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대혼란’



건설업계가 패닉 상태다. 손에 쥔 성적표는 역대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려했던 실적이 악화했고 자금난과 비리 등 악재가 이어지면서 갈 길 바쁜 건설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해외 사정도 희망적인 것은 아니다. 신흥국 금융불안 위기로 건설사들의 긴장도는 더욱 커지게 됐다. 내우외환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건설업계에 2014년은 위기의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건설업계의 최대 문제는 실적이다.
건설업종에서 유일하게 우량주로 꼽히던 대림산업이 작년 4분기 영업적자를 보고한 데 이어 대우건설 등은 작년 연간 실적이 줄줄이 적자 전환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동 등에서 저가수주 늪에 빠진 삼성엔지니어링, GS건설 등도 지난해 대규모 적자가 예상된다. 비상장회사인 SK건설은 3분기에 이어 4분기도 적자를, 현대산업개발은 3분기까지 흑자였지만 아파트 공사 손실 등 탓에 작년 연간실적으로 적자 전환이 예상된다.

삼성물산은 4333억원의 흑자로 비교적 양호한 성적을 거뒀지만 전년보다는 11.6% 줄어든 성적표를 받았다.

‘도덕적 해이’ 꽝!

실적쇼크에 이어 갖가지 악재도 건설사들을 압박하고 있다.
대우건설은 로비 등 각종 비리에 연루된 관계자들의 죄가 최근 법원에서 입증되며 고개를 숙였다. ‘주인 없는 회사의 도덕적 해이’라는 비난은 더욱 뼈아프다.

포스코건설은 정동화 부회장이 차기 포스코 회장 자리에 낙마하면서 교체설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현장 여직원이 30억원가량을 횡령한 것도 모자라 이를 축소, 은폐했다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해 저가수주에 따른 실적악화로 일 년 내내 몸살을 앓았던 GS건설은 올 상반기까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실적악화에 이은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공통의 숙제는 건설사들이 반드시 넘고 가야할 과제다. 실제 4월은 회사채 만기가 대거 몰린 터라 설 이후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증권업계에서도 대형 건설사의 잇따른 실적 악화로 건설업계 전반에 대한 신용등급 강등 등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반면, 실적 증가와 해외시장 재진출 등 희소식도 있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전년보다 4.3% 증가한 7929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현대산업개발은 1991년 말레이시아 사바주 간선도로 공사 만료 이후 23년 만에 해외진출에 성공했다.
건설사들은 이 같은 악재를 실적으로 극복하겠다는 계획이다. 과당경쟁으로 지난 2009~2010년 저가 수주한 해외공사 실적 반영이 길어도 상반기에 대부분 마무리된다는 이유에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2011년부터 해외플랜트는 컨소시엄 형태로 입찰해 위험 분산 사례가 늘었다. 2011년 이후 수주 공사가 실적에 반영되는 올해부터는 실적개선이 예상된다”며 “실적 개선이 현실화하면 자연스럽게 자금난 우려도 불식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잠재손실’ 집중 처리

대형건설사들이 앞으로 발생 가능한 잠재적 손실을 지난해 실적에 앞당겨 반영하는 등 선제적 리스크관리를 통한 내실경영 강화를 위해 빅배스(big bath)에 나선 것도 주목할 만 하다.
빅배스(big bath)는 ‘목욕을 철저히 해서 몸에서 더러운 것을 없앤다’는 뜻에서 유래된 말로 잠재손실 등을 한 회계연도에 몰아 처리하는 회계기법이다. 일반적으로 실적이 시장기대치를 크게 밑돌아 충격을 동반하지만, 한꺼번에 부실을 털어낸 효과로 다음해에는 뚜렷한 실적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원자재가격 상승으로 원가율이 높아진 사업장을 비롯해 금융비용 부담이 늘어난 미착공 사업장까지 향후 수익이 불투명한 곳을 모두 추려내 지난해 실적에 선반영하면서 당장 보다는 미래를 염두에 둔다.
분양시장에서 매매시장으로 온기가 확산되는 등 최근 주택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업체들의 빅배스 행보는 올해 실적개선에 청신호를 켜는 ‘약’이 될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주요 건설사들이 대부분 적자로 나타났지만 앞으로 실적개선에 발목 잡힐 만한 암초들을 미리 걷어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의견이 적지 않다.
대림산업은 자재값?인건비 상승, 자재물량 증가 등으로 원가율이 최고 110% 선까지 높아진 해외사업장 3곳의 4427억원을 포함해 총 5359억원을 지난해 4.4분기에 손실로 처리해 모두 털어냈다.

