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 기획 : ‘귀농 열풍’ 그 현장을 찾아서-33> 강원도 화천의 김형중 씨



귀농바람이 한창이다. 귀농 붐은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비롯됐다. 1970~1980년대 산업화의 역군으로 ‘차출’돼 탈농을 이끌었던 이들 세대 중 많은 사람들이 농촌으로 회귀해 ‘인생 2모작’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도시생활에 회의를 느낀 30~40대까지 귀농에 가세, 농촌에서 제 2의 인생을 꿈꾸는 귀농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귀농인들은 주로 소일거리를 통한 활력 회복, 전원생활에 따른 신체적·정신적 건강 추구 등을 이유로 농촌행을 결심하고 있다. 물론 생계수단으로 귀농을 택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성공하는 건 아니다. <위클리서울>은 도시에 살다 농촌으로 들어간 이들이 귀농을 결심하게 된 계기, 이후의 생활 등을 들어봄으로써 귀농의 현실을 짚어보기로 했다. 이번호에는 7년 전 강원도 화천으로 귀농한 김형중(43) 씨의 생활 속으로 들어보았다.
 







김형중 씨는 2007년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으로 귀농했다. 정착 초기부터 지금까지 감자와 고추 등을 주 작목으로 키우고 있다. 처음엔 크고 작은 태풍과 폭설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지만, 선배 귀농인들의 도움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농사지으면서 느낀 게 많아요. 저는 귀농하자마자 어려움부터 겪었어요. 태풍도 잦았고, 지역이 지역이니만큼 겨울엔 눈도 자주 내렸죠. 그렇게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상태에서 하늘까지 도와주지 않아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죠. 그저 동네 어른들 농사짓는 거 곁눈질 하면서 따라하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하지만 귀농 2년차부터는 선배 귀농인들과 자주 접촉하면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친환경 농법이 살길

기후도 기후지만 가장 어려운 건 농법, 즉 농사짓는 법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애초 관행농법을 지양하고, 친환경농법을 추구했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곳 주민들은 화학비료와 농약을 많이 쓰더라고요. 이왕 시작한 거 제초제 등을 배제하고 농사를 짓고 싶었어요. 다행히 고추는 몇 해간 땅 다듬은 뒤 3년 전부터 친환경으로 키우고 있습니다. 올해엔 친환경 정식 인증도 받아보려고요.”
햇수로 8년차지만 집을 빼고 김 씨 명의로 된 땅은 아직 없다.

“이웃들과는 귀농 초기부터 친하게 지냈어요. 잡음 같은건 없었죠. 처음 와서 집을 지을 때도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20~30가구 정도 되는 마을인데 대부분 연세가 많으세요. 70~80대죠. 다들 빠듯하게 자기 땅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죠. 아마 이 분들 중 몇몇이 은퇴하시면 저한테도 돌아오는 땅이 좀 있지 않을까요.”





초기엔 주민들보다 먼저 귀농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았다.

“사실 많이 외로웠어요. 농사법도 모르는데다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하니까 말이죠. 그렇다고 주민들이 서운하게 했다는 건 아닙니다. 처음부터 허물없이 다가설 순 없잖아요. 소외되는 부분이 있죠. 그런 부분에서 귀농운동본부 등에 소속돼있는 선배 귀농인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주민들과의 관계를 떠나 초기엔 어쩔 수 없이 거쳐 가야 할 통로인 것 같아요. 지자체도 도움을 많이 주더라고요. 지자체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조금만 시간을 내고 부지런히 노력하면 얼마든지 농업 기술을 배울 수 있어요.”

귀농하기 전까지 그는 서울에서 영어강사 생활을 했다. 그러다 그저 자연이 좋아서 연고도 없는 이곳 화천으로 귀농하게 되었다. 

“귀농하기 전까지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여름휴가 때 대학 선배가 있던 화천으로 놀러오곤 했었죠. 선배는 이미 젊은 시절 귀농해서 전문 농부가 다 되어있었죠. 그렇게 놀러 와서 밭도 가꾸는 등 농촌 생활을 잠시 경험해봤더니 재미가 나더라고요. 원래 여행을 좋아하고 또 산과 들을 좋아해서 언젠가는 귀농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일부 다른 이들처럼 건강이 나빠져서 귀농한 것도 아니에요. 화천에 우연히 들렀다가 그냥 말뚝 박기로 결심하게 된 겁니다. 강원도는 워낙 산세가 좋잖아요. 공기도 물도 좋지요.”

때론 도시생활이 그립기도 하지만 탁한 공기를 떠올리면 금세 고개가 저어진다. 지난해엔 도시에 사는 친구들이 김 씨네로 휴가를 와 뜻있는 여름을 보내기도 했다.

