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닷컴> 김도수 시집 '진뫼로 간다'와 산문집 '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

 

▲ 부모님 땀 흘리던 마을 앞 고추밭 가장자리에 '사랑비'를 세운 김도수 씨.

징글징글한 고향사랑. 시인 박남준은 그의 유별난 벽(癖)을 이렇게 가름한 적이 있다.
그의 징글징글한 고향사랑이나 부모님을 향한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크고 거창한 증거를 들이댈 필요는 없다. 다만 ‘흙 한 톨’이면 족하다.

 

‘흙 한 톨’과 ‘참깨 한 알’

<배추밭에 들어가 풀 매고/ 밭두렁 올라서는데/ 고무신 속 몽근 흙/ 발걸음 옮길 때마다 곰지락거린다// 울 어매 발바닥 닳게/ 내 생명 키워준/ 그 흙 한 톨도 아까워// 다시 밭으로 들어가/ 탈탈 털고 나왔다>

‘흙’이란 시다. 요즘 세상에 드물게도 그는 ‘흙 한 톨’이 아깝고 귀하고 사무치는 사람이다. 흙은 그에게 고향이고, 부모다.

<월곡양반 월곡댁/ 손발톱 속에 낀 흙/ 마당에 뿌려져/ 일곱 자식 밟고 살았네> (사랑비)

이땅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기념비가 그의 고향마을(임실 덕치면 진뫼마을) 앞 고추밭 한 귀퉁이엔 세워져 있다. 부모님께 바치는 ‘사랑비’다.

“취직 되면 주말마다 술병 들고 진뫼마을로 달려오라”고, 막내아들 보고 싶은 마음을 살아생전 그리 표현하던 어머니.

취직이 되고 보니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에 안계셨다. 어머니 그 말씀이 가슴에 사무쳐 첫 봉급 타던 날 통장 하나 따로 만들어 속옷 값을 넣었고 그 뒤로 줄곧 이건 술이라고, 이건 겨울외투라고, 이건 용돈이라고, 차곡차곡 돈을 모아 그 돈으로 부모님 땀 흘리던 마을 앞 고추밭 가장자리에 자그마한 빗돌 하나를 세운 것.

그 비에 새긴 ‘손발톱 속에 낀 흙’은 두메산골에서 오로지 자신의 몸뚱아리를 끝없이 닳아치는 것으로 자식들을 건사 할 수밖에 없었던 부모의 한생애와 헌신을 증거한다.

부모님 생전에 땀 흘리던 밭의 흙 한 톨. 그 작고 하찮을 수도 있을 것들을 지극하게 섬기는 마음에서 발원한 고향 사랑은 마침내 마을 앞 섬진강물처럼 깊고 유장하게, 마을앞 진뫼(장산)처럼 길고 크게 뻗어간다.

그가 인생에서 건져올린 가르침 역시 ‘참깨 한 알’로 설명 가능하다.

<오뉴월 뙤약볕/ 종일 참깨밭에 쪼그리고 앉아/ 우부룩하게 솟아난 참깨 솎아주며/ 고랑에 수북하게 자란 풀 매주다/ 허리 한 번 펴주려 일어설 때/ 땅 빙빙 어질머리 나본 사람// 이빨 사이에 낀 참깨 한 알/ 이쑤시개로 톡 빼내버리지 않고/ 입 안에 다시 넣는다> (‘참깨 한 알’)

참깨 한 알 함부로 뱉지 않고 삼키는 행위, 사소하지 않다.

그것은 부모님의 생애가 건넨 가르침이고, 자신이 몸으로 일하고 부대끼며 체득한 습관이다.

 

▲ 김도수 시집 '진뫼로 간다'와 산문집 '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

 

동네 할머니의 등에 쌓인 ‘새하얀 꽃탑’

전라도닷컴에 오랫동안 고향 이야기를 연재했던 필자 김도수씨가 시집 《진뫼로 간다》(푸른사상)와 산문집 《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전라도닷컴)를 최근 펴냈다.

