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진의 문화 그리고 이러쿵 저러쿵>



영화 기자를 오랫동안 하다 보니 개인적인 노하우가 몇 가지 자연스럽게 생겼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영화 제목이다. 제목은 그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의미를 가장 적나라하게 담아 낸 힌트이자 일종의 스포일러다. 영화사상 최고의 반전 스릴러 ‘유주얼 서스펙트’(‘보통의 의심’ 정도로 풀이) ‘식스센스’(육감), ‘디 아더스’(다른 존재)가 바로 대표적이다. 반전을 예고하는 스릴러에서 제목은 오히려 또 다른 함정이다. 때문에 제목의 의미와 영화의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의외의 포인트에 눈길이 가게 되고 그것이 바로 그 영화의 키포인트가 된다. 일례로 ‘유주얼 서스펙트’는 ‘악마의 유혹’이란 별칭이 붙을 정도로 사상 최고의 반전 스릴러, 혹은 교과서로 불린다. 영화 속에선 여러 명의 범인들이 나오고 그들은 하나 같이 그럴 듯한 혐의를 가진다. 유독 단 한 사람, 불구의 한 남자만이 외딴 섬처럼 느껴진다. 그 점이 바로 관객들이 놓치는 맹점이다. 당연히 아니어야 한다는 사실에서 생각의 과녁은 다른 쪽으로 향하고 다른 곳을 의심할 때 의외의 인물이 ‘펑’하고 터진다. ‘보통의 의심’ ‘평범한 의심’이 바로 이 영화가 노렸던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감독 브라이언 싱어를 상당히 좋아한다. ‘엑스맨’ ‘엑스맨2’에 이어 ‘엑스맨:퍼스트 클래스’ ‘엑스맨: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5월 22일 개봉) ‘엑스맨:아포칼립스’(2016년 개봉예정)까지 히어로 무비 연출에도 상당한 강점을 갖고 있다. 물론 ‘슈퍼맨 리턴즈’ 같은 희대의 망작을 진두지휘한 오점도 더불어 갖고 있는 천재 감독이다.

서두가 길었다. 이렇게 제목은 영화 기자로 활동 중인 필자에게 상당히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개봉한 ‘몬스터’는 상당히 도발적인 감각으로 다가왔다. “하고 싶은 말이 이토록 적나라하게 담긴 제목이 있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다. 괴물 얘기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처럼 진짜 괴물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괴물 같은’ 인간들의 격전장이다. 영화 카피는 ‘미친놈 vs 미친년’. 흥미롭다. 남녀 성대결이다. 살인마는 남자, 미친년은 여자다. 당연히 살인마가 나쁜 놈이다. 그런데 미친년이 ‘좋은 놈’이라고 하기에도 좀 그렇다. 주제는 단순한데, 풀어내는 방식이 좀 복잡하다. 만만치 않은 구성력을 풀어내면 이렇다.







시골 한적한 산속 두 소녀가 살고 있다. 좀 더 정확하게는 소녀와 아가씨의 중간 정도. 언니 복순(김고은)은 7세 지능의 지적 장애인이다. 동생 은정은 고3. 어느 날 이 집에 초등학생 정도의 소녀 나리(안서현)가 찾아왔다. 무언가 겁에 질려 있다. 나리의 얘기를 들어본 즉슨 나리의 언니는 태수(이민기)에게 살해당했다. 태수는 나리를 잡아서 산속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다. “도망가라. 그리고 잡히면 넌 죽는다.” 그렇게 도망가다 복순의 집에 당도한 것이다. 그리고 쫓아온 태수는 은정을 죽이고, 나리마저 죽이려 한다. 나리를 죽이려는 찰나 복순이 나섰다. 나리와 복순은 태수를 피해 달아난다.

이들의 추격전은 태수의 형 익상(김뢰하) 때문이다. 익상은 삼촌 전사장(남경읍)의 부탁을 받았다. 자신의 변태적 성폭행 동영상을 찍은 한 여성(사실은 그 폭행의 피해자)이 돈 3억원을 달라며 협박을 한단다. 핸드폰을 찾아와 달라고 익상에게 부탁했다. 익상은 태수에게 다시 부탁한다. 익상과 태수는 친형제다. 하지만 형이 왠지 모르게 동생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태수가 형의 부탁을 받고 핸드폰을 찾으러 간다. 나리의 누나를 죽이고 핸드폰을 수거한 뒤 나리를 잡아 자신의 산속 집으로 데려간다.

