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가장 에로틱한 삶의 현장 갯벌에서 (20)




# 육지에서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



밤 열한시 무렵에 아마 살풋 잠이 들었을 것이다. 잠결에 놀라서 깜짝 눈을 뜨니 열두시가 넘어 한 시가 다 되어간다. 작업 현장에 도착해야 할 시간이 01시 30분인데 큰일났다. 몸에 찬물을 끼얹어서 정신을 좀 차리고,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서둘러 달려가니 작업은 이미 시작되었다. 어둠 속에서 종패 자루를 트랙터에 옮겨 싣는 사람들의 숨소리가 사뭇 거칠다.
그런데 도착한 차량은 아직 한 대뿐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표현은 아마 이런 때는 쓰는 것일 게다. 십이 톤 트럭 두 대가 예정돼 있는 날이었다. 서산을 출발한 차량 두 대 중 한 대가 군산 근처에서 펑크가 났단다. 자정도 넘은 한밤중에 어서 빨리 바다에 넣어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종패를 가득 적재한 화물트럭이 펑크가 났으니 운전기사는 아마 굉장히 당혹스러울 것이다.

바다, 바다 중에서도 습지라고 불리는 갯벌은 마약과도 같다. 일단 들어가서 그 속살을 온 몸으로 겪어보고 나면 대단한 중독성에 감염되어 헤어나기가 어렵다. 너무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죽으면 죽었지 이런 일은 못해먹겠다고, 작업 현장에서는 몇 번씩이나 속으로 다짐하고 심지어 맹세까지 해보지만, 집으로 돌아와서 하루만 지나면 다시 나가고 싶어진다.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면 길을 걷다가도 작업 현장에서의 일이 떠올라오고, 나중에는 꿈에서까지 나타나서 다른 일은 손에 잡히지를 않는다. 정신없이 땀을 뻘뻘 흘리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이는 하늘의 구름 한 점, 땀을 말려주는 바람 한 줄기, 귓가를 스치는 갈매기들의 소리, 갯벌을 뽈뽈뽈 기어가는 어린 게들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도 그리움의 대상 아닌 것들이 없다.

그냥 바다에 놀러가서 보았을 때는 그리 큰 감흥을 주지 못했던 것들이, 혹은 보면서도 못 보고 지나쳤던 것들이 작업 도중에 문득문득 한 번씩 눈에 띄고 나면 그것이 마치 영혼에 도장이라도 콱 찍어놓은 것처럼 깊이 새겨져서 영 떠나지를 않는다. 앉지도 못하고 선 채로 하나씩, 혹은 한 잔씩 집어먹고 마시는 간식의 맛은 또 어떤가. 밥 맛 없고 입맛 없는 사람은 오시오, 하고 크게 미친 듯이 노래라도 불러대고 싶으리만치 그 맛은 오묘하고 절묘해서 도무지 잊을 수가 없다.




# 어둠 속을 달린다.



갯벌 중에서도 밤의 갯벌은 신비 중에서도 신비라 할 만하고, 현란함의 극치라 이를 만도 해서, 갯벌 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과는 그야말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도무지 말을 섞기가 어렵다. 하늘에 달도 없고 별조차도 없는 흐린 날 오밤중에 트랙터의 라이트에 의지해서 목도하는 온갖 생물들의 꿈틀거림은,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눈물이라도 벌컥 쏟아질 것만 같은 그 현란한 춤사위들은 사실 입으로 옮기기도 어렵거니와, 어떻게 대충 옮긴다 해도 듣는 사람이 제대로 소화해낼 수가 없으니 그냥 신비하다, 한마디로 끝내고 침묵하는 편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밤바다, 자칫 정신을 놓고 빠져 있다 보면 목숨까지도 잃게 된다는 밤바다의 정서는 낮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하늘에 별조차도 보이지 않는 깜깜 오밤중에 갯벌 일을 하다가 문득 이상한 예감에 고개를 들어 사방을 살피노라면 여기저기 도처에서 푸른 광선 같은 것들이 뻗쳐 나온다.