발원지가 고향인 시와 산문은 서로 조응하며 서로를 거든다. 고향은 그에게 영영 마르지 않을 샘이고, 흔들리지 않을 뿌리깊은 나무. 2004년 펴낸 산문집 《섬진강 푸른물에 징·검·다·리》(2쇄까지 찍은 이 책 역시 이번에 2판을 새로 찍었다)에서 보여준 고향사랑이 더 깊어졌다. 동네 할머니의 등에 쌓인 ‘새하얀 꽃탑’에 가닿을 만큼, 마음의 시력(視力)이 환해졌다.

<…흰 저고리, 굽은 등 못다 가려/ 햇볕 그을려 시커멓게 탄/ 활처럼 휜 등 위로 함박눈/ 소리 없이 내려앉고 있다// 땅 가까이 얼굴 대고 살 때/ 비로소 등에 쌓아볼 수 있다는/ 저 새하얀 꽃탑// 골목 환해졌다/ 다시 어둠 속에 묻힌다> (‘눈 내리는 날 저녁’ 중)

함박눈 쏟아지는 겨울날, 마을회관에서 저녁 드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흔둘 ‘댕민 할매’의 엎드린 걸음걸음에서 발견한 ‘꽃탑’이다.

할머니의 생애와 노동에 바치는 절창. 할매의 생애 자체가 땅에 엎드려 살아온 세월이고 그 세월은 할매의 몸뚱아리를 땅 가까이로 이끌었다. 그 굽은 등 위로, 햇볕에 시커멓게 탄 등 위로 ‘새하얀 꽃탑’. 그 작디작은 눈물겨운 면적이 우리의 시야를 틔운다. 그 면적의 아름다움과 애틋함을 놓치지 않은 그의 눈길이 인도해준 경지다.

고무신 한 짝에 담긴 삶의 진경

그렇듯 그가 그려보이는 삶의 진경은 늘 작은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떠내려간 고무신, 아직도 망덕포구에 있을까’라는 제목의 글을 본다. 어린 시절, 고무신이 떨어지거나 찢어지는 날엔 집안이 한바탕 난리가 났더란다.

“뒤꿈치 꾸부려 찍찍 끌고 댕길 때부터 내가 알아봤다. 십원짜리 하나도 못 버는 놈들이 고무신이나 빵꾸 내고 댕기고 참말로 한심허다 한심혀. 땅 파봐라. 십 원짜리 하나 나온가.”

집안 살림살이 단속이며 자식들 단속에 깐깐하고 알뜰하기 이를데 없던 아버지가 볏짚을 잘라 신발 크기를 잰 다음(그 시절엔 그랬던 것이다!) 오일장에 나가 사온 고무신 한 켤레. “비 오먼 신발 속에 물 찍찍 들어가게 헐라다 큰맘 먹고 사왔응게 인자 애끼서 신어라”고 신신당부했던 새 고무신 한 짝을 어느날 강가에서 송사리 잡고 놀다 그만 떠날라보내고 저물도록 울고불며 강가를 헤매던 어린 소년이 그의 마음 속에 살고 있다. 고무신 한 짝은 진즉 떠내려가 버렸어도 그 잃어버린 한 짝이 낳은 추억은 늘 마음 속에 붙박혀 있다. 고무신 한 짝에도 사는 일의 눈물과 기쁨이 어리고, 고무신 한 짝에도 아버지의 사랑과 훈계가 깃들었으니.

 

▲ 소살소살 흐르는 섬진강

 

아버지 ‘동팔 양반’과 어머니 ‘월곡떡’

산골마을에서 자식들을 세상으로 내보내기 위해 한생애를 바쳤던 어머니의 헌신, 아버지의 개성이 빛나는 글들이다.

억척스러움과 한량 기질과 타고난 해학이 한데 버무려진 아버지의 언행은 특히 생생하다.

“아이고, 일허고 잡게도 헌다. 괭이질 허는 폼 허고는…. 그렇게 일히야꼬 밥 묵고 살겄다. 괭이질 허는 폼 봉게 딱 빌어먹게 생겼다.”

