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연의 아주머니> 생일파티

 

쌍둥이의 생일파티는 무사히 잘 끝났다. 형제자매 포함 스물여섯 명의 어린이들과 열 네 명의 엄마들, 여섯 명의 아빠들까지…. 동네잔치가 되어버린 생일파티. 내 새끼들이 행복하고, 초대 받은 이들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갔으면 그걸로 됐다. 다음 달 카드 명세서가 무섭긴 하지만 평생에 한 번이니까 후회는 안해야지.

토요일 저녁 7시. 10분 전부터 입장이 가능하다는 키즈카페 측의 강경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준비 할 게 많았기 때문에 이십 분 전에 아이 둘을 앞세워 무작정 쳐들어갔다.

그런데 하나씩 꼭 있잖아. 약속 시간 안 지키고 미리부터 와 있는 사람. 6시30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는 이슬이(가명) 엄마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이제 막 돌이 지난 이슬이 동생을 안고.

 

 

“아~ 이슬이 엄마 왔어?”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준비할 게 많기 때문에 마음이 바쁘다. 키즈카페에 도착하니 이미 아이들 도시락이 배달 와 있다. 가까스로 찾은 실속 도시락 업체. 어린이 돈가스 도시락이 5000원이다.

김밥, 주먹밥, 유부초밥, 치킨, 돈가스, 샐러드로 구성된 메인 도시락과 작은 통에 든 미니 과일, 장국, 뽀로로 음료수가 모두 포함된 가격이다. 다른 도시락 업체에서 이 정도 구성으로 하려면 만 원 정도는 예상해야 한다.

나는 장국을 빼고 돈가스 한 조각을 더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들이 장국을 먹어봤자 얼마나 먹는다고…. 분명히 누군가는 누런 된장국물을 옷에 쏟아 엄마의 날벼락을 맞을 게 뻔했다.

나는 아이들 도시락 세팅을 이슬이 엄마와 우리 남편에게 부탁하고 어른들 먹을 음식 준비에 돌입했다. 시장에서 사 온 족발 하나와 배달시킨 불족발 두 개, 냉채족발 두 개를 종류별로 각각 4개의 접시에 나눠 담았다.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잡채와 부침개도 접시에 나눠 담고 뒤를 돌아보니 이미 7시. 초대받은 모든 이들이 거의 다 와 있다.

전체대관이라 우리끼리 사용하는 거라곤 하지만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발생했다. 바로 흥분한 어린이 스물여섯 명이 내는 소음. 이건 뭐 정신이 하나도 없고 옆 사람과의 대화도 소리를 질러가며 해야 할 판이다.

아이들은 이제 막 도착해 친구들을 만나서인지 누구 하나 흥분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꺅꺅 소리를 질러댔으며 무조건 뛰어다녔다. 만난 지 3분 만에 벌써부터 싸우는 녀석들도 있다. 엄마들과 아빠들은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서서 내 눈치만 살핀다. 이 상황을 빨리 정리해 달라는 구조신호다.

오케이. 나는 아이들 식탁과 어른들 식탁이 세팅완료 된 것을 확인하고 나서 키즈카페 중앙으로 나갔다. 손뼉을 짝짝 두 번 친 뒤 배에 힘을 주고 큰 고함으로 “주목~”을 외쳤다.

“자~ 모두 여기 주목~ 지금부터 생일파티를 시작할거야. 얘들아. 모두 가서 자리에 앉자. 어서 움직여. 어서! 케이크 촛불 꺼야지.”

아이들 눈에 비친 나는 나긋나긋 상냥한 친구엄마가 아니다. 키도 크고 뚱뚱한 데다 목소리까지 우렁차다. 그리고 무섭다. 호랑이 같은 목소리로 어서 자리에 앉으라고 재촉하는 아줌마. 아이들은 우르르 모여들어 자리에 앉았다.

나는 신랑 옆구리를 툭 쳐서 케이크를 가져오라고 했다. 일곱 개의 초가 켜진 딸기 생크림 케이크. 내가 생일축하 노래를 선창하자 아이들이 따라 부른다. 한껏 상기된 표정의 딸이 기쁜 표정으로 후~.

원래는 아들도 나란히 앉힐 예정이었는데 이 녀석이 또래 친구들 많은 거 보고 흥분해서는 자리에 앉지를 않고 무조건 돌아다니기만 한다. 하는 수 없이 파티의 진행을 위해 딸 혼자 케이크 촛불 끄기. 아들은 어른들 곁에 서서 “끼악끼악~!” 하며 기분 좋은 비명 지르기.

초가 꺼지고 박수가 이어진다. 냠냠 식사시간이다. 일인용 도시락을 해버리니까 엄마들이 편하긴 하다. 앞 접시에 음식을 나눠 담는 등 추가노동할 일이 없다. 물론 한 아이가 도시락을 통째로 땅에 쏟아서 엄마한테 머리를 맞긴 했지만.

여자아이라면 도시락을 엎을 일도 없었겠지만 사내아이인 데다 평소에도 개구쟁이였던 녀석이라 그 엄마가 아이 머리를 쥐어박는 걸 보고도 다른 엄마들은 모른 척 시치미.

아이들 입에 음식이 들어가니 이제야 소음이 가신다. 자 이제부턴 어른들의 시간.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구석 테이블로 가고, 엄마들은 엄마들끼리 자리를 잡았다.

