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진단> 2014년의 남북과 동북아 어디로 가나-6회



# 왼쪽부터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성장 세종문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 ‘개성-신의주-함경도’를 가로질러 중국과 러시아, 유럽으로 향하는 고속철도 사업에 한국이 참여할 여지는 있는가.
▲ 김 : 박근혜 대통령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공식 제안했다. 구체적 실행방법으로 ‘실크로드 익스프레스’ 추진을, 전제조건으로는 ‘북한의 개방’을 꼽았다. 러시아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다. 중국 동북삼성과 러시아가 철도로 연결돼있고, 지역협력도 강화되고 있다. 여기서 북한이 어떤 역할을 하고 협력으로 끌어낼 지를 고민해야 한다. 신 북방정책은 러시아, 중국, 북한, 남한이 어떻게 연결할지가 관건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유라시아를 최초 전략적 지역으로 선정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한국은 유라시아인가’라는 것과 관련된 정체성은 언급하지 않았다. 유라시아 끝에 위치한, 분단으로 ‘섬’이 된 한국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제안하는 것은 난센스일 수 있다. 유라시아공동체의 공생 공영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자원외교 중심의 정책과 불온한 경제주의와 개발주의에서 탈피해야 우리의 무대로 러시아 등을 끌어 들일 수 있다.
▲ 문 : 북한과 중국 기업 간에 ‘신의주-개성 고속철도·도로 건설’을 위한 합의서가 체결되지 않았나. 여기에 먼저 우리가 심혈을 기울였어야 했다. 남북 합작으로 진행됐다면 남한 기업에도 엄청난 이익이 될 수 있었다. 남북 관계가 원만했다면 ‘신의주-개성간 철도·도로 건설 사업’은 남북 합작으로 진행됐을 사업이다.
‘신의주-개성간 고속철도·고속도로 건설 사업’은 신의주-평양-개성 사이에 시속 200km 이상의 복선 고속철도 및 왕복 8차선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남북경협 중단으로 인해 북한 경제의 중국 예속화에 대한 우려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북한 노동자 8만명 이상이 중국으로 송출되고 지하자원의 97%가 중국으로 유출되고 있다. 여기에 한반도의 기간산업인 주요한 국책사업까지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중국과 수교한 것이 우리 경제를 버티는 큰 힘이 됐던 것처럼 이제라도 북한과 경제협력을 재개해야 한다. 대륙으로의 진출이 침체된 우리 경제의 탈출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과의 경제협력은 우리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 정성장 : 러시아를 잘 봐야 한다. 철도를 통해 유라시아 경제공동체 통합을 주도하겠다는 것이 러시아의 목표다. 러시아 지도자는 반드시 시베리아횡단철도를 언급하고 철도의 미래가 러시아의 미래다고 강조한다. 푸틴 대통령은 친구인 블라디미르 야쿠닌에게 러시아 철도개혁을 맡겼다. 야쿠닌이 러시아 철도의 르네상스와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의 르네상스를 이끌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화물을 운송할 때 어떤 경로로 갈 것인가를 놓고 각국이 경쟁하고 있다. 철도가 통과하는 지역의 산업 발전과 운임 획득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러시아, 몽골, 중국이 철도를 활성화하려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한국도 유라시아 철도를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한다.
중국횡단철도와 시베리아횡단철도 인프라는 러시아가, 경제성장 등 주변국과의 협력 강화 부분에선 중국이 앞서가고 있다. 유럽은 소련이 패권을 장악하면서 중앙아시아 진출이 힘들었었지만 소비에트연방 해체 이후 안정적인 교통로를 확보하려고 한다. 러시아는 이 같은 철도의 지정학적 관계를 어떻게 막고 영향력을 유지할 지를 고민하고 있다. 그러면서 중앙아시아가 거대한 공간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러시아는 철도 발전 전략을 북쪽으로 확장시키는 모양새다. 동쪽 자원을 개발해 근접한 한국, 일본 등에 수출하는 경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답은 나왔다. 박근혜 정부가 변해야 한다. 북한, 러시아와의 관계 변화가 관건이다.  