형과 함께 보리밭에 일하러 갔던 어느 날의 아버지 잔소리.

특히 형이 보리밭까지 들고 나온 라디오가 화근이었다.

“십 원짜리 하나도 못 버는 놈들이 밭에까지 라디오를 들고 댕김서 (건전지)약이나 달아지게 허고 자빠졌네. 저 놈의 라디오를 내가 콱 괭이로 조사부러야(찍어 버려야) 속이 시원허제.”

육성을 듣듯 생생하게 쏟아져 내리는 아버지 ‘동팔 양반’의 말씀을 책 속에서 자주 만난다. 생전에 명대사를 많이 남긴 동팔 양반.

“아, 아, 알려드리겄습니다. 마을에 용수네 어매 있으먼 존말로 헐 때 빨리 집으로 와 잉. 빨리 안 오면 집에다 불을 확 질러 불랑게”도 그 중 하나. 오일장에 갔다가 해질 무렵 집에 돌아온 어느 날, 그때껏 쇠죽이 쒀져 있지 않아 격분한 아버지가 마을 스피커를 통해 요란스레 어머니를 호출하는 내용이다.

들녘에서 일하고 있던 어매가 동네 창피해서 숨어버리고 나타나지 않자 더욱 화가 난 아버지는 정말로 볏짚에 불을 붙여 버렸는데, 압권은 그 다음이다. 불이 활활 타오르자 왈칵 겁이 나서 재빨리 불을 끈 것.

아들인 그의 해설은 이러하다. <누가 옆에서 말리면 아버지는 더하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옆에서 말릴 사람이 없자 재빨리 불을 끈 것이다.>

가냘픈 몸에 자식새끼들 건사하는 엄중한 짐을 짊어지고 살았던 어머니의 헌신은 늘 눈물굽이를 이룬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천하장사였으되, 가난은 이길 수 없었던 어매.

<기한 내에 내지 못한 육성회비 가지러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며 선생님께 혼날 생각에 엉엉 울며 가던 길. 회비를 못 만든 내 어머니가 몰무동까지 따라와 내 등 두드리며 “이번 달까지만 잘 참고 전디거라(견디거라). 어떡허든지 간에 내가 만들어 볼 텅게 울지 말고. 니가 뭔 죄가 있겄냐!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죄뿐이제…”라고 말 잇지 못하던 길. ‘오매가 뭔 죄가 있다요. 내 등짝에 지게 하나 맞춰줘 불먼 오매도 핀헐 턴디…’라고, 어린 맘에도 가난한 오매가 짠해서 눈물 콧물 다 쏟으며 서럽게 울고 가던 길.>

‘진뫼 오리길’에 얽힌 추억에도 ‘가난한 오매’의 초상은 새겨져 있다. 그 가난 속에 자식들 키워내려 평생 일에서 손을 놓을 수 없었던 어머니. 그 어머니가 누이의 꿈 속에서도 일을 하고 계셨나보다.

<노랑나비 한 마리/ 너울대는 아지랑이 따라/ 마당 훨훨 날고 있는데/ 전화벨 울린다// 오빠 나 어젯밤 꿈속에서 엄마 보았는디/ 세상에 비 온디 보리밭 매고 있더랑게/ 속상해 죽겄어// 살아서 호맹이 닳게 살았으면/ 이제 그만 던져불고/ 뒷짐지고 편안히 만났으면 좋겄어…> (‘누이 전화’ 중)

<어머니 산소에 벌초 가는 길/ 철물점에서 조선낫 한 가락 샀다// 이 안 빠지는 낫이라고/ 손잡이에 새겨져 있다// 사람 새끼로 태어났으니/ 사람답게 행동하며 살라는 말씀/ 가슴에 새겨 살지만// 이 안 빠진 삶 살고 있다/ 당당하게 고백할 수 있을까> (‘벌초하러 가는 길’ 중)

고향과 부모는 늘 그를 성찰하게 하고 거듭나게 하는 힘이다. ‘이 안 빠진 삶’을 살아갈 수 있게 이끄는 배후다.

