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관 지음/ 민음사





경성기담』의 저자 전봉관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고민’과 ‘사랑’이다. 저자는 이 두 가지 키워드를 풀어내기 위해 1930년대 신문 독자상담 코너에 주목했다. ‘남녀 문제, 가정 문제, 어찌하리까?’라는 표제 아래, 그 시절 사람들을 잠 못 이루게 했던 뜨거운 고민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근대와 전근대가 착종하던 1930년대는 ‘성 윤리의 아노미 시대’라 할 만큼 혼란했고, 마마보이, 폭력 남편, 바람둥이 등이 그 틈을 비집고 기승을 부렸다. 이 책은 뜨거웠던 청춘의 고민 속으로 걸어 들어가 당대 사회의 구조적 병폐를 분석하고, 근대인들의 일그러진 일상을 추적한다.

근대와 전근대가 착종하던 1930년대는 ‘성 윤리의 아노미 시대’라 할 만큼 혼란했다. 자유연애의 도입으로 이제 막 사랑에 눈뜬 근대인들은 전근대 가족 윤리와 끓어오르는 연애 감정 사이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잦은 폭력으로 병상에 누운 아내를 강제 퇴원시키고 그 돈으로 오입질하는 남편, 처제를 임신시키고도 자살하라 명하는 뻔뻔한 형부, 관계하고 나니 재미가 적어졌다며 약혼을 해소하려 드는 파렴치한이 판치는 시대가 탄생한 것이다.

우리는 왜 이 혼란의 시대에 주목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이때, 지금 우리의 사생활을 규정하는 가족 문화와 성 윤리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수백 년간 이어졌던 조혼의 병폐가 공론화되고, 지옥 같은 결혼 생활의 해법으로 이혼이 제시되었으며, 양육비나 위자료 같은 개념이 생겨난것도 이즈음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가혹한 시집살이와 고부 갈등은 지금도 수많은 가정불화의 주요 원인이고, 성차별적인 정조 관념 역시 잔존해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아직도 사회구조적 모순이 낳은 성 문제, 가정 문제로 고민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문학자 특유의 날 선 통찰력으로 개인의 사적인 고민 뒤에 숨은 사회구조적 모순들을 짚어 낸다. 저자는 1930년대 남성들의 성적 방종, 제2부인 문제, 가정 폭력의 기저에 조혼 풍습, 뿌리 깊은 정조 관념, 남성의 간통죄를 규정하지 않는 법 규정 문제 등이 얽혀 있었음을 확인하고, 길항하는 가치들의 충돌이 개인들의 삶을 어떻게 비극으로 몰아갔는지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정리 이주리 기자 juyu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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