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문지연의 나 홀로 동유럽 유람기> 16회-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2편




빛바랜 공산정권의 흔적이 감도는 회색빛 도시. 과거 동유럽을 떠올리면 스치는 이미지였다. 동유럽에 대한 막연한 관심이 샘솟았던 이유도 신문지면에서 발견한 회색빛 전운 때문이었다. 전쟁의 긴장을 부인할 수 없는 한반도에 살면서 어떤 동질감이 자극된 연유였을 것이다. 동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그 흔적이 사라진 뒤에도 필자의 머릿속에는 한동안 이와 같은 우울한 이면들이 뿌리박혀 있었다.
서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발전했고 여행 지역으로 덜 조명 받고 있다는 호기심과 개척 정신 또한 여행지로 관심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동유럽 여행의 처음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펼쳐진 도전은 또 다른 나를 만드는 그릇이 되었다.
독일을 시작으로 체코,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헝가리, 루마니아, 그리스, 터키에 이르기까지 9개국을 홀로 거닐었던 시간들을 꺼내어 본다.




# 남부 독일의 침략을 우려, 1077년에 세운 요새 호엔잘츠부르크 성은 유럽의 중세시대 성 가운데서도 손에 꼽힐 만큼 큰 규모이며 보존이 잘 되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햄버거 가게를 나온 뒤에도 골목은 여전히 몰려드는 인파로 북적였다. 사람들은 아기자기하고 예쁜 간판 앞에서 여러 가지 동작을 취하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저마다 활짝 웃음꽃을 피우며 추억 담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추억을 쌓느라 분주한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그 후로도 오래도록 좁은 골목길을 가득 메웠다. 군중 속, 혼자만의 고독이 짙어질 수밖에 없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골목을 빠져 나와 곧바로 향한 호엔잘츠부르크 성은 잘츠부르크에 왔다면 꼭 한 번 들러봐야 할 명소다. 궁전이 산에 위치해 있어 잘츠부르크 구시가 어느 곳에서라도 고개만 들면 쉽게 바라 볼 수 있다.

성은 대주교 게브하르트 폰 할펜스타인이 남부 독일의 침략을 걱정해 1077년에 세운 요새다. 당시는 로마 교황과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주교 서임권을 놓고 다툼을 벌이던 어수선한 시절이었다.

성은 17세기 들어 현재의 모습을 갖췄으며 한때 감옥, 군부대 등으로 쓰였다. 유럽에 세운 중세시대 성 가운데서도 손에 꼽힐 만큼 큰 규모이며 보존이 잘 되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성은 산 중에 세운 궁전이어서 등산이 필수다. 1892년부터 운행을 시작한 케이블카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조금만 걷다보면 곧 나오겠지’라는 생각으로 언덕길을 따라 올랐다. 그러나 평소 산과는 거리를 두고 살았던 터라 등반이 보통 고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궂은 날씨 탓인지 산을 오르는 이도 거의 없었다. 옆구리를 타고 흐르는 스산한 바람에 몸이 오슬오슬 떨렸다. 어둑한 분위기까지 더해 이내 공포의 야간 산행을 하는 것 마냥 등줄기가 싸늘했다.



# 잘츠부르크 게트라이데 거리는 이색 간판으로 유명하다. 사진은 패스트푸드점 맥도날드의 간판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뚫고 걸은 지 대체 얼마쯤 지났을까. 경사가 급한 곳을 지나고 나니 드디어 매표소가 보였다. ‘아, 제발 신기루가 아니기를.’

성은 요새라는 말마따나 철옹성과 같았다. 외관은 적군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을 뿜어내듯 견고했다.
내부 곳곳에는 대포 설치대가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중이었다. 구석구석마다 적의 침략을 감시하고 차단하는 세세한 방어 태세가 감지되었다. 몇 발짝 거닐다보니 무기고와 여러 가지 고문기구도 눈에 띄었다.

성 안에는 그 시절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가구와 수공예품 등을 전시한 박물관도 들어서 있다. 또 갖가지 금장식이 눈에 띄는 거실 등을 통해 사치스러울 만큼 화려한 당시 대주교의 생활모습도 짐작 가능하다.

내부를 천천히 둘러본 뒤 전망대에 올랐다. 잘자흐 강을 끼고 들어선 잘츠부르크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눈앞에 펼쳐진 고풍스러운 풍경을 마주하고 있자니 마치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회귀한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탁 트인 강과 푸른 산의 정기를 받아 가슴이 `뻥`하고 뚫리는 것처럼 시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다리는 후덜덜. 위험천만해 보이는 꼭대기에 설 때면 때때로 엷은 바람을 따라 훅 하고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 호엔잘츠부르크 성 안의 대포


날씨마저 심술이 가득했다. 오스트리아에 온 뒤로 한 번도 비개인 맑은 날을 접할 수가 없었는데 이날은 시간이 갈수록 심술이 더 했다. 하늘에서 곧 무언가 떨어질 것 같은 조짐이었다. ‘휴~. 하산을 어찌해야하나….’

