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 지음/ 김영사





‘유리 천장glass ceiling’이라는 용어가 있다. 여성들의 고위직 진출을 가로막는 사회 내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하는 말로 여성 진출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한다. 딸도 아들과 똑같이 유산을 상속받던 고려에 비해 이 땅에 가부장적 질서가 통치 이데올로기가 정착되어 남녀 차별이 극심했던 조선에서 유리 천장의 꼭대기에 있는 여성은 왕비였다.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이러한 여성 억압적 질서가 여성 왕비인 인수대비의 손에 의해 확립되었다는 것이다. 《내훈》을 편찬하면서 여성들을 가부장적 질서 속에 묶어놓은 인수대비는 1476년 7월 17일 아들 성종을 통해 과부의 재혼 금지 및 재가 자손이 벼슬길을 금하는 법제를 확립시킨다. 그리고 이 질서를 기반으로, 성종의 왕권 강화를 꿈꿨던 며느리 윤씨를 살해한다.

이 책 《왕비의 하루》는 남성 권력 사회에서 생존해야 했던 여성 최고 권력가의 복심과 반전의 드라마를 하루라는 시간 안에 녹인 책이다. 《뿌리 깊은 나무》의 이정명이 “역사의 갈피에 잠들어 있던 드라마틱한 순간을 날카로운 통찰과 박력 있는 문장으로 단칼에 잘라 선연하게 보여주었다”고 극찬한 《왕의 하루》(이한우 지음)의 후속작이기도 하다. 저자 이한우는 상상력을 동원한 힘 있는 글쓰기와 정치한 역사 해석이 교차하는 가파른 지점을 소요하는 저널리스트로서 10년에 걸쳐 《조선왕조실록》을 탐독하면서 권력의 리더십 연구에 몰두해왔다.

‘닭 울음소리의 경계鷄鳴之戒’로 시작하는 아침 기침에서 문안 인사와 수라상, 내명부와 외명부를 통솔하는 왕비의 일상적인 하루를 그린 프롤로그가 지나면 조선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하루 속에 놓인 왕비 세 명이 등장한다. 사필이 지워버린 최초의 국모 신덕왕후, 여성 억압의 문화가 살해한 폐비 윤씨, 왕의 권력을 휘두른 유일한 여성 문정왕후가 그들이다.

태조 이성계의 정비였던 신덕왕후는 조선 최초의 국모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집안은 《고려사》에서 폐행嬖幸(아첨하는 간신)으로 분류되었다. 신덕왕후가 이방원(태종)과의 차기 왕권을 둘러싼 권력 투쟁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다. 조선 최초의 세자가 정해지던 1392년 8월 20일 운명의 그날, 신덕왕후는 이방원을 받드는 조준과 배극렴 등 공신 세력에 피눈물로 맞서며 아들 방석을 세자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건국의 최대 장岺� 정몽주를 제거할 때만 해도 신덕왕후와 이방원은 한 편이었다. 이 때문에 정몽주 살해 사건 당시 이성계가 진노했음에도 불구하고 신덕왕후는 “공(이성계)은 항상 대장군으로서 자처했는데, 어찌 놀라고 두려워함이 이 같은 지경에 이릅니까?”라며 극구 이방원을 변호했다. 그러나 건국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신덕왕후는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신권 정치를 꿈꾸는 정도전을 끌어들이며 이방원 세력과 날카롭게 한다. 그러나 마흔 무렵이던 1396년(태조 5) 8월 신덕왕후는 세상을 떠났고, 정확히 2년 후인 태조 7년 8월 26일 이방원은 거병하여 신덕왕후의 아들들인 세자 이방석과 대군 이방번은 물론 정도전 일파를 깨끗이 제거한다. 그 후 조선은 이성계나 신덕왕후의 나라가 아닌 이방원의 나라가 된다. 적어도 신덕왕후가 생존해 있던 동안에는 이방원 쪽이 꼼짝도 하지 못했던 것을 볼 때 그녀의 정치력은 대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2부에서는 차기 왕을 선택하는 권력인 대비의 탄생과 환국정치를 통해 외척을 단칼에 베어버린 절대군주 숙종의 이야기가 줄기를 이룬다. 세조비이자 예종의 어머니였던 정희왕후는 예종이 세상을 떠나자 차기 왕으로 왕위 계승 서열 1위 제안대군을 제치고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인 잘산군을 선택한다. 잘산군이 우군 한명회의 사위였기 때문이다. 최초의 파워 대비 정희왕후와 공신 세력의 결탁은 수렴청정과 원상제를 기반으로 성종이 성년이 될 때까지 이어지고, 이후에는 인수대비가 정희왕후의 권력을 이어받아 여성 억압적인 조선을 확립한다. 이러한 대비의 상징성은 자의대비를 둘러싼 예송논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들과 며느리가 죽었을 경우 대비가 상복을 얼마 동안 입어야 하는가라는 단순한 문제에서 출발한 이 논쟁은 훗날 조선사의 물줄기를 바꿀 만큼 폭발력 있는 사안이 되었다. 송시열 등 서인 세력은 효종을 인조의 적자가 아닌 중자衆子로 간주하며 왕권을 위협했고, 이에 분노한 효종의 아들 현종이 하루아침에 서인들을 축출해버린 것이 예송논쟁의 개요다. 뒤를 이은 숙종은 이러한 환국정치는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원자와 세자를 거쳐 왕위에 오른 숙종은 국왕으로서의 프라이드가 대단했고 외척과 신하들이 왕권에 도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숙종은 인현왕후를 중심으로 한 서인 정권을 단 한 번의 결정으로 장희빈을 둘러싼 남인 정권으로 바꿔버린다. 또한 민암 등 남인 세력이 김춘택의 역모 사건을 빌미로 왕실을 공격하자 단숨에 장희빈을 왕비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서인인 인현왕후를 복위시킨다. 이러한 숙종의 카리스마는 원자까지 둔 장희빈이 결국 사약을 마시고, 마지막 숙종비 인원왕후마저 친정의 당론을 버리고 숙종의 본심이었던 노론을 지지한 것에서도 확인된다.

