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지음/ 느린걸음






15년의 유랑 길이었다. 국경 너머 분쟁 현장과 빈곤 지역을 두 발로 걸어온 박노해 시인. “사랑하다 죽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사랑 없이 사는 것은 더 두려운 일이지요.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지요.” (2011년 아프가니스탄 국경마을에서) 그가 흑백 필름 카메라와 오래된 만년필로 기록해온 ‘유랑노트’가 출간되었다.

박노해 사진에세이 『다른 길』에 담긴 세계는 넓고도 깊다. 티베트에서 인디아까지, 지도에도 없는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 땅의 이야기가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사진집 이상의 사진집이자 시와 같은 이야기가 빚어낸 지상의 아름다운 책 한 권, 『다른 길』은 마치 정성이 가득 담긴 친구의 초대장처럼 저 멀고 높고 깊은 마을과 사람들 속으로 나를 안내한다. 삶이 흔들릴 때마다 아무 곳이나 펼쳐보는 순간, 가만히 내 마음의 깊은 곳에 ‘별의 지도’가 떠오를 것이다.

사진 에세이 『다른 길』에서 박노해는 ‘아시아’로 초점을 맞춘다.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대륙을 건너 지난 3년간 아시아 전역을 기록한 흑백 필름 사진은 무려 7만여 컷. 3년의 작업이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 방대하고 다양하다. 『다른 길』에는 인류 정신의 지붕인 땅 티베트에서부터 예전에는 천국이라 불렸으나 지금은 지옥이라 불리는 파키스탄을 거쳐 극단의 두 얼굴을 지닌 인디아까지, 나아가 버마, 인도네시아, 라오스 등 총 6개국의 엄선된 140여 점의 사진이 실렸다.

박노해의 사진 속 아시아는 ‘눈물의 땅’ 아시아도 아니며, 신비화된 ‘오리엔탈’의 아시아도 아닌 전혀 새로운 모습이다. 박노해는 슬픔의 힘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강인한 생명력으로 소생하고 있는 아시아인의 삶을 담아냄으로써, 정직한 절망 끝에 길어올린 ‘희망의 세계관’을 제시한다.

정리 이주리 기자 juyu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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