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연의 아주머니>

 

한 달 전이었나? 아들이 화장실로 들어간다. 또 물장난을 하려나 보다. “이 놈~”이라고 막 호통을 치려는 찰나 아들이 변기에 다리를 기대고 쉬를 쪼로록 한다. “세상에~ 지금 변기에다 쉬를 한 거야? 아이고 예쁜 놈, 아이고 예쁜 내 새끼.” 난리가 났다. 폭풍 칭찬과 뽀뽀세례. 일곱 살에 변기에 쉬하고 칭찬을 받은 애는 우리 아들뿐일 거다.

눈에 띄게 달라졌다. 아들의 행동이. 폭풍 성장한 모습이 내 눈에 보일 정도니 다른 사람들은 만날 때마다 깜짝 놀란다.

이제 화장실 사용하는 일쯤이야…. 그 날 이후 아들은 언제나 화장실에 가서 쉬를 쪼로록. 아직 밤에는 기저귀를 차고 자지만 깨 있는 동안만이라도 쉬를 가리는 게 어디인가. 그 전에도 쉬를 가리기는 했지만 화장실 사용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 치료를 안가는 대신 아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많이 다녔다.

 

물론 애로사항도 있다. 혼자서 쉬를 하다 보니 엄마 모르게 소변 줄기에 손가락을 대곤 한다. 따뜻한 물의 감촉이 재미있나 보다. “이 놈~”이라며 제재를 하면 까르르 웃으며 도망을 간다. 자기도 아는 거다.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걸.

그래 장난. 가장 큰 변화를 느끼는 게 이 부분이다. 장난이 부쩍 늘었다.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한다. “싱크대에 손 담그고 물장난 하지 마” “텔레비전 밀지 마.” “제습기 통풍구 닫지 마.” “옷장 위에 올라가지 마.” “냉장고 문 열지 마.” “선풍기 만지지 마.”

엄마가 하지 말라는 일이 뭔지 분명히 알고 있다. 왜냐면 이런 일들을 하고 나선 장난기 가득한 반달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웃기 때문이다. 엄마가 “이 놈~”이라며 혼을 내면 혼자서 자지러지게 웃으며 도망을 간다. 난 잡으러 가지도 않는데 혼자서 난리가 난다. 엄마를 상대로 장난을 치는 거다.

내가 좀 더 무서워야 하는 건 알겠는데 여기서 어떻게 더 무서워져야 한단 말일까. 지금도 밤만 되면 목이 아플 정도로 “안 돼~” “이 놈~”을 외치는데….

한 시간 정도 집을 비운 적이 있다. 아빠와 둘이 있던 어느 날. 집에 돌아오니 남편이 기다렸다는 듯 얘기를 늘어놓는다. 아들이 화장실로 들어가더니 변기에 앉더란다. 장난을 치려는 건가 싶었더니 이내 얼굴에 힘을 주고 “끙~”, 예쁜 대변을 한 덩이 퐁당.

소변은 가리지만 대변은 못 가리던 아이였다. 기저귀를 차고 있는 동안에 일을 보거나 내가 집안일을 하고 있으면 집안 곳곳에 응가를 해놓기 일쑤였다.

그런데 아빠랑 둘이 있으니까 혼자서 변기에 가서 응가를 했던 거다. 왜냐고? 아빠는 무서우니까. 엄마랑 있을 때처럼 거실 바닥에, 소파에, 안방에 똥을 싸놓으면 아빠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던 거다.

얍실한 놈. 눈치가 백단이다. 그 날을 계기로 대변도 가려주길 바랬으나 잠시 한 눈을 팔고 있으면 여전히 집 안 곳곳에 응가 한 덩어리. 엄마는 언제나 내 편이라는 인식이 확실히 있는 거다. 아무리 무섭게 혼을 내도 그 때 뿐. 엄마는 아들바보라는 걸 알고 그것을 이용할 줄도 아는 똑똑이.

아들의 성장은 생활 모든 면에서 고르게 나타났다. 재작년까진 외식이라는 게 아예 불가능했고, 작년까진 외식이 너무 힘들었는데, 이젠 아들과 함께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는 데 큰 불편이 없다. 물론 ‘손에 핸드폰을 쥐어주면’이라는 단서가 붙지만 어쨌든.

이발을 할 때도 마찬가지. 작년까진 머리 한 번 자를 때 세 명의 어른이 달라붙었다. 아빠는 아들을 무릎에 앉혀 손발을 꼼짝 못하게 제압했고, 엄마는 아들의 얼굴을 양손으로 꼭 붙들었다. 비명을 질러대는 아이의 얼굴을 마주보며 허겁지겁 머리를 자르는 미용사.

지금은 웬 걸. 순간순간 고개를 돌릴 때도 있지만 이젠 미용사의 손길을 느끼며 얌전히 이발에 임한다. 이발에 협조적이니 멋도 부릴 수 있게 됐다. 전엔 모히칸 스타일로 커트를 했고, 어제는 엑스자 모양의 스크래치도 냈다. 이 다음에는 투 블록 스타일을 하기로 미용사와 협의까지.

