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 기획 : ‘귀농 열풍’ 그 현장을 찾아서-60> 충북 청주 탑골마을의 전지현 씨


귀농바람이 한창이다. 귀농 붐은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비롯됐다. 1970~1980년대 산업화의 역군으로 ‘차출’돼 탈농을 이끌었던 이들 세대 중 많은 사람들이 농촌으로 회귀해 ‘인생 2모작’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도시생활에 회의를 느낀 30~40대까지 가세, 농촌에서 제2의 인생을 꿈꾸는 귀농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귀농인들은 주로 소일거리를 통한 활력 회복, 전원생활에 따른 신체적·정신적 건강 추구 등을 이유로 농촌행을 결심한다. 물론 생계수단으로 삼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성공하는 건 아니다. <위클리서울>은 도시에 살다 농촌으로 들어간 이들이 귀농을 결심하게 된 계기, 이후의 생활 등을 들어봄으로써 그 현실을 짚어보기로 했다. 이번호에는 2년 전 충북 청주의 미온면 대신리 탑골마을로 들어온 전지현(45. 남)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귀촌

전지현 씨 가족은 2013년 4월 경기도 용인에서 이곳 충북 청주 인근 탑골마을로 귀촌했다. 맞벌이 부부였던 전 씨와 아내는 시골로 내려가기로 한 후 다니던 직장을 모두 그만뒀다. 당시 아이들은 초등학교 4학년과 1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뛰놀며 많은 추억거리를 갖게 해주고픈 바람도 작용했다. 그렇게 결혼 전부터 꿈꿨던 전원생활이 현실이 됐다.

“저나 아내나 시골에서 살 생각을 늘 하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먼저 얘기하더라고요. 시골에 가서 살자고요.”

아이들은, 처음엔 반대했다. 이미 도시 생활에 익숙해진데다 친구들과도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도시에서 오염된 공기 마셔가며 쉴 틈 없이 공부만 하는 아이들이 안 돼 보였어요. 들과 산, 강 등 자연을 벗 삼아 뛰노는 아이들을 상상했어요. 덕분에 큰 딸이 마음고생을 좀 했죠. 아무래도 4학년이면 한참 친구들과 어울려 놀 때인데 갑자기 시골 가서 살자고 했으니. 내려와서도 처음엔 많이 힘들어하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완벽히 적응한 상태에요. 원래 이곳 아이들보다 더 시골아이들 같이 됐죠. 친구도 많이 사귀었고 학교생활도 도시에서보다 이곳이 더 재미있다고 해요.”

큰딸은 6학년, 작은 아이는 3학년, 두 아이 모두 아직까진 초등학생이다. 학원은 너무 먼 거리에 있어서 보내지 못한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더라도 교육상 문제는 전혀 없을 거란다.   





“아내가 영어학원 강사였거든요. 집에서 고등학교 영어, 수학, 과학 정도는 다 가르칠 수 있어요. 근처에 있는 학교에 진학하고 학원 다니지 않아도 별 문제는 없을 거예요.”   

일주일에 한 번씩은 아이들이 학교수업을 빠지는 일이 있더라도 무조건 함께 나들이를 간다. 처음부터 정해놓은 원칙이고 2년간 단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

“산과 들, 계곡과 강을 헤집고 다니죠. 때론 동네 어르신들과 어울려 파티를 열기도 합니다. 내려온 지 2년이 채 안 됐지만 주민들과도 친하게 지내는 편입니다.”        

전 씨 부부는 마을에서 가장 젊다. 마을 이장은 전 씨보다 7살 위이고, 나머지 주민들은 대부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다. 전 씨네 가족을 아들, 딸, 손자처럼 대한다. 우려했던 텃세는 처음부터 없었다.

“저와 아내가 집에 없으면 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놀아요. 텃세 같은 건 느낄 수 없었죠.”   




수제 햄버거 판매로 안착
  

귀촌을 하면서 농사를 짓겠다는 계획은 없었다. 처음엔 자그마한 텃밭을 가꿨지만 지금은 풀만 무성하다. 김 씨는 귀촌 직전부터 이곳에서 햄버거 가게를 차릴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어떻게든 경제생활은 이어가야 했기에 말이다.

“아내와 함께 직접 개발한 햄버거에요. 우리 가족이 즐겨먹던 수제 햄버거인데, 이걸 팔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죠. 아이들에게 먹이기 위해 웰빙 식으로 만든 것이거든요. 이곳에 오면 작은 햄버거 가게를 하나 차릴 계획을 세웠죠.”

