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마술처럼, 그녀가 내 곁으로 왔다(21)








여기저기에 꽃이 피고 각종 벌레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면 지네도 활동을 개시한다. 겨우내 꼼짝도 않고 세월을 기다리던 지네는 날이 풀리면 밖으로 나와 일단 물을 찾는다. 몸에 수분이 충분해지면 그때부터 짝을 찾아 헤매기 시작한다. 그나마도 환한 데서는 움직일 엄두를 못 내고 음습한 곳만을 찾아서 미끄럼을 타듯이 가만가만 기어 다닌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지네는 이제 내 세상이 왔다는 듯 아무데나 틈만 있으면 마구 쑤시고 들어가서 헤매고 다닌다. 이불이나 베갯잇 사이로 스며들어 뭔가를 찾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고, 벗어놓은 신발 속에서 무엇을 찾겠다는 것인지 그 안에 들어가 있기도 하고, 수저통 속에 들어가서 숟가락 젓가락들과 함께 섞여 있는가 하면, 화장실 변기에 앉아 무심히 고개를 들면 천장에서 무슨 커다란 눈썹 같은 지네 녀석이 꼬물꼬물 움직이기도 한다.

지네가 물을 먹는 장면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기 전까지의 나는 지네가 그저 아무 할 일도 없이 헤매고 다닌다고 생각했었다. 화장실에서였다. 무심코 들어섰는데 몽당연필 같은 것이 두 눈을 채웠다. 날씨가 좋은 이른 아침 토란잎이나 연잎에 맺힌 이슬 한 방울 만큼의 물이 바닥에 있었고, 지네는 그 물방울 하나를 온 몸으로 빨아들이고 있었다.

온 몸으로. 그야말로 온 몸으로 물을 빨아들이는 그 장면은 일견 경이롭기조차 했다. 사람의 기척이 나면 재빨리 달아나는 게 특기인 지네가 물을 빨아들이는 그 엄숙한 일에 빠져서는 그냥 사람인 내가 들어섰는데도 알아채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도대체 몇 쌍이나 되는지 알 수도 없는 수많은 발들이 일제히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절지동물 특유의 그 마디마디 하나하나가 또한 수돗물이 흘러가고 있을 때의 투명한 고무호스처럼 보이는 듯이 안 보이는 듯이 가늘게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지네는 재미있는 동물이다. 전문용어를 쓰자면 자웅이체, 한 몸에 암컷의 기능과 수컷의 기능을 다 갖추고 있지만 혼자서는 안 된다. 그래서 네 새끼는 내가 낳게 해줄 테니 내 새끼는 네가 낳게 해다오, 하고 그렇게 새끼의 아비나 혹은 어미를 찾아서 열심히 발품을 판다.

그렇게 열심히 발품을 파는 중에 무엇인가 장애물이 나타나면 지네는 아마 본능적으로 깨물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아직 물려본 적이 없다. 아니 어쩌면 물렸는데도 내 자신이 물렸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인지도 모르긴 하다. 어쨌든 아랫집 할머니가 머릿속으로 지네가 기어 다니며 깨물었다고 두 손으로 머리를 득득 긁어대며 아이고 참, 아이고 참, 그렇게 기분 나빠 하시는 모습을 본 것이 내가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한 지네로 인한 피해의 모든 것이었다. 어머니가 계실 때도 어머니 당신 손으로 지네를 잡아서 버리기는 했지만 물렸다고 짜증을 내신 적은 없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지네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돈벌레나 바퀴벌레와 같은 동물로 내게 아마 인식되고 있었을 것이다. 발이 너무 많고 색깔도 강렬해서 다소 꺼림칙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사람에게 무슨 피해를 주지는 않는 동물, 보기에 따라서는 모기나 파리보다도 지네가 훨씬 사람 친화적인 동물일 수도 있다는 그런 어떤 관념이 내게 형성돼 있었다. 그런데 이변이 생겼다.

그녀가 내 곁으로 온 지 열흘이나 겨우 지났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 즈음의 어느 하루 그녀가 지네에게 물렸다. 그것도 하필 발가락 사이를 물렸다. 물을 찾아서 헤매다가 화장실에까지 들어와 있던 지네가 인기척에 놀라서 아마 슬리퍼 속으로 숨어든 것 같았다.

난데없는 비명 소리에 놀라 뛰어 가보았을 때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한 켤레의 슬리퍼가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녀가 또 뭔가 장난의 소재를 개발한 것이려니 여기고 피식 웃어 버렸다. 굳이 설명을 하자면 아마 양치기 소년 이야기를 끌어들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무렵의 그녀는 장난을 엄청나게 많이 치고 있었으니까.