여름을 지나면서 두드러진 아들의 성장이 놀라울 정도인데 신기한 건 그동안 치료 수업을 많이 빼먹었다는 거다.

 

▲ 치료 수업받고 있는 우리 아들

 

2년 간 꾸준히 받았던 감각통합 치료는 병원 방침 상 잠시 중단하고 다시 대기 중이며, 6월에는 ‘메르스 정국’ 때문에 한 달 내내 모든 치료를 전면 중단했었다. 7월부터 다시 언어와 놀이, 심리 치료를 재개했지만 그마저도 이런저런 이유로 빠지기 일쑤.

그렇다고 집에만 있던 건 아니었다. 치료를 안가는 대신에 아들을 데리고 일반 아이들처럼 여기저기를 많이 다녔다.

인사동에 가고, 여의도를 갔으며 홍대와 대학로를 갔다. 편하게 앉아서 가는 아빠 차를 이용하지도 않았다. 대중교통 수단,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명동에 가서는 난타 공연도 봤다. 어린이 난타도 아니다. 외국인 관광객 틈에 섞여서 나름대로는 꿋꿋하게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마침 여름휴가도 있어서 계곡과 물놀이장도 자주 다녔다.

그저 한 일이라고는 장애 아이가 아닌 일반 아이들처럼 일상을 살았던 것뿐인데 그동안 아이의 발달이 몰라보게 빨라졌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은 엄마였는지…. 치료실에 많이 다닌다고 아이가 성장하는 게 아니었다. 그건 일반 아이를 학원에 많이 등록시켜 놓으면 공부를 잘할 거라 기대하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치료 수업도 중요하지만 이 아이의 인생은 치료실 안에 있는 게 아니었다. 치료실에서 평생을 살 것도 아니었다. 이 아이가 살아갈 인생은 내가 생활하는 것과 똑같은 현실 속에 있었고, 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 안에서의 많은 경험이었다. 보통의 아이들이 그러하듯.

주변의 많은 장애아 부모들이 ‘치료 지상주의’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본다. 만나면 언제나 아이의 치료 얘기 뿐. 어디에서 무슨 수업을 시작했는데 그게 어떻더라. 어디의 누구 선생이 그 분야의 일인자라더라. 어디의 무슨 수업은 악평이 나 있으니 거긴 가면 안 된다.

좋다고 소문이 난 치료가 있으면 그 수업을 듣기 위해 1년 이상 대기를 하고, 그 치료비를 대기 위해 아주 잠깐 주어진 자유 시간 동안 고단한 아르바이트를 한다. 반찬을 만들어 팔기도 하고, 비누와 샴푸를 만들어 팔기도 하며, 매장에 나가 오전 알바를 하기도 한다.

심지어 인형 눈을 붙이는 사람도 있다. 진짜다. 아이가 치료받는 동안 대기실 의자에 앉아 가방 안에 가득 쌓인 하얀 눈을 꺼내 까만 눈알을 붙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대단하고 위대한 엄마들이다. 아이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 째 바치는 위대한 모성. 낳아만 놓고 방치하는 무책임한 부모가 늘어나는 세태에 그런 부모들의 모습은 귀감이 될 만도 하다. 심지어 장애 아이 아니던가.

그랬기 때문에 나는 그동안 내 인생을 내 행복을 먼저 찾아도 되는지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회의했었다. 사실 인간으로 태어나 행복을 추구하는 건 당연한 일인데 마치 그 일이 내가 아들에게 죄를 짓는 것 같은 죄책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여름을 지나며 그 죄책감이 많이 줄어들게 되었다. 치료에만 목숨 걸지 않아도 된다는 걸 우리 아들이 스스로의 성장으로 나에게 몸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치료도 중요하다. 치료를 받으며 아이는 부모인 내가 해주지 못하는 디테일을 배운다. 발성을 배우고, 발음을 배우며, 손가락 사용하는 법을 배우고, 눈과 손발의 협응을 배운다.

하지만 그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치료실만 전전하지 않아도 된다.

내 마음이 쓸쓸한 어느 가을날엔 아들과 함께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도 되고, 예술이 목마른 어느 날엔 아들을 데리고 공연장에 가도 된다. 맛있는 파스타가 먹고 싶은 날에는 아들과 함께 요즘 뜨고 있는 핫 플레이스에 가 봐도 된다.

그렇게 남들 사는 것처럼 평범한 일상을 살아나가는 것. 그 평범한 일들이 우리 아들에겐 다른 무엇보다 좋은 치료 수업이기 때문이다.

대신 혼자서는 돌발상황 발생 시 감당이 안 되기 때문에 언제나 남편도 함께. 그리고 이제 막 일곱 살 사춘기에 접어든 우리 공주님도 함께. 한 마디로 우리 가족이 모두 함께. 그게 전제 조건이고 앞으로 내가, 우리 가족이 해야 할 일이다.

파이팅! 이제부턴 인간답게 좀 살아보자. 남들처럼 평범하게. 그런 의미에서 내년엔 여행에 도전이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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