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훌쩍 넘긴 생탁․택시 노동자들 부산시청앞 전광판 고공농성

 

지난 4월 16일, 두 남성이 부산시청 앞 교통안내전광판에 올라갔다. 4개월을 훌쩍 넘긴 현재 그들은 아직도 전광판 위에 있다.
전광판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두 남성은 부산일반노조 생탁 현장위원회 송복남 총무부장과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부산지회 소속 심정보 씨이다. 이들이 뭉친 이유는 소수노조의 교섭권 때문이다.
생탁 사측은 45명의 직원이 노조(민주노조)를 만들어 파업에 돌입하자 새로운 노조(기업노조) 설립에 개입해 최대 노조를 만들었다. 택시사업자는 기존의 노조가 사측에 편향돼있고, 심정보 씨가 속해있는 소수노조는 교섭권을 갖지 못한다. ‘교섭창구단일화법’에 의해 사내에 복수노조가 있더라도 과반 이상 가입된 최대노조가 교섭권을 독점하기 때문이다.

 

 

기나긴 싸움의 시작

생탁 장림공장 노동자 45명은 2014년 4월 노조를 결성해 파업에 들어갔다. ‘시간외 근무 수당, 공휴일 휴무 보장, 주 5일 근무, 계약직 정규직 전환, 정년 65세 연장’ 등의 요구를 위해서다. 이들은 50대 이상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휴무도 보장 받지 못한 채 공장에 나와 고구마를 먹으며 일을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파업 시작 한 달 뒤, 제2노조인 기업노조가 만들어졌다. 사측의 개입에 의해 만들어진 노조였다. 사측의 회유로 파업 참가자들의 대부분이 새로운 노조에 가입했다. 소수노조가 돼버린 민주노조는 교섭권을 빼앗겼다. 교섭창구단일화법에 의해서다.

남은 9명의 조합원들은 지난 1월 14일부터 부산고용노동청 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악덕사장 구속수사, 생탁 사태 해결” 등의 요구를 내걸었다. 그리고 지난 4월 16일에는 송복남 총무부장이 11미터 높이의 전광판에 올랐다.

택시지부 부산지회는 지난 2014년 10월부터 부산시청 광장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전액관리제 도입’과 ‘부가세 경감분 환수’가 그들의 요구안이다. ‘전액관리제’는 사납금 제도를 월급제로 바꾸는 내용으로 청주시 등에서 도입하고 있다.

부산의 택시 기사들은 정부가 정한 최저임금법도 적용받지 못했다. 이들은 전일 근무일 경우 하루 평균 16시간, 2교대 근무는 하루 평균 10시간 정도를 일한다. 월급은 100만원과 90만원 내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단체협약상 하루 노동시간은 4시간 20분으로 정해져 있다. 따라서 급여도 이 시간을 기준으로 받는다. 최저시급이 올라도 급여는 오르지 않는다. 협약을 통해 명시된 노동시간을 줄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노조가 사측에 편향돼 가능한 일이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지만 심정복 씨가 속한 소수노조는 교섭권이 없다. 심정복 씨가 전광판에 올라가게 된 이유다.
 

 

 

생탁 40명 사장 월급은 수천만원

생탁은 전국 막걸리 매출 2위, 부산․경남지역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이 막걸리 업계를 ‘1지역 1업체’로 구조조정 할 때 부산지역 43개 양조장이 모여 합자회사 형태로 만들어졌다. 이렇다 보니 사장의 수가 많다. 현재 생탁의 사장은 40명이다. 대부분은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배당을 받고 있고, 일부는 장림·연산 공장에 배치됐다.

2011~2013년 평균매출은 206억원. 두 공장이 독립회계를 표방하고 있지만 결국 수익을 합쳐 나누어 갖는다고 노동자들은 전한다. 당시 사장들의 월급은 각각 2000여만원. 하지만 100여 명 노동자의 월급은 각각 130만~220만원 수준이었다는게 조합원들의 주장이다.

