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희 지음/ 비아북





지은이는 냉면의 고향 평안도 출신 조모와 그 유전자를 이어받은 부친 덕분에 ‘혈관 속에 냉면 육수가 흐르는’ 뼛속까지 진정한 모태 면식수행자다. 국수가 있는 곳이라면 세상 어느 곳이라도 수행의 장소로 삼으며 하루 한 끼는 반드시 국수를 먹는 투철한 면식 수행의 길을 걸어온 끝에, 고단한 삶의 위안으로 ‘좋은 사람과 국수 먹기’의 임상적, 심리적 효과를 홀연히 깨닫고 국수로 책을 쓰게 되었다. 식욕은 삶의 의지고, 미래에 대한 기대이자 뭔가를 먹는다는 것은 찰나를 가장 깊숙하게 즐기는 원초적인 경험이다.

삶의 어떤 순간에나 존재하는 음식의 추억은, 그 사람의 소소한 일상에서 나아가 한 일생을 담아낼 수 있는 어마어마한 기억의 창고다. 저자는 막 삶아 건진 국수가락처럼 삶에서 건진 소중한 인생이야기를 술술 풀어놓는다. 국수라는 소박한 음식을 통해 사소하지만 절실한 인생의 질문들에 답하고 있다. 이 책은 인생의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 인생의 중심이 흔들리는 전환의 시기에 어떠한 자기계발서로도 위로받거나 자극을 받지 못하고 자아비판의 늪에 빠진 이들을 위로하고 구제한다.

이 책은 총 5개의 부, 29개의 국수에 얽힌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여행, 추억, 역사, 문학 등의 큰 범주 아래 다양한 국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지만 그 안에는 단순히 국수의 맛과 정보만 담겨 있지 않다. 글 사이사이에는 저자가 국수를 먹으며 타인과 나눈 정(情), 그리고 그들과 함께한 소중한 순간들이 서려 있다.

며칠째 계속되는 야근에 지쳐갈 때 직장동료와 회사 앞 낡은 국숫집에서 두부국수 한 그릇을 먹으며 저자는 잠시 동안의 휴식을 취한다. “심심한 위로의 말이 떠오르는 밤, 우리는 천천히 국물을 마신다. 걸리는 데 없이 후루룩 술술 넘어가 주는 국수에 감사해하며 15분의 휴식을 음미한다.”

오장동 함흥식 물냉면은 저자에게 애틋한 연애를 추억하는 매개인 반면 비빔냉면은 마흔의 저자로 하여금 그 속에서 부부의 모습을 발견하게 한다. “이토록 이질적인 재료들이 국물이라는 매개체도 없이 각자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며 한데 섞여 있는 모습이라니. 문득 부부의 모습이 이렇지 않나 싶다. 함께한다는 것 외에 별다른 목적 없이 한 공간에 존재하는 사람들. (…) 그렇게 맵게 질기게 살아가는 것이 결혼인가 보다.”

마감을 하고 직장 동료들과 우르르 몰려가서 먹는 닭한마리 칼국수는 “한 냄비의 음식이 끓어오르는 모습을 함께 지켜보고, 요리하고, 나눠 먹는” “집단적 체험을 만들어주는 음식”이다.

아파트 숲을 못 견뎌하는 아들과 하루 동안의 일탈을 감행해 포항의 한 국숫집에서 모리국수를 싹싹 비우면서 어머니는 아들에게 마음속으로 말한다. “아들, 국수 한 그릇의 감동으로 기운을 차릴 줄 아는 너라면 괜찮을 거야. 힘들면 또 가자. 매운 생선탕 먹으러. 지치고 헛헛한 맘까지 든든해지는, 칼칼하고 푸짐한 생명을 들이키러 우리 또 가자.”

이렇듯 국수는 음식이기 이전에 ‘나’와 타인을 매개하는 고리이자 소통의 수단이다. 그 안에는 국수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우리의 희로애락과 삶의 모습들이 귀중한 보물처럼 자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저자는 독자로 하여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삶을 살아가며 잊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다시금 되돌아볼 수 있게 한다. 국수는 곧 삶이다!

정리 이주리 기자 juyu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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