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1200조 시대

 

‘째깍째깍’ 위기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일까. 가계 부채가 1200조원을 돌파하면서 대한민국 경제에 경보음이 울리고 있다. 박근혜 정부와 정치권이 서로 ‘남 탓’ 공방만 하는 가운데 가계빚은 점차 위험 수위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지난해 4분기에만 41조원이 증가했다. 2015년 동안 급증한 가계 부채만 121조 7000억원으로 전해보다 11.2%나 늘었다. 인구를 5000만명으로 환산할 경우 국민 1인당 24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날개를 잃은 듯 추락하고 있는 ‘가계빚 사태’를 들여다봤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 정책에 있어 정말 선방하고 있을까.

정부가 지난 2월부터 대출규제를 강화하는 등 관리에 나섰지만 이미 가계대출은 통제하기 힘든 상황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앞으로 1, 2년간은 증가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아파트 분양계약 때 승인된 집단대출이 계속 늘어나고 있고 신규분양도 상당한 수준으로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부채에 대한 경보음이 울린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더구나 가파른 증가세가 계속되면서 우리경제에 미칠 부작용은 현재진행형이다.

자고 나면 늘어나는 가계빚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무엇보다 속도가 문제로 지적된다. 가계부채가 1200조원을 돌파하자 금융권도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우리 경제규모에 비해 과도하다는 지적이 앞다퉈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금융시스템 위기로 비화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까지 나온다.
 

돌발변수 ‘곳곳’ 산재

이런 상황에서도 금융당국은 위기를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가계 대출의 70%가 주택담보대출이고, 부채의 대부분이 소득 상위 40% 이상에 몰려 있어 부채의 내용면에서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담보나 상환능력이 양호하기 때문에 웬만한 충격이 와도 금융시스템 위기로 전이될 가능성이 낮다는 게 정부측 설명이다. 한국은행이 발행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여러 상황을 가정해 위기발생 가능성을 알아보는 스트레스 테스트에서도 금융시스템의 안정 측면에서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돌발 변수는 곳곳에 배치돼 있다. 중국의 경제불안과 산유국 등 신흥국의 금융위기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도 대기 중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으로 얼어붙은 한반도 정국도 안심할 수 없다.

이 중 한가지만 현실화되도 국내 경제는 요동칠 수 밖에 없다. 가계 부채가 많으면 많을수록 대응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게 우려의 핵심이다.

한국은행은 가계부채의 규모도 문제가 없지 않지만 지나치게 빠른 증가 속도가 더 심각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절대 규모면에서 당장은 감내할 수준이라 하더라도 워낙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어 위기의 임계치에 도달하는 것은 시간 문제일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말 정부가 가계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가계부채 종합관리 방안’을 마련한 것도 이런 이유였다. 하지만 효과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어 위기감을 부채질하고 있다.

한은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가계부채가 구매력 저하 등 거시경제 측면에서 미칠 부정적인 영향이다. 부채가 심각해지면 지갑은 자연스럽게 꽁꽁 닫힐 수 밖에 없다. 가계부채가 증가하면 가계의 원리금 상환부담도 커져 소비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가계 부채 증가는 우리 경제의 성장여력을 잠식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공산이 크다. 정부가 내놓은 ‘2015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우리 나라 가계는 세금 등을 제외하고 임의로 처분할 수 있는 소득 중 4분의1을 대출 원리금을 갚는 데 사용하고 있다.
 

‘유동성함정’ 주의보

가계부채의 급증이 위험한 이유는 이 뿐만이 아니다. 저금리를 바탕으로 한 가계부채 증가는 주택경기 활성화, 소비증가로 이어져 당장 경제성장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론 성장잠재력을 감소시킬 수 밖에 없다.

가계부채가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가계 소비는 증가하지 않게 된다. 결국 돈을 아무리 풀어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이른바 ‘유동성함정’에 빠질 수 있다.

여기에 금리인상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빚을 진 가구들은 압박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집값이 폭락하면 한계가구와 영세자영업자들의 대량 도산으로 이어지게 된다.

한은 조사에 따르면 빚이 자산보다 많고, 처분 가능한 소득의 40% 이상을 원리금 상환에 사용하는 한계가구가 158만 가구에 이르렀다. 이 가구들이 도산 위기로 내몰리게 되면 국내 경제는 크게 요동칠 수 밖에 없다. 이로 인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더욱 극심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한은 관계자는 “정작 걱정해야 할 부분은 소비부진 등의 거시경제적 부작용과 양극화와 같은 사회적 문제”라며 “우리 경제에 장기적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가계신용 잔액은 역대 최고로 이 액수는 앞으로 계속 커질 수 밖에 없다. 가계신용은 가계 빚 현주소를 알려주는 통계로 금융권 가계대출을 비롯해 결제 전 카드 사용금액(판매신용), 보험사․대부업체․공적금융기관 등의 대출을 모두 포함한다.

가계부채를 견인한 건 주택담보대출이었다. 지난해 예금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주택금융공사의 모기지론 양도분을 포함하면 69조 1000억원으로 전년(40조3000억원)보다 30조원 가까이 급증했다. 상호금융, 저축은행 등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의 주택담보대출은 4조 5000억원 증가한 99조 5000억원으로 100조원에 육박했다.
 

‘부동산 시장’ 이상징후

전세난이 극심한 가운데 사상 최저로 떨어진 대출금리로 ‘내 집 마련’에 나선 사람들이 늘면서 부동산 시장이 호조를 보인 탓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작년 주택매매거래량은 약 120만건으로 관련 통계를 시작한 2006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아파트 분양시장도 활황을 나타내며 집단대출 수요가 증가한 것도 주택담보대출 증가세에 힘을 보탰다.

정부 대책으로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른 소비 위축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실제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이달 들어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지난 2014년 6월 이후 처음으로 하락세로 돌아섰다. 주택대출 심사 강화와 비수기 맞물린 데 따른 것이다.

민간연구기관에서도 가계부채의 파급력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LIG투자증권은 가계부채가 1200조원을 넘어서면서 정부의 가계부채 대응책에 따른 은행권의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LIG 투자증권은 가계부채 증가로 고정금리 및 분할상환에 대한 연도별 목표비중을 상향하는 등 정부의 가계부채 대응책에 따른 은행권의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지난해 3월 안심전환대출 시행으로 31조 7000억원 규모에 대해서 금리변동 위험은 사라졌으나 은행 수익성은 훼손됐다는 분석이다.

전방위적으로 몰려오는 ‘가계빚’의 먹구름을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