전체 스토리는 하나의 쳇바퀴처럼 연결돼있다. 관계의 사슬이 하나의 둘레를 형성하며 물고 물리는 모양새다. 일종의 먹이사슬이다. 연출을 맡은 황인호 감독은 “거대한 살육의 구조도를 그리고 싶었다”고 ‘몬스터’ 구상 이유를 밝혔다. 물고 물리며, 쫓고 쫓기는 자연 생태계의 약육강식은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들 아닌가. 하루, 시간, 분 그리고 초 단위로 약자들은 강자에게 먹히고 강자들은 자신의 먹잇감이 약자들을 찾아 나서며 보이던 보이지 않던 끔찍한 살육을 저지른다. ‘몬스터’는 그런 사회의 얘기를 하나의 작은 캔버스에 그려낸 유채화의 그림이다. 수채화의 매끄러움이 아닌 이질적이며 다소 투박한 유채화의 그림말이다.

단순하게 ‘몬스터’를 추격전에 빗댄 일종의 사회 고발성 상업영화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시실리 2km’ 각본, ‘오싹한 연애’ 연출/각본을 맡은 황인호 감독의 신작이란 점을 염두 한다면 그게 다가 아니란 점은 금방 눈치 챌 것이다.
기본적으로 스릴러는 속도에 방점을 찍는다. 관객들에게 추리의 시간을 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몬스터’ 역시 그럴 것이라 착각했다. 하지만 중간 중간 뜬금없는 유머 코드가 관객들의 실소를 자극한다. 그 역할은 대부분 복순이 담당한다. 7세 지능의 복순이 던지는 순수함은 극도의 긴장감 속에 밀려오는 일종의 카타르시스 작용을 한다. 반대로 그 카타르시스는 관객들에게 캐릭터의 혼란과 의구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친동생을 잃은 7세 지능 언니에게 사물에 대한 분별력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다. 순수한 본능만이 남아 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무서우면 도망가고. 어느 순간부터 복순에게 동생 은정의 죽음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비약이 심할 수도 있지만 ‘완전무결한 순수함과 악함은 맞닿아 있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이 말의 부연 설명이 바로 태수의 역할이다.

표면적으로 태수는 사이코패스다. 사람 죽이는 일을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생각한다. 아니 일종의 놀이라고 느낀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한 장면이다. 술집에서 형 익상과 대화를 하던 중 건너편 깡패 같은 남자의 욕설이 신경 쓰이는 익상이 나온다. 그러자 태수는 “죽여줄까”라며 기괴한 표정으로 형 익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시비를 걸고, 자신에게 다가온 의문의 남자를 잔인하게 죽인다. 차를 타고 가던 중 단란한 가족들의 모습에 눈길을 주는 나리를 향해 “죽여줄까?”란 말을 쉽게 건네기도 한다. 태수에게 살인은 일종의 ‘관심’이었다. 4년 7개월 만에 자신 앞에 나타나 엉뚱한 부탁을 하는 형을 향해 실소를 던지면서도 그의 부탁을 들어줬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몹쓸 짓을 한 엄마에게조차 피 묻은 돈뭉치를 건네며 자신이 아들임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복순이 ‘어린이의 순수함’을 말한다면, 태수는 완전무결한 살육의 본능만이 남아 있는 짐승인 셈이다. 사실 그렇게 놓고 본다면 길바닥을 줄지어 기어가는 개미무리를 아무런 생각 없이 발로 비벼 죽이는 아이들의 행동이나, 지나가는 작은 개를 물어 죽이는 커다란 사냥개의 행동 모두에게 ‘악마성’이란 단어를 붙이기엔 무리가 따른다.

오히려 태수와 복순이 아닌 그 주변 인물들의 실체가 더욱 ‘몬스터’스럽다. 관계조차 의심스러운 기괴한 모자 관계인 형 익상과 엄마 경자(김부선), 나리에게 집세 독촉을 하는 경상도 말씨의 의뭉스런 집주인, 어리바리하면서도 살인기계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북한 특수부대 출신의 탈북자 깡패, 기름기 번들거리는 머릿결로 익상의 주변을 맴도는 깡패 우두머리와 그 일당. 이들이 진짜 몬스터처럼 보인다.

아니 사실 황 감독이 말한 먹이사슬의 구조도가 ‘몬스터’라면 진짜 이 영화가 말하는 괴물은 따로 있다. 누구냐고?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꽤 흥미로운 영화다. 그래서 제목도 ‘몬스터’가 아닌가.

<김범진 님은 언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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