 

▲ 마을 앞 징검다리

 

김도수라는 탁월하고도 집요한 기록자

어느 역사책에도 기록되지 않았지만, 진뫼마을 사람들의 기억 속엔 진뫼마을사의 한 대목을 차지하고 있을 어느 해 봄날의 싸움의 기록도 흥미진진하다. 이웃 통안마을 사람들이 진뫼 강변에 천렵왔다가 사소한 시비 끝에 진뫼마을 논두렁 깡패들과 한데 부딪쳐 자기 마을의 자존심을 걸고 한바탕 싸움을 벌였던 이야기는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양 스펙터클하고 실시간 중계라도 듣는 양 박진감이 넘친다.

<보리 이삭 통통하게 밴 푸른 보리밭 짓밟으며 맨주먹 불끈 쥐고 싸운 격투기장은 백제와 신라가 나라의 운명을 걸고 싸웠던 황산벌 전투보다 더 치열>했더라는 싸움의 기록은 시종 진지하면서도 해학이 흐른다. 김도수라는 탁월하고도 집요한 기록자가 있어 진뫼마을 역사의 소소한 대목까지 갈피갈피 떠들춰보는 재미를 누린다.

봄날 노랑 나비를 쫓아 내달리다 다후다 책보 속의 새 교과서들을 봇도랑에 빠뜨리곤 엉엉 울던 친구 이야기도 있다. 봇도랑 속에서 건진 친구의 책들을 모두 한 권씩 나눠 들고 햇볕에 말리며 집으로 돌아오던 그 봄날의 어린 아이들. 그 마음의 결까지 느껴지는 세밀화다. 깨알같은 복원력과 세밀한 묘사는 그의 특장. 그 복원력은 한 사람의 추억이 누구나의 추억으로 확장되는 공감과 설득에 큰 힘을 발휘한다.

고향의 지도, 고향의 추억들은 그의 몸에 새겨진 것처럼 선명하다. 그에게로 이르면 강변의 바위들도 모두 제 삶의 이력과 이름을 얻는다.

‘허락바위’가 관공서 치장석으로 끌려갔다 ‘自律(자율)’이란 한자를 몸에 새긴 채 고향 강변의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시름시름 죽어가던 정자나무가 푸르름을 되찾은 것도 그의 끈질긴 노력 덕분이었다. 떠내려간 징검다리를 어느 해 추석엔 동네사람들과 울력으로 다시 놓기도 했다.

그는 추억이나 회억에 머물지 않고 현실 속에서 고향을 세워가려 애쓰는 자인 것이다. 댐을 막는 싸움에서부터 고향마을 강변에 서 있던 미루나무 한 그루의 안부에 이르기까지. 그가 보물처럼 간수해온 것 중의 하나는 경지정리 전의 진뫼마을 논다랑이 모습이 담긴 지적도. 부모님이 짓던 그 논밭다랑이 이름들을 잊지 않고 불러주고 싶어서다.

고향의 나무 바위 밭 할 것 없이 사라져가고 스러져가는 것들을 그리 애틋하고 간절한 눈길로 바라보고 ‘기록’으로라도 복원하고 이어가는 데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이 담겨 있기도 하다.

 

▲ 잔뫼마을공화국의 중심인 정자나무

 

‘돈 춰준(빌려준)’이웃들

그의 글을 읽다보면 ‘돈 춰준(빌려준)’이란 말이 그렇게 많이 나온다. 그시절엔 은행이나 대부업체가 아니라 가난한 이웃들의 한푼 두푼이 힘겨운 고비를 넘기고 이기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학교에 회비를 못내 쫓겨 오는 자식들을 보며, 또 휴일에 식량과 반찬 가지러 오는 자식들의 차비를 마련하지 못해 발 동동 구르던 그의 어머니 월곡떡. 맨발로 이 집 저 집 돈 꾸러 다니는 월곡떡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급한 돈까지 빌려 주었다. 책 속에 단지 한 줄 나오는, 서울서 구로공장 다니던 마을 누나도 드라마나 영화로 치자면 신스틸러처럼 마음을 빼앗는다. 그 시절 서울로 돈벌러 떠난 그 수많은 누나와 누이들을 떠올린다. ‘비료도 띠고 놉도 얻어서 농사 지으라’고 그 누나가 고향집에 부쳐온 돈이 아니었더면, 그날 학교에서 수업시간중에 쫓겨와 울던 그는 어찌 되었을까.

