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후기> 뮤지컬 ‘루나틱’을 보고

“어구, 젊은 사람이 영화나 공연을 자주 봐야지. 나중에 나이 먹어서는 잘 안보게 되더라.”

택시 기사님의 일침을 듣고 오랜만에 소규모 뮤지컬을 예매했다. 서울살이에 접어든 지 언 1년 차, 오고 가며 놀러 다닌 지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3년차에 들고 있는데 이제는 혜화동을 걷는 것도 익숙해진 건지 오랜만에 찾아왔음에도 몇 걸음 옮기면 과거의 추억이 새록새록 올라오는 장소들을 밟게 된다.

 

 

뮤지컬을 보기 위해 서대문구에서 종로구로 가는 버스정류장에 있던 때였다. 깔끔한 정장을 차려 입고 앞질러 가던 젊은 청년에게 척 보기에도 낯선 아저씨가 다가섰다. “바지-!, 셔-츠! 헤헤헤!” 하며 청년의 옷자락을 건드리고는 웃으며 달아나 버리는 것이 아닌가. 당연지사 청년은 “웬 미친 사람을 다 보냐”며 투덜거리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모습에 우리는 차마 수상한 아저씨를 따라잡지는 못하고 멀뚱한 버스정류소에서 ‘그 미친 이’에 대한 열띤 토의를 내놓을 뿐이었다.

“미친 사람을 안 좋게 평가하는 건 그저 다른 사람들일 뿐이지, 정작 당사자는 행복하지 않을까? 굶주리고 헌 옷을 입고 다니더라도 말이야. 때론 그 삶이 편하게 행복해질 방법인 것 같기도 해.”

“불행을 모른다고 해서 행복하진 않을 거야. 슬픔이 없다면 기쁨도 아무 의미나 가치가 없으니까.”

그 말에 손뼉을 탁 치고 다시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불행한 사람들’ 투성이였다. 마로니에 공원엔 햇볕이 가득하고 때때로 애완견이나, 키가 1m도 되지 않는 어린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엣 서울대학교의 터전이라는 짙은 흙색 건물을 둘러싸고 그 옆에 마임 공연(무언극)을 하는 광대도 있었다. 치킨과 피자를 잔뜩 배달시켜 나들이를 즐기는 대학생 무리도 있었다. 그들의 웃음소리와 모습이 아름답고 황홀하다가도 이면의 생활고나 육아 고충 또는 잦은 대인관계에서의 피로감들을 들여다볼 적이면 ‘때때로 불행하여 존재하는 행복감’에 고마운 마음이 생겨났다.

뮤지컬은 기대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관람석에 입장하기 전부터 “환자분들은 환자복을 착용해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환자복을 나눠주어 우리, 관객 모두를 환자 취급하는 것으로 공연은 시작되었다. 안 그래도 얼마 전 비슷한 소재의 영화 ‘날, 보러 와요’를 봤던 참이다. 우스우면서도 뭔가 찜찜한 섬뜩함에 신선함을 느꼈다. “신경 많이 썼네, 하하”라며 즐거워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정신병자 취급하는 것’에 이질적인 예민함이 뾰족이 찔려왔다.

전체적인 내용의 구성은 정신병동에서의 음악치료였다. 약물이나 물리·화학적인 치료를 일절 하지 않고 오직 노래로 재구성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환자들끼리 서로 나누고 이해로써 자신과 타인을 직시하는 그야말로 ‘인간적인’ 치료방법이 뮤지컬의 큰 기둥이 되었다.

누군가는 사랑으로 위장한 바람과 불륜을 게임으로 여기다 진정한 사랑의 죽음으로 미치광이가 되었고, 또 누군가는 평생을 함께하던 남편의 죽음으로 미치광이가 되었다. 또 하나, 그 스스로를 ‘아주 정상’이라 표하던 자는 돈에 눈이 멀어 미치광이가 되어갔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아울러 돌볼 수 있는 사람을 정상이라 하나보다. 미쳤다는 건 필수적인 삶의 일부조차 내쳐버리고 오직 단 하나에만 집중하는, 바라보는 사람들을 의미하나 보다. 그들의 공통점이 그랬다. 바람둥이 남자는 죽은 여자에 미쳐 세상 모든 사람들을 죽은 여자로 보이고, 또 남편을 잃은 할머니는 그의 가슴 속에 끊임없이 살아 숨 쉬는 할아버지를 위해 은행이며 시장바닥이며 돌아다녀 할아버지의 일자리와 생계를 걱정한다. 마지막으로 ‘아주 정상인’은 사업에서 잃은 돈을 위해 조카의 비명과 공포에 질린 눈동자에도 불구하고 ‘연극일 뿐이었다’며 친형의 딸을 납치한다. 모두 슬프고 섬뜩한 이야기지만 뮤지컬 특유의 재치와 부드러운 신명 그리고 배우들의 센스 있는 유머감으로 유쾌하게 관람할 수 있는 극이었다.

“당신은 정상이세요?”

의사가 물었다. 의사는 가수가 되고 싶었다. 노래로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주고 싶었는데, 정신과 의사로 직업이 달라졌으나 꿈은 바뀌지 않아 그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삶이라 하였다. 세 환자의 음악 치료극이 끝나고 관객석의 다른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rock & roll 이 준비되었고, 의사는 환자들을 일으켜 세웠다. 신나는 음악과 흥에 겨운 배우들의 춤바람에도 관객석의 환자들은 좀처럼 몸을 흔들지 못하고 멀뚱히 서서 민망해 하거나 손뼉을 치는 것이 전부였다. 학교행사에서 이런 흥부림 쯤은 단체 활동으로 많이 겪은 지라, 율동(?)을 따라하며 흥을 뽑는 내게 옆에 앉은 친구는 부끄럽다며 가만히 있으라, 하였다. 그래도 개의치 않고 뛰고 노래부르며 춤추니 정말 환자라도 되는 마냥 마음속에 불순물 없이 즐거웠다.

그러니 조금은 미련을 버리고 미친 사람으로 살아가는 건 어떨까. 어쩌면 극 중에 소개된 것처럼 정치인이 도둑질을 하고, 돈 때문에 가족을 죽이고, 다른 사람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 난 ‘이 미친 세상’에서 살아나가게끔 할 유쾌한 해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너무 정상이려고 안간힘 쓰지 말라고. 다른 사람의 눈초리에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우리 모두 미친 세상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환자들일 뿐이라고. 뮤지컬 ‘루나틱’은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대학생>

 

키워드
#N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