모두 컵에 맥주를 따르고 거국적으로 건배. 와줘서 고맙다는 나의 인사와 초대해줘서 고맙다는 답례. 뻔한 말들이 오가고 한 잔 쭉 들이켠 뒤 본격적인 수다 타임. 엄마들은 주변에 앉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끼리끼리 수다에 돌입했다.

원래부터 친한 엄마들도 있었지만 조금 서먹한 엄마들도 있었고, 아예 처음 얼굴을 내민 엄마도 있었다. 사람이 많으면 처음엔 목소리 큰 사람 위주로 대화가 진행되는 법. 서먹한 엄마들과 처음 온 엄마는 분위기에 가세하기 위해 맥주에 소주를 섞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친했던 엄마들은 아이들이 편하게 놀기 위해 역시 맥주에 소주를 섞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부터 소맥파티라고 공언을 하기는 했지만 나는 아줌마들이 소주를 그리 많이 마셔댈 줄은 몰랐다. 아이들도 있었기 때문에 적당히 마실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웬걸. 하나같이 차를 놓고 왔다는 엄마들은 날이라도 잡은 듯 잔을 비워 가는데 3시간 동안 술을 추가로 사오기 위해 신랑이 두 번이나 슈퍼에 다녀와야 했다.

술이 좋은 건 사람들이 빨리 친해질 수 있다는 것. 이 날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모든 엄마들이 언니, 동생, 친구가 되어 까르르 웃고 난리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완벽한 순간이란 없다. 한 엄마가 기분이 좀 상했다. 그 날 모인 열 네 명 중 다섯 명이 용띠였는데 공교롭게도 76년으로 올해 마흔인 사람이 두 명, 빠른 77년생으로 서른아홉인 사람이 세 명이었다. 나 역시 빠른 77년생.

마흔 살인 엄마 하나가 나를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의 빠른 77년생에게 반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는 작년부터 친구로 지냈기 때문에 봐주지만, 나머지 둘은 자기한테 언니라고 불러야 한다는 얘기였다.

사실 빠른 생일자들 입장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얘기다. 학교 다닐 때까지 친구로 지내던 이들이 갑자기 사회에서 아줌마 돼서 만났다고 언니라고 부르라하면 어떤 사람이 그리하겠는가.

나는 그렇게 되면 족보가 꼬인다며 우리 다 친구로 지내자고, 어차피 학교생활 같이 한 친구들 아니냐며 상황을 강제 종료시켰다. 그랬더니 그 때부터 이 아줌마가 심통이 났다.

자기 딸이 생일파티 당사자만 입는 공주님 드레스를 입고 싶다고 하자 갑자기 아이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따로 구석으로 데려가서 혼내는 것도 아니고 엄마들 다 있는 데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혼낸다. 몇몇 엄마들이 말리려하자 더 크게 화를 낸다.

순식간에 싸해지는 분위기. 엄마들끼리 지켜야 할 불문율 같은 게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남의 육아방식에 간섭하지 않는 것. 나는 그냥 지켜보다가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지금 마흔 살의 내 친구라고 자처하는 저 엄마가 내 아이들의 생일파티를 망치고 있기 때문에.

호스트로서 연신 웃고 있던 나는 얼굴 표정을 싹 바꿨다. 그리고 레이저 같은 눈빛을 쏘아대며 작지만 강하게 속삭였다. “그만해. 그만하자. 여기까지. 응?”

내 분위기를 감지한 다른 엄마 둘이 그녀를 데리고 잠시 자리를 옮겼다. 나는 봉변을 당한 빠른 77년생 엄마 둘 달래주기에 돌입.

아. 이래서 술은 과하면 안 된다. 술이 과하면 술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남자들 사이에서도 과한 술로 인한 작은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평소 싹싹한 성격의 한 아빠가 있는데 그 날 처음 온 한 아빠가 자기 고등학교 후배인 것을 알고 나자 갑자기 사람이 변해서는 반말을 하고 막 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가장 나이 많은 한 아빠가 “그만하라”는 만류를 다섯 번이나 했는데도 “우리 @@공고는 원래 이런 분위기”리며 막무가내였다고 한다. 어쩌리. 앞으로는 아빠들 모임 있어도 저 후배라는 사람은 다신 안 올 게 뻔했다.

처음 대여한 시간은 두 시간 반이었는데 엄마들의 요청에 의해 30분을 더 연장했다. 밤 10시가 가까워지고 다들 놀 만큼 논 것 같아 나는 또 다시 박수를 두 번 짝짝 치고 정리에 들어갔다.

남은 음식을 버리고 쓰레기를 분리해서 담았다. 모든 정리가 끝나고 나자 여기저기서 선물 보따리 폭탄. 신랑과 둘이서 들고 가기엔 손이 모자라서 앞집에 사는 아주버님에게 도움 요청.

사소한 시비가 두 번 있긴 했지만 나름대로 성공적인 생일파티였다. 우리 딸은 최고로 행복한 한 때를 보냈고, 우리 아들은 계속 소리를 질러가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엄마들은 엄마들끼리 더욱 돈독해질 수 있는 시간이 됐고, 아빠들도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향후 창궐할 지 모를 ‘아빠들 모임’의 계기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엄마들로부터 “좋은 시간을 마련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은 게 가장 큰 수확이었다. 그거면 된다. 묵직한 카드명세서 걱정 따윈 모두 날려버릴 단 한 마디. “고맙다”는 말.

아쉬웠던 건 신랑이 ‘강남스타일’을 부를 기회가 없었다는 것. 노래방 가서 연습까지 하고 왔는데. 뭐 앞으로도 날은 많으니까. 다음을 기약해야지. <언론인,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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