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문지연의 나 홀로 동유럽 유람기> 21회-슬로베니아 류블랴나 2편



빛바랜 공산정권의 흔적이 감도는 회색빛 도시. 과거 동유럽을 떠올리면 스치는 이미지였다. 동유럽에 대한 막연한 관심이 샘솟았던 이유도 신문지면에서 발견한 회색빛 전운 때문이었다. 전쟁의 긴장을 부인할 수 없는 한반도에 살면서 어떤 동질감이 자극된 연유였을 것이다. 동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그 흔적이 사라진 뒤에도 필자의 머릿속에는 한동안 이와 같은 우울한 이면들이 뿌리박혀 있었다.
서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발전했고 여행 지역으로 덜 조명 받고 있다는 호기심과 개척 정신 또한 여행지로 관심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동유럽 여행의 처음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펼쳐진 도전은 또 다른 나를 만드는 그릇이 되었다.
독일을 시작으로 체코,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헝가리, 루마니아, 그리스, 터키에 이르기까지 9개국을 홀로 거닐었던 시간들을 꺼내어 본다.



# 류블랴나 성에서 바라본 시내 전경



아니나 다를까. 앞질러 가던 남자의 동태가 영 수상했다. 필자가 뒷산 초입에서 길을 물었던 현지 청년이었는데 그가 느닷없이 가던 방향을 틀어 필자와 함께 산을 오르려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그저 ‘불현듯 생각난 볼 일이 있나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수상함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가 필자의 발걸음에 보조를 맞추듯 왔다 갔다 하며 천천히 걷더니 이내 잽싸게 종종 걸음을 쳤다. 필자와의 사이가 크게 벌어지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더니 또 다시 가던 길을 멈추고 이내 ‘얼음’처럼 그 자리에 서곤 했다. 그 후로도 그는 몇 번이나 가던 길을 돌아 아래로 내려가다 다시 올라 갔고 그러다 멈추고는 또 다시 뛰어가길 반복했다. 그의 이상한 행동에 점점 겁이 났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난 뒤에는 가만히 서서 밑에서 걸어 올라오는 필자를 뚫어져라 응시하기까지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이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의 근처에 도달했을 때 쯤, 참다못한 필자가 강건한 투로 “네 갈길 가라”고 불같은 카리스마를 ‘연기’했다. 그의 반응이 두려웠지만 여리거나 만만하게 보여서는 안 될 일이었다. 필자의 호통에 순간 이상하고 몽롱한 표정을 짓던 그는 다행히 뒤를 돌아 천천히 산을 내려갔다. 힐끔힐끔 뒤를 돌아 필자 쪽을 응시하면서 말이다. 내려가다 말고 다시금 달려 올까봐 등짝에선 식은땀이 줄줄줄. 정말이지 겁이 나는 순간이었다. ‘휴~.’

뒷산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엎치락뒤치락 쫓아왔던 청년 때문에 마치 한라산을 등반하는 것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산을 오르니 탁 트인 대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 위에 우뚝 솟은 류블랴나 성이 시야에 사로잡혔다.

류블랴나 성은 지진으로 인한 소실, 외부의 공격 차단 등을 목적으로 몇 차례 변화를 거치다가 17세기에 지금의 모습으로 탄생되었다. 한때는 병원, 감옥 등으로 쓰였다.




# 여러 차례 변화를 거치다가 17세기에 지금의 모습으로 탄생된 류블랴나 성. 과거 병원, 감옥 등으로 쓰이기도 했다.



성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화려한 장식 따위 없는 단출한 느낌이다. 크지 않은 요새 같은 느낌도 있다. 

타워와 박물관을 오갈 수 있는 4유로짜리 티켓을 끊고 전망대로 향했다. 전망대는 류블랴나 전경을 한 눈에 내다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탑에 오르는 계단부터 범상치가 않았다. 철 구조물에 한 발짝 발을 내밀 때마다 다리가 후덜덜. 탑 꼭대기에 서니 오금이 저렸다. 세찬 바람이 자주 불어 몸이 좌우로 흔들렸고 그 때마다 밑으로 추락할 것 마냥 아찔했다.

그 밑을 가만히 내려다보니 갈색에 가까운 주황색 지붕이 한 눈에 사로잡혔다. 유럽의 여느 도시에서 봤던 전경과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었다. 한편으로는 좀 더 아기자기하고 차분한 느낌이랄까.

그 풍경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은 뒤 이른바 ‘셀카’ 찍기를 시도했다. 인증 사진 한 장 정도는 남기고 싶어서였다. 거센 바람의 움직임이 내심 두려워 한 손으로는 벽을 짚고 다른 한 손으로는 카메라를 집어 들며 ‘찰칵.’




# 류블랴나 성 탑에서 바라본 성 내부 모습



카메라를 어렵게 잡고 사진을 찍는 필자의 모습이 불쌍해 보였나. 바로 옆에서 사진을 찍던 여성들이 다가와 독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손을 내밀었다. 호의를 받아들여 사진을 찍은 뒤, 답례로 모녀 사이로 짐작되는 세 여인의 사진을 찍어줬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두 발짝을 옮기던 찰나, 중년의 여인이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코리아.” 그 말에 옆에 있던 젊은 여성이 반색을 하며 말을 건넸다.