그의 표현을 따르자면 <허리 고부라지게 삶의 무게를 지고 살았던 ‘지게 세대’의 아버지들, 자식들 허기진 배 채워주려고 논두렁길에서 허리 고부라지게 뜨거운 삶을 이고 나르던 ‘똬리 세대’의 어머니들. 생을 그토록 아름답고 위대하게 살아내신 분들>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 지게 맞추기의 달인, 상여소리의 달인 등등 저마다의 재주와 솜씨로 서로의 삶에 없어서는 안되는 귀한 존재로 한데 얼려 살았던 그 아리땁던 마을을 그리워하는 그.

고향집 안방에 누워 마음으로 마실 도는 밤마다 그는 늘 안타까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빈집과 남아있는 집과 돌아가신 이들을 헤아린다.

‘자네는 그 돈 어따 쓸랑가’라는 제목의 글을 본다. 아들이 아르바이트해서 처음으로 건넨 용돈을 어디에 보람차게 쓸까 고민하던 그가 내린 답은 고향마을 어르신들 밥상 차릴 장보기. 그날 밤 아내가 결혼해서 수십 번도 더 들었을 두메산골 어린 시절 가난했던 이야기를 또 풀어냈더란다.

<학교에서 육성회비를 기한내 못 낸다고 집으로 돌려보내면 어머니는 집집마다 돈 빌리러 다녔는데 당장 비료 사와 농사지을 돈까지 기꺼이 빌려주던 고향마을 사람들이 아직도 살아계신다고. 나와 함께 어깨를 맞대고 모를 심던 사람들은 이제 거의 다 돌아가시고 몇 분만 남아 겨우내 마을 회관방에 모여 지내시는데 밥상 두 개면 충분한 지금 사가지 않으면 난 두고두고 후회한다고.>

그리하야 마침내 마을회관 마당에 풀어진 푸짐한 장보따리. 시루째 사들고 온 콩나물도 꽃다발보다 환하다.

 

▲ 명절에 고향 사람들 한데 어울린 윷판. 이 모두가 고향의 소중한 풍경

 

헌옷보따리, 꿈보따리

<고향집을 다시 사서 안방 벽에 허름한 옷가지들 주렁주렁 내걸리던 날, 나는 꿈을 실현한 자만이 지어 보일 수 있는 환한 웃음을 그 벽에 함께 걸었다. 구멍 뚫린 양말, 해진 속옷, 낡은 운동화에 빛바랜 겉옷 걸쳐 입고 삽 들고 텃밭에 나가 씨앗 뿌리던 그해 봄이 내겐 얼마나 따스하고 행복했던지.>

남에게 팔려버렸던 고향집을 기어이 다시 사서 돌아온 어느 해 봄날의 정경이다. 그는 축원한다. “언젠가 저 보따리, 고향집 안방에 꼭 풀고야 말겠다는 다짐으로 어루만지고 또 어루만지던 나의 보따리처럼 누구든 꿈보따리 하나씩은 보듬고 살아가길”. 고향에 돌아가서 그 논밭에서 일할 ‘헌옷보따리’가 그에게는 ‘꿈보따리’였다.

그가 새로이 꾸는 꿈은 강가 빈집들에 다시 불 켜지는 꿈.

깨복쟁이 친구들 돌아와 다시 빈집에 불빛 환히 켜질 날을 꿈꾼다. 현실에서 이루기 힘든 꿈일망정 함께 꾸게 된다. 그가 글로 세워 보여준 진뫼자치공화국의 아름다움에 반해서이다. 그 오래된 미래를 다시 꿈꿔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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