그때의 전율이란, 그것은 그야말로 전율이어서, 인간의 언어로는 도무지 명확한 해석도 설명도 불가능하다. 온 몸을 저릿저릿하게 하는 그 순간의 느낌을, 그 외경심을 가슴에 깊이 보물처럼 간직해두고 혼자서 가끔 음미해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역시 그것만으로는 미진하다. 호랑이가 며칠 전에 먹은 사슴이나 닭고기의 맛을 음미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듯이, 마약과도 같은 밤바다의 맛을 알아버린 사람은 입버릇처럼 중얼거리곤 한다.

“언제 또 밤일 안 가나?”
간다. 밤일이 생겼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려 보름 가까이나 연속으로 종패를 뿌려야 할 일이 생겼다. 충청도의 서산 인근 갯벌에 영향을 미치는 천수만이 수문을 열어서 담수를 대량 방류하는 바람에 갯물을 먹고 살아가는 바지락이 대량 폐사 위기에 처하고 말았단다. 그래서 그쪽의 바지락을 고창의 하전 갯벌로 이주를 시키는데 이삿짐을 꾸리는 일은 낮에 하고 푸는 일은 밤에 한다. 요컨대 충청도 사람들이 낮의 썰물 시간대에 어린 바지락을 잡아서 밀물 시간대에 트럭에 실어 고창으로 보내면 고창 사람들이 밤의 썰물 시간대에 트랙터에 싣고 갯벌로 들어가서 적당한 자리에 뿌려주는 것이다.




# 바다에서 때를 기다리는 모습



시간이 오전 한 시가 있고 오후가 한 시가 있듯이, 썰물에도 오전 썰물이 있고 오후 썰물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매번 같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시간 또한 매번 같지가 않아서 작업 시간 또한 날마다 다르다. 어제 오후 일곱 시에 썰물이 시작되어 여덟 시쯤 작업을 나갔다면 오늘은 여덟 시 사십 분, 내일은 아홉 시 이십 분, 이런 식으로 시간이 계속 바뀌다 보면 오늘이 아니라 내일 새벽 한 시 이십 분에 작업을 나가게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시간 약속이 어김없이 지켜지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중조기와 대조기에는 예정 시간이 거의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기도 하지만, 소조기와 정조기에는 적어도 삼십 분 이상 두 시간 가까이 차이가 나기도 한다. 뿐만이 아니다. 날씨가 환장하게 맑은 날에는 물이 멀리까지 나가서 좀처럼 안 들어오기도 한다. 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또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밀려들어오기도 한다. 비도 안 오면서 날씨가 매우 흐린 날에도 물의 흐름은 느려진다.

도무지 어제가 그제 같지 않고 오늘이 또한 내일 같지 않은 것, 바다가 살아 있다는 것을 이것만큼 실감나게 증명해주는 것도 없다. 살아 있지 않고서야 어찌 그리 날마다 다를 수 있으랴. 그래서 갯벌 일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도 무엇을 다 안다고는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바다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있어 긴장과 겸손은 필수 항목인 셈이다. 그것은 기다림의 시간이기도 하다.

갯가의 사람들에게 있어 기다림은 조금 과장을 하자면 운명과도 같다. 내가 하고 싶다 해서 마음 내키는 아무 때나 바다로 들어갈 수도 없고, 내가 바지락을 제아무리 많이 잡았다 해도 소비자의 요청이 없다면 도로 바다에 뿌려야 한다. 종패 또한 마찬가지여서, 내가 십 톤을 뿌리고 싶다 해서 십 톤을 아무 때나 뿌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내는 쪽에서 십 톤을 보내는 날까지 긴장된 마음으로 모든 준비를 갖춰놓은 채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만 한다. 설령 보내는 쪽에서 금방 보냈다 해도 오늘처럼 트럭에 이상이 생기면 그 또한 기다림이요 긴장의 연속이다.




