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마술처럼, 그녀가 내 곁으로 왔다(19)




내 생활에 변화가 있을 것 같다. 아니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이 변화는 나 자신도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 막을 수도 없고, 철회할 수도 없고, 속도를 늦출 수도 없다. 내가 선택한 것이면서도 내 임의로 중단하거나 철회하거나 부정적인 쪽으로는 아무것도 해볼 수 없는, 오직 그 자체의 흐름을 따라야만 하는 이 상황을 나는 감히 사랑이라고 부른다. 그래, 에두르지 않고 그냥 말해주마. 내가 지금 사랑에 빠졌단 말이다. 십칠 년 동안의 홀아비 생활을 조만간 끝장내줄 사람이 지금 서울에서 이사할 준비를 하고 있단 말이다.

그날 동생들과 제수씨들 그리고 조카들 앞에서 내가 했던 말이 대충 위와 같았다. 딴에는 비장한 심사로 마치 무슨 유언장이라도 작성하듯이 엄숙하게 말을 꺼내기는 했지만, 왜 그렇게도 입이 자꾸 헤프게 벙싯벙싯 웃음을 토해내려고 하던지, 그리고 말은 왜 또 그리도 자꾸 더듬거려지던지, 그 바람에 한 문장으로 정리를 하자면 나한테 여자가 생겼다, 하는 그 한 마디를 하는 데 아마 십 분 가까이나 시간을 써버렸을 것이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내 입만 보고 있었다. 무슨 말이냐고 묻지도 않았다. 아니 이게 지금 무슨 소리지? 하는 꼭 그런 표정으로, 동작정지 상태로 오직 하나 눈만 깜빡거리면서, 긴장이 팽팽하게 흐르는 얼굴로 내 입만 쳐다보고 있는 동생들, 그리고 제수씨들 앞에서 나는 차츰 죄 진 자의 심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용서받지 못할 죄까지는 아니라 해도, 어쨌든 그 다음 해야 할 말이 엄청난 무게로 느껴지면서 나는 목에 가시라도 걸린 듯이 헛기침만 큼큼 해대고 있었다.

엉거주춤한 침묵,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그날 그 시간의 상황이 꼭 그런 꼴이었다. 제수씨와 동생들은 그때쯤 내 이야기의 핵심을 아마 파악했을 터이었다. 하지만 이야기 자체가 너무 뜬금없고, 마무리도 안 되고 있었던 까닭에 뭐라고 선뜻 입을 열고 나서기가 어려웠을 터이었다. 그런 엉거주춤한 침묵의 상황을 조성한 사람은 나 자신이었고, 따라서 얼른 분위기 반전을 꾀하고 나서야 할 의무가 내게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도무지 우물쭈물하는 것 외엔 아무 짓도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 아이를 좋아하는 그녀


“어머 정말이에요? 아유 아주버님 축하드려요.”

고맙게도 셋째 제수씨가 활달한 목소리로 통로를 열어주기는 했지만, 나는 그것조차도 얼른 받아먹지를 못하고 여전히 우물쭈물이나 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도대체 무슨 못난 엉거주춤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날 굳이 그녀의 나이까지 밝힐 필요는 사실 없었다. 내가 이러저러해서 이런 상황까지 와 있는데 그렇게 알아주면 좋겠다,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의 나이를 내가 먼저 나서서 밝히지 않으면 뭔가 엄청난 거짓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 주제를 얼른 해결하고 넘어가야겠는데 그게 영 안 되는 것이었다.

애써 이유를 찾자면 아마도 막내 동생의 반짝반짝 빛나는 그 눈빛 때문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육군 상사 특유의 분석적이면서도 약간은 서정적이라고나 할까, 그런 어떤 젊음의 기운이 막내 동생에게는 있었다. 그 녀석이 태어났을 때 나는 정확히 스무 살이었고, 그 녀석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 나는 큰형이라기보다는 아버지의 기분으로 이런저런 참고서며 백과사전 같은 것들을 사서 보내주곤 했었다. 그런데 그녀의 나이가 막내 동생과 똑같은 토끼띠였다.

“그러니까 그게 말이지. 그 친구의 나이가 많이 어려. 막내와 같은 토끼띠니까, 많이 어린 거지.”

나는 아마 얼굴이 화끈화끈 불타는 심정으로 그런 말을 중얼거리듯이 늘어놓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막내가 한 마디 했던가? 토끼띠라면 큰형보다 여덟 살 아래인데 뭐 그게 뭐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그런 말을 했던가?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그런 어떤 과정이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마침내 그녀의 나이를 완전히 공개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막내와는 그냥 띠동갑이 아니라, 완전히 같은 나이라니까.”