공사단계별로 대금을 받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초과된 공사비용을 받아낼 수도 있지만 한꺼번에 손실로 잡고 미리 반영한 것이다. 따라서 향후 발주처에 보상을 요구하는 클레임을 제기해 손실처리된 금액이 들어오면 영업이익으로 잡히게 된다.

대우건설은 미분양뿐 아니라 첫 삽을 뜨지 못한 미착공사업에 대한 잠정손실까지 추산해 대손충당금으로 쌓는 등 깐깐한 잣대로 지난해 실적을 집계 중이어서 영업이익의 경우 적자로 돌아설 전망이다.

‘신유망시장’ 흔들

때문에 업체들의 ‘빅배스’를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의미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지난해 실적악화가 올해 실적개선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이유다. 부동산경기 장기 침체로 그동안 털어내야 할 손실이 적지 않았지만 과감하게 반영할 타이밍을 찾지 못했는데 지난해 대부분 반영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난해 GS건설이 가장 먼저 총대를 메고 험난한 길을 지나오면서 건설업계 전반에 미분양 등 잠재적 손실까지 모두 털고 가자는 기류가 강해졌다. 대림산업 등이 수주에서 준공까지 보통 4~5년이 걸리는 해외공사도 5년 후 손실을 추산해 실적에 반영했을 정도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건설사들이 매우 보수적으로 손실을 집계하고 있다”면서 “중요한 것은 국내 건설업계 경기가 되살아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아르헨티나 위기가 신흥국 금융 불안으로 고조되면서 또 다른 변수로 떠 오르고 있다. 최근 중남미 시장에 진출하고 있는 건설업계들은 촉각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중남미 지역을 신유망시장으로 꼽았던 건설업계는 이번 신흥국 금융 불안으로 자칫 수주 동력을 잃을까봐 우려하는 분위기다.

중남미 지역의 지난해 건설수주액은 총 33억3000만달러로 전체 해외수주액(652억달러)의 5.1% 수준을 차지했다. 2007년 3억달러에 불과했던 중남미 시장이 6년만에 10배 이상 성장한 셈이다. 중남미 국가의 인프라 시설이 열악해 국내 건설업계들에게는 블루오션 시장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번 신흥국 금융위기 여파로 향후 수준전에도 제동이 걸렸다. 건설업계에서는 이들 국가에서 대부분 민자형 사업에 진출해 있기 때문에 당장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사태가 지속되면 공사대금 회수 등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금융사태가 다른 신흥국으로 확산되는 것도 걱정이다. 실제로 아르헨티나 페소화의 급락을 시작으로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터키, 브라질,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도 통화가 급락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현재 현대건설을 비롯해 포스코건설, SK건설, 삼성엔지니어링 등 국내 대형건설사들이 중남미 지역에 진출해 있다. 이들 업체들이 진행 중인 공사규모는 총 184억달러에 이른다.

이 중 현대건설은 중동지역 플랜트 중심의 수주에서 범위를 넓혀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 브라질, 에콰도르 등 중남미로 해외 시장을 다변화하고 있다.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 등에서 총 23억 달러 규모의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포스코건설은 지난해 말 브라질 철강회사인 CSS사가 발주한 6억달러 규모의 제철 플랜트 건설 공사를 수주하는 등 브라질과 칠레에서 54억 달러 규모의 공사를 진행 중이다.

SK건설도 에콰도르 정유공장 프로젝트 및 파나마 최대 화력발전소, 칠레 석탄화력발전소 공사 등 9억달러 규모의 정유플랜트와 발전소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달 초에는 삼성엔지니어링이 4억4000만불 규모 화력발전소 공사를 수주하며 칠레 시장에 첫 진출하기도 했다.

건설경기 침체 장기화를 뒤로하고 ‘목욕하기’에 나선 건설사들이 2014년 한 해를 ‘재도약의 해’로 만들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김범석 기자 kimb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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