딸내미를 데리고 ‘그 녀석’이 찾을 수 없는 아주 먼 곳으로 도망할 궁리에 열정을 바칠 것 같았다. 남녀의 사이란 떼어놓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깊은 정으로 뭉쳐진다는 게 인류사의 경험이고 보면, 두 사람을 갈라놓으려고 헛된 열정을 바치기보다는 아예 도망가 버리겠다는, 이른바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그런 생각까지 해놓고 보니 내가 이게 참 발 딛고 서야 할 땅을 찾을 수가 없겠는 것이었다.

게다가 나는 이미 또 한 가지 사실을 알고 있기도 했다. 그녀가 내 귀에 대고 참새처럼 쫑알쫑알, 그러니까 사랑에 빠진 여자 특유의 들뜬 목소리로 틈만 나면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는 나이 서른을 넘어서부터 맞선을 보자는 엄마의 성화와 간청을 수도 없이 받고 있던 참이었다. 나를 만난 이후에도 선보러 내려와 달라는 엄마의 전화를 두 번이나 받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그녀는 물건의 논리를 내세워서 ‘위기’를 모면해 왔다.


# 마당에 심은 고구마를 캐던 날의 그녀


“엄마, 엄마의 보물 같은 딸인 내가 물건이야? 싸구려 옷이야? 생선이야? 내가 떨이요, 떨이. 이렇게 외치는 물건이냐고. 아니잖아. 아니지? 그렇지? 그런데 왜 그래, 엄마, 응?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사내 앞에 나를 전시해 놓고 사 주세요, 사 주세요, 그렇게 땡 처리로 팔아야만 쓰겠어?”

억울하고 분하다는 듯이 흥분해서 소리를 질러대는 딸내미에게 엄마가 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그건 그렇지, 내 딸이 물건은 아니지, 싸구려는 더욱 아니지, 하고 말꼬리를 흐리는 것, 그러다가 문득 깊은 한숨을 내쉬고, 그렇게 의기소침해서 입을 다문 채로 딸내미의 다음 말이나 기다려보는 것, 그것이 아마 나이 서른을 훌쩍 넘긴 딸을 둔 엄마의 안타까움일 터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엄마의 입을 막아 왔다는 얘기였다. 물론 엄마의 입을 막아놓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걱정 마, 엄마, 세상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한 신랑감을 데리고 당당하게 찾아갈 거니까, 응? 알았지 엄마, 응? 응? 응? 그렇게 엄마를 위로하고, 또 위로하고, 또 위로해 온 그녀가 어느 날 홀연 나이가 저보다 스무 개나 많은 사내에게 꽂혀 버렸다.

그리하여 이제, 자, 이제 내가 등장해야 할 차례가 되었다. 그런가? 정말 그렇게 해도 괜찮은 것인가? 안 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당당하고 떳떳하게 정면으로 치고 들어가는 것밖에는 길이 없다는 무지막지한 생각도 했고, 그 생각을 그녀에게 얘기해서 동의도 받아냈다. 이제 그녀와 함께 두 손을 꼭 잡고 찾아가서 그녀의 아버지 어머니에게 장인어른, 장모님, 하고 인사를 드리는 절차만 남은 셈이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그녀의 새로운 입이 열렸다.

“엄마의 심장이 약하시거든요. 만약에 쓰러지시면 어쩌지?”

무심코 나온 그녀의 한 마디, 은근히 살짝 걱정되네, 하는 투의 그 한 마디를 그녀는 그야말로 가볍게 내놓고 있었지만, 듣고 있는 나로서는 도무지 가벼운 가슴일 수가 없었다.

아, 그래. 사람은 실망이 크면 온 몸에 힘이 빠지면서 졸도에 이를 수도 있는 법이었다. 만약에 놀라서 기절한 뒤에 온전한 상태를 회복하지 못하고 제2, 제3의 심장질환으로 발전한다면 어쩌지? 꼭 그렇다는 법이야 없다지만, 아무 일이 없다는 보장 또한 없고 보니 이게 참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중증치매 진단을 받고 삼 년여 만에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의 경우가 생각나기도 했다. 중증치매의 원인이 자식들 문제로 충격을 받은 후유증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도무지 예사로 넘길 수가 없던 것이었다.



# 비 오는 날의 저물녘 마당에서


“안 되겠네. 지금 당장 무슨 발표를 한다는 것은 예의가 아닐 뿐만 아니라 말도 안 되는 거야, 응? 그렇지? 그러니까 서서히, 조금씩, 그렇게 하자.”

슬프게도 나는 그런 결론을 내고 말았고, 달리 방법을 찾을 수 없는 그녀는 내 결정을 추인하고 말았다. 자,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그녀는 이미 하던 일도 그만둬 버렸다. 서울 생활을 청산한다는 생각을 한 뒤로 서울이 싫어져 있기도 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거짓말이 필요한 지점에 우리는 도달해 있었다. 사람이 세상을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거짓말도 필요하기 마련이라고, 그렇게 변명 아닌 변명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우리는 거짓말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예술대학 시절의 전공을 뒤늦게나마 살리기 위해 하던 일을 접고 그 방면으로 전문가인 선생님의 문하생으로 들어간다는, 그런 발칙한 거짓말을 개발해서 부모님의 정서를 일단 안정시켜 놓은 그녀, 그런 그녀를 서정적인 눈으로 바라봐야만 하는 나, 우리의 비밀 동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래서 행복하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우리는 아마 괴로운 행복이었다고, 그렇게나 말해야 할 것이다.

그 뒤로 팔 개월이 흘렀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어떤 결단을 내려야만 할 지점에 서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모른다. 사과를, 엄청나게 많은 사과를 보내주시는 어른들의 마음에 무엇이 비치고 있는지를 모르는 까닭에 결단을 내려야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아직은 조마조마한 심사인 채로 머뭇거린다.

문하생으로 들어간다는 딸내미의 거짓말을 정말로 믿고 계시는 건지, 아니면 속아주고 계시는 건지, 만약에 정말로 감쪽같이 속고 계시는 거라면 문제가 계속 복잡한 것이고, 다행스럽게도 속아주고 계시는 것이라면 이제 때가 되었다고 봐야 할 텐데 그렇다고 직접 대놓고 여쭤볼 수도 없는 일이고, 그 미세한 차이를 알 수가 없어서 우리는 맛있는 사과를 먹으면서도 가슴에 옹이라도 박힌 듯이 깊은 숨을 내쉬어야만 하는 것이다. 

바라건대 우리의 거짓말이 제2, 제3의 거짓말로 확산되는 사태만은 일어나지 않기를….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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