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들의 무덤, 대한민국의 현실

 

“오늘 밤 치킨 한 마리 어때?”

야밤에 노릇노릇 튀겨낸 치킨을 야식으로 마다할 이가 대한민국에 몇 있을까. 치킨은 ‘국내 간식’을 넘어서 급기야는 ‘치느님(치킨+하느님)’이라고 불릴 정도로 한국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튀기고 양념에 무치고 카레가루에 튀기고 간장에 조리고 꿀에 무치고. 불닭, 파닭에 이어 한동안은 ‘구운’ 닭이 인기였다. 전국의 치킨 브랜드 수만 100여개. 매일 매일 새로운 맛의 치킨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신 메뉴가 개발된다. 한국인의 치킨 사랑이 이렇다 보니 치킨으로 창업을 하려는 이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 치맥(치킨+맥주)는 진리. 한국인들의 치맥사랑은 위대하다.

 

‘치느님’ 덕에 불어나는 자영업자들

대한민국에서 치킨은 특별하다. 이제 닭은 한국민의 단백질을 책임지는 ‘영양 보고’이자 국민 ‘간식거리’로 빼놓을 수 없다. 국내 닭고기 소비는 30년 전보다 4배 이상 증가했다. 2013년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조사결과 우리나라의 치킨 전문점은 약 3만6000개. 중동과 아프리카까지 점포가 있는 맥도널드 매장 보다 국내 치킨 전문점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육계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4년 기준 국내 한 해 닭고기 소비량은 줄잡아 8억8여 마리로 하루 평균 241만 마리가 출하된다. 인 당 섭취량은 16.5kg로 닭 한 마리의 중량은 대략 800~900g이니, 계산해 보면 1인당 연간 18마리 정도의 닭을 먹고 있는 셈이다.

통계적으로는 그렇지만 실제 닭을 먹는 체감 온도는 더 높았다.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이 지난 9월 수도권 소비자를 대상으로 의식조사 결과 조사 가구의 52.6%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닭고기를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주 3회 이상' 닭고기를 소비하는 소비자도 15.5%에 달했다. 특히 전체소비량 중 32.7%를 ‘치킨’으로 소비한 것으로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남아공과의 월드컵 경기 당일 하루에만 단일 브랜드에서 40만 마리의 치킨이 판매되었다고 하니 우리나라 사람들의 치킨 사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 이원석씨의 책 ‘공부한 무엇인가’(도서출판 책담, 168페이지)에 나오는 ‘한국 학생의 진로표’. 문과를 나오던 이과를 나오던 결국 치킨집을 하게 된다는 결과를 나타내 누리꾼들 사이 널리 퍼지면서 회자되고 있다.


이과, 문과? 나는 닭을 튀긴다

한국인의 특별한 치킨 사랑은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고등학생들의 적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과를 가든 문과를 가든 적성과 상관없이 ‘닭을 튀기는 인생으로 귀결된다’는 도식표가 한 때 인터넷에서 인기였다.

어떤 드라마에서는 벤처기업에서 일하는 프로그래머들이 야식으로 치킨을 시켰는데 프로그래머들이 못 풀고 있던 프로그래밍 문제를 치킨을 배달하러 왔던 치킨전문점 사장이 손쉽게 풀어내는 에피소드를 다루며 시청자들에게 어이없는 웃음을 선사했다.

드라마 허구가 아니라 실제 개발자가 치킨전문점을 창업해서 화제를 모았다. IT 개발자들이 밀집된 판교 테크노벨리에는 지난 1월 한 프로그래머가 치킨전문점을 개업한 듯한 전단지를 돌려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는 전단지에 “하라는 ‘코딩’은 안하고 치킨집 차렸습니다. 판교 최고의 치킨집이 되겠습니다”라고 적어 홍보했다. 그는 전공을 살려 메뉴 판을 ‘자바(프로그래밍 언어)’식으로 만들었다. 메뉴판에 적힌 ‘k.setLocation(“H스퀘어 *동 *호”);’의 의미는 로케이션(Location) 즉, 가게 주소를 의미한다. ‘k.setClosingTime("02:00");//month는 0부터 시작한다’는 클로징 타임(ClosingTime:영업 마감)이 새벽 2시라는 걸 뜻한다.