책상이나 의자 뒤에 가만히 엎드려 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밖에서 방으로 들어오면 흔적도 없이 사람이 사라져 버려서 이게 대체 뭔 일인가, 그새 뭔가에 납치라도 돼 버렸나, 등등 고민에 걱정에 신경을 바싹 곤두세운 채로 이곳저곳 기웃거리고 다니는 나를 그녀는 대단히 즐거운 표정으로 구경하며 혼자 킬킬대는 재미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날도 결국 그런 장난의 연장이려니 여겼다. 느닷없는 비명소리에 순간적으로 깜짝 놀라 뛰어가기는 했지만, 현장에 도착하는 순간 “뭐야 이거, 또야?”하는 심사가 되면서 긴장이 싹 풀려버린 거였다. 나의 그런 태도에 그녀는 아마 대단히 억울했던 모양이었다. 발가락 사이를 뭔가가 분명히 깨물었다고 우기며 “봐요, 봐, 봐.”하고 있었다.

뭔가 흔적이 있기는 있었다. 바늘로 한 번 콕 찌른 것 같은, 생각을 하면서 보면 보이지만 그냥 보면 뭐 아무것도 없구만, 할 정도의 아주 작은 흔적이 있기는 있었다. 나는 그 또한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기고 돌아서고 말았다. 그런 내가 그녀는 아마 패죽이고 싶도록 밉고 원망스럽고 억울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는 결심을 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찾아냈다. 증거를.

“지네다, 지네, 지네, 봐요 봐. 여기 있잖아, 범인이.”

 

 

그녀는 의기양양해서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그것은 확실히 지네였다. 아직 어른은 되지 못한, 작은 지네 한 마리가 뽈뽈뽈 기어서 숨을 곳을 찾고 있었다. 슬리퍼 안쪽에 웅크리고 있던 지네가 갑자기 사람 발이 들어오니까 얼결에 칵 깨물고는 재빨리 슬리퍼 바닥 쪽으로 내려가서 숨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쨌든 그날부터 지네는 내게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지네 자체가 무서워서라기보다는, 그녀가 혹시 이런 집에서는 못 산다고 뛰쳐나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보는 게 아마 옳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의 지네 사냥은 시작되었다. 말이 좋아 사냥이지 숨어 있는 지네가 스스로 나와서 잡혀주지 않는 이상 내가 임의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밖에서 방으로 들어오면 일단 주변 사방을 살피며 귀를 기울이는 것, 이불을 들어서 털털 털어보고 걸레며 수건 같은 것들을 또한 그렇게 털털 털어보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은 고도의 집중성과 인내와 비밀스러움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지네를 경계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그녀가 알아채서는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내가 지네를 경계한다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부터 그녀의 지네에 대한 공포심이 증가될 게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녀 몰래 지네를 잡아내고자 나름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눈물겨운 정성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계속 지네에게 물리고 있었다. 심지어는 고무장갑을 끼다가 손가락 끝을 벌에 쏘이는 기상천외한 참변을 당하기도 했다.

전날에 물에 젖은 고무장갑을 밖에 널어서 말렸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웬 청맹과니 같은 벌 한 마리가 빨간 고무장갑을 꽃이라고 여겼는지 그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긴 했지만 나오는 길을 못 찾고 헤매다가 가장 깊은 곳 그러니까 손가락 부위까지 들어가고 말았던 모양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녀는 아침에 고무장갑을 손에 끼었다. 끼자마자 비명이 터졌고, 그녀는 고무장갑을 벗어서 팽개친 채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으앙 나 죽어, 내 손, 내 손가락이 깨졌어, 아파, 아파라.”

처음부터 벌에 쏘인 것을 알았다면 그렇게까지 펄쩍펄쩍 뛰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말벌도 아니고 꿀벌 한 마리에, 그것도 손가락을 쏘였는데 무슨 그렇게도 죽고 못 살 정도로 아팠으랴. 그러니까 그녀는 실제의 통증보다는 자신을 아프게 한 범인의 정체를 모르는 까닭으로 일순간 공포의 포로가 돼버렸던 셈이었다. 세상에 어느 누가 고무장갑 속에 꿀벌이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침을 내밀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겠는가 말이다.

 

 

어쨌든 옆에서 보고 있는 나로서는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고 포복절도를 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은근 겁이 나고 있었다. 그녀가 이제는 정말로 못살겠다고 가방을 챙겨버리면 어떻게 하지? 그리하여 나는 즉석에서 이런 유언비어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도시에 살던 사람이 시골살림을 하려면 세 가지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 그 첫째는 지네에게 물리는 것이고, 둘째는 벌에 쏘이는 것이고, 셋째는 뱀을 밟아보는 것이라는 그런 유언비어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배엠? 뱀을 왜?”

그녀는 당연히 펄쩍 뛰었다. 이 대목이 중요했다. 내가 만일 실없이 웃는 표정으로 부언설명을 한다면 그녀는 당연히 칫, 해버리고 말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매우 진지하게, 더할나위 없이 엄숙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해야 하는 것이었다.