▲ 정욱식 : 우선 분단 상황을 넘어서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남북관계 개선의 실천적 의지가 결여되어있는 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헛구호에 불과하며, 외교적 언사에 불과하다. 주변 국가도 이를 공감할 것이다. 시베리아횡단철도는 러시아의 것이 아니다. 재원은 프랑스가, 우수리철도는 조선인 인력이 만들었다. 시베리아횡단철도를 연결하는 것은 철도 인프라 연결 이외에도 한국이 잃어버린 절반의 역사, 고려인 러시아 이주 150주년을 맞아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철도를 통한 극동 시베리아 진출로 대륙국가로 귀환해야 한다. 섬 국가에서 탈피해 한반도 경제권의 복원과 국가발전전략의 ‘벡터’를 대륙으로 전환해야 한다. 자주적, 독립적인 전략이 만들어져야 하며 이를 위해 철도문제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 통일을 준비하려면 통일기금 조성도 절실해 보인다.
▲ 김 : 이런 상황에서 통일기금을 논하는 건 당혹스럽다. 남북관계 개선과 북방경제 부활이 우선이다. 그것이 전제되고 통일기금을 논해도 늦지 않다. 사실 남쪽에선 내부성장 동력 찾기가 힘들다. 노동력은 줄어들고 생산성과 투자는 늘어나지 않고, 성장률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OECD가 분석한 것을 보면 2030년대가 되면 0%가 된다. 성장 동력이 완전히 꺼진다는 얘기다.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암담한 장래예측이다. 어디선가 출구를 뚫어야 하는데 이게 바로 북방경제다. 북방경제는 말로 되는 게 아니라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대전제는, 남과 북이 대결하면 북방경제를 펼 수 없다는 것이다. 남과 북이 돌린 등을 다시 되돌려서 악수해야 한다. 그리고 이미 세 가지 기초인프라를 깔아 놨다. 동쪽과 서쪽에 도로연결이 돼있다. 철로를 이어놨고, 개성공단에서 물건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인프라가 있고, 이것을 다시 가동하면 바로 북방경제에 시동이 걸리는 것이다.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 철도가 갈 수 있게 만들면 우리의 경제적인 기회, 경제영토가 확 넓어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한 대전제가 지난 6년간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를 풀어내는 것이다. 이것은 화해와 협력으로 전환할 의지가 대통령에게 있느냐, 참모들이 이런 생각을 대통령께 조언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 문 : 우선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해 동북아 집단안보기구로 동북아안보협력회의를 결성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한반도 주변국가들과 남북한이 ‘동북아 평화조약’을 동시적으로 서명 및 선언할 수 있도록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추진해야 한다.
경제통합 단계에선 개성공단과 대칭적인 남한지역 내 ‘장단면 남북한 경제특구’ 등을 설치해 남한뿐만 아니라 한반도 주변을 포함한 세계 모든 국가들의 투자를 유치하고 남북한 경제교류 활성화와 동시에 동북아의 평화 및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 이른바 ‘동아시아 경제공동체’의 메카로 자리매김할 수 있어야 한다. 통일기금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니다. 이런 준비단계와 경제통합 단계를 거치면 사실상의 통일을 이루게 될 수 있다. 여기에 덧붙인다면, 남북의 사회통합을 위해선 남북한 주민들을 위한 사회보장기금을 확충해야 한다.

- 끝으로, 2014년 남북관계 어떻게 예상하나. 그리고 통일이 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 김 : 통일의 과정을 망각한 ‘통일대박론’은 ‘급변사태 임박론’이거나 ‘급변사태 대망론’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안 그래도 일부 언론에선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 정세의 불안정성을 계속 강조하면서 마치 북에 정변이나 급변사태가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지 않는가. 그러기에 더더욱 ‘통일대박론’에 대한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북한 정변설’이나 ‘대규모 망명설’ 등은 급변사태에 대한 주관적 기대와 희망을 앞세운 나머지 객관적이고 냉정한 현실인식을 부정한 대표적 사례들이었다. 통일은 대박이지만 이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지난한 과정이 반드시 요구된다. 당장에 통일이 완성된 것처럼 통일 이후의 장밋빛 청사진과 거창한 경제적 효과만을 강조해선 안 된다. 통일이 한국경제의 신 성장 동력임은 김대중 정부의 북방경제론, 노무현 정부의 평화경제론과 연속선상에 있다. 이런 점을 박근혜 정부가 염두에 둬야 한다. 
