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류승연의 ‘아주머니’ 19화(아,직은 주,인공이 아니지만 머,지않아 니,가 세상의 주인공이 될 얘기)




과거를 돌아보면 풀리지 않고 묶여 있는 단단한 매듭이 몇 개씩 발견되곤 한다. 그 매듭은 풀고 가면 좋겠지만 굳이 풀지 않아도 별 상관은 없다. 그냥 매듭이 있는 채로 살아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난 매듭을 풀어가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택했다. 어떤 매듭은 아주 잘 풀렸지만 어떤 매듭은 오히려 더 꼬이게만 되었다. 매듭은 풀어야 하는지 놔둬야 하는지…. 어떻게 하는 게 정답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지난해 말부터 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예전보다는 시간적 여유가 생긴 덕분이었다. 내 자신의 이야기였다. 20대 나의 성장기.

25살. 난 인생 최대의 방황 중이었다. 첫사랑과의 이별 및 부모의 이혼. 내 인생은 암흑 그 자체였고 도무지 살아갈 희망이 없었다. 그래서 그 당시 막 꿈틀대기 시작하던 인터넷 자살카페를 찾았다.

죽기 위해 찾아간 카페였지만 결과적으론 그 카페가 나를 살렸다. 알고 보니 그 곳은 죽을 만큼 힘든 사람들이 모여 어떻게든 살아보려 발버둥 치던 곳이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내 두 번째 사랑이 시작됐다. 순정만화 속 고독한 남자 주인공의 전형 같은 모습을 한 그 아이의 아이디는 [creep]. 어쩜. 아이디마저도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nothing]이었던 나는 [creep]을 처음 본 순간부터 푹 빠져들었다.





2년 동안 카페 활동을 하면서 난 [creep]을 비롯한 그 곳의 사람들과 끈끈한 인간관계를 쌓았다. 모두 커다란 상처 하나씩을 짊어지고 있던 우리들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 의지가 남달랐다. 하지만 난 결국 2년 만에 그 곳을 떠나게 됐는데 그건 [creep]과 연루된 사각 관계에 휘말려 또 다른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멋있는 [creep]을 좋아하던 여자는 나 혼자가 아니었고, 프리섹스를 삶의 한 방식으로 여기고 있던 그 아이는 카페 내의 여러 여자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삼자대면, 사자대면. 분노와 독기와 배신. 그렇게 지저분한 흔적을 남기고 나는 그 곳의 사람들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리고 1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그 때의 일을 책으로 내고 싶어졌다.

아이들이 자는 시간을 이용해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처음 그들과의 만남. 그 때 느낀 감정. 그 때 나눴던 대화. 쓰다 보니 새록새록 밀려오는 그리움. 십년의 세월 속에 이미 미움은 희석되었고 추억만이 남았다.

글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현존하는 그들이었다. 그들의 아이디를 비슷한 다른 것으로 바꾸긴 했지만 그래도 언젠가 책이 나와서 우연히 보게 된다면 놀랄 것이었다. 내가 우리들의 일을 책으로 내려고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했다.

십년 만에 그 카페를 다시 찾았다. 거의 폐가처럼 활동을 안 하는 카페. 하지만 모두는 그 곳에 있었다. 1년에 한 두 번씩 소식을 전하면서도 우리는 서로를 그리워하며 모두 그 곳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creep]의 마지막 작별 인사를 보게 되었다.

지금 독일에 가 있고 그 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며 이제 그만 모두에게 안녕을 고할 때인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우리에겐 암묵적인 룰 같은 것이 있었다. 더 이상 불행하지 않고 행복해지는 때가 오면 그 카페를 떠난다는 것이었다.

그래. 이젠 너도 행복해져서 떠나는구나. 웃음이 났다. 기뻤다. 나는 주저 없이 [creep]에게 메일을 보냈다. [nothing]이 [creep]에게 보내는 마지막 작별인사였다. 생각해보면 난 그 아이에게 작별인사를 한 적이 없었으니까.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우리 대화의 마지막은 분노에 찬 나의 막말이었을 터였다.

십년 만에 카페를 찾았고, 너의 마지막 글을 발견했고, 이젠 행복해져서 떠나는 너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려한다. 사랑이었나는 모르겠지만 내 인생 두 번째 남자였던 것, 많이 좋아했던 것은 확실하다. 그 당시 내가 많이 좋아할 수 있게 멋있는 ‘척’ 해줘서, 멋있어서 고마웠다. 이젠 더 이상 그 곳이 필요하지 않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그 당시 [creep]으로, [nothing]으로 있어서 행복했다.

