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대필' 강기훈, 23년 만에 무죄 판결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1990년대 대표적인 조작사건인 유서대필 사건에 마침내 무죄가 선고됐다. 사건이 발생한 지 23년만의 일이다. 또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되었던 부림사건도 33년만에 무죄가 선고됐다.

재심 법원인 서울고법 형사10부(권기훈 부장판사)는 13일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간부였던 김기설씨의 자살을 부추긴 혐의로 수감생활을 했던 강기훈(50) 씨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유죄의 근거가 된 지난 1991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 감정은 신빙성이 없다. 당시 감정은 `ㅎ`, `ㅆ` 등 희소성과 항상성이 높은 필법 등이 필적 감정에서 제외됐다"며 국과수를 꾸짖었다.

유서대필사건의 발단은 1991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1년 4월26일 명지대생 강경대 씨가 시위 중 경찰로부터 집단구타를 당해 사망하자 전국적으로 정권을 규탄하는 시위가 잇따랐다. 그해 5월 8일 오전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 씨는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 자살했다.

검찰은 김 씨의 동료였던 강 씨를 배후로 지목했고,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김 씨 유서와 강 씨 진술서 등의 필적이 같다는 감정 결과를 내놓았다. 1992년 7월 대법원은 강 씨의 유죄를 확정했고, 강 씨는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만기 복역했다.

그러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7년 11월 국과수의 재감정 결과를 바탕으로 진실 규명 결정을 내렸다. 강 씨는 2012년 10월 대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으로 다시 재판을 받아왔다.





이번 무죄 판결로 후폭풍도 예상된다. 특히 1991년 당시 강 씨의 유서대필을 기정사실화하면서 강 씨에게 원색적 비난을 퍼부었던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과 보수세력의 향후 대응이 주목된다. 그 무렵 김지하 시인은 ‘조선일보’에 1면에 기고한 칼럼에서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우라"고 비난했고, 박홍 서강대 총장은 "연이은 분신에는 배후세력이 있고 확실한 증거도 갖고 있다"고 주장했었다.

한편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됐던 ‘부림사건’ 피해자인 고호석(58) 씨 등 5명에 대해 법원이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부산지법 제2형사부(부장판사 한영표)는 13일 고 씨 등 5명이 지난 2012년 8월 청구한 국가보안법 위반죄 등에 대한 재심 선고공판에서 “신뢰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부림사건’은 제5공화국 초기인 1981년 9월 ‘부산에서 일어난 학림사건’을 뜻한다. 당시 19명이 기소돼 징역 5~7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지난 1983년 12월 전원 형집행 정지로 풀려났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믿을 수 있는 증거가 없으므로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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