# 동생네서 모임을 마치고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 뒤의 고요한 침묵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저마다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겠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놀라서 어머 정말이에요? 세상에나, 세상에나, 등등 그런 어떤 감탄사라도 터질 법한데 전혀 그렇지가 않고 그냥 침묵만 있는 것이었다.

그 고요한 침묵 속에서 나는 가슴이 벌렁벌렁 뛰고 있었고, 얼굴이 활활 타고 있었고, 손가락이 자꾸 꼼지락거려지고 있어서 도무지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헛기침을 큼큼 해대며 슬며시 일어섰던가 어쨌던가. 하여튼 내가 자리를 뜨자마자 막내 제수씨가 셋째 제수씨에게 속삭이는 말투로 하는 말이 내 귀에 들렸다.

“형님은 좋으시겠어요.”
“왜에?”
“형님보다 한참 어린 사람을 형님이라고 불러야 하니, 얼마나 좋겠어요.”
“응? 그러네 정말.”

그리고 이어지는 박장대소. 그래, 그것은 정녕 박장대소였다. 그야말로 집이 떠나갈 듯이 요란하게 한참을 이어지는 웃음소리와 박수소리 그리고 방바닥을 두 손으로 두들기는 소리에 놀란 개가 마당에서 짖어대기 시작했다. 내 생애 그렇게도 요란한 시끌벅적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렇게도 요란한 아우성(?)을 밖에서 듣고 있노라니 나는 또 기가 막히게도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아하, 그것도 괜찮겠네. 아주 재미있겠어. 나이 어린 사람을 형님이라고 부른다는 거, 이거 얼마나 굉장한 서열의 재편성인가 말이다.



# 명색이 설중매가 이제사 핀다.


그때 생각은 그렇게 무엇인가 제법 진보적인 척하는 식으로 하고 있었지만, 며칠이 지난 뒤의 나는 다시 소심한 사내로 돌아와 있었다. 내가 이거 뭔가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혹시, 혹시 그녀의 인생을 망쳐놓는 것은 아닐까? 등등 각종 물음표가 내 안에서 만들어지고 소멸되고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도둑이 제 스스로 발이 절여서 걷지를 못한다더라고, 며칠이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나는 더 이상 못 견디겠다 하고 밖으로 뛰쳐나와서 일종의 여론조사를 해보기로 했다. 내가 심사 고약한 도둑인가? 도둑이라면 가차없이 도둑이라고 욕해달라. 내가 뼛속까지 나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인가? 그렇다면 그렇다고 눈치 볼 것 없이 과감하게 말해달라.

그 결과 옆집 할머니께서는 “아이고 집이가 복이여, 복이여, 아무 생각 말고 그냥 데려와서 살아, 응? 살아”하고 계셨고, 후배 한 녀석은 엉뚱하게도 빨리빨리 일을 해서 애라도 하나 그냥 얼른 낳고 나면 고민이고 뭐고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고 있었고, 또 다른 후배 한 녀석은 “막말로 형님이 무슨 재산이라도 있어서 그녀가 그것 보고 오는 것은 아니잖아요” 하고 있었고, 선배 한 분은 한참이나 키득키득 웃어대다가는 그런대로 참신한 생각 한 자락을 늘어놓고 있었다.

“야 인마. 네가 그녀보다 나이가 엄청 많아서 내일이라도 당장 네가 죽어버리면, 그러면 그녀가 너를 따라서 같이 죽어버릴 것 같냐? 웃기고 자빠졌네. 착각도 어지간히 해라, 어지간히 응? 그녀는 살아 있는 사람이야. 알겠느냐. 살아 있는 사람이란 죽은 사람을 잊게 되어 있어. 잊고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어 있다니까.”

그러니까 그 선배의 말도 결국은 고민 따위 집어치고 좋으면 좋다고 그냥 함께 살라는 얘기였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게 또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내가 자문을 구할 정도로 나를 아는 사람이라는 것은 이미 내가 듣기에 좋은 말을 해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반증밖에 안 되는데 그런 사람들에게서 의견을 얻고자 했으니 이게 내가 결국은 일종의 꼼수를 부리고 있었던 셈이었다. 요컨대 내가 나를 속이고 싶었다고나 할까.