수신확인은 금방 했는데 답장은 2주일이 지나서야 왔다. 여러 번 답장을 썼지만 그 때마다 다시 지우기를 반복했단다. 과거 일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나의 행복을 기원하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내 매듭 중 하나가 풀렸다. 더 이상 나는 내 두 번째 사랑을 기억할 때마다 상처입지 않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과거를 소환해서 매듭을 풀어보려는 행위가 항상 잘 되는 것만은 아니다. 아빠하고의 관계에서는 그랬다. 오히려 더 단단히 꼬여버렸다. 평소에는 자각하고 지내지 못하지만 무의식의 나는 아빠에게 잔뜩 골이 나 있는 상태였던가 보다.
과거 엄마와의 이혼. 아빠는 엄마와의 이혼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자식을 비롯한 우리 가족을 버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아빠는 그 당시 갖고 있던 그 많은 돈을 다 탕진하고 4년 만에 엄마와 다시 재결합해서 잘 살고 있지만, 그래도 부모로부터 한때나마 버림받았다는 생각은 영 지워지지 않는다.

이번 구정 연휴에 친정에 2박3일 간 머무르면서 일이 터졌다. 야채를 안 먹는 우리 딸. 초등학교 교사인 엄마가 나섰다. 외갓집에 머무르는 동안 잘못된 식습관을 고쳐서 보내겠다며 매를 식탁 옆에 두고 밥 먹을 때마다 전쟁을 치렀다.

아이가 울고 엄마가 소리 지르기 시작하자 방에 있던 아빠가 뛰어나왔다. 왜 아이를 윽박지르느냐고 화를 내며 아이를 안아든 채 밥상을 발로 걷어찼다. 엄마의 분노는 폭발했고 우리 딸로 인해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부부싸움이 시작됐다.

하지만 복병은 따로 있었다. 바로 나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아빠가 상을 발로 엎는 순간 이성을 상실했다. 내가 살았던 친정. 그 곳에서 다시 시작된 부부싸움. 나의 시계는 순식간에 째깍거리며 과거로 돌아갔다. 아빠와 엄마의 이혼으로 매일 조용할 날이 없었던 20대의 그 시간으로.

나는 아빠에게 대들기 시작했다. 엄마가 어떤 잘못을 했든 간에 상을 발로 엎는 폭력적인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바락바락 악을 쓰며 아빠에게 분노를 토해냈다.

아빠는 놀랐고 당황했고 화가 났다. 어디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드느냐며 비키라고 했지만 나는 비켜서지 않았다. 저리가라며 나를 미는 아빠의 팔을 한 손으로 잡아 밑으로 휙 뿌리쳤다.

그랬다. 이젠 나는 연약하고 유약한 20대 여자애가 아니라 억세고 드세고 뚱뚱하게 살이 쪄 힘도 아주 세진 30대의 아줌마였다. 내가 뿌리친 힘에 아빠는 두 번 놀랐다. 그리고 절망했다. 자식이 부모를 구박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20대의 시간 속에서 헤매고 있던 나는 아빠에게 그 당시 할 수 없었던, 하지만 하고 싶었던 모든 말을 다 토해냈다.

만약 이 장면이 드라마에서 나왔다면 상처를 간직한 딸이 부모 앞에서 과거의 상처를 터트리고, 충격 받은 부모가 울음을 터트리고, 서로 껴안고 어루만지며 청승을 떨었겠지만 현실에선 달랐다.

아빠는 죄인이 됐고, 나는 불효막심한 자식이 됐고, 싸움의 원인을 제공한 엄마는 안절부절 했다. 결과도 달랐다. 서로를 용서하는 가족애는 없었다. 나는 아빠에게 절교를 당했다. 자식으로 생각하지 않을 테니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는 게 아빠의 마지막 말이었다.

올해 들어 나는 두 개의 과거를 소환했다. 하나의 매듭은 잘 풀렸고, 하나의 매듭은 오히려 더 복잡하게 얽혀버렸다. 과거의 매듭을 풀어가며 사는 게 맞는지, 아니면 그냥 못 본 체 하고 마음에 담아 둔 채 계속 살아가는 게 맞는지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알 것 같다. 다른 일에 관련해선 매듭을 풀어보려 시도해도 되지만, 가족 간의 문제에선 건드리지 않고 그냥 묻어두는 게 더 좋을 것도 같다.

친구의 시어머니가 이번 명절 때 했다는 말이 떠오른다. “진실은 모두를 불행하게 하니 진실을 묻지도 말고 알려고도 하지 마라”. 지금 와서 생각하니 명언인 것도 같고….

어찌 되었든 나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과거를 청산하기도 하고, 과거의 일을 현재로 가져와 더 꼬이게도 하면서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고는 있다. 어차피 인생에 해답은 없을 테니 일단 더 살아보면서 고민해보련다. 

<류승연 님은 정치부 기자 출신입니다. 현재는 두 아이를 키우며 전업주부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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