“와! 내 남자친구가 한국 사람예요. 반가워요.”

미소를 머금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헤어지려던 순간, 한국인을 남자친구로 둔 여성이 등을 돌리는 필자를 붙들어 세웠다.

“우리 세 사람은 모녀 사이에요. 미국 사람이고요. 지금 유럽 여행 중인데 시간 괜찮으면 같이 저녁 식사해요!”

‘전기 주전자를 폭파시키며 밥을 먹은 것이 고작 한 시간 전인데!’ 아직 배가 채 꺼지지 않았지만 그녀들의 부담스러울 만큼 간곡한 제의를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어 그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 류블랴나 시내



“식사를 한지 얼마 안 되니 가볍게 먹을게요.”
그녀들과 함께 성 안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레스토랑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동유럽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형태로 변형된 요리 ‘굴라시’를 주문했다. 훗날 헝가리에서 맛 본 굴라시는 스프 형태였는데 이날 주문한 것은 마치 스테이크와 같았다.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한바탕 자기소개를 이었다. 필자에게 저녁 식사를 제안한 큰 딸 캘리는 홍콩에서 유학 중이며 같은 유학생 신분의 한국인과 연애 중이라고 했다. 그 덕분에 소주와 막걸리를 먹어봤고 갈비를 무척 즐긴단다.

음식 얘기에 일순간 어색한 침묵이 녹아 내렸다.

캘리의 동생은 “언니 덕에 비빔밥을 먹어봤는데 입에 꼭 맞는다”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 류블랴나 시내는 대낮에도 대체로 한산했다. 조용하고 차분한 느낌의 도시다.



그녀들의 어머니 또한 “한국 음식이 맛있는 게 참 많더라”라고 받아쳤다. 그러나 그에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음식도 있단다. 바로 삼겹살. “아무런 조리도 없이 그냥 구워먹는 삼겹살은 이상하더군요. 도대체 무슨 맛인지 모르겠어요.” 말끝엔 이내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맙소사! 내가 지금 제일 먹고 싶은 음식 1순위인데! 갖고 있는 물건을 몽땅 바꿔서라도 쟁취하고 싶은 그 맛을…. 헐!!!!’

그는 뒤이어 서울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서울은 크레이지 도시죠. 서울처럼 모든 것이 확확 변화하는 도시가 없는 것 같아요. 한국은 참 익사이팅한 나라 같아요.”

서울의 엄청나게 빠른 변화가 그저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이야기 중에 캘리의 눈에서 하트가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한국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봤는데 극중 윤지후가 굉장히 멋있더군요. ‘꺄~악’ 정말 좋아.”

‘꺄르르륵.’ 네 여인은 음식을 모두 먹어치울 때까지 여러 차례 레스토랑의 지붕을 들었다놨다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들 모녀와의 예상치 못했던 자리가 어색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꽤나 즐거웠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그 놈의 길지 않은 영어 실력이었다. 짧은 실력 때문에 대화 중간 중간 맥이 끊기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그래, 서울 가면 공부하자, 공부! 공부해서 남 주나!’




# 류블랴나 광장



그들에게 모녀가 함께 여행을 다니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다고 했다. 그녀들은 삼주 일정으로 유럽에 놀러왔으며 다음날 덴마크를 거쳐 미국으로 돌아갈 참이란다.

어머니와 함께 배낭여행을 떠나는 것은 필자의 오랜 바람이기도 했다. 오래도록 각자의 일에 치이다보니 어느새 어머니는 장거리 여행을 떠나기 힘들 정도로 연로해져 버렸다. 여기에 노환까지 겹쳐 이제는 가까운 거리도 마다하신다. 먼 거리, 장기간의 여행이 아니더라도 진작 엄마 손을 붙들고 곳곳을 다니며 추억을 만들었더라면 좋았으련만. 마음 한 편이 아련했다.

식사와 이야기를 마친 뒤 그들과 각자의 여행을 응원하며 돌아섰다. 뜻하지 않았던 이날의 짧은 만남은 홀로 맞이하던 단조롭고 쓸쓸한 여행을 기름지게 하는 윤활유와 같았다. 덩달아 류블랴나가 조금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성을 빠져나와 구시가지 구경에 나섰다. 류블랴나는 도보로 반나절이면 관광할 수 있을 정도로 작다. 고층 건물 없이 중세풍의 낮은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도심은 어느 길을 걸어도 조용하고 차분했다. 좁은 골목길을 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유럽의 여느 도시와 풍경이 닮아 있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더 없이 차분한 분위기여서 길을 걷는 것이 마냥 즐거웠다.

강이며 산이며 예쁜 건물까지. 작은 공간을 감싸고 있는 자연과 그 공간 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고풍스런 건물들 사이를 걷고 있노라면 마치 미니어처 속으로 빨려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그 길을 따라 민족시인 프레셰른의 사랑 얘기가 스민 광장으로 향했다.


ohora88@naver.com<문지연 님은 언론인이며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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