▲ 치킨배달하러 왔다가 코딩문제로 막힌 프로개발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떠나는 치킨점 사장의 에피소드를 다룬 케이블TV tvN 드라마 ‘초인시대’의 한 장면

누리꾼들은 “특이하다, 프로그래머 개발하다 창업했나 보네. 재미있다”며 호감을 보이는 반응이 대다수였지만 “프로그래머 10년이면 닭을 튀긴다”며 자조 섞인 웃음을 주는 누리꾼들도 있었다.
 

낮은 진입장벽이 만드는 자영업의 무덤

창업기업 생존율은 평균 30%. 1인 기업인 영세사업자들의 생존율이 더 낮다. 창업해서 2년 뒤에는 절반이 폐업했고, 5년 후까지 살아남은 자영업자는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국세청 통계연보(2014년 12월 기준)에 따르면 2013년 창업기업은 102만8000개, 폐업은 86만3000개에 달했다. 이 중 문을 닫은 업체의 22%는 치킨 전문점이나 커피전문점 등 음식점이었다.

게다가 치킨전문점으로 벌어들이는 연간 순소득도 매년 감소하고 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치킨을 튀겨 봤자 한 달 순소득이 180만원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치킨전문점 한 곳 당 연간 순소득은 2009년 2124만원, 2011년 2,003만원, 2012년 2,032만원이었다.

이러한 수치는 대한민국에서 치킨전문점으로 성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폐점의 수순을 겪는 것이 치킨 전문점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창업 1순위는 치킨 전문점이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너도 나도 치킨전문점을 창업 아이템으로 선호하는 것일까?

일단 창업에 들어가는 초기 투자비용이 적고 타 요식업에 비해 누구나 쉽게 요리를 완성할 수 있다는 점 등 창업 진입 장벽이 낮다는 것이 가장 매력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된다고, 튀기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치킨전문점을 개업한다. 또 같은 이유로 오늘도 수많은 골목의 치킨전문점들이 문을 닫고 있다.
 

레드오션 안 차별화 포인트를 찾아라

저마다 각자의 맛의 비법으로 수십년간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성공가도를 달리는 치킨점들이 있다. 반포에는 마늘치킨, 청담동에는 카레치킨, 부암동에는 숙주나물 치킨이 30년째 아성을 지키고 있다. 이들 창업점포만의 독특한 맛이 사람들의 줄을 세운다.

창업 컨설턴트들은 “포화 상태인 치킨전문점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맛에서부터 차별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단순히 튀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자신만의 튀김법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매장판매를 하는 경우에는 새로운 콘셉트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의 취향과 유행도 고려해야 한다.

최근 서울 홍대 거리에는 독특한 자기만의 맛과 콘셉트를 가진 치킨전문점들로 가득하다. 프라이드치킨에 매콤한 양념을 하고 다진 마늘을 양껏 올린 뒤 요리용 알코올을 뿌려 불맛을 입힌 일명 ‘불쇼 치킨’부터 토마토 커리 위에 감자튀김을 얹어 커리에 치킨과 감자를 함께 먹을 수 있는 ‘커리치킨’, 순살 치킨에 치즈와 크림으로 만든 크림 퐁듀에 찍어 먹는 ‘퐁듀치킨’도 있다.

배달전문점이라면 지역 주민들과의 유대관계에도 신경 써야 한다. 맞춤형 서비스 전략과 공격적인 판촉 전략이 요구된다. 단순히 치킨을 좋아하는 국민성만 보고 뛰어 들기에 치킨전문점 성공의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 품질혁신을 게을리 하지 않고 부단히 시장 트랜드를 반영한 차별화 전략만이 치킨전문점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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