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송전탑공사 현장> 잇따르는 불법공사에 인권침해 사태



“헬기 소리 때문에 미치겠다. 농성장이 아닌 집 안에 있어도 괴롭다.”
밀양에선 송전탑 공사 건설을 두고 여전히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재개된 밀양 송전탑 공사 현장, 경찰과 주민들의 대치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한국전력은 경찰의 비호 아래 공사속도를 높이고 있고, 주민들은 결사적으로 막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이 경찰의 방패를 넘어서긴 역부족이다. 공사를 막다가 연행되거나 병원에 실려 가는 주민들도 늘어나고 있다. 정부와 한전이 주민들의 생명까지 무시하고 공사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국가인권위원회가 밀양을 찾기도 했다. 
송전탑 공사가 총체적으로 불법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전은 환경영향평가를 받지 않은 채 30곳의 공사현장에 헬기를 동원했고, 공사 면적도 환경영향평가 때보다 갑절로 늘린 것으로 드러났다. 관리감독 해야 할 정부 역시 이를 사실상 용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주민들은 귀청을 찢을 듯한 헬기 소음에 극한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한편 2012년 이치우 씨가 분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건설 반대가 극심했던 보라마을의 보상안 합의를 두고도 한전과 밀양송전탑공사 반대 대책위의 진실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해를 넘겨 9년째 마찰을 빚고 있는 밀양 송전탑 갈등은 이처럼 여전히 해결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밀양에선 잇따른 공권력의 폭압적 침탈 아래 몸싸움을 하다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간 주민들이 부지기수다. 여전히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이들도 많다. 지난달 주민과 경찰의 대충돌에 이어 지금까지도 극한의 대치 상황은 이어지고 있다.

주민 대부분은 60대 이상의 노인들이다. 주민들은 “늙은 노인들이 무슨 힘이 있겠느냐.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드러눕기까지 하지만 결국은 경찰들 손에 들려가고 끌려가고 만다”며 “도대체 정치권은 왜 아무런 대답이 없느냐. 왜 계속해서 기만하고 있느냐”고 토로하고 있다. 주민 오모(69. 여) 씨는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주민들은 24시간 현장을 지킬 수밖에 없다”며 “몸이 경직돼 경찰과 충돌하면 부상자가 늘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한전, 헬기 불법으로 띄워”

주민들은 최근엔 송전탑 공사장으로 자재를 실어 나르는 헬기 소음 때문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주민들은 “헬기가 마을을 지나갈 때마다 창문이 덜컹거리고 가슴이 벌렁 거린다”고 얘기한다. 헬기소리는 가축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밀양시 부북면의 박모(62. 남) 씨는 “헬기 소리에 소가 펄쩍펄쩍 뛴다. 한전에게 따지니, 법대로 하라고 한다. 분통이 터진다”고 토로했다. 박 씨는 “농성장에 가지 않고 집에서 쉬는 날도 헬기 소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헬기가 뜨기 시작하면서 주민들의 심리도 위축되고 있다”고 했다.

한전은 지난 2006∼2007년 환경부와 협의한 ‘765㎸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건설사업 제2구간 환경영향평가서’와 보완자료 등에서 밀양구간 3곳에서만 헬기공사를 하기로 했으나, 변경절차 없이 다른 곳에 불법공사를 벌여왔다. 이 같은 문제가 드러나자 한전은 산업통상자원부에 25곳에서 헬기공사를 하는 것으로 변경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이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환경부 산하 낙동강청은 문제가 불거진 이튿날인 지난달 29일 조사를 했고, 설연휴가 끝나자 산업부는 3일 낙동강청에 변경결과를 통보했다. 낙동강청은 그날 한전에 과태료 1000만원 부과 결정을 하고 공사중지 조치는 하지 않기로 했다. 민주당 장하나 의원은 산업부가 변경승인 통보와 함께 보낸 ‘환경보전방안 검토서’에 대해 “낙동강청이 내용 확인도 하지 않고 공사중지 조치를 무시했다. 내용을 보고 공사를 중지해야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주민들은 “불법인데 왜 헬기공사를 중단시키지 않느냐”고 성토했다. 주민 김모(69. 여) 씨는 “국회의원이 불법헬기공사 문제제기를 안 했으면 눈감고 귀 막고 있었던 것 아니겠느냐. 정치인들과 한전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닌지도 의심이 된다”고 한숨은 내쉬었다.





산외면 보라마을 이장 이종숙(73. 남) 이장은 “한전에 소음민원을 넣어서 얼마 전에 측정이 나오기도 했는데 작은 헬기가 뜨고 항로도 바꿔서 다니더라. 그런 형식적인 측정은 필요없다”며 “소음뿐만 아니라 실어 나르던 자재를 떨어뜨려 위험했던 상황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공사현장에선 하루 평균 160여 차례 헬기가 마을을 지나간다. 헬기소음이 80데시벨까지 측정되기도 한다. 공사장 등 소음이 65데시벨을 넘어서면 피해로 인정된다.

