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진의 문화 그리고 이러쿵 저러쿵>



리암니슨이란 배우가 언제부터 이렇게 액션을 잘하는 배우였는지 잠시 생각해봤다. 기억으론 1999년 ‘스타워즈-에피소드1’부터 같다. 리암니슨이란 배우가 사실 블록버스터와 거리가 있는 소위 잘 팔리지 않던 배우였음을 감안하면 당시 이 영화에서의 등장은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1981년 ‘엑스칼리버’란 영국 영화에 조연 ‘거웨인’ 역으로 등장한 키 193cm의 이 거한은 겅둥한 이미지 탓에 감독들의 쓰임새 매뉴얼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던 배우였음에 틀림없다. 누구와 세워놔도 도드라지게 튀는 그림 속 잘못된 조화가 바로 리암니슨이었다. 이 배우에 대한 나름의 추측이 이러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리암니슨에 대한 첫 만남은 개인적으로 최고의 ‘넘버 1’ 영화로 꼽는 1986년 롤랑조폐 감독의 걸작 ‘미션’ 속 조연 ‘필딩’이란 인물이었다. ‘미션’은 가브리엘 신부(제레미 아이언스)와 노예상 멘도자(로버트 드니로)의 너무도 확고한 투톱 영화였기에 다른 인물들의 얘기가 눈에 들어오기에는 좀 힘든 구조다. 그 속에서 대사도 몇 마디 없는 겅둥한 키의 리암니슨은 단연 눈에 들어왔다. 다른 감독들이 그를 찾기를 주저했던 이유가 이 영화에 담겨 있다.

물론 1990년 컬트무비의 전설 ‘다크맨’의 주인공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도 했다. 1993년 스티븐 스필버그 생애 소원인 오스카 트로피 수상의 원을 풀어준 ‘쉰들러 리스트’로 연기력 배우로서의 입지도 다진 바 있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리암니슨은 풍모와 연기의 톤 자체부터가 상업 구조와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배우였다. 또한 아일랜드 출신으로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대한민국의 정서와 어딘지 모르게 통하는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리암니슨은 참 이상야릇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배우 중 한명이었다.

2005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시작한 영화 역사상 최고의 히어로 무비 트릴로지의 시작 ‘배트맨 비긴즈’가 시작되면서 리암니슨의 존재감도 반전기로 접어들었다. 사실 반전이라기 보단 배우 스스로가 자신의 행보를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결정이었다. 감독의 선택에 기꺼이 수긍하고 자신을 던진 그의 변신이 이채로웠다. 그리고 그의 존재감은 영화 역사상 최고의 악역 중 한 명이란 찬사를 이끌어 냈다. 깊은 눈매와 193cm의 큰 키, 그리고 중저음의 보이스톤은 사실 주연 그리고 악역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우라다. 중후함이 묻어나는 겉모습이 리암니슨을 그 두 가지 세계와 강제적으로 거리를 두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그의 상업 영화 출연에 해외 일부 언론은 ‘변심’이란 단어까지 쏟아내며 리암니슨 아우라의 변질을 걱정했다.

 

 

걱정이라기 보단 기억 속에서 지워진 배우란 표현이 더 적절한 듯하다. 그만큼 리암니슨은 특징적이랄 것도 없는 편안한 옆집 아저씨(사실 이런 이미지가 영화에선 절대 불필요한 모습이지만)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리암니슨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 일이다. 단 한 번 내한했고, 당시 인터뷰를 했던 기억이 있지만 워낙 엄청난 대스타로 성장(올해 환갑을 훌쩍 넘긴 이 대배우에게 성장은 좀^^;)한 그와의 인터뷰 시간은 극히 제한적이라 제대로 물어보지도 못했으니 지금으로선 좀 아쉽기는 하다.