# 종패를 뿌리는 시간



“아니 뭐여 이거, 삼십 분이 다 돼 가는데 아직도 안 오네?”
“음마, 진짜 뭔 일이랴?”
어둠 속에서 두런두런 잡담을 이어가며 펑크 난 트럭을 기다리던 사람들의 ‘기다림’도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 초조감과 긴장감이 언행 하나하나에서 역력히 묻어난다. 물이 들어오면 하던 일도 중단하고 철수해야 하는 게 바다의 법칙이다, 만약에 잘못 되면 종패를 싣고 들어가서 물속에 그냥 던지고 돌아와야만 한다. 게다가 물의 움직임이 거의 안 느껴지는 조금 즈음이었다.

다행히도 트럭은 곧 도착해 주었다. 트랙터 4대가 금방 트럭을 에워싸는 형국으로 달라붙었다. 트럭 운전기사는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고자 애를 쓴다. 고속도로에 웬 난데없는 건축용 못 같은 것들이 널려 있어서 펑크를 피하기 어려웠단다. 하지만 그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만한 여유는 없었다. 조금 즈음의 밤바다는 위험하다.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단 일 초라도 빨리 종패를 트랙터에 옮겨 싣고 바다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이십 킬로그램짜리 종패 자루 칠백 개가 순식간에 트럭에서 트랙터로 옮겨졌다.

시간은 02시 20분. 빗속을 걷다가 실내로 들어온 사람처럼 모두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이마에서 얼굴로 줄줄 흘러내리는 땀을 장갑 낀 손으로 쓱쓱 닦아내며 모두가 물을 찾는다. 물 한 모금에 땀을 식히고, 펄떡펄떡 뛰는 심장도 어지간히 진정이 되면, 그러면 이제 어둠에 잠긴 바다로 들어갈 것이다. 그런데 작업을 총괄하는 팀장의 입에서 뜻밖의 얘기가 나온다.
“삼십 분은 더 있다가 들어가야 쓰겄는디.”
“으잉? 그려어?”

애초에 시간을 잘못 계산한 것은 아니다. 조금 즈음에는 작업 현장까지 물이 나가는 시간을 제대로 계산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불가능하다. 다만 경험에 의해서 몇 시쯤 것이다, 하는 예측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오차가 때론 삼십여 분일 수도 있지만, 어떤 때는 한 시간 이상일 수도 있고 두 시간 이상일 수도 있다.




# 작업이 끝난 뒤에~



“아이고 참말로, 남자들은 왜 그러는가 몰러-어.”
각자의 취향껏 자유로운 자세로 앉거나 혹은 선 채로 시간을 기다리던 사람들 속에서 문득 그런 소리가 들리고, 뒤를 이어 또 다른 목소리가 그 말을 덮는다.
“아이고 참말로, 여자들은 왜 그러는가 몰러-어.”

그 순간 공기의 흐름이 확 변해 버렸다. 박장대소.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한참을 그렇게 웃어대던 어느 순간 문득 쉬, 소리가 또 한 번 공기의 흐름을 바꿔놓는다. 너무 시끄럽다고, 동네 사람들 모두가 곤히 자고 있는 시간에 우리가 이러면 안 된다는 얘기가 소곤소곤 흘러나온다. 겨울이라면 모두가 문을 꼭꼭 닫고 자기 때문에 그나마 괜찮지만, 여름에는 방충망 사이로 사람 소리가 다 들리는데 얼마나 짜증스럽겠느냐고, 안 그래도 할 일이 없어 짜증이 나는 판에, 저희들은 일을 한다고 남 잠도 못 자게 떠들어댄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속이 상하겠느냐 등등 역지사지의 이야기가 한참을 소곤소곤 조심스럽게 흘러나오던 어느 순간 누군가의 입에서 비상한 아이디어가 튀어나온다.