송전탑 반대대책위 이계삼 사무국장은 “삭도보다 돈도 많이 드는 헬기를 왜 쓰는지 궁금하다. 주민을 제압하려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 처장은 “이번 문제는 정부 부처가 환경영향평가 제도를 단지 공사강행을 위해 사업자인 한전에 면죄부를 주는 절차로 악용한 사례”라며 “헬기 운용 부분이나 특히 면적이 두 배로 늘어난 점이 환경과 생태, 주민들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제대로 다시 평가해야 한다. 일단 공사는 중단돼야 하고,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잇따르는 인권침해 사태

공사 현장의 인권침해 지적이 잇따르면서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5일 현장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한전 공사가 재개된 지 4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상임위원 2명과 비상임위원 1명을 포함한 인권위 조사단은 송전탑이 지나는 단장면 평리와 바드리마을, 동화전마을, 상동면 도곡마을 등 5개마을을 차례로 방문해 주민들에게 인권 피해사례에 대해 직접 들었다. 일부 주민들은 인권위의 현장 조사가 늦어도 한참 늦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동안 3번의 긴급구제 신청과 5건의 진정이 제기됐는데 뒤늦게 조사가 이뤄지는 것에 대한 원성이다.

주민들은 “경찰에게 한창 짓밟힐 때, 그렇게 도와달라고 해도 꿈쩍 않더니 이제 와서 뭐하자는 거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송모(54. 여) 씨는 “공사가 진행될 때 인권위가 왔어야 하는데 우리가 그렇게 요구할 때 꿈쩍 않더니 지금에서야 조사를 하면 우리는 뭐가 되느냐”고 말했다.

경찰의 과도한 통행제한과 공권력 남용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주민 고모(54. 남) 씨는 “공사현장과 멀리 떨어진 마을 입구에서부터 주민들을 막고 있는데 이것은 불법이다. 인권위에서 바로 잡아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마을은 비상계엄령 상태나 다름없다. 마을에까지 경찰이 항상 들어와 있다. 경찰이 농토에까지 나와서 농사지으러 가는 주민들에게 주민등록증을 요구한다. 우리나라가 법치국가 맞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경찰이 주민들을 막는 과정에서 수십명의 부상자가 나오고, 기본적인 생존물품의 반입조차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서모(67. 여) 씨는 “이미 주민들 중에는 환자가 100명이 넘게 발생했다. 이렇게 많은 환자가 발생했다면 가해자가 있을 텐데, 경찰이 잡아 주지를 않는다. 주민들은 조금만 반항해도 잡아간다”며 “반대한다는 의사가 있다는 이유로 주민들을 이렇게 짓밟아도 되느냐”고 토로했다. 그는 또 “경찰과의 대치 과정에서 경찰이 주민들의 이불도 빼앗고, 종이박스나 팔레트조차 반입을 못하게 막고 있다. 경찰이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테러리스트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현장 조사를 토대로 10일 전체 회의를 열고 인권침해 여부를 심의할 예정이다. 인권위는 심의 결과에 따라, 보고서를 작성하고 시정 조치 등을 권고할 방침이다. 김영혜 인권위 상임위원은 “주민들의 말을 잘 듣고 전달해 제대로 심의하겠다”고 밝혔다.




보상안 합의했다고?

한편 지난 7일 한전이 “송전탑 선로가 지나는 대상 마을 중 보상 미합의 마을인 산외면 보라마을이 보상안에 합의했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보라마을은 2012년 1월 주민 이치우(당시 74세) 씨가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며 분신자살하면서 한전과 갈등을 촉발시킨 송전탑 반대 강성 마을로 분류돼 왔다. 보라마을의 보상안 합의로 송전탑과 송전선로가 건설되는 밀양시 5개면 30개 마을 가운데 25개 마을(83%)이 보상안에 합의했다고 한전은 설명했다.

면별로는 단장면이 9개 마을로 가장 많고 상동면 6개, 부북면 4개, 청도면과 산외면이 각 3개 마을이다. 아직 합의 안된 곳은 상동면의 여수·고정·고답·모정마을 등 4곳과 부북면 평밭마을 등 모두 5개 마을이다. 한전은 세대별 지원금을 신청하지 않은 마을에 대해서는 마을공동사업비로 전환할 방침이다.

그러나 송전탑 반대대책위는 한전의 이 같은 발표에 대해 “이장도 주민도 모르는 도둑고양이 같은 합의”라며 반박하고 나섰다. 대책위 이계삼 사무국장은 “이장 등 마을 지도급 인사들을 제쳐두고 송전탑에서 멀리 떨어진 몇몇 주민들을 대상으로 ‘개별 보상금을 2배인 1000만원까지 올려주겠다’는 약속을 흘리면서 마을 여론을 분열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사무국장은 “분신사망 사고로 인해 가장 난공사로 평가되는 보라마을을 뚫기 위해 이런 수작까지 벌이고 있다”며 “주민들을 돈으로 분열시켜 서로 원수가 되게 하려는 악마적인 술책을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보라마을 이장 이종숙 씨는 “한전이 주장하는 합의는 주민 대표성이 없을 뿐 아니라 다수의 뜻과 다르다”며 “합의가 이뤄졌다면 작성된 합의서를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반면 한전은 “분명히 마을 대표들이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합의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향후 주민들의 대응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오진석 기자 ojs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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