아니나 다를까. 경보를 하듯 잰걸음으로 속히 하산을 마쳤을 때쯤 굵은 빗방울이 어깨 위로 툭툭 떨어졌다. 작은 빗방울들은 곧 굵은 빗줄기로 바뀌었고 강을 건너 숙소로 향할 때쯤에는 강한 폭우로 바뀌었다. 또 다시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숙소에 도착한 뒤 먼저 자리를 잡고 앉은 여행자들 틈에 끼어 앉았다. 이들과 함께 머리를 맞댄 채 뜨거운 컵라면이 익기를 기다렸다. 집에 있을 때는 1년에 한두 번 먹을까 말까한 컵라면인데 외국에만 나왔다하면 이 보다 더한 진미가 없었다.
라면이 다 익었을 때 평소 하던 대로 뚜껑을 떼어내 고깔 모양으로 접은 뒤 면을 담아 식혀냈다.

"헉, 그런 방법이 다 있네요?!" 마주 앉은 20대 초반의 여행자들은 필자의 행동이 몹시 생소하고 놀랍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잉? 다들 이렇게 먹지 않나?"
"아니요. 고깔을 만들어서 덜어 먹는 건 처음 봤어요."



# 호엔잘츠부르크 성 전망대에서 본 잘츠부르크 시가지 풍경. 잘자흐 강을 끼고 들어선 고풍스러운 풍경이 인상적이다.


머쓱했다. 한편 으쓱하기도 했다. 나름의 아이디어가 있는 `기특한 구세대`가 된 그런 느낌이랄까.

라면을 흡입한 뒤에는 폭풍 수다가 이어졌다. 머리를 맞댄 처자들은 유럽 여행 중에 경험했던 식겁할 만한 에피소드들을 하나 둘 털어놓았다.

여행 시작을 이탈리아에서 했다는 한 20대 초반의 여성은 순식간에 경비 400만원을 몽땅 털린 사연을 꺼내 놓았다.

"베네치아에서 줄을 서 있는데 한 남자가 등 뒤로 바짝 붙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러더니 순식간에 손에 들고 있던 요거트를 제 옷에 쏟았어요. 그가 너무 미안하다며 닦아 줄 테니 겉옷을 자꾸 벗어달라는 거예요. 됐다고 했지만 거의 강제로 옷을 빼앗아 갔고 닦는 척하면서 주위를 끈 사이 일행이 제가 갖고 있던 현금을 몽땅 털어갔어요."

그는 울며 집에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했다. 그러나 지금 돌아오면 괴로운 추억만 떠안는 꼴이 될 것이라는 언니의 권유와 용기로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금 여행을 시작하게 됐다.



# 잘츠부르크 풍경. 산 꼭대기의 호엔잘츠부르크 성이 눈에 띈다.


# 모차르트의 생가가 있는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크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곳곳에 그의 흔적이 넘친다.


유럽에서는 동양인들이 여행 중에 현금을 많이 갖고 다닌다고 알려지면서 이를 타깃으로 한 소매치기, 날치기 사건이 빈번한 것으로 전해진다. 때문에 한 번에 많은 양의 현금을 갖고 다니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도처에 은행과 현금지급기가 널려 있으니 그때그때 쓸 만큼만 찾아 놓는 게 좋다.

이날 숙소에서 함께 얘기를 주고받았던 여성과 여행을 마치고 이메일을 주고받았는데 그 역시 기가 찰 경험을 했더랬다. 프랑스 여행 중에 지하철역의 보관함에 짐을 넣어 두었는데 관광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보관함이 문짝 채 뜯겨 있더라는 것이다. 보관함 속이 텅텅 비어 있음은 물론. 6개월 예정으로 배낭여행 중이었던 터라 가방에 온갖 필요한 물품은 다 넣어 뒀는데 말이다. 

"정말 `멘탈붕괴`였어요. 떨어져 나간 문짝과 텅 빈 보관함을 보니 눈물이 주르륵 쏟아지더라고요. 여행이고 뭐고 모두 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뿐이었죠."
처녀들의 수다는 밤이 늦도록 이어졌다.

<잘츠부르크 편 다음 호로 이어집니다.>

ohora88@naver.com<문지연 님은 언론인이며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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