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아비들의 두런거리는 소리...
성난 아비들의 두런거리는 소리...
  • 이주리 기자
  • 승인 2014.10.14 11: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광환 선생님의 동학농민혁명 이야기


이 글은 갑오농민혁명계승사업회 이사장이신 조광환 선생님(전북 학산여중)이 들려주는 청소년을 위한 동학혁명이야기입니다.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우리의 역사를 다시금 되새기고 그 의미를 상기시킬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리란 생각에서 연재했던 것을 독자님들의 적극적인 재 연재 요청에 의해 다시 한번 게재합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 만석보



몇 해전 지금은 정년 퇴직하신 이평 면장님을 뵙고 흉물이 된 이 비를 철거하자고 말씀을 드렸답니다. 동학농민혁명 사업에 의욕이 넘치셨던 면장님은 좋은 생각이라면서 그러나 그 자리를 대신 할 무언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시어 제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만석보 터에 오면 이곳이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간직한 곳인지를 알려주는 표지판조차 없으니 그 것으로 대신했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밋밋한 표지판 대신 시인이자 과거 민주화 운동을 했던 양성우 씨가 쓴 ‘만석보’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 시가 그 어떤 설명문보다 더 와 닿는 내용이니까 그 시비를 대신 세웠으면 합니다”.

이 말을 듣고 면장님은 당시(1999년 1월) 전라북도 도지사인 유00에게 철거 신청을 했으나 전임 도지사가 해 놓은 걸 후임자가 없애면 전례가 된다면서 철거신청을 반려했답니다. 한편 의욕 넘치시는 면장님은 이미 석공을 시켜 ‘만석보’ 시비 제작 작업을 마친 상태인지라 이제는 마땅히 놓을 곳이 없게 돼 버린 실정이라 어쩔 수 없이 현 위치에 놓이게 되었답니다.

만 석 보  (양성우 지음)

“들리는가, 친구여.
갑오년 흰눈 쌓인 고부들판에
성난 아비들의 두런거리는 소리,
만석보 허무는 소리가
들리는가, 그대 지금도.
그 새벽 동진강머리 짙은 안개 속에
푸른 죽창 불끈 쥐고 횃불 흔들며
아비들은 몰려갔다.
굽은 논둑길로.”

그때 그 아비들은 말하지 못했다.
어둠을 어둠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아픔을 아픔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본 것을 보았다고 말하지 못하고
들은 것도 들었다고
말하지 못했다.
날 저문 남의 땅, 황토언덕 위에
눈물뿐인 오목가슴 주먹으로 치며
달을보고 울었다.
그때 그 아비들.
가을걷이 끝난 허허벌판에
반벙어리 다 죽은 허수아비로
굶주려도 굶주림을 말하지 못하고
억울해도 억울하다고
말하지 못했다.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주눅들고
천이면 천, 만이면 만
주눅들어서
죽은 땅이 꺼지도록
한숨만 쉬고,
빌어먹을 이놈의 세상
밤도망이라도 칠까?
열이면 열, 백이면 백
한숨만 쉬었다.

제 똥 싸서 제 거름주고
제가 거둔 곡식은 제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오뉴월이면
송장메뚜기라도 잡아먹지.
오동지섣달 길고 긴 밤,
그 허기진 배
오죽했으리.
모진 목숨이 원수였고
조병갑이 원수였다.

이방포졸 떴다 하면
닭 잡고 개 잡아라.
쑥죽 먹는 신세라도
사또조상 송덕비 세워주고,
사또에미 죽었으니
조의금 천냥을 어서내라
못살겠네, 못살겠네 .
보리쌀 한톨이 없어도
억세풀 묵은밥
천수답 다랭이 물세를 내고 ,
죽자사자 낸 물세를
또 내고 또 내라고 하고,
못 내면 끌려가서
죽도록 얻어맞고 .

<이어집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