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최악의 취업난 속 대학가 탐방

청년 실업자 수 56만 명. 지난 2월 얘기다. 1년 전보다 7만6000명이 늘었다. 청년실업률 12.5%. 관련 통계가 작성된 지난 1999년 이래 최고치다. 전체 실업률 역시 4.9%로 1년 전보다 0.3%P 상승해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유가 뭘까. 경기침체로 기업들이 채용을 꺼리기 때문이다. 전경련 조사결과 국내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 12%는 올 상반기 채용인원을 작년보다 줄이거나 아예 뽑지 않겠다고 답했다. 52%는 채용계획을 결정하지 못했단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대학생들은 학과 공부보다는 취업 준비에 올인 하고 있다. 졸업을 미루는 건 기본. 채용공고가 날 때마다 원서를 내보지만, 그야말로 밤하늘 별따기다. <위클리서울>은 ‘청년 백수’로 넘쳐나는 대학가 풍경을 들여다보았다.

 

 

1학년 때부터 취업 준비

청년실업률이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대학가에도 피치 못할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캠퍼스의 낭만은 사라진지 오래다. 졸업예정자는 말할 것도 없고, 신입생 시절부터 취업 준비와 학점관리에 돌입하는 이들도 눈에 띈다. 정규 수업이 없는 방학 시즌은 취업 준비에 ‘올 인’ 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이기도 하다.

매일 아침 학교 도서관으로 출근하다는 4년제 대학 졸업예정자 최모(23. 여) 씨는 “공부도 공부지만, 마땅히 취업할 곳이 없어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거의 매일 학교 취업상담실을 찾고 있다”며 “학교를 찾는 기업 임원들의 취업설명회를 들어보면 제법 많은 인원을 뽑을 예정이라고 해서 상당히 기대를 하고 있지만, 그만큼 경쟁률이 높을 것 같아 걱정이 태산 같다”고 했다. 최 씨는 “재작년의 경우 학과 선배중 절반이 취업을 했지만 올해는 손에 꼽을 정도”라며 “그나마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지만 최저임금에 준하는 시급으로 연봉이 얼마 되지 않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4년제 대학 졸업생 서모(28. 남) 씨는 “토익점수가 900점을 넘고 정보통신 관련 자격증을 지닌 학생도 대기업 취업전선에서 밀리고 있다”며 “대기업을 선호하는 학생들의 경우 영업직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취업이 힘들 것으로 본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학 졸업 이후 2년째 백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김모(29. 남) 씨는 “지난해 하반기에만 스무 군데나 원서를 넣었지만 서류전형에서 번번이 떨어져 부모님에게 면목이 없다”며 “제발 면접이라도 한 번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취업이 안 되다 보니 졸업을 미루고 어학연수를 떠나는 대학생들도 늘고 있다. 김 씨는 “저야 이공계 출신이어서 어학연수를 가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인문, 어문학 전공자들은 어학연수를 한 번씩은 다녀온다”며 “더구나 국문학과마저 4학년 졸업예정 여학생 10명중 9명이 어학연수를 떠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성균관대에 재학중인 예비졸업생 유모(26. 남) 씨도 졸업 후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갈 계획이다. 그는 “현재로서는 영어 때문에 취직도 힘들 것 같아서 어학연수를 다녀올 계획”이라며 “(미국에) 다녀오면 취직여건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자신은 없다”고 말했다.

졸업은 했지만 취업준비를 하기 위해 매번 학교도서관을 찾는다는 류모(30. 남)씨는 “여학생은 5학년까지 다니는 게 기본이고 남학생의 경우는 군대까지 합쳐 10년을 대학에서 보내는 이들도 있다”며 “후배들이 저를 보면 대학원생인줄 안다. 한번은 유학 다녀온 대학원생 여자 동기를 만나 당황한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취업에 대한 고통은 취업을 목전에 둔 4학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1학년 때부터 장기계획을 세워 취업준비에 매달리는 대학생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명지대에 재학 중인 박모(20. 여) 씨는 요즘 영어학원과 투자상담사 자격증 학원을 다니느라 학교생활은 뒷전이다. 박 씨는 “언론에서 취업난에 대한 보도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진다”며 “막연하지만 자격증을 따놓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말했다.

박 씨는 “최근 한 선배는 변리사 자격증 시험에 합격해 주변의 부러움을 한 몸에 사고 있다”며 “평생직업이 보장된 고시합격과 같은 것이어서, 주변에선 변리사 시험 등을 목표로 움직이는 친구들이 많다”고 했다.

남학생들의 경우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곧바로 군대에 입대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과거 대부분의 대학생이 2, 3학년에 입대하던 풍조와는 다르다. 복학 후 3년여의 시간을 학점 확보와 취업조건 취득을 위해 전념하겠다는 생각에서다.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대에 입대해 올 2학기에 복학 예정인 고려대 윤모 씨는 “4학년 1학기까지 남은 3년이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며 “최근에는 신문의 채용광고의 모집요건을 보고, 회사 기준을 확인하고 그 기준에 맞춰 공부를 한다”고 말했다.
 