▲ 문 : 지난해 12월 북한 정권 2인자로 불리던 장성택이 국가전복음모 혐의로 처형되면서 한반도는 물론 국제사회에 큰 충격과 파장을 던졌다. 북한은 장성택 처형 이후 김정은 유일영도체제를 강화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군이 다시 전면에 나서는 ‘선군정치’로 회귀했다. 이런 가운데 남북관계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3~4월에 한미군사훈련이 예정돼 있다. 또 6월은 지방선거가 있기 때문에 적어도 올 상반기까지는 남북관계가 현상 유지 정도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 정성장 : 정부가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북한의 ‘급변사태론’이다. 이것의 오류는 봉쇄와 압박이 북한의 붕괴를 촉진한다는 잘못된 접근이었다. 북한의 수령제는 사방에 포위되어 있다는 이른바 ‘피포위 의식’의 산물이고 이를 형성하는 주요한 배경은 적대적 대외환경이다. 오히려 압박과 봉쇄는 북한의 수령제를 정당화하고 강화하고 재생산하는 데 기여한다. 지구상의 모든 독재체제는 봉쇄와 압박이 아니라 개방과 교류에 의해 내부적으로 변화가 시작된다. 북한 역시 교류와 협력을 강화할수록 수령제의 존재기반이 완화 내지 해제된다.
화해와 협력을 거부하고 제재와 압박으로 급변사태를 촉진할 수 있다는 잘못된 접근은 결정적으로 급변사태 이후의 우리 주도권과 평화통일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오류를 갖고 있다. 급변사태가 발생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급변사태 ‘이후’이다. 급변사태 이후 북한 주민과 엘리트가 자발적으로 한국과의 통일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대북 압박과 강경 정책은 상호 적대와 대결을 강화함으로써 급변사태가 도래한다 해도 북한 구성원의 마음을 열기보다 굳게 닫을 것이다. 독일 통일이 위대한 것은 흡수통일 해서가 아니라 동독 주민이 스스로 자발적으로 서독으로의 통합을 원한 것이었다. 그 결과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평화적으로 비폭력적으로 흡수통일을 이룬 것이다. 봉쇄와 압박은 북한 주민의 마음을 사지 못한다. 화해와 협력만이 북한 구성원의 마음을 살 수 있고 결국 우리가 주도하는 평화적 통일이 가능해진다.
▲ 정욱식 : 박근혜 정부의 ‘통일대박론’이 북한의 ‘급변사태 희망’이라는 말과 짝패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급변사태 임박론’은 이미 여러 번 그 정세인식의 저급함과 잘못됨이 지적돼왔다. 무엇보다 지금 ‘급변사태 임박론’은 당장의 북한 정세와 부합하지 않는 비현실적 진단이다. 장성택 처형 이후 권력 엘리트간 분화와 균열의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형성되고 있지만 당장 급변사태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동구라파 체제전환의 필요조건이었던 주민들의 저항과 엘리트의 균열 및 소련의 해체라는 대외조건 등이 아직 북에게는 충분히 마련돼 있지 않다. 불만이 있을지언정 집단행동은 불가능하고 시민사회의 맹아도 미형성이며 김정은을 정점으로 하는 수령 영도체제가 지배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엘리트의 균열도 이제 가능성이 씨를 뿌린 것이지만 정치변동과 체제전환을 결과할 정도의 확실한 권력투쟁은 아직 시기상조다. 중국의 성장과 G2로의 부상은 북한의 급변사태를 제어하는 대표적인 대외환경이다. 그러니 통일이 대박 되려면 급변사태에 대한 고민은 일단 접어둬야 한다. 정 급변사태를 바란다면, 먼저 남북관계 개선과 인도적 지원 등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사야 한다.  


정리: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