“가끔 일 있을 때면 서울에 나가기도 합니다. 요즘은 교통편이 좋아서 이동하는데도 그리 불편하지 않아요. 하지만 특별한 일 없으면 농사일에 모든 힘을 쏟지요. 지난해 여름엔 가족 단위로 친구들이 놀러와 난리도 아니었어요. 직접 키운 토종닭도 잡아먹고 산과 강, 들에서 모처럼 실컷 즐기다 돌아갔죠.”






진짜 농군으로 거듭나고파

화천엔 김 씨보다 젊은 초보 귀농인들이 많다. 자신도 어느덧 이들에겐 귀농선배가 되었다. 패기로 똘똘 뭉친 후배들 덕에 이제는 선배들이 오히려 도움을 받는다.

“영농후계자 덕목을 고루 갖춘 패기 있는 젊은 친구들이 많아요. 덕분에 나름 실험적이면서도 특별한 비법들을 시도해볼 수 있고, 특별한 작물도 재배해보고 그러죠. 다 같은 초보들이지만, 젊은 사람들 창의력 앞에선 선배들이 못 당해요. 오히려 배우는 게 많죠. 게다가 다들 성격이 시원시원하니 좋습니다. 잡일, 궂은일도 도맡아서 해요. 보기 좋습니다.” 

아직 농사엔 서툴지만 김 씨는 이처럼 농촌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한편으론 농촌 인심이 예전 같지 않은 점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다. 

“저도 어렸을 때는 농촌에서 살았어요. 도시생활을 오래하다가 수십년이 흘러 다시 내려와 봤더니 농촌도 굉장히 많이 변한 걸 알게 됐어요. 자본주의의 영향력이 농촌까지도 깊이 확산돼있어요. 옛날 농촌의 그 인심을 기대해선 안 돼요. 거의 모든 것들이 돈과 연결되더라고요. 물론 그럼에도 아직까지 도시보단 인심이 낫지만…. 하긴 다 자기 탓입니다. 미운 정, 고운 정, 모두 자기 탓이죠.”





최근의 ‘귀농 열풍’은 올바른 현상이면서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인데, 정말 귀농하고 싶다면 미리 공부를 좀 했으면 합니다. 농촌현실에 대해 잘 알아야 하죠. 토지 문제 등도 그렇고 모든 면에서 디테일하게 1년이고 2년이고 준비한 뒤 내려오면 시행착오가 줄어들 것 같아요. 저만 봐도 그래요(웃음). 저는 준비를 거의 못하고 갑자기 내려왔거든요. 때문에 아직까지 제 명의로 된 농지가 없죠. 그저 마을 어르신들이 농사일에서 손 놓을 날만 기다리고 있죠.”

현재 농촌의 많은 농가들은 빚에 허덕이고 있다. 김 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귀농 생활의 만족도와 별개로 빚 문제로 고민이 많다고 했다. 

“결혼하기 전부터 지금까지 빚에 허덕이고 있죠(웃음). 도시에도 집 때문에 빚이 있었고, 집을 내놓고 귀농을 했는데도, 당장은 벌이가 시원찮아 빚에 시달리네요. 그래서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살려고 해요. 다행히 국가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에겐 빚 상환 부담을 덜 줘요. 예를 들어 5년 거치에 10년 상환 식으로 돈을 갚아나갈 수 있으니 부담이 덜 되는 편입니다.”





마을에 활력 넘쳐났으면…

경제적인 문제가 고민이지만 전반적으로 이곳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는 김 씨. 빚은 사실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며 멋쩍게 웃었다.

“집사람은 잘 모르겠는데, 저는 만족도가 높아요. 빚이야 제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농촌 사회 전반의 문제고…. 일이 고될 때가 있지만 빚 때문에 시달리진 않아요. 주민들이나 귀농 선후배들과 잘 지내고 농사일도 만족스럽습니다. 많이는 못 벌어도 재미있어요.”

농촌 사회는 과거부터 늘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려왔다. 김 씨는 우리 농업과 농촌이 살 길은 ‘친환경농법의 활성화’라고 강조했다.

“기존 70대 이상의 주민들은 친환경농법에 관심이 없어요. 사실 저도 지금까지 농약 안치고 일해 보니까 리스크에 대한 부담이 있어요. 하지만 극복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FTA 때문에 농민들이 고생을 많이 하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관행농으로는 향후 미국, 특히 중국과는 경쟁이 안 될 것 같아요.”

김 씨는 향후 친환경농법, 자연농법 등을 통해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고 했다.

“저도 시골에서 아직 젊은 축에 속합니다. 남은 인생 친환경농법을 통해서 제대로 된 농군으로 거듭나고 싶어요. 농지도 하루빨리 마련해서 젊은 귀농인들 못지않은 열정으로 농사를 짓고 싶습니다. 비록 외지에서 온 사람이지만 저로 인해 마을에 활력이 넘쳐났으면 합니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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