고졸채용, 역차별 논란도

근래 들어 확산되고 있는 고졸채용 열풍이 상대적으로 ‘역차별’을 유발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구직난에 빠져 있는 대학(예비)졸업생들에겐 달갑지 않은 일이다. 상대적으로 취업문이 좁아져 버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자리 수는 정해져 있는데 고졸자의 몫이 늘어난다는 것은 반대로 대졸자의 몫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특히 상당수 공공기관이 고졸 할당제까지 들고 나오면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대졸 구직자 오모(28. 여) 씨는 “대졸 실업문제 해결 없이 고졸 채용을 밀어붙이는 것은 대졸 백수는 포기하겠다는 의미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결국 더 나은 조건이라도 고졸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것인데 우리가 그럴 만큼 여유가 있지 않다”고 말했다.

고졸자 내에서의 역차별도 문제다. 최근의 고졸채용 범위를 놓고 특성화고(상업계열과 공업계열) 학생 간 묘한 ‘온도차’가 감지되고 있다. 기업들은 즉시 업무가 가능한 상업계열 학생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금융감독원 인사 담당자는 “지원 자격에 제한을 두고 있지는 않지만 사실상 공업계열보다 상업계열 출신 위주로 뽑는다”고 말했다.

최근의 고졸채용 논의가 직업교육과 산업수요간 매칭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지나치게 마이스터고(기술중심 산업수요 맞춤형 고교)와 특성화고에 치중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때문에 대학 진학보다 취직을 염두하고 있는 인문계고 학생들의 박탈감은 더 크다.

서울의 한 인문계고 3학년 장모 군은 “인문계에 진학했지만 애초 대학은 염두에 두지 않고 취업을 준비했는데 사실상 인문계를 졸업하면 취직이 더 힘든 것이 현실”이라며 “이런 분위기가 있었다면 망설임 없이 전문계로 진학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한편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 등은 대기업 등에 편향된 고졸채용으로 구인난이 가중되지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대졸 고학력 직원을 채용하기 힘든 중소기업은 고졸자 채용으로 인력을 채울 수밖에 없는 게 현실. 중소기업이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구인난이 대기업의 고졸채용 확대로 더 확대되지 않을까 노심초사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견 제조업체 A사 관계자는 “대기업 문이 열려있는데 학생들 눈에 중소기업이 들어오기나 하겠느냐”며 “우수한 고졸 구직자들도 대졸자처럼 눈높이가 높아지는 건 아닐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고졸채용 확대도 중요하지만 중소기업에 취직하는 고졸자들의 처우와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정부의 지원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소기업혁신전략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대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채용 규모는 전체에서 봤을 때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며 “고졸채용 분위기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 인력난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취준생 취업 사교육비로 평균 358만원 지출”

이런 가운데 취업을 위해 자격증, 어학 성적 취득부터 시작해 자기소개서 작성에 이르기까지 사교육을 받는 구직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취업준비생 10명 중 3명은 취업 사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었으며, 지금까지 평균 358만원을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6일 취업사이트 ‘사람인’이 취업준비생 522명을 대상으로 ‘취업 사교육 경험’을 조사한 결과, 28.4%가 ‘있다’고 답했다.

학력에 따라 살펴보면, ‘대학원 이상’이 42.9%로 사교육 경험이 가장 많았다. 뒤이어 ‘4년제 대학’(33.5%), ‘고졸 이하’(20.9%), ‘2,3년제 전문대학’(18.5%) 순이었다.

사교육을 받은 이유로는 ‘취업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56.1%, 복수응답)를 첫 번째로 꼽았다. 다음으로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효과적일 것 같아서’(53.4%), ‘준비 방법을 잘 몰라서’(37.2%), ‘경쟁에서 뒤떨어질까 불안해서’(29.1%), ‘학교 교육으로는 부족해서’(25%),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서’(22.3%), ‘주변에서 다들 받고 있어서’(13.5%) 등의 이유를 들었다.

이들이 받은 사교육은 ‘토익 등 어학 교육’이 53.4%(복수응답)로 1위를 차지했다. 이외에도 ‘자격증 취득 교육’(48.6%), ‘희망직무 관련 전문교육’(28.4%), ‘컴퓨터 활용 교육’(27.7%), ‘취업 컨설팅’(18.9%), ‘전공 교육’(17.6%), ‘오픽 등 영어 말하기 교육’(14.2%), ‘이미지 메이킹’(10.1%), ‘인적성/필기시험 대비 교육’(8.8%) 등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사교육은 주로 ‘학원 등 오프라인 강의’(75%, 복수응답)로 받고 있었으며, 이어 ‘온라인 강의’(38.5%), ‘소규모 그룹 과외’(11.5%), ‘1:1 개별 과외’(5.4%), ‘앱 등 모바일 강의’(3.4%) 등이 있었다.

지금까지 받은 취업 사교육의 종류는 평균 3개였으며, 총 358만원을 사교육비로 지출했다고 밝혔다. 한 달 평균 사교육비는 28만원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생활비의 평균 37%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이렇다 보니 87.2%는 사교육비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반면, 사교육을 받지 않은 구직자(374명)들은 그 이유로 ‘비용이 부담되어서’(48.9%, 복수응답)를 가장 많이 선택했다. 계속해서 ‘어떤 사교육이 필요한지 몰라서’(44.1%), ‘아직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27.3%), ‘교육 기관이 마땅치 않아서’(14.2%), ‘주변에 받는 사람이 없어서’(13.1%) 등의 답변이 이어졌다.

스펙 초월로 인해 취업 사교육이 줄어들 것 같으냐는 질문에 절반 이상(52.3%)은 ‘오히려 늘어날 것’이라고 답해, ‘줄어들 것’(11.3%)이라는 응답자보다 4배 이상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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