40명의 사장 가운데 10명 이상은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 지분만 상속받은 사람들이 다수인데 이들은 ‘지분 사장’이란 이유로 파업 사태를 방관하고 있다.
 

 

 

길어지는 싸움, 동료도 잃었다

노사간의 대화는 진전되지 않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중재에 나섰지만 소용없었다. 여전히 고공농성을 진행 중인 송복남 총무부장과 심정보 씨는 각각 대상포진과 습진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인 한 명이 똑바로 누울 수도 없는 3.3㎡ 남짓한 공간에서 4개월을 넘게 지내다 보니 고혈압까지 얻었다.

한낮 내리쬐는 뜨거운 햇빛을 동료들이 올려준 그늘막 하나로 겨우 막으며 더위와 사투 중이다. 얼마 전 지나간 태풍에도 전광판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음식은 동료들이 밧줄을 이용해 전광판 위로 올려준다. 생리현상은 비닐 팩을 이용한다.

이들은 고공농성 중에 동료 한 명을 잃었다. 지난 2015년 5월 생탁 현장위원회 조합원 진모 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 것이다. 혼자 살고 있던 그는 사망한 지 5~6일 만에 발견됐다. 그와 며칠째 연락이 닿지 않자 가족들이 그의 집을 찾았다가 사체를 발견했다.

진씨는 2009년 7월 생탁 장림공장에 입사했다. 제조된 막걸리를 차에 실어 올리는 업무를 맡았다. 2014년 파업에 참가했고, 1년이 넘는 파업 과정에 생계유지가 힘들어지자 스트레스와 건강 악화에 시달려 왔다.

민주노조는 이 죽음은 “자본에 의한 사회적 타살”이라며 생탁 사장의 처벌을 요구했다. 사장들의 부당한 대우와 부산고용노동청의 부실한 수사, 교섭창구 단일화법이 만들어낸 사회적 타살이라는 것이다.


 

 

경찰, 생필품 반입 과도 통제 ‘칫솔이 무기라니’

이후에도 마찰은 끊이지 않았다. 지난 6월 고공농성을 하던 두 사람은 단식에 들어가기도 했다. 농성장을 감시하는 경찰이 전광판 위로 올려 보내는 생필품 반입을 과도하게 통제했기 때문이다.

점심시간, 두 농성자에게 식사와 함께 칫솔, 치약을 올리는 과정에서 경찰과 노조와의 설전이 벌어졌다. 문제가 된 것은 칫솔이다. 경찰은 칫솔이 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며 반입을 금지했다. 생수도 일일이 냄새를 맡았고, 음식물도 비닐로 옮겨야만 반입을 허가했다. 무더운 날씨지만 얼음물도 올려 보낼 수 없었다.

경찰은 주류나 기름, 화기 등의 반입을 막기 위해 철저히 검사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얼음물 또한 이전에 위에서 물병이 날아오는 일이 있어 금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농성자들은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물품을 올릴 수 있는 시간도 오전 8시, 오후 12시, 오후 6시 등 세 차례로 통제됐지만 이마저도 자유롭지 못하자 전광판 위의 농성자들이 단식이란 극단의 선택을 한 것이다. 하루 뒤, 경찰의 사과로 사건은 마무리 됐고, 두 농성자는 단식을 해제했다.

같은 시기, 지역 신문에는 “부산합동양조 ‘생탁’ 장림제조장 노사협상 원만 타결”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사측과 기업노조의 협상이 타결된 것이다. 합의된 내용은 임금인상, 징계위원회 노사 동수 구성, 유일 교섭단체 인정, 상여금 신설, 자녀학비 지원, 경조사비와 연차, 휴업수당 지급, 55세에서 60세로 정년 연장 등이다. 민주노조가 주장하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 합의 내용은 농성자 8명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이들의 싸움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땅위에 선 두 농성자의 모습을 볼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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