2008년 ‘테이큰’이란 프랑스 액션영화에 그가 출연했다. 올해 우리 나이로 무려 63세에 달하는 이 거구의 배우, 순진하다 못해 순박한 느낌의 그 깊은 눈매의 아일랜드 할아버지가 액션영화, 그것도 거칠기로 소문난 프랑스 액션을 선보인다? 우려와 아쉬움이 섞인 알 수 없는 탄성부터 쏟아졌다. 하지만 이는 경력 10년차 영화 기자의 무지몽매한 걱정이었다. 언론시사회 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기자 선후배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이거 물건!”이란 평이 쏟아졌고, 영화를 수입한 수입사 대표는 시사회 전 걱정 가득했던 눈빛이 한 순간에 로또 맞은 눈빛으로 변했다. 개봉 당시 전국 관객 240만명을 동원하며 초대박을 터트렸다. 전 세계에서 가장 흥행한 국가 중 한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이후 4년 뒤 2편이 제작됐고, 리암니슨은 국내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아시아 정킷 가운데 한국을 선택했다. 2편 역시 결과적으론 230만명 정도를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사실 리암니슨은 전 세계 영화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행보를 보이는 배우 중 한 명이다. 배우란 직업 자체에 전성기가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40대에서 50대를 전성기라고 표현한다. 삶의 굴곡과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배우로선 이 시기의 연기 깊이가 다른 나이 대와 달리 가장 깊은 맛을 낸다고 한다. 단순히 이 기준에서 보자면 이제 리암니슨은 ‘할아버지’ 역할 전문 배우로서 나설 입장이다. 연기파 배우의 대명사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 잭 니콜슨 등이 60대 중반 이후 필모그래피가 어떤 식으로 변했는지를 살펴보면 이해가 빠르다. 할리우드나 대한민국이나, 아니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소비되는 배우들의 입장은 비슷해 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리암니슨은 50대 중반 이후 ‘테이큰’의 성공으로 본격적인 액션스타로 변신한 특이 케이스라고 부를 수 있다.

‘테이큰’을 리암니슨의 변곡점이라고 보는 팬들도 있지만, 1999년 ‘스타워즈 에피소드1’을 기점으로 그의 연기 인생 변화를 감지하기도 한다. ‘테이큰’의 선한 이미지와 달리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배트맨’ 트릴로지(3부작) 속 악역 ‘듀카드’를 연기한 모습을 진짜 리암니슨의 변신이라고 한다면 그의 전반적인 연기 해석은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수도 있다. ‘배트맨 비긴즈’ ‘다크 나이트’ ‘다크 나이트 라이즈’로 이어진 ‘배트맨 트릴로지’는 영화 전문가들의 이견이 필요 없는 120년 영화역사(뤼미에르 형제의 상영을 기준으로) 최고의 히어로 무비였다.

리암니슨은 컬트무비와 마니아층을 위한 예술영화, 그리고 전 세계 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 속 조연, 그리고 액션 영화 속에서 보여 준 선악의 독특한 경계선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인 기묘한 배우 중 한 명이다. 아니 리암니슨은 대체 불가능한 이미지의 그것을 가진 ‘마스터피스’란 말이 더욱 어울리는 배우다. 설명에 따라선 아니 느낌에 따라선 정체성 자체의 모호함이 리암니슨의 매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최근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논스톱’은 다시 한 번 리암니슨이란 배우의 정체성에 혼동을 주는 영화로 기록될 것 같다. ‘테이큰 1, 2’편에서 보여 준 가정적인 아버지 모습과 전직 CIA요원으로서의 이중성을 절묘하게 버무린 연기적 장점은 ‘논스톱’에선 다시 한 번 뜻밖의 변화를 겪는다. 60대의 생체리듬을 절묘하게 이용, 삶의 깊이와 시간을 읽어볼 수 있는 얼굴의 주름까지 연기하는 ‘논스톱’ 속 리암니슨의 모습은 정말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전혀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사실 액션 연기는 어떤 기본 공식이 있다. 상대를 누를 수 있는 ‘압도’가 기본 베이스다. 리암니슨 역시 흥행작 ‘테이큰 시리즈’와 ‘배트맨 트릴로지’를 통해 이 같은 베이스를 선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논스톱’은 정 반대의 영화다. 한정된 공간, 그리고 그 안에 숨은 범은 찾기의 두뇌 싸움을 벌이는 영화 스토리는 ‘압도’란 단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나온 뒤 느껴질 관객들의 선입견 역시 강할 듯싶다. ‘리암니슨=테이큰’을 원했던 관객이라면 ‘논스톱’은 오히려 배신으로 느껴질 영화다.

하지만 어떠하랴. 리암니슨은 한 곳에 정체된 연기 자체가 불가능한 배우 아니었나. 태생 자체가 주류의 흐름에 반했던 리암니슨의 행보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 그렇게 옮겨갈 것이다. 아마도 그렇게 갈 듯 싶다. 올 하반기 국내서 개봉할 것으로 보이는 영화 ‘서부에서 죽는 100만 가지 방법’이 리암니슨의 새 영화다. 제목처럼 서부영화다. 그런데 장르가 어떤지 예상되나. 바로 코미디란다. 이게 바로 리암니슨의 황혼기를 황금기로 바꾼 단적인 원동력이 아닐까.

<김범진 님은 언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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