3부는 왕실과 외척 간의 200년 전쟁 이야기다. 정조와의 악연으로 얽혔던 정순대왕대비가 권력을 장악한 후 왕실과 외척 세력은 끊임없는 투쟁을 벌였다. 순조비 순원왕후는 그 유명한 안동 김문의 세상을 열였다. 이러한 외척들의 전횡에 지친 국왕 순조는 순조 27년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다. 아들 효명세자의 대리청정이었다. 숙종 이후 최초의 적장자 세자였던 효명세자의 대리청정은 위풍당당 그 자체였다. 외가인 안동 김문과의 일전을 불사했던 그는 외삼촌 병조판서 김유근을 의금부에 가두고 외가의 핵심 김교근을 이조판서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다. 또한 처가 풍양 조씨 가문을 대항마로 내세우면서 한편으로는 개혁 성향이 강하고 청렴한 인물들을 무서운 속도로 발탁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1830년(순조 30) 효명세자가 스물두 살의 젊은 나이로 급서한다. 외가에 의한 암살설이 제기될 만큼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다시 한 번 안동 김문의 세상이 찾아왔다. 철종이 죽음을 맞은 후 그동안 절치부심해왔던 풍양 조씨 조대비는 차기 왕으로 흥선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 이재황을 선택한다. 외척에 밀린 다른 외척과 몰락한 왕실 후손의 결탁이었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의 천하도 여걸 며느리 명성황후에 의해 끝장이 나고 명성황후는 현직 왕비로서는 유일하게 정권을 장악한 여성으로 역사에 남는다.

신덕왕후와 이방원의 대립에서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의 암투까지 왕비들과 왕실은 조선사 500년 동안 전쟁을 치렀다. 왕비들은 남성 권력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여성 특유의 육감의 정치를 구사하면서 때때로 짜릿한 반전의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배출했지만 우리 사회의 유리 천장은 여전히 견고하며 우리는 이 천장의 뿌리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왕의 총애를 둘러싼 투기나 권력 투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남성 권력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한 여성의 투쟁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책 《왕비의 하루》는 이러한 필연적 요구를 충족시켜줄 뿐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 사극에 못지않은 재미를 선사한다. 독자들에게 역사에 대한 색다른 통찰과 흥미진진한 몰입감을 선사할 이 책의 일독을 추천한다.

정리 이주리 기자 juyu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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