“뱀이 겨울잠에 깨어서 처음 나왔을 때는 힘이 하나도 없거든. 그래서 낙엽이나 덤불 속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어. 그걸 사람이 모르고 밟기도 하거든. 한 번 밟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게 되게끔 돼 있으니까, 그때부터는 뱀도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 있어진다는 거지.”

내가 생산해낸 그런 유언비어를 그녀가 곧이곧대로 흡수했는지 여부는 아직도 모른다. 어쨌든 이런 데서는 못 산다고 가방을 챙기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내 마음에 불안이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하루하루 날짜가 더해질수록 나는 초조해지고 있었고, 전전긍긍하느라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이루고 있었다. 왜냐하면 날씨가 완전히 풀리면서 지네는 이제 본격적으로 출현하고 있었으니까.

그랬다. 내가 혼자 살 때는 별로 눈에 띄지도 않던 지네가, 어머니와 함께 살 때도 극성스럽다는 느낌 같은 것은 하나도 안 들던 지네가 그녀와의 동거 이후로는 가히 쏟아져 나온다 싶을 정도로 5월을 지나 6월 초까지 거의 매일 나타나고 있었다. 그 많은 지네가 모두 한 번씩 그녀를 깨물었다면 그녀는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겠지만, 다행히도 그런 참변은 없었다. 합해서 세 번이나 깨물렸던가.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그것은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밤에 자다가 겨드랑이를 깨물렸다고 벌떡 일어나서 잉, 잉, 우는 소리를 내는 그녀를 보고서도 내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다면 그걸 어찌 사람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리하여 나는 밤에 잠을 자면서도 온 신경을 귀에 집중하고 있었고, 뭔가 낯선 소리가 들렸다 하면 절로 잠이 깨서는 소리의 방향을 면밀히 가늠해보고, 어느 쪽이라는 확신이 서면 그녀가 깨지 않게 가만히, 그러나 신속하게 일어나서 불을 켜고 집게를 들고 달려가서 지네를 잡아내는 이를테면 그 방면으로 도사 아니 달인의 경지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지네와 돈벌레 그리고 귀뚜라미가 어둠 속에서 움직일 때의 소리가 완전히 다르다는 부가적인 지식을 얻기도 했다. 엄청나게 많은 발을 갖고 있는 지네는 일단 움직였다 하면 그 소리가 사뭇 요란했다. 종이가 발라져 있는 벽이나 천정을 지네가 기어갈 때는 멀리서 아슴하게 들려오는 낙엽 밟는 소리가 난다. 지네가 이불 속에서 이동을 할 때는 뭐랄까, 그 옛날 어머니가 깊은 밤 호롱불 앞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을 때의 그런 소리를 내서 잠들어 있는 나를 가만히 깨워놓는 것이었다.

자, 그러면 그래서 지네의 공포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을까. 아니었다. 지네는 밤에만 활동하는 게 아니라 낮에도 부지런을 떨고 있었다. 어느 하루 내가 집을 나와 있을 때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방에서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 뭔가 이상한 소리가 나서 보니까 엄청나게 큰 지네가 자신의 바로 옆에서 달아나지도 않고 그냥 움직이고 있다고, 너무 무서워서 꼼짝도 못하겠다는 얘기였다. 그 공포에 질린 목소리가 사뭇 애달팠지만 내 몸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가만히, 살금살금 일어나서 컵이나 밥공기를 말이지. 그걸로 지네 녀석을 덮어놔 버려. 그럼 내가 가서 처리할게.”
그때 내가 즉석에서 낸 아이디어란 겨우 그런 정도였다. 그녀는 알았다고 일단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십 분도 채 안 돼서 다시 전화가 왔다.
“잡았어요. 잡았어. 내가 지네 잡았어. 모기약을 그냥 마구 뿌려댔더니 이게 꼼짝을 못 하네? 히히.”

이건 또 뭔 소린가? 오호 그랬어?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아마 그랬던 모양이었다. 이십여 분쯤 뒤 집에 도착해서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지네 한 마리가 마당에 던져져 있었다. 그녀는 엄청나게 크다고 했지만, 그리 큰 녀석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이상했다. 신이 나서 마구 떠들어대야 할 그녀가 거꾸로 시무룩해 있었다. 사정을 듣고 보니 그게 또 그랬다.  

모기약을 마구 뿌려서 지네를 제압한 그녀는 아마 그 즉시 언니에게 전화를 해서 마구 자랑을 했던 모양이다. 그녀의 무용담을 다 듣고 난 언니 왈, “야 나는 십오 센티나 되는 지네도 손바닥으로 그냥 칵 때려서 잡았어” 하더라나. 그래서 그녀는 이내 의기소침해졌다고, 그런 말을 하고 난 뒤에 그녀는 아이 참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지, 등등 뭐라고 한참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로서는 그렇게도 다행일 수 없었다. 그야말로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는 상황인 것이었다. 지네가 무서워서 못살겠다는 게 아니라 지네 한 마리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시무룩해 하는 사람이란 이게 뭐냔 말이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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