귀촌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가게를 냈다. 장사도 어느 정도 되는 편이다. 인터넷 블로그 등을 통해 입소문을 탔고, 외지에서 여행을 오는 이들도 꼭 들른다.

“대박이라는 표현까지는 못쓰겠고, 그저 시골에서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는 정도랄까. 사실 장사가 잘 안 되더라도 대책이 없는 건 아닙니다. 도시에 살 때 가지고 있던 건물을 팔지 않고 임대를 줬는데 매달 70~80만원 정도 월세가 나오거든요. 거기에 가게에서 버는 돈까지 합치면 아이들 학교 보내고 입을 거리 먹을거리 정도는 문제없습니다. 특히 시골에선 큰돈 들이지 않고도 살 수 있거든요. 도시에선 아이들 교육비만 한 달에 100여만원씩 들어가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보낼 학원도 없어서…어쨌든 여유 있게 지내는 편입니다. 돈을 모으진 못해도 빚은 지지 않고 사니까요.”





햄버거 재료는 마을에서 나는 싱싱한 것들만 이용한다. 손님들이 꾸준히 늘어나는 이유다.

“이왕이면 우리 마을에서 나는 농산물을 쓰죠. 파는 주민들도 좋고, 우리도 믿을 수 있고, 손님들도 좋고….” 

아직 저축까지는 아니지만 전망은 밝다. 프랜차이즈 사업도 생각중이다.

“체인 사업을 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우리 가게를 프랜차이즈 쪽으로 확대시켜볼까 하더라고요. 잘하면 전국에 체인점들이 생겨날 수도 있겠죠. 굳이 꿈이 있다면 그런 것들이죠.” 




잃어버린 건강도 회복

귀촌 후 가장 만족스러운 점은 건강을 되찾았다는 것이다. 전 씨는 도시생활 때 10년 이상을 당뇨, 고혈압 등 성인병과 싸워야 했다.

“약을 계속 먹어야 했어요. 의사는 약을 끊으면 큰일 난다고 했죠. 그런데 이곳에 내려와 지내다보니 약 없이도 괜찮더라고요. 얼마 전에 종합검진을 받았는데 당뇨도 혈압도 많이 좋아졌어요.”

그렇다고 불만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특히 음식물 쓰레기 처리 문제 등은 아직도 적응이 안 된 상태다.

“한 여름철 동네 음식물 쓰레기를 2주 동안 안 가져가는 경우도 있었어요. 썩어서 벌레가 끓고 냄새도 지독하죠. 민원을 넣어도 움직이지 않아요. 도시에서라면 난리 나겠죠.”

전 씨 아내 역시 현실적으로 불편한 점들을 토로하곤 한다.





“농가주택이라 겨울이면 굉장히 추워요. 아궁이에 장작을 때는 구조인데 아직 그대로 사용하고 있거든요. 불편하고 춥고, 그런 데서 오는 회의감이 있겠죠. 모든 게 편리하고 따뜻한 도시 아파트에서 살다가 막상 시골의 혹독한 추위와 맞닥뜨리니 만만치 않을 수밖에요. 아내가 아직은 80% 정도만 만족한다고 하는 이유에요.”

가끔은 도시의 지인들을 만나러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귀촌하길 잘했다는 확신이 든다.

“친구들이 그리울 때는 훌쩍 떠나죠. 그런데 서울 갈 때마다 사람이 너무 많고 차도 너무 막혀요(웃음).”

부모님들은 여전히 전 씨네 귀촌생활에 대한 걱정이 크다.





“우리가 아무리 잘 해도 막상 한 번씩 들르시면 불편해하시더라고요. 아무리 장작을 많이 때도 추위가 쉽게 가시질 않으니…. 다시 돌아 가자고도 하시는데 그럴 때마다 설득시켜서 돌려보냅니다(웃음).”

언젠가는 마음에 꼭 들고 생활에도 불편함이 없는 집을 사거나 지어서 보다 안락하게 귀촌생활을 즐길 계획이란다. 

“귀농이든 귀촌이든 사전에 동네 정보를 많이 알고 가야해요. 지역마다 지자체에서 주는 혜택도 다르거든요. 저는 정보를 많이 습득해서 내려왔어요. 그나마 이렇게 만족스러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이제 좋은 집만 마련하면 완벽한 셈이죠.”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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