# 이제 막 피어나는 수선화


그랬다. 나는 짐짓 고민을 한다고 하고는 있었지만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있었다. 가장 마음에 들어 했던 말이라고 해도 뭐 의미는 같다.  선운사의 선배가 해 주었던 한 마디, 물이 자신의 내적 흐름을 따라 흐르듯이, 사람 도 자신의 마음 가는 대로 해야지 안 그러면 나중에 후회한다는 그 말, 그 충고 한 마디를 나는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앞뒤좌우, 미래, 과거, 그 어느 것도 심각하게는 생각하지 말고 계산하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그냥 단순하게, 과감하게 그녀를 ‘내여자’라고 만천하에 공표하기로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그 뒤로 일 년여의 세월이 흐른 지금, 지난 날을 돌아보면 내 얼굴이 화끈화끈했던 적도 많았고, 웃어야 힐 일도 많았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우리 동네의 전직 이장을 꼽아야 할 것이다.

“아니 근디, 내가 형수씨라고 불러야 한다는 생각은 나도 하기는 하는디, 그런디 나는 제수씨라고 부르고 싶당게. 아니 저렇게도 작고, 저렇게도 애기처럼 이쁘고,  저렇게도 목소리가 에리에리헌 사람을 내가 으떻게 형수씨라고 부르냐고, 응? 나 참말로 고민이 너무 많네 이거. 어?”

동네 잔칫날 마을 회관에서였다. 그는 나이가 나보다 아래였고, 그래서 나를 형님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내여자’를 형수님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아무리 부르고 또 불러봐도 그놈의 ‘형수님’이라는 호칭이 입에 영 붙지를 않는다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그게 또 그럴 만도 했다.

형수씨는 자기가 의지하고 싶고 의존하고 싶은 대상이지만, 제수씨는 보호하고 싶고 아껴주고 싶은 대상이기 때문에, 그래서 형수씨보다는 제수씨라고 부르고 싶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나면 또 나와의 관계가 복잡해져 버리니까, 그래서 고민이 너무 크다는 뭐 그런 얘기인 거였다.

그런데다 그의 부인이 또 옆에서 심난한 표정을 짓고 있기도 했다. 자기 남편이 나를 형님이라고 계속 부르면 자기도 ‘내여자’를 형님이라고 불러야 하는데, 자기보다 훨씬 어린 여자를 형님으로 모셔야하는 이 상황이 대체 말이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계산이 너무 복잡해서 머릿골이 그만 터질 지경이라는 거였다.



# 청매


한 마디로 말해서 나는 갈수록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만 생기고 있는 셈이었다. 짐짓 재미있다는 투로 실실 웃고는 있었지만, 그 재미가 온전한 재미로만 작동하기는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어서, 쑥스럽고 미안하고 심지어는 죄송하다는 생각까지도 막 들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도 멈칫거리거나 주저함이 없는 ‘내여자’ 그녀는 진실로 재미있어 죽겠는 모양이어서, 어느 하루는 갑자기 혼자 실실 웃고 있다가는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말이에요. 우리 집에 가서 가족들이 모두 모이면 진짜 재밌겠어요.”
“뭐가?”
“우리 언니들 다섯이 모두 그대보다는 십 년 이상 어리다는 거, 알죠?”
“그야 뭐.”“그러면 우리 형부들은 어떨 것 같아요? 십 년, 십오 년, 막 그렇게 차이가 나는데 말이에요. 그런데 그대는 나이 어린 그 남자들한테 형님이라고 해야 하는 거란 말이거든, 응? 히히.”
“으잉? 그러네 정말?”
“으히히히히히.”
“좋기도 하겠다.”
“좋다마다, 얼마나 재밌겠냐고요.”

그래, 그녀는 대단히 재미있어 보였다. 하긴 재미란 것이 뭐 꼭 중뿔날 필요가 있을 것인가. 나도 한 번 상상해보았다. 그녀의 형부들을 만났을 때, 나보다는 나이가 열 살, 열다섯 살씩이나 어린 그들을 내가 형님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부르고 나면 정말로 재미있을까? 아닐 것 같았다.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 간에, 처음 만났을 때는 입이 꾹 다물어져서 도무지 표정 관리가 안 될 것 같았다.

그런 정도는 뭐 굳이 상상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다름 아닌 내 동생들, 그 녀석들은 아직 한 번도 그녀를 형수님이라고 불러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내 후배들은 그녀의 나이가 자기들보다 훨씬 적어도 기꺼이 형수님이라고 불러주지만, 친동생들의 정서에는 아마도 뭔가 다른 게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내게도 그 뭔가 다른 게 있지 않을까.

하긴 가족을 새로 구성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가족 간의 호칭이란 일단 정해지고 나면 영원해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어쩔 것인가.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자꾸 보고 또 보는 과정에서 저절로 형성되는 믿음, 확신이 정착되는 그날을 기다려야지 어쩔 것인가.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