“이럴 게 아니라 차라리 물속으로 들어가서 놉시다, 응?”
“아 그려, 그려.”
의견은 금방 통일되었다. 여덟 대의 트랙터가 일제히 시동을 걸고 한 대씩 갯벌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오디오를 장착한 누군가의 트랙터에서 흘러간 유행가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사랑이 별 거더냐, 좋아하면 사랑이지, 아줌마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노래를 따라 부르고, 아저씨들은 아하, 아하, 소리를 연발하며 손으로 종패 자루를 탁탁 두드리는 식의 장단을 맞춘다.

갯벌을 삼십 분쯤 달리니 물이 나온다. 트랙터의 바퀴가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들어갈 수가 없다. 또 기다려야 한다. 트랙터는 멈췄지만 흘러간 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했던가. 사람들은 무릎까지 잠기는 물속을 걸어서 한 자리에 모인다. 막걸리를 마시자. 달도 별도 없는 흐린 날 바다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노래를 부르자. 시간이야 한밤중이면 어떻고 새벽이면 어떠랴. 막걸리를 마시자, 노래를 부르자.




# 한밤중의 수박 썰기



자 이제 때가 되었다. 놀이는 끝났다. 이제부터 두 시간 동안은 온 몸의 에너지를 끄집어낼 수 있는 한 끄집어내야 한다. 트랙터 여덟 대가 일렬로 늘어서서 이십 킬로그램짜리 종패자루 천오백 여개를 일 미터 간격으로 갯벌에 내려놓으면 그것을 개봉해서 골고루 뿌려대는데 그야말로 숨 쉴 시간조차도 없다. 목이 찢어지는 듯이 타 들어가도 물 한 모금 마시러 갈 시간이 없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바닥을 불불불 기어 다니는 손톱만한 작은 참게를 재빨리 낚아채서 흙을 털어내고 입에 넣어 잘근잘근 씹기도 한다. 그러면 참게 특유의 달콤한 맛이 갈증을 해소시켜 주는 것이다.

시간이 가는지 오는지도 모르게, 그야말로 정신없이 한바탕 땀을 뻘뻘 흘리고 나니 어느새 작업은 다 끝났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파름하게 먼동이 터온다.  얼음이 잔뜩 든 아이스박스에서 수박이 나오고, 뚝뚝 싹싹 잘려지는데 보기만 해도 그냥 갈증이 해소돼 버린다.

수박, 아, 수박, 수박이라 해서 다 같은 수박은 아니다. 새벽녘, 먼동이 터올 무렵 바다 속에서 땀에 젖은 몸으로 수박을 먹는 기분을 그대는 아는가, 하고 누군가에게, 아니 하늘에게라도 한 번 물어보고 싶어진다. 이 세상 그 많고도 많은 사람들 가운데 이런 기분을 아는 사람이 도대체 몇이나 될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내가 바야흐로 상위 일 퍼센트 내의 어떤 특권층 아니 특별한 계층에 속한다는 생각도 얼핏 스친다.

자칫 하면 물에 잠겨 죽을 수도 있다는, 생명을 걸고 한다는 데서 오는 긴장감으로 보자면 빙벽을 타는 사람들에 못지않고, 트랙터를 타고 갯벌을 달리는 데서 오는 여행의 기분으로 말하자면 그 어떤 트래킹이나 사파리에 못지않으며, 짧은 시간이나마 노동의 강도로 보자면 대체 이것보다 더 강력한 노동이 세상에 또 뭐가 있을까, 언뜻 떠오르는 그림조차도 없다. 게다가 정조 시간대라서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며 희희덕거릴 때의 그것은 ‘타락천사’도 이런 타락천사들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을 지경이고 보면, 이리 보나 저리 보나 갯벌에